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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입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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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의 사과'도 '쿼터제'를 무너뜨리지 못했다 [심층 취재-한국 해외입양 65년] 2. 입양의 정치경제학 ④ ※이 기사는 이경은 국제인권법 전문가, 제인 정 트렌카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 입양인 모임 대표의 도움으로 취재, 작성되었습니다. "나는 한국의 고아입니다. 내가 어렸을 때 한국은 가난하다며 돈을 받고 나를 스웨덴에 팔았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경제사정이 좋아진 지금도 여전히 아이들을 해외에 팔고 있습니다. 한국의 정치지도자로서 이런 해외입양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1989년 야당 총재로 스웨덴을 방문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한국계 입양인 레나 김 씨로부터 이런 질문을 들었다. 이 질문에 김 전 대통령은 "죄송합니다. 부끄럽습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이날 간담회 자리는 울음바다가 됐다고 한다. 이 사건은 정치인..
국제입양시장에서 한국 아동은 '5만 달러' [심층취재-한국 해외입양 65년] 2. 입양의 정치경제학 ③ 지금도 홀트인터내셔널 홈페이지(바로보기)에 가면 누구나 국제입양을 기다리는 일부 한국 아동들의 사진과 간단한 프로필, 동영상을 볼 수 있다. 'NE Asia'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한국 아동들이다. 한국이 자리를 물려준 현재 세계 1위 아동 송출국인 중국은 '나이 별(0-4세, 5-10세, 10세 이상)'로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상품을 둘러보듯 홀트 홈페이지에 가면 입양을 기다리는 아동들의 모습을 둘러볼 수 있다. ▲ 홀트인터내셔널 홈페이지에 공개된 입양 대상 아동 사진. 아동 사진을 클릭하면 좀더 큰 사진과 간단한 아동 정보, 동영상을 볼 수 있다. ⓒ프레시안 한국에서 해외입양은 한국전쟁 이후 고아 구..
"전두환 정권, '아동 수출'로 한해 200억 벌었다" 1970년대, '미아'를 '고아'로 둔갑시켜 해외로 보내다 1978년 2월 경북 경산에 사는 정시학 씨 부부는 장녀 미화(당시 9세) 양을 잃어버렸다. 평소 잘 따르던 이웃집 서모(25세) 씨가 데리고 나간 뒤 미화 양은 이튿날 아침까지도 귀가를 안 했다. 정 씨 부부는 관할 죽도 파출소에 실종 신고를 했다. 정 씨는 미화 양이 8세 때 찍은 사진 100장을 복사해 사진 수배를 경찰에 의뢰했으나 경찰은 관내에 사진을 뿌렸을 뿐 수사에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이어 정 씨가 유괴범으로 추정되는 서 씨의 몽타주를 그려 전국에 수배하자고 요구하자, 포항 경찰서의 한 형사는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떠드냐"며 오히려 정 씨의 멱살을 잡고 뺨을 때렸다. 아버지 정 씨는 사비를 털어가며 미화 양의 행방을 좇던 중 서 ..
이승만 정권의 해외입양은 '혼혈아 청소'였다 [심층 취재-한국 해외입양 65년] 2. 입양의 정치경제학 ① "국제입양은 한국에서 '태어'났다. 서양 양부모에 의한 아시아 아동의 대규모 입양은 1950년대 한국 전쟁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세먼, "21세기의 아시아의 국제입양", 2014) 국제입양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위치는 독보적이다. 한국은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낸 나라다(1953년 이후 현재까지 한국 정부가 제시하는 통계는 16만여 명, 국제사회의 추정은 20만 명 이상을 해외입양 보냈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한국이 산업화된 국제입양의 '기본틀'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특히 한국과 미국간 국제입양을 통해 현재 국제입양의 많은 문제점들이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에서 국제입양이 어떻게 ..
"나는 친부모가 누군지 알 권리가 있습니다" [심층취재-한국 해외입양 65년] 10명 중 1명 성공한 친부모 찾기...최선일까? 유정현(한국 이름) 씨는 38년 만에 처음으로 본인이 태어난 한국을 찾았다. 생후 10개월인 1979년 4월 10일 미국으로 입양돼 한국을 떠났던 정현 씨는 "어디를 가도 나와 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편안함을 느낀다"고 첫 고국 방문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정현 씨는 1978년 6월 3일 태어나 같은 해 11월 25일 버려졌다.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힌 종이쪽지와 함께 서울시 도봉구 수유동 한 단독주택 앞에서 발견된 그는 경찰서를 거쳐 한국사회봉사회로 인계됐다. 그로부터 5개월 뒤에 미국 미네소타에 사는 현재의 양부모에게 입양됐다. 현재 두 아이의 엄마인 정현 씨는 10년 전부터 친생부모 찾기를 시작했다고 ..
'한국은 아동 슈퍼마켓' 오명 벗으려면... ※이 기사는 이경은 국제인권법 전문가, 제인 정 트렌카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 입양인 모임 대표의 도움으로 취재, 작성되었습니다. 생후 18일 된 한국 아동이 미국 공항에서 입국을 저지당하는 일이 지난 2012년 있었다. 미국인 부부가 이 아동을 입양 목적 비자(IR-3, IR-4)가 아니라 친지 방문을 위한 비자면제프로그램(VWP)으로 입국시키려는 시도를 미 국토안보부(Department of Homeland Security)에서 제지한 것이다. 아이가 갓난아이인 점을 감안해 일단 입국을 허용했으나, 양부모를 자처하는 미국인 부부와는 격리시켰다. 사건의 전모는 이렇다. 한국의 한 보호시설에서 미혼모가 낳은 아이를 생모에게 '친권 포기 각서'만 받고 바로 인계 받아, 이 아이를 데리고 미국으로 가려다 ..
외교부의 거짓말, 美 "일부 한국입양아 자동 시민권 못받아" [심층 취재- 한국 해외입양 65년] 1. 추방 입양인 - ② ※이 기사는 이경은 국제인권법 전문가, 제인 정 트랜카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 입양인 모임 대표의 도움으로 취재, 작성되었습니다. 3살 때 미국으로 입양됐다가 지난 2011년 추방당한 팀이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한국에서 그의 존재를 증명해줄 수 있는 유일한 문서는 호적(현 가족관계등록부)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호적은 가짜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한국에서 1970-80년대 해외입양을 보낼 때 서류를 간소화하기 위해 거짓으로 '고아호적'을 만드는 게 일종의 관행이었다. 아담 크랩서 씨도 자신의 본래 이름인 '신성혁'이 아닌 '신송혁'이란 이름의 '고아호적'을 입양기관에서 만들어 입양 보냈다. 이 '고아호적'에 대해 아담의 추방 재판 판사는 ..
한국정부, 고국으로 추방된 입양인 통계조차 없다 [심층 취재- 한국 해외입양 65년] 1. 추방 입양인 - ① ※이 기사는 이경은 국제인권법 전문가, 제인 정 트랜카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 입양인 모임 대표의 도움으로 취재, 작성되었습니다. # 필립 이야기 필립 클레이, 한국 이름 김상필. 2017년 5월 21일, 그는 경기도 일산의 한 아파트 14층에서 몸을 던져 42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죽었지만, 생의 대부분을 미국에서 보냈다. 그는 여덟살 때 미국으로 입양돼, 29년을 미국에서 살았다. 그러다 2011년 한국으로 추방됐다. 필립의 양부모가 그의 시민권 획득 절차를 밟지 않아, 미국 시민권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 입양인 필립은 왜 고국 아파트 14층에서 뛰어내렸나?) 생전에 필립과 교류했던 존 컴프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