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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의 거짓말, 美 "일부 한국입양아 자동 시민권 못받아"

[심층 취재- 한국 해외입양 65년] 1. 추방 입양인 - ②

 

 

※이 기사는 이경은 국제인권법 전문가, 제인 정 트랜카 진실과 화해를 위한 해외 입양인 모임 대표의 도움으로 취재, 작성되었습니다. 


3살 때 미국으로 입양됐다가 지난 2011년 추방당한 팀이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한국에서 그의 존재를 증명해줄 수 있는 유일한 문서는 호적(현 가족관계등록부)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호적은 가짜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한국에서 1970-80년대 해외입양을 보낼 때 서류를 간소화하기 위해 거짓으로 '고아호적'을 만드는 게 일종의 관행이었다. 아담 크랩서 씨도 자신의 본래 이름인 '신성혁'이 아닌 '신송혁'이란 이름의 '고아호적'을 입양기관에서 만들어 입양 보냈다. 이 '고아호적'에 대해 아담의 추방 재판 판사는 '불법으로 입국했다'고 문제 삼기도 했다.  

한국은 입양 보내려고 '고아'를 만들어냈다
 

국제인권법 전문가인 이경은 박사(서울대학교 법학과)는 "입양특례법이 시행되는 2012년까지 기아 발견에 의한 단독 호적(고아호적) 발급 숫자와 국외입양 아동의 숫자는 놀랍도록 유사하다"며 "이는 과연 60여 년간 한국에서 국제입양이 가정이 필요한 '고아'들에게 가정을 찾아주기 위한 절차였는지, 아니면 국제입양을 위한 '고아'를 만들어 내기 위한 절차였는지에 대해서 의문을 갖게 한다"고 지적했다.  



(출처: <국제입양에 있어서 아동권리의 국제법적 보호>, 이경은, 서울대학교 법학과 박사 학위 논문, 2017)  

'가짜 호적' 문제에서도 드러나듯이 2012년 8월, 입양특례법 개정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그 전까지 한국 정부는 해외입양 과정에 공식적으로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 4대 입양기관(홀트아동복지회, 동방사회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한국사회봉사회)에 맡겼다. 한국의 입양기관들은 마찬가지로 미국의 사회복지체계 내에 들어가 있지 않은 미국의 사설 입양기관들을 파트너로 삼아 한국과 미국간 해외입양 업무를 전담해왔다. 입양이 해외의 양부모들에게 수수료를 받을 수 있는 '돈벌이 수단'이 되면서 관련 절차는 '간소화' 됐다. 2014년 입양아동 현수가 양아버지에게 맞아 죽은 사건은 미국 입양기관이 양부모 심사를 얼마나 허술하게 하는지 보여준다. 추방 입양인 문제의 근원 역시 입양 보내기에만 급급한 이런 입양 시스템에 있다. 

미 국무부 "한국 입양 아동, 자동으로 시민권 받을 수 없다. IR-4비자 받으면" 

입양인 국적 취득 문제를 둘러싼 인권 논란이 거세지자 미국 의회는 2000년 아동시민권법(Child Citizenship Act 2000, CCA)를 통과시켰다. 이 법은 2001년 2월 발효됐으며, 당시 '입양이 완료된' 만 18세 이하 입양인은 별도의 시민권 획득 절차를 밟지 않아도 자동으로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게 됐다.  

외교부 영사서비스과는 입양인 국적 취득 문제에 대한 질문에 "CCA로 동법 발효시 만 18세 이하 입양인(1983년 2월말 이후 출생)은 일괄적으로 미국 국적을 취득했다"고 답했다. 외교부는 추방 입양인인 아담, 필립 등 모두 1970년대 입양 간 경우라서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답변은 사실이 아니다. 2014년 이전까지 입양된 대다수 한국 입양인들은 이전에 입양된 이들과 마찬가지로 시민권 미취득 가능성이 여전히 높다. 왜? 한국 입양 아동이 받은 비자 때문이다. 입양특례법 개정으로 가정법원을 통한 입양재판이 제대로 진행되기 시작한 2013년 중반이 돼서야 한국 아동은 CCA가 자동으로 적용되는 IR-3 비자를 받고 미국으로 입국했다. CCA가 발효되기 시작한 2001년부터 2013년까지 IR-4 비자를 받고 입국한 아동 1만5498명은 미국에서 입양이 완료된 사실이 확인돼야만 시민권을 받을 수 있다. 

미국 국무부(허치슨 디 스코트)는 <프레시안>에 보낸 서면 답변을 통해 "2000년 CCA는 일부 입양아들에게 자동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미국 입국시 부여되는 비자 유형에 따라 자동 시민권이 부여되기 때문에 이와 다른 비자를 받은 입양아도 자동적으로 미국 시민권을 받을 수는 없다"며 "IR-4 비자를 받으면 자동으로 미국 시민권을 받을 수 없다. IR-4 비자를 받은 어린이는 미국 법정에서 입양될 때 시민권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출처 : 미 국무부, 미 국무부의 연도별 비자 발급 통계에서 한국 통계를 찾아 집계했다.) 

한국, IR-4 비자를 가장 많이 받은 나라 


한국은 IR-4 비자를 가장 많이 받은 나라다. 상대적으로 IR-4 비자를 적게 받은 2012년 미 국무부 통계를 보면, 미국은 전 세계 1506명의 아동에게 IR-4 비자를 발행했고 이 중 628명이 한국 아동이다. 한국은 이 비자를 가장 많이 받은 나라였고, 우간다(226명), 콩고민주공화국(211명), 에티오피아(114명), 모로코(57명) 순으로 IR-4 비자를 받았다.

만약 IR-4 비자를 받고 간 입양 아동의 양부모가 필립이나 팀, 아담의 양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미국에서의 재입양 절차를 빼먹는다면, 이 입양인은 미국 시민권을 취득할 수 없게 되며 추방 위험에 노출된다.  

해외입양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도 이런 문제에 대해 2012년 이후에야 알았다. 복지부는 2012년 추방 입양인 문제에 대한 대책으로 미국 입양아 시민권 취득 문제에 대한 전수조사를 처음으로 실시했다. 당시 이 업무 담당자 중 한 명은 당시 CCA 적용이 안 되는 18세 이상 성인 입양인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실시했다고 밝혔다. 18세 미만 아동은 전수 조사 대상이 아니었다. 이 조사를 통해 파악된 시민권 취득 미확인자가 2만3000여 명이었다. 

현재 해외입양 업무를 맡고 있는 김혜지 아동복지정책과 사무관은 "현재 조사된 국적 취득 미확인자 1만9000여 명은 2012년에 입양 간 아동까지 포함한 수치"라면서 IR-4비자 문제에 대해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사무관은 "2012년 첫 조사 이후 언제 비자 문제를 인지하고 관련 통계에 포함시켰는지 시점은 정확히 모른다"고 덧붙였다. 

한국 출신 아동이 우간다, 콩고 등 아프리카 저개발국가 출신 아동들보다도 더 시민권 취득 문제에 취약한 이유는 앞서 지적한 입양 제도에 있다. IR-3비자는 입양이 발생하는 나라에서 입양 재판을 받고 입양 부모가 입양아동을 직접 만났을 경우에 주어진다. 에티오피아, 가나, 아이티, 온두라스는 해외입양의 경우, 입양 부모가 반드시 2번 방문하게 한다. 러시아는 입양 부모가 3번 방문할 것을 요구했다(러시아는 미국으로의 해외 입양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키기도 한다). 중국, 콜롬비아, 부룬디. 코스타리카, 인도, 홍콩은 입양 부모가 7주까지 머무르면서 입양 절차를 직접 밟도록 요구하고 있다. 한국은 2012년 입양특례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입양부모가 한국에 한 번도 오지 않고 입양기관을 통해 모든 절차를 대리할 수 있게 했다. '우편 주문 아기'가 가능한 시스템이었다는 얘기다.  

UN 아동권리협약은 '아동의 입양은 반드시 권한당국의 결정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21조의 a)고 규정하고 있다. 이경은 박사는 "한국은 1991년 UN 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하면서, 이 조항은 유보하였고, 아직도 이 유보를 유지하고 있다"며 "UN 아동권리협약 가입국 196개국 중에 입양제도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21조의 a를 유보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미국 정부도 아동의 입양절차의 완료와 시민권 취득을 담보할 수 없는 한국으로부터의 입양절차가 취약한 것을 알면서도 한국 출신 입양 아동의 입국을 허용해 오고 충분한 아동보호 조치를 외면해 왔다"고 비판했다. 

결국 한국과 미국의 허술한 입양 제도, 또 이를 뻔히 알면서도 감독과 제재를 하지 않은 양국 정부 때문에 '추방 입양인'이라는 비극이 발생했다.  

현재 미국 해외입양인 중 약 3만50000명이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되는 가운데, 보건복지부가 파악한 한국 출신 중 국적 취득 미확인자는 1만9429명이다. 전체 국적 미취득자 중 절반 이상이 한국 출신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 한국의 입양정책에서 당사자인 입양인들이 배제되고 있다며 항의하는 입양인들의 시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