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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입양시장에서 한국 아동은 '5만 달러'

[심층취재-한국 해외입양 65년] 2. 입양의 정치경제학 ③

 

 

지금도 홀트인터내셔널 홈페이지(바로보기)에 가면 누구나 국제입양을 기다리는 일부 한국 아동들의 사진과 간단한 프로필, 동영상을 볼 수 있다. 'NE Asia'라고 소개하고 있지만 한국 아동들이다. 한국이 자리를 물려준 현재 세계 1위 아동 송출국인 중국은 '나이 별(0-4세, 5-10세, 10세 이상)'로 입양을 기다리는 아이들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인터넷 쇼핑몰에서 상품을 둘러보듯 홀트 홈페이지에 가면 입양을 기다리는 아동들의 모습을 둘러볼 수 있다.  


▲ 홀트인터내셔널 홈페이지에 공개된 입양 대상 아동 사진. 아동 사진을 클릭하면 좀더 큰 사진과 간단한 아동 정보, 동영상을 볼 수 있다. ⓒ프레시안


 


한국에서 해외입양은 한국전쟁 이후 고아 구제를 위한 임시적 조치로 시작됐다. 하지만 해외입양아 수는 전후 한국사회가 안정을 찾고 사회경제적 도약을 이룩하던 시기인 1970년대와 1980년대 급속히 증가했다. OECD 가입국이며, 1인당 국민소득이 2만7600달러(2016년)나 되는 현 시점에서도 매년 수백명 씩 해외입양을 보내고 있다. 


"해외입양은 국제시장에서 수십만 달러가 오가는 사업이다"

이런 일이 일어난 근본적인 이유는 해외입양을 전문적으로 중개하는 입양기관을 통해 입양이 '산업화' 됐기 때문이다. '산업화된 해외입양'은 해외입양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입양기관과 취약계층 아동 보호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정부의 허가 아래 입양기관들은 입양부모로부터 수수료를 받고 해외입양 업무를 대리했다. 다른 사회복지기관과 달리 입양기관은 신고제가 아닌 허가제로 운영된다. 1970년대 이래로 4대 입양기관(홀트아동복지회, 동방사회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한국사회봉사회)만 해외입양 업무를 수행할 수 있었다. 1988년 한국의 해외입양에 대해 심층 취재한 미 월간지 <프로그레시브>의 매튜 로스차일드 기자는 입양기관에 대해 '준 정부기관'(quasi-governmental institution)이라고 규정했다.  

또 아이를 원하는 미국, 유럽의 부부들이 자국에선 원하는 조건의 입양 아동을 찾기가 어려운 아동 수령국의 상황도 '입양 산업'이 활성화되는 조건이 됐다. <프로그레시브>의 당시 보도에 따르면, '미국 입양을 위한 국가 정책'의 제프리 로젠버그 공공정책 국장은 "미국에서 입양을 원하는 부부는 200만 쌍인데, 미국에서 입양 가능한 백인 아동은 2만 명에 불과하다"며 이 때문에 해외입양 수요가 발생한다고 보도했다. (미국에서 흑인 아동, 인디언 아동 등 인종간 입양에 대해선 논란이 있으며, 실제 입양 부모가 이들을 선호하지도 않는다) 미국 INS 이민비자 담당 영사 로버트 애크만 씨는 같은 기사에서 "한국에서 입양은 가장 성장이 빠른 분야"라면서 "여기엔 큰 돈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국은 엘살바도르, 멕시코, 스리랑카 등 아동 납치나 밀매를 통해 유입되는 아동도 아니고 입양기관을 통해 안전하게 인수된 아동이기 때문에 더 선호한다"고 지적했다.  

제인 정 트렌카 대표는 한국계 입양인이자 입양학 학자인 김 박 넬슨의 논문("국제시장에서의 아동 쇼핑")을 인용해 미국 부부들이 해외입양을 선호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관련 기사 : 미국인이 '비싼' 해외 입양을 선호하는 진짜 이유) 

"해외 입양은 한 해에만 국제 시장에서 수십억 달러가 오가는 사업이다. 게다가 이 사업은 미국 불임 부부에게 입양아의 나이, 인종 등을 '맞춤형'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울러 해외 입양은 국내 입양과는 다르게, 친모의 권리를 철저히 무시할 수도 있다. 미국인이 국내 입양을 하게 되면, 친모가 입양아를 만날 권리를 인정해 주어야 하고 친모의 요구를 많이 들어줘야 한다. 그러나 해외 입양은 비록 더 큰 비용을 지불하지만, 일단 아이를 '구매'하고 나면 친모의 권리를 무시해도 괜찮다. 또 친모에 대한 후속 서비스(After Service)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아무 문제가 없다. 

이렇게 해외입양은 입양아를 친부모의 품과 아이의 근원으로부터 쉽고 깔끔하게 '절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 국내입양은 아동복지체계에 따라서 공공기관에서 주도한다. 그러다 보니 아동의 나이, 인종 등을 양부모가 선택할 수 없는 반면, 해외입양은 사적 중개기관이 양부모가 선호하는 아동의 영유아 아동을 확보해 공급해주는 방식이다. 따라서 막대한 비용이 들더라도 미국의 양부모들은 해외입양을 선호한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큰 국제입양 수령국이자, 동시에 자국 아동을 외국으로 보내는 송출국이기도 하다. 미국 국무부의 2016년(2015년 10월부터 2016년 9월, 미국 정부 회계년도 기준) 입양통계에 따르면, 미국으로 국제입양된 아동은 총 5372명이었다. 한편, 캐나다 네덜란드 등 7개 국가로 입양 보내진 미국아동도 89명이다. 트렌카 대표는 "2011년 기준으로 미국에는 약 40만540명의 아이가 부모와 이별하여 위탁 시설에서 살고 있다. 이 아이들 가운데 10만4326명이 입양되기를 기다리고 있고, 5만8000명의 아이들이 고아원에 살고 있다"고 강조했다. 사적 중개기관을 통해 원하는 아동을 살 수 있는 국제입양 시장이 존재함에 따라 정작 미국에서 가정이 필요한 아동은 외면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한국 출신 아동의 입양 수수료가 유독 비싼 이유는? 


국제입양시장에서 한국 아동은 가장 선호되는 아동 중 하나다. 한국 아동의 입양 수수료는 1965년 130달러(같은 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 105달러), 1988년 5000달러(같은 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 4571달러), 2009년 1만7215달러(같은 해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 1만7074달러)에 달했다.  

홀트인터내셔널 홈페이지에 소개돼 있는 입양 수수료를 보면 국가별로 수수료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한국 아동의 입양 수수료는 최대 3만3150달러에 이른다. 입양 심사 등 부대비용과 여행 경비까지 포함하면 입양부모가 부담해야할 비용은 최대 5만3980달러다. 중국 아동의 입양 수수료는 최대 2만6900달러, 베트남은 2만2810달러, 태국은 2만2060달러, 필리핀은 2만2260달러, 인도는 2만5410달러, 아이티는 3만5250달러, 에티오피아는 2만8350달러다.  


▲홀트 인터내셔널 홈페이지에서 안내하고 있는 한국 아동의 입양 비용 ⓒ프레시안




 

홀트인터내셔널 홈페이지에는 이같은 비용을 안내하면서 "홀트는 기독교, 비영리 단체로 정부 보조금이 아닌 입양비와 기부금으로 운영된다"며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수수료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에서 1970-80년대 정부의 묵인 하에 입양기관들은 입양 수수료를 많이 받을 수 있는 해외입양에 경쟁적으로 몰입했다. 이런 행태는 1989년과 2008년 당시 보건복지부 감사 결과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입양기관들이 입양아동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 고아원 등 복지시설과 병원 등 의료기관에 양육비, 사례금 명목으로 막대한 자금을 주어온 것으로 보건사회부 감사 결과 드러났다. 보사부가 국정감사자료로 제출한 89년도 보사부 감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홀트아동복지회는 국외입양대상 아동을 확보하기 위해 지난 86-88년 성로원 등 51개 사회복지시설에 입양 대상 아동 1명당 6만 원의 양육비와 입양 때 20만 원의 사례비를 주는 등 모두 7억8823만 원을 지원했다.  

홀트는 또 외국인 접대, 선물비 등으로 연평균 2600만 원 씩의 접대비를 지출했으며, 지난해 6월 해외입양기관들이 입양아 확보를 위해 경쟁적으로 의료기관에 지급하던 분만보조비를 주지 않기로 결의한 뒤에도 이를 어기고 지난해 말까지 97건 626만 원의 분만 지원금을 의료기관에 주어온 것으로 밝혀졌다.  

또 동방아동복지회도 병의원에 대해 아동 1인당 86년 4만8000원에서 88년 9만4800원으로 분만보조비를 대폭 올려 지급했으며, 조산소에 대해서도 86년 5만6000원에서 88년 8만9900으로 올려 지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동방도 홀트와 마찬가지로 지난해 7월 이후에도 의료기관에 대해 분만보조비를 계속 지급, 지난해 말까지 36건 561만원을 준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들 입양기관들은 지난 86-88년 입양수수료를 책정된 금액보다 국내 입양의 경우 9천-3만원씩, 국외입양 때에는 1만4천-21만원씩 더 많이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입양아 확보 위해 뒷돈", <한겨레>, 1989년 9월 27일) 


복지부 "인정 범위 이상으로 국외입양 알선 비용 인상" 


입양기관들이 국내입양이 아닌 국외입양을 우선적으로 보낸 행태는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있었던 보건복지가족부의 입양기관에 대한 감사에서도 확인됐다. 당시 복지부는 2007년 1월부터 국내입양 우선추진제도를 도입해 입양기관에 아동이 입소한 날로부터 5개월 동안은 우선적으로 국내입양을 추진하도록 했다. 복지부는 이와 관련해 입양기관들이 상담실적, 정보제공 등의 기록을 남겨 국내입양 추진 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홀트아동복지회는 입양대상 아동에 대해 국내입양 우선추진 기간 중 국내입양은 시도하지도 않고 국외입양을 추진하고, 국외에 입양된 아동의 국내입양 추진 기록을 유지 하지 않고 있다"며 "홀트아동복지회의 경우, 2007년 12월 및 2008년 4월부터 6월까지의 기간 중에 국외에 입양된 153명 중 139명(90.8%)은 국내입양 우선추진기간 중에 국내입양 추진기록도 유지하지 아니하고 국외입양을 위한 성.본 창설을 신청했다"고 위반 사실을 지적했다.  

또 감사보고서는 4대 해외입양기관들이 국내입양 활성화를 위해 입양대상 아동의 정보를 공유하도록 했는데 이 역시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었다. 보고서는 "2008년 6월 30일 현재 입양대기아동 1410명 보다 국내입양을 신청한 대기자 수가 1969명으로 559명이 더 많다"며 "그런데 입양기관이 입양대상아동에 대한 정보를 입양정보센터에 등록은 하고 있으나 아동에 대한 성별, 나이 등 기본정보만을 제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 위 센터 등록 후 5개월이 지나면 입양여부에 관계없이 비공개 아동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보고서는 "입양신청자의 정보가 입양기관간 서로 공유되지 않고 있어 입양신청자가 증가되고 있는 유리한 여건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고 그 결과 입양정보센터를 통한 국내입양실적이 전무하는 등 입양업무의 투명성 결여로 국내입양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입양기관들이 해외입양을 추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입양대상 아동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고 서로 공유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감사 결과다. 그 이유는 결국 해외입양의 높은 입양 수수료에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충분히 가질 수 있다. 특히 감사 보고서는 "국외입양의 경우, 홀트아동복지회는 2007년 7월 1일 국외협력기관과 협약을 변경하여 복지부 장관이 인정하는 범위 이상으로 국외입양 알선비용을 인상하였다"고 지적했다.


10년 동안 입양비용 문제 손도 안 댄 복지부? 


헤이그 국제 아동 입양 협약(헤이그 협약)의 가장 큰 목적은 국제입양을 통한 '금전적 이득'을 규제하는데 있다. 국제입양 과정을 통한 수익 창출을 규제하지 않을 경우, 아동 납치와 밀매 등 극단적인 아동 대상 범죄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최대 아동 송출국 중 하나인 대한민국은 이 협약에 가입돼 있지 않다. (2013년 가입 의사를 밝히고 보건복지부 장관이 서명을 했으나 협약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한 국내법을 정비해야 하는 절차가 정식 가입 전에 선행돼야 하므로 서명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한국에서 국제입양 비용은 사실상 입양기관의 자의적 결정에 맡겨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입양특례법 제 32조는 '입양기관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양친이 될 사람으로부터 입양 알선에 실제로 드는 비용의 일부를 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입양특례법 시행령6는 입양 비용에 대해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정하는 금액 이내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입양기관에 대한 보건복지부 감사는 지난 2008년(홀트아동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과 2009년(홀트아동복지회)에 있었다. 두번 모두 국제입양 비용을 '보건복지부 장관 인정 금액' 이상으로 받고 있다는 지적이 있었다.  


복지부 장관이 인정하는 해외입양 알선 비용은 961만6000원으로, 2008년 감사 당시 미국으로 입양되는 아동의 경우 홀트는 1인당 154만9000원, 대한은 571만 원을 각각 초과해서 받고 있다고 지적됐다. 또 홀트는 사실상 입양 수수료로 받은 돈 중 280만 원(아동 1인당)을 후원금으로 회계 처리해 지적을 받기도 했다.  


다만 복지부는 916만 원이라는 금액이 지난 2001년 9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용역을 의뢰해 산출한 결과로 7년 동안 입양 비용이 동결돼 현실화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감사 결과에서 지적했다.  


문제는 2008년 감사에서 지적된 사항이 2017년 현재까지도 전혀 개선된 것이 없다는 점이다. 복지부 김승일 입양정책팀장은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현재 국내 입양기관들이 대체로 2000만 원 가량의 해외입양 비용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해외입양 비용에 대해 새로운 상한선을 정한 바 없다"고 밝혔다.  


그는 "입양기관들이 민간기관들이기 때문에 행정적 규제 등이 사실상 쉽지 않다"며 매년 입양 비용 등에 대한 보고 등도 사실상 강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해외입양기관은 사회복지시설들 중 유일하게 허가를 받아야 하는 시설이다.(다른 사회복지시설들은 신고제다.) 신고제가 아닌 허가제로 운영하는 이유는 무분별한 해외입양을 규제하고 아동을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정부가 해외입양에 있어서 4대 입양기관(1970년대 이후 이 숫자는 변하지 않았다)에 사실상 독점권을 보장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직접적인 지원이 없다고 행정적인 규제나 감시 권한이 없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편의주의적인 해석이다. 특히 입양기관에 대한 감사를 통해 입양기관들이 입양비용으로 받는 돈을 후원금으로 처리하고 있고, 정부가 허용하는 금액 이상의 비용을 양부모로부터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도 10년이나 전혀 개선책을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은 정부가 입양 문제에 있어 얼마나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했는지를 여실해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