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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트럼프 '대선 연기론', 지지자들에게 행동 지침 전달?

[2020 美 대선 읽기] 트럼프 지지자들 "바이든이 우편투표로 이기면 패배 인정 못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주 '대선 연기론'을 공식적으로 언급해 미국 정치권이 요동을 쳤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대응에 실패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이 오는 11월 3일에 있을 대선에서 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앞서 트럼프는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 "나는 지는 것을 싫어한다", "(이번 대선에서 패할 경우 승복할 것인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하는 등 선거 결과를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지난 7월 30일(현지시간) '우편투표=사기'라는 주장을 거듭 제기하면서 "사람들이 적절하고 안전하고 무사히 투표할 수 있을 때까지 선거를 미룬다???"라고 질문을 던지는 형식으로 대선연기론을 제안하는 '폭탄 트윗'을 날렸다. 패색이 짙어지자 선거 일정을 연기하자는 대통령의 주장에 야당인 민주당 뿐 아니라 여당인 공화당 내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미국 민주주의 역사상 대선을 연기한 적은 없다. 남북전쟁(당시 링컨 대통령), 2차 세계대전(당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등 전쟁 때도 연기하지 않았다. 

또 대통령 선거를 포함한 선거 일정을 조정하는 것은 대통령 권한이 아니라 연방 의회의 권한이라는 점에서 '월권'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공화당인 미치 맥코넬 상원의장은 트럼프 주장이 나오자마자 선거 일정 연기를 논의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도 반발이 빗발치자 당일 오후 "연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며 한발 물러선 입장을 밝혔다.

선거 연기라는 의제 자체는 접었지만 여전히 트럼프의 의중이 무엇인지를 둘러싼 갑론을박이 계속 되고 있는 가운데, 백악관은 2일 이번 대선이 예정대로 치러질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마크 메도스 백악관 비서실장은 이날 CBS 인터뷰에서 "우리는 11월 3일 선거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을 연기하는 문제를 거론한 것은 우편투표에 대한 우려를 제기한 것이라면서 "이 모든 것은 보편적인 우편투표라는 한 가지 문제로 귀결된다. 이는 나라를 위해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편투표를 전면 도입할 경우 선거 결과가 내년 1월 3일(연방의회 임기 시작일)이 돼도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백악관 "선거일 예정대로"...'대선 불복' 불씨는 남겨 

메도스 비서실장은 이날 선거일정에 변함이 없다고 공언해 '선거 연기'를 둘러싼 논란은 매듭지었지만, 우편투표의 조작 가능성을 근거로 선거 자체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주장은 이어갔다. 

이번 선거는 코로나19 사태로 유권자들이 직접 투표장에 가서 투표하기 어려운 변수들이 증가하면서 역대 어느 선거보다 우편투표를 통한 투표 참여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는 지난 5월부터 우편투표의 신뢰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해왔다. 하지만 우편투표가 조작 가능성이 높다는 그의 주장에 대해 실제로 입증된 근거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지지자들은 그의 주장을 이미 받아들였다. <뉴스위크>의 31일 보도에 따르면,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 지지자 중 55%가 바이든이 우편투표로 승리할 경우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패배를 수용하겠다는 트럼프 지지자는 21%에 그쳤다. 

반면 바이든 지지자 중 47%는 결과에 승복할 것이라고 답했으며, 26%만 선거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 여론조사는 야후뉴스와 유고브가 지난 7월 28일부터 30일까지 미국 성인 1506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이 여론조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트럼프 지지자들의 상당수는 트럼프가 질 경우 선거 결과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보여진다. 앞서 트럼프 뿐 아니라 메도스가 지적한 것처럼 우편투표 참여가 증가함에 따라 선거 결과 확정이 늦어질 경우, 이를 빌미로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은 선거 결과를 수용하지 않을 태세를 이미 갖췄다고 할 수 있다. 트럼프의 '선거 연기' 주장의 궁극적 목적은 선거일을 진짜로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선거 자체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것에 있고, 언급한 여론조사 결과가 보여주듯이 그 목적은 이미 충분히 달성됐다. 

선거인단/승자독식으로 판가름 나는 미국 대선, 트럼프가 역전 노리는 버팀목 

트럼프가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열세가 뚜렷이 확인됨에도 불구하고 여러가지 무리수를 던지면서 역전을 노릴 수 있는 것은 미국 대선이 단순 다수득표자가 승자가 되는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 대선은 유권자들이 1인 1표를 행사하는 단순투표가 아니라 선거인단(Electoral College) 투표로 승자가 결정된다. 선거인단제는 연방국가라는 미국의 특수성과 역사성에 근거를 하고 있다. 주별로 유권자들은 주 대표격인 선거인단을 선출하고 이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뽑기 위한 투표를 한다. 선거인단 투표는 승자가 각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모두 가져가는 승자독식제로, 전체 선거인단 538명 중 과반인 270명 이상을 확보한 후보가 최종 승자가 된다. 

이처럼 간접선거 방식을 취하다보니 유권자 득표에서는 이겼지만, 선거인단 투표에서 져서 대선에 패배한 경우가 미국 역사상 4번 있다. 2016년 트럼프의 승리도 그 중 하나다. 트럼프는 힐러리 당시 민주당 후보에게 전국적으로 300만 표 적게 얻었지만, 선거인단 투표에서 이기면서 최종 승자가 됐다. 당시 매우 근소한 차이로 트럼프가 선거인단을 확보할 수 있었던 주요 경합주는 미시간, 오하이오, 펜실베니아 등 '러스트 벨트'(쇠락한 중공업 지역)와 텍사스, 플로리다 등 '바이블 벨트'(보수적 기독교의 영향력이 센 지역) 등이다. 

트럼프는 재선에서도 이들 경합주에서 이겨서 유권자 득표에서는 지더라도 선거인단 투표에서 이겨 최종 승자가 되겠다는 계산이다. 따라서 그의 입장에서 최대한 선거와 개표 과정을 불투명하게 하고 최종 결과에 대한 불신을 높여야 막판 역전을 노릴 수 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트럼프가 선거에서 패배하더라도 이번 선거의 특수성을 핑계로 백악관을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민주당 제임스 클라이번 하원 원내총무는 2일 CNN과 인터뷰에서 "나는 트럼프는 무솔리니이며, 푸틴은 히틀러라고 강력하게 믿는다"며 "나는 트럼프가 평화적으로 권력을 이양하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는 백악관을 떠날 계획이 없고, 공정하고 규제가 없는 선거를 치를 생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는 트럼프가 계속 대통령직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종류의 비상 수단을 만들려고 계획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너무 나간 듯한 관측이지만, 민주당 대선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지난 5월 트럼프가 대선 연기를 검토하고 있다는 주장을 했을 때, 트럼프 캠프에선 "말도 안된다"며 바이든이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는 반응을 보였었다. 그러나 바이든의 주장은 트럼프가 선거에서 매우 불리해지자 두달여 만에 현실이 됐다. 

▲ 트럼프 지지자들이 지난 1일 트럼프가 골프를 치고 있던 버지니아의 한 골프장을 찾아 지지 입장을 밝히고 있다. ⓒAP=연합뉴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80307112153824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