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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박원순, 서울시립대 의대를 만들어라"(2015.7.1)

[인터뷰] 차성수 금천구청장

 

올해로 민선 지방자치제가 20주년을 맞는다. 지난 95년 6월 27일 첫 지방선거를 통해 단체장들이 선출됐다. 이들 단체장들의 임기가 시작된 1995년 7월 1일을 온전한 지방자치의 출발일로 삼는다면 올해가 꼭 20주년째가 된다. 지난 6월 메르스 사태로 중앙정부의 리더십이 사실상 붕괴된 상태에서 지역주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지는 모습을 일부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보여주면서 지방자치의 '존재'와 '의미'가 새롭게 주목 받고 있다. 새로운 리더십을 통해 우리 정치의 희망을 보여주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을 만나 자치와 분권의 현실을 되돌아보고자 하는 취지로 기획된 '1995+20, 풀뿌리 리더십을 찾다' 두번째 주인공은 차성수 서울 금천구청장이다.  


금천구는 이번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중앙정부의 행정 공백을 적극적으로 채워나가면서 지역 주민과 누리꾼들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정치·시사 전문 블로그 <아이엠피터>는 메르스 사태가 한창이던 지난달 19일 올린 '금천구청만도 못한 원희룡 제주지사의 메르스 대응'이라는 글에서 금천구의 신속하고 정확한 메르스 정보 제공을 높이 평가했다.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드러난 중앙정부의 대응 능력과 금천구 등 지자체의 대처 능력은 한국 사회 구 리더십과 신 리더십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는 평가다. 차 구청장은 "진정한 리더십은 위기 때 드러나는 것인데, 세월호 참사 이후나 메르스 사태 때나 리더십의 현주소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런데 차 구청장도 풀지 못하는 숙제가 있다. 바로 재정 분권 문제다. 특히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지원 사업) 예산 논란은 해를 거듭해도 실마리가 보이지 않고 있다. 차 구청장은 "중앙정부 및 광역자치단체의 예산 비중은 97%, 기초단체는 3% 수준"이라면서 "그마저도 기초연금과 누리과정 등 필수 경비에 쏟아 붓고 나면 지역 맞춤형 사업을 할 예산은 한 푼도 없다"고 토로했다. 

차 구청장은 '지자체의 모범'이라는 서울시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 "서울시가 중앙정부를 상대로는 분권을 주창했지만, 25개 자치구에는 충분한 재정 및 권한 이양을 하지 않았다"고 그는 지적한다. 또 1000만 인구 서울시에 공공 의료를 책임질 병원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서울시립대에 의과대학을 신설하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했다. 아래는 차 구청장과의 일문일답이다. 

 

  

"세월호·메르스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리더십의 실체"

 

프레시안 : 93번(64) 확진 환자가 나왔던 금천구의 대응이 훌륭했다는 칭찬이 많다. 정보를 통제한 중앙정부와 달리, 금천구 등 지자체들은 더 좋은 정보 통제는 투명한 정보공개라는 것을 보여줬다. 


차성수 : 사실 기초단체에선 피부로 느껴지는 것부터 다르다. 중앙정부의 발표는 '어느 지역에 몇 명의 환자가 발생했다'는 식의 큰 틀의 정보만 제공한다. 그런데 환자와 같은 동네, 또는 바로 옆 동네에서 사는 지역 주민은 이미 훨씬 많은 정보를 듣고 있다. 이렇게 주민이 이미 가진 정보와 정부 발표 사이에 간극이 바로 불안과 공포를 증폭시키는 것이다. 이는 메르스가 아닌 다른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금천구가 메르스 대응을 잘했다는 칭찬을 받았는데, 이는 바로 이런 간극을 줄이고자 정확한 정보를 적시에 제공한 결과 주민의 신뢰를 얻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93번 환자가 나온 후 금천구는 환자의 교통카드나 버스 블랙박스, 폐쇄회로(CC) 텔레비전 등 사용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정확한 정보를 적시에 제공하려고 노력했다. 

중앙정부가 이 같은 정보 공개를 하지 않은 이유는 크게 세 가지라고 본다. 일단 낙관적으로 상황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기존 정보를 그대로 따라 감염력이 약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무지가 이런 안일한 판단을 하게끔 했다. 또 단선적인 행정 처리 방식도 한 몫 했다고 본다. 여러 상황을 예상하고 맞춤형 시나리오를 짰어야 하는데, 오로지 하나의 상황만 가정하니 가정이 틀리면 바로 비상사태가 됐다. 정부 발표가 하루 자고 일어나면 뒤집히는 일이 반복되니 국민의 신뢰를 잃어버린 것이다. 

프레시안 : 이번 메르스 사태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대처 수준 차이는, 구 리더십과 신 리더십의 대비를 극명하게 드러냈다고 본다. 같은 공무원들이 일을 해도, 리더십에 따라 다른 결과를 보인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세월호 때나 이번 메르스 때나 '리더십 위기'가 '국가 위기'로 이어졌다. 


차성수 : 바로 그게 핵심이다. 사스(SARS·중증호흡기증후군)를 잘 대처했던 공무원들은 지금도 질병관리본부에서 다 일하고 있다. 문제는 리더가 이런 자원을 어떻게 잘 추슬러 가느냐다. 공직 사회는 철저하게 업무가 분담되어 있다. 칸막이가 생기니 정보 소통도 잘 안 되고, 일이 주어지는 것을 가능한 피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이를 넘어서야 행정의 효율과 역량이 극대화되는데 세월호 때나 메르스 때나 바로 이 지점에서 실패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필요했던 것은 해경과 해군, 자원봉사자들의 역할을 적절히 종합해서 칸막이를 넘어서게 하는 리더십이었다. 국가의 무능을 보여준 것, 그게 사실은 리더십의 위기다. 세월호 때나 메르스 때나 리더십의 부재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본다. 

 

"97대 3의 재정 비율…그나마도 대통령 공약에 쓰고 나면 '0원'"

프레시안 : 2010년 금천구청장으로 선출된 후 5년째 금천구에서 지방자치를 실천하고 있다.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풀뿌리 정치 발전을 위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차성수 : 재정 분권이다. 일의 규모에 맞게 적절한 재정을 넘겨주는 것,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 재정 분담 몫에 대한 정확한 규정을 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통상 중앙 대 지방 정부 재정 비율을 8대 2라고 한다. 하지만 엄밀히 보면 중앙정부와 광역지자체가 97을, 기초단체가 3 정도의 재정을 가지고 있다. 

기초단체가 하는 업무의 절반 이상은 중앙정부 및 광역지자체에서 위임하는 사무다. 특히 최근 복지 정책이 다양하고 폭넓어지면서 그에 따라 기초단체의 복지 재원 부담도 점점 커지고 있다. 금천구의 경우, 제가 구청장이 되던 2010년엔 복지 재정 비율이 전체의 39%였는데 불과 5년 사이 52%가 정도가 됐다. 그중에서도 박근혜 정부의 대선 공약인 기초연금과 무상보육 사업에 투입되는 재정 비중이 가장 크다. 약속은 중앙정부가 하고 지방정부에는 상의 없이 '몇 퍼센트를 맡아라'라고 법으로 규정해버려 정말 대책이 없다. 

프레시안 : 3%의 지방정부 재정 중에 자체 사업에 사용할 수 있는 재정은 얼마나 되나. 

차성수 : 정부 요구대로 예산을 책정하면 금천구는 자체적으로 쓸 수 있는 돈이 '0원'에 가깝다. 인건비 등의 경직성 경비와 전기료, 관리비, 그리고 기초연금과 무상보육 예산과 같이 광역 지자체에 매칭(연결)돼 들어가는 필수 경비를 충당하는 것만도 벅찬 상황이다. 이를 다 하고 나면 제가 쓸 돈은 아예 없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우리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무상보육과 기초연금 6개월 치 예산을 미편성해 겨우 교육·문화 사업에 쓸 예산을 확보했다. 기초단체장들이 '기초연금과 무상보육은 중앙정부의 공약이니 중앙정부에서 해결하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전 국민을 상대로 한 보편복지는 중앙정부에서, 각 지역 특성과 인구 구성에 맞는 맞춤형 복지 사업은 기초단체가 하는 게 적절하다. 

프레시안 : 박근혜 정부의 무상보육 공약인 '누리과정' 예산은 2013년도부터 계속 논란이 되고 있다. 지방 재정 문제는 20년 전부터 계속 문제로 지적돼 왔지만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해결 방법이 없나. 

차성수 : 중앙정부의 큰 결단이 필요하다. 지방자치 20년 동안 분권과 균형 발전 요구가 지속해서 있었지만 정권이 (새누리당으로) 바뀌면서 그 흐름이 단절돼 큰 성과를 못 거둔 것이 근본적인 원인일 것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는 국회의원들이 지방자치와 재정 분권에 관한 공약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년 선거 때가 되면 그런 요구가 있을 것이고, 이런 정치적인 시기를 활용하지 않으면 개선되기 어려운 과제다. 


'20년 지방자치' 사라진 박근혜 정부…책임과 함께 권한도 넘겨야

프레시안 : 돌이켜보면 이명박 정부에서도 포장에 그칠지언정 '녹색 성장'을 통한 지방 균형발전을 이야기했다. 그런데 20년간 이어져 온 '분권' 의제가 박근혜 정부 들어선 쏙 사라진 상황이다. 

차성수 : 그렇다. 지방자치 20년 이래로 분권과 균형 발전과 관련한 의제가 없는 것은 이번 정부가 처음이다. 물론 그 이전까지도 이 두 가지 의제가 제대로 작동한 것은 아니었지만, 예컨대 남북통일처럼 선진국으로의 도약을 위한 국가적 과제의 하나로 항상 포함은 됐었다. 그런데 지방자치 20년 만에 박근혜 정부는 지방자치와 가장 거리가 먼 정부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방 자치를 뒷받침할 법과 제도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고, 이를 수행할 정부 내 조직이 없어서라고 본다. 대통령 직속 지방자치발전위원회(위원장 심대평)도 분권과는 어울리지 않는 '교육감 직선제 재고'를 내걸어 전체적으로 설득력을 잃은 조직이 됐다. 

프레시안 : 차 구청장이 생각하는 지방 자치는 어떤 모습인가

차성수 : 앞서 말한 '분권'과 더불어 '분업'과 '분산'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력이 과도하게 집중된 서울은 단순히 중앙인 것을 넘어 블랙홀에 가까운 상태다. 모든 것을 빨아들인다. 이를 다른 지역에 나누는 분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 공공기관을 서울 중심의 1핵으로 둘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 다핵 구조로 분산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렇게 해야 지방 경쟁력이 커지고 이에 힘입어 국가 경쟁력도 높아진다. 

중요한 것은 분권·분산·분업을 함께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위력과 효과를 발휘한다. 경제력 집중에 대한 분산 작업 없이 '권한만 줄게'라고 하면, 자칫 권한 없이 책임만 떠넘겨지는 구조가 될 가능성이 크다. 


박원순 시장의 서울시에도 부족한 분권 철학

프레시안 : 서울시에 과도하게 집중된 경제력을 얘기했다. 구청장으로 박원순 서울시장의 지방자치와 분권 행정을 평가한다면 어떤가

차성수 : 박 시장만큼 기초단체장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로 각 지역 주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사업을 펼친 시장은 이전에는 없었다고 자신한다. 지방자치 20년 만에 제대로 지자체장 같은 시장을 서울 시민이 만난 것이다. 1~2개의 구도 아니고 25개 자치구를 전부 쫓아다니며 주민과 소통하는 것은 결코 쇼일 수 없다. 

그런데 바로 같은 지점에서 자치구 입장에선 분권 철학이 부족하다는 평가다. 서울시가 가진 권한과 재정을 가지고 지방에 '이것을 해줄게'란 식이지, 권한과 재정을 나눠주고 '하고 싶은 것을 해보라'는 식은 아니었다. 중앙정부를 상대로는 분권을 주창한 것이 됐지만, 자치구 입장에선 서울시가 자치와 분권에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다행히 지난 5월 서울시는 25개 구에 재정 권한 등을 이양하는 '자치분권 혁신방안'을 발표했다. 7월 중엔 최종의 혁신안을 발표하기 위해 각 구로부터 요구사항을 취합하고 있기도 하다. 우려하는 것은 박원순 시장과 시 공무원들이 실제로 함께 움직이고 있느냐는 점이다. 시장님의 의지 차원을 넘어 실제 집행력이 담보될 수 있을지를 평가하기는 아직 이르다. 서울시가 큰 결단을 해 광역지자체의 모범 사례가 되길 기대한다. 

 

 
"박원순 시장, 시립대에 의대 만들어 공공 의료 증진을!"

프레시안 : 민선 6기 선거 당시 금천구에 중증 환자나 응급환자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대형종합병원 유치를 공약했다. 그런데 재정적으로 쉽지 않을 것 같다.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차성수 : 대형 종합병원은 여전히 주민 요구가 굉장히 많지만, 주요 대학병원 등의 경영 상태가 썩 좋지 않은 이유로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일단 현재까지는 병원을 유치하려는 부지를 도시 계획 시설로 정해 병원 외에 다른 시설이 들어올 수 없게 만드는 성과 정도를 이뤘다. 이를 바탕으로 병원 유치 시도를 계속하려고 한다. 

특히 메르스 사태를 겪고 보니 대형 병원이 구내에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공공 의료의 절대 부족을 이번에 모두가 경험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울시만 해도 시 안에 있는 7~8개 공공 병원은 모두 대학병원 등에 서울시가 위탁했다. 1000만 광역시에도 제대로 된 공공 의료가 갖춰져 있지 않은 것이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서울시에 건의하고 싶다. 서울시립대에 의대를 만들면 어떨까. 서울시립대에서 배출된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이 서울시정의 각 분야에서 공공성을 담보하면서 일하고 있다. 시립대에 의대를 만들어 시가 공공 보건의료 인력 양성을 책임지면 어떨까 한다. 몇 안 되는 공공 병원인 진주의료원을 폐쇄한 홍준표 경남지사와 공공 의료를 좀 더 강화해 시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박원순 시장의 리더십 대비가 이루어질 것이다. 물론 서울시립대 병원이 금천구에 우선 설립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웃음)


프레시안 : 앞으로 보여줄 차성수 구청장의 정치적 리더십에도 더 기대를 갖겠다. 인터뷰 감사하다. 

 

(이 기사는 최하얀 기자와 함께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