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

대선 후 77일, 트럼프는 미 대통령제 '허점'을 노린다

[2020 美 대선 읽기] 트럼프 비선캠프가 준비하는 '출구 전략'은?

"2000년 우리 모두가 알게 된 한 가지 사실은 공화당원들은 투표용지를 세는 방식을 잘 고친다는 것이다. 이제 우편투표에 대한 논란이 커짐에 따라 추수감사절(올해는 11월 26일) 만찬 때도 미국 대통령 당선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이 갈등을 피하기 위해 조 바이든(민주당 대선후보)의 압승을 기도해야 한다."(마이크 바니클 정치 칼럼니스트, 3일(현지시간) MSNBC 인터뷰)

"내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11월 3일 대통령 선거 후 36시간의 혼란이다. 선거 후 조 바이든이 승리했다고 주장하고 도널드 트럼프(대통령, 공화당 대선후보)도 승리했다고 말한다.(어느 한쪽이 압승하지 않고 박빙의 결과가 나온 경우를 의미한다. 필자 주) 그러면 일부 유권자들이 AR-15(자동소총)를 가지고 거리로 나선다. 전면적인 반란은 아닐지 몰라도 통제 불능 상태가 될 수 있다."(클린트 와츠 대외정책연구소(Foreign Policy Research Institute) 연구원, 전 FBI 정보요원, 3일 <뉴스위크> 인터뷰) 

"트럼프는 이미 우편투표는 사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사기에도 불구하고 이기면 이겼다고 말할 것이고, 진다면 이 사기 때문에 졌다고 말할 것이다. 여기에 (선거 불복을 주장할)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소셜 미디어를 통해 포착되고 재생산 되며, <폭스뉴스>(보수 성향의 매체로 2016년 대선 때부터 노골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했다. 필자 주)에 의해 패러디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트럼프가 진다면 사기 때문인 것이 된다. 이는 매우 위험한 상황을 만들 수 있다... 때문에 우리는 올해 전통적인 선거의 밤을 보내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선거의 '계절'이 될 수도 있다. 지금 당장 언론에서 모든 미국인들에게 이 이야기를 꺼내고 인내심을 갖도록 당부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닐 길먼 진실 전환 프로젝트(Transition Integrity Project) 공동 대표, 3일 <데모크라시 나우> 인터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이 지난 7월 30일 트위터를 통해 '선거 연기론'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트럼프 비선 캠프(공식 캠페인 조직이 아닌 비선 조직)에서 준비한 '출구 전략'의 신호탄이라고 다수의 정치 분석가들이 말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실패 등으로 대선에서 패배할 확률이 높아지자 선거판 자체를 흔들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가 진짜로 원하는 것은 11월 3일로 예정된 대선일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대선에서 패배하더라도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명분을 쌓는 것이라고 정치 전문가들은 해석한다. 트럼프는 대선 당일부터 임기 마지막(2021년 1월 20일)까지 대통령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11주(77일) 동안 선거 결과를 뒤집기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본다. "정치인 트럼프는 (지금) 힘이 없지만 대통령 집무실은 임기 마지막까지 명령할 수 있다."(<뉴스위크>) 

트럼프는 이미 "우편투표=사기"로 못 박았다 

자말 보우먼은 민주당 예비경선에서 뉴욕 16선거구 후보로 7월말께 확정됐다. 예비경선은 지난 6월 23일에 있었지만, 공식 결과는 3주나 지나서야 확정됐다. 표차가 근소해서 재검표를 했던 것도 아니었다. 개표 초반부터 보우먼은 경쟁자였던 현역 의원인 엘리엇 엥겔 의원을 25% 차이로 앞섰다. 하지만 엥겔 의원은 끝까지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고, 뉴욕은 여느 때보다 5배 많은 40만 명의 우편투표 결과를 모두 합산하는데 무려 3주의 시간이 걸렸다. 뉴욕 뿐 아니라 다른 지역의 예비 경선에서도 결과를 확정하는데 수주에서 한달 가까운 시간이 걸린 경우가 있었다. 코로나19 사태로 예년에 비해 월등히 많은 유권자들이 우편투표로 투표에 참여했기 때문이다. 

선거 당일 투표하기 힘든 사람들도 선거에 참여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우편투표는 민주주의를 확장시키는 좋은 제도다. 그러나 투표율이 높아지면 불리해진다는 점에서 공화당 입장에서는 막아야 하는 제도다. 트럼프와 공화당이 "우편투표=사기"라면서 무슨 수를 쓰더라도 우편투표를 전면 도입하는 주가 늘어나는 것을 막으려는 것은 이 때문이다. 트럼프는 3일 네바다주 의회가 모든 유권자에게 자동으로 우편투표 용지를 발송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법정에서 보자"며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대선 후 트럼프에게 주어진 77일 

트럼프는 우편투표로 대선을 치를 경우 승자를 결정하는데 최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본선거일(11월 첫번째 월요일 다음의 화요일), 선거인단 선거일(12월 13-19일 중 수요일), 대통령 취임일(이듬해 1월 20일 낮 12시) 등이 모두 법으로 규정돼 있다. 최종 승자가 확정되지 못하는 최악의 경우, 2021년 1월 20일 낮 12시에 법으로 규정된 권력 승계 순위에 따라 낸시 펠로시 하원의원(민주당)이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권력을 이양 받는다. 트럼프가 백악관 오벌오피스를 계속 차지하고 있을 수는 없다. 

문제는 그 이전까지 두달의 시간이다. (트럼프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바이든이 압승하지 않는 한 트럼프는 두달여의 시간을 벌게 된다. 유권자들이 투표하는 본선거 결과가 아니라 각 주를 대표하는 선거인단 선거 결과로 최종 승자가 확정되는 간접선거 방식의 독특한 미국의 대통령 선거 방식, 또 이런 선거 방식 때문에 선거 이후 퇴임까지 '레임덕 대통령'이 백악관을 지키고 있는 기간이 길다는 두 가지 사실에 기반해 트럼프는 이번 대선 결과를 어떤 식으로든 자신에게 유리한 결말로 유도하겠다는 계획을 세울 수 있다. 미국의 선거인단/승자독식제로 운영되는 간접선거 방식 때문에 유권자 투표에서 더 많이 득표한 후보가 대통령이 되지 못한 경우가 미국 역사상 4번 있었다. 최근의 사례가 2000년 대선(조지 W. 부시 승리)과 2016년 대선(트럼프 승리)이었다. 

이 시스템적인 '레임덕 기간' 동안 트럼프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트럼프와 바이든 어느 한쪽이라도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겠다는 입장을 밝힐 경우, 트럼프 지지자들과 바이든 지지자들 모두가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이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이로 인해 사회적 긴장감이 고조될 경우 현재 포틀랜드에 시위 진압을 명분으로 연방요원들을 파견한 것처럼 "트럼프가 군사적으로 사태에 개입할 명분이 될 수도 있다."(<뉴스위크>)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 2000년 대선 때도 소송이 제기됐고, 연방대법원을 결국 부시의 손을 들어줬다. 현재 대법원 구성은 보수성향의 대법관이 5명, 진보성향의 대법관이 4명이다. 

우편투표 집계와 개표를 어렵게 하기 위해 (이미 적자에 시달리는) 우체국의 연방지원금을 끊어서 파산을 유도하는 방안 등도 일각에서 나온다. 

"트럼프 재선을 위해 뭐든 하겠다"는 로저 스톤의 2000년 대선 경험 

이런 '소설' 같은 이야기는 재검표, 지지자들의 '폭동', 법정 소송 등 한달여의 혼돈의 시간을 거쳐 승자가 확정된 2000년 대선이라는 전례때문에 더욱 현실적인 우려로 다가온다. 

"범인은 항상 범죄 현장으로 돌아와요. 여긴 2000년 대선 재검표가 열린 곳이죠. 재검표를 마친 곳이에요. 조지 W. 부시가 미국 대통령이 된 곳이죠. 2000년 제 오랜 친구 짐 베이커(부시 캠프의 법률 자문)가 전화를 하더니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가서 재검표를 해달라고 부탁했죠. 2000년 대선을 끝내길 원하는 시위자 수를 민주당 시위자와 맞추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죠....제 정보원이 민주당 위원 둘이 개표실에서 투표용지 뭉치를 가져가려 한다고 전화로 보고했는데 기자들과 양당 변호사들도 목격했죠. 그들이 투표용지를 창문도 없는 작은 대기실로 가져갔어요. '브룩스 브라더스 폭동'을 촉발한 사건이죠. 나는 시위자들로 복도를 가득 메워 문을 못 닫게 하라고 했어요." (로저 스톤, 다큐멘터리 <로저 스톤> 인터뷰)

스톤은 민주당이 개표를 조작하려 한다는 거짓 정보를 지지자에게 흘렸고, 지지자들이 개표장소에 난입해 난동을 부리게 했다. 이 사건은 앨 고어가 플로리다에서 패배와 대선 패배를 인정하는 계기가 됐다. 웨인 바렛 등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정치 평론가들은 "로저 스톤이 아니었다면 부시가 대통령이 안 됐을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스톤은 트럼프의 '40년 지기'이자 비선 참모다. 스톤은 트럼프 캠프에서 2016년 대선에 러시아 정부 측의 개입을 요청했다는 의혹인 '러시아 스캔들' 관련 재판에서 40개월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트럼프는 지난 7월 10일 스톤을 사면해줬다. 대통령이 자신과 관련된 사건에 연루된 최측근을 사면한 것에 대해 "닉슨도 넘지 못한 선을 넘었다"는 비판이 쏟아졌지만 트럼프와 그 측근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트럼프 덕분에 자유의 몸이 된 스톤은 사면 직후 언론과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재선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다"며 공개적으로 '충성 맹세'를 하기도 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80509065824670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