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피플

"잠재적 일베로 가득찬 위험사회, 치유법은…" (2015.5.16)

[단박 인터뷰]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③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 스타일에 대해 "대통령 하기 싫은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경우"라면서 조선시대 연산군에 비유해 화제를 모았던 김태형 심리학자의 인터뷰 마지막편이다. (관련 기사 : "박근혜는 연산군 대통령 하기 싫다")


김태형 '심리연구소 함께' 소장에게 현재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병리현상에 대해 심리학적인 분석을 요청했고, 그 치유방법이 과연 있는지 물었다. 김 소장과 나눈 이야기를 △돈 △일베 △아이들 △종북 △지역주의 △기독교 △세월호 △인간 △행복 총 9개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돈 Money

프레시안 : 한국 사회를 '물질주의와 성장주의에 파묻힌 사회, 돈이 없어 무시당한 경험을 공포처럼 여기는 사회'라고 분석했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게 사회적 영역의 연대 의식인데, 막상 우리는 작은 격차를 굉장한 차이로 만드는 습성이 있다.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을 '임대아'라고 놀리거나 갑(甲)은 을(乙)을, 을은 병(丙)을, 병은 정(丁)을 무시한다. 

김태형 : '돈' 중심 사회가 되면서 모든 것을 돈으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니, 돈이 없다고 무시하는 풍조가 널리 퍼졌다. 무시당한 사람은 그에 대한 화풀이를 대체로 자기보다 돈이 없는 사람에게 하게 되어 있다. 이런 심리가 성격적으로 굳어지면, 권위주의적이 된다. 힘 있는 자에게 당한 것을 힘 없는 자에게 복수하고, 힘 있는 자에게는 빌붙고 힘 없는 자에게는 과시하는 성격. 한국 사람의 권위주의적 성격은 어느새 일반화됐다. 

상당수의 한국인들은 한국 사회의 대세인 돈과 성공을 좇고 있어서 그것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나는 잘나가는 사람'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붙잡고 있다. 이런 사람에게 경쟁에서의 패배가 초래하는 '나는 공부 못하는 사람이야', '나는 돈을 잘 벌지 못하는 사람이야'라는 자기 평가는 자신이 사회로부터 추방되었다는 공포만이 아니라 자기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고통까지 느끼게 한다. 
- <싸우는 심리학>(김태형 지음, 서해문집 펴냄) 197쪽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직업이 돈으로 차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든 것을 돈으로 평가한다. 누군가 '직업이 뭐에요?'라고 물었을 때 '택시 운전한다'고 하면, 우리는 '가난하겠구나. 하루에 20시간을 일하면서 150만 원도 못 벌 거야'라고 생각한다. 만약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거나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다'고 하면? 바로 깔볼 것이다. 

덴마크처럼 직업에 따른 소득격차를 줄여야 한다. 그래야 직업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풍조가 없어진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 기준 덴마크의 최상위 10% 가구가 얻은 평균 소득은 하위 10% 가구의 5.3배다. 한국은 10.5배에 달한다. OECD 회원국 평균은 9.4배다.


돈이 더 생긴다고, 소득이 올라간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하위 90%에 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돈이 생겨 상위 10%로 올라간다고 한들, 과연 행복해질까? 상위 10% 안에서 또 '굉장한 격차'가 생길 것이다. 그럼 다시 무시당하는 거고. 이 풍조가 사라지지 않는 한, 돈이 많다고(상위 계급) 또는 돈이 적다고(하위 계급) 무시하는 권위주의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변화를 원한다면, 소득격차부터 줄이자. 그럼, 무엇보다 인간관계가 급격하게 변할 것이다. 돈이 없어도 무시당하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면, 하나둘씩 돈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을 것이다. '돈 욕심을 버린다'는 건, 사람을 돈으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일베 www.ilbe.com 

프레시안 : 돈을 기준으로 한 권위주의 풍조가 과거에는 상류층에만 있었다면, 지금은 서민층에도 생겼다. 특히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는 여자(성별)·호남(지역)·세월호 유가족(특정 이슈) 등 사회적 약자를 공격 대상으로, 자신의 정당성을 획득한다. 

김태형 : 권위주의 핵심에는 무력감이 있다. '힘이 없다'는 지독한 무력감은 두 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는 강한 힘을 숭배해 빌붙는 것으로, 다른 하나는 약한 힘을 조롱해 경멸하는 형태다. 권위주의적 성격을 가진 이들은 힘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힘이 세면 붙고 약하면 물어버리는 하이에나와 같은 심리다.

사실 정치적 보수 세력보다 일베가 더 위험하다. '너희가 잘못한 거야. 틀렸어'라는 말로 설득이 잘 안 된다. 일베 중심의 세계관이 깨져야 하는데, 그렇다고 심리까지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기회가 생기면 또 빌붙을 테니까. 일베는 근본적으로는 치료를 받아야 하는 집단이다. 특히 '여성 혐오'는 어릴 때 가정에서 생성된 무력감이 엄마, 즉 여성에 대한 분노로 표출된 것이다. 

무력한 사람이 강한 힘에 복종하고 의존하면서 그것에 빌붙는 것은 무력감을 일시적으로 완화시켜주는 최면 효과를 가진다. 사실 자기는 아무 것도 아닌 무력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지만, 강한 힘에 빌붙으면 마치 자기에게 힘이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수 있다. 집회 때마다 항상 군복을 입고 때로 가스통이나 가짜 총을 들고 나오기도 하는 극우 노인들, 나이가 젊음에도 기꺼이 극우 보수 세력의 주구가 되어버린 '일베(일간베스트 저장소)' 등의 심리가 이와 무관치 않다. 

- 위의 책, 216쪽


 아이들 Children

프레시안 : '아이들의 분노'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부모 성토대회라도 하는 듯 격한 언어와 비속어를 사용하며 부모를 헐뜯는다. '안티 부모 카페'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으며, '패드립(패륜+애드리브)'라는 신조어까지 생겼다. 경쟁사회가 만들어낸 인간관계의 단절이자 왜곡이다. 굉장히 위험한 수준인 것 같다. 

김태형 : 모두 화가 나 있다. 잠재적 일베들로, 위험하다.(웃음) 

'아이들의 분노'는 어른들이 그들의 인생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40개월 전후부터 사교육을 시키는 나라다. 유치원생 3명 중 1명은 만 3세부터 영어를 배운다고 한다.(지난해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새정치민주연합 유은혜 의원이 서울·경기지역 학부모 762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재 5세로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아이들 중 35%가 만 3세에 영어 교육을 시작했다고 답했다. 2013년 육아정책연구소 조사결과, 특별활동과 학습지 등에 들어가는 영유아 사교육비는 연간 2조7000억 원으로 전체 교육비용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편집자) 

부모가 3세 아이에게 '출세 못하면 거지 된다'라는 가치관을 주입하는 셈이다. 공부해서 일류대에 가는 인생만을 강요하기 때문에 다른 인생은 꿈꿀 수 없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어릴 때부터 들어온 기준과는 동떨어진 상태, 공부를 못하는 열등생일 뿐이다. 그럼,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불만이 쌓여 부모를 향한 분노, 사회를 향한 분노가 된다. '일베'가 달리 되는 게 아니다. 

특히 30대보다는 20대, 20대보다는 10대가 더 보수적이다. 듣기로는, 어떤 지역에서는 일베를 추종하지 않으면 따돌림을 받는다고 한다. 좀 더 쉽게 설명하면, 10대 아이들 사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야당 쪽을 지지하면 병신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념적 보수화가 아닌, 분노와 무력감에 따른 굴종이며 반항이다. 

대체로 어느 시대든 부모들이 아이들을 다룬 이야기들을 읽어보면, 또한 오늘날의 인간의 역사를 보면, 대부분의 부모들의 주요한 관심이 아이들을 통제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부모들의 사랑이라는 것을 일종의 가학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최선을 다하여라, 그리고 나는 나의 통제를 거역하지 않는 만큼만 너를 사랑한다." 이것이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아버지의, 혹은 아내에 대한 남편의 사랑이다. 로마시대 이후로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물이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 에리히 프롬의 <정신분석의 치료적인 면들><정신분석과 듣기 예술> 중 일부를 위의 책, 202쪽에서 재인용



 종북 The Red 

프레시안 : 보수정당의 재집권 이후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정치적 공격 중 하나가 '종북(從北)'이다. 일종의 색깔론이자, 북한을 하나의 공포로 동원하는 방식이다. 

김태형 : 종북에 대한 공포는 결국 극우보수에 대한 공포다. 기득권인 보수 세력이 '나를 빨갱이로 낙인찍을까 봐' 벌벌 떠는 것 아닌가. 한국 사회는 한 번 종북으로 찍히면, 주변에서 멀리한다. '쟤들(빨갱이)이랑 친하면 안 돼!'라며 선을 긋는다. 종북으로 낙인되는 순간, 사회에서 외톨이가 된다. 고립과 추방에 대한 공포에 휩싸이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북으로 몰릴까 봐 두려워한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당시 돕겠다고 나서는 이가 없었다. 설령 도와준다고 해도 전제를 밝혔다. '나는 그들의 사상에 동의하지 않지만…'이라며. 누가 물어보지 않아도 꼭 먼저 얘기하더라.(웃음) 왜냐하면? 겁나니까. 자신도 종북으로 몰릴까 두려운 것이다. 

극우 보수 세력은 이런 심리를 정치 사회할 것 없이 모든 영역에 활용한다. '너 까불면, 종북(빨갱이)이라고 할 거야.' 아직까지는 효과적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 들어 남용하는 바람에, 오히려 종북 공세의 힘을 약화시킨 측면이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박창신 신부를 종북 신부로, 세월호 희생자 가족을 종북 세력으로 몰려고 시도했던 것 등. 무능·부패 집단인 극우 보수 세력은 권력을 잡기 위해서 쓸 무기가 '종북 공세' 말고는 없다. 그런데 과연 얼마나 더 쓸 수 있을까? 

나는 전작 <트라우마 한국사회>(서해문집, 2013)에서,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확고부동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극우 보수 세력에게 언제라도 빨갱이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공포 때문에 반종주의를 수용한다고 지적했다. 프로이트가 오이디푸스 이론을 통해 지적했듯이-남자아이는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하지만 아버지가 자신의 성기를 거세할까 봐(거세 공포) 아버지의 가치관을 수용한다-사람들은 흔히 권력에 대한 공포 때문에 옳지 않은 사상이나 원치 않는 사상도 받아들이곤 한다. 
- 위의 책, 106쪽 


■ 지역주의 Regionalism 

프레시안 : 빨갱이 못지않은 고질병 중 하나가 '지역주의'다. 평상시에는 두드러지지 않다가도 선거철만 되면 부활한다. 

김태형 : 과거 지역주의는 호남에 대한 증오였다. 특히 영남 출신은 호남 출신 대통령이 나올 경우 탄압받을까 걱정했다. 호남 대표 정치인 '김대중'이 대통령이 됐지만, 별다른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영남에 대한 보복이 없었다는 말이다. 

현재 지역주의는 선거가 시작되기 무섭게 '우리 지역이 잘 되어야 하는데…'라는 집단적 이기주의, '누가 돈을 더 많이 가져갈 것이냐?'와 같은 집단적 물질주의로 나타난다. 한국 사회가 물질주의의 포로가 되면서 '변형된 지역주의', 즉 물질이나 욕망에 기초한 지역주의다. 


 기독교 Christian 

프레시안 : 한국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권력 지향적이고 배타적인 특징이 있다. 이유가 뭘까? 

김태형 : 한국 기독교는 과거 주류 세력, 즉 친일파가 받아들이면서 확산됐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 종교를 믿는 것이 유리하니까. 또 힘 있는 미국의 종교니까. 가톨릭처럼 이권을 위해서가 아니라 순교를 위해서 믿었던 사람이 전파했다면 달랐을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일신교 자체의 배타성을 꼽을 수 있다. 심리적으로 건강한 사람이 일신교를 믿으면 조절할 수 있지만,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않은 사람이 일신교를 믿으면 배타성이 생긴다. 로마가 다신교일 때는 여러 신을 섬겼기 때문에 '이것 아니면, 안 돼!'와 같은 흑백논리가 별로 없었다. 다양성을 인정해줬다. 식민지에 대해서도 우호적이고 너그러웠다. 그러나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일신교가 되면서는 배타성이 생겼다. 이방인을 이교도라며 배척했다. 

역사에서 분란을 일으킨 종교는 대체적으로 일신교다. 다신교인 불교는 한국에 들어오면서 산신령 등을 불교의 신 중 하나로 받아들였다. 종교 자체가 포용력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독교 입장에서는 산신령은 이교도이자 이단이기 때문에 부정해야 한다. 세계관의 측면에서 기독교는 다양성을 저해하는 배타적인 종교다. 

초기 유대교는 매우 배타적이었지만, 예수가 등장하면서 배타성이 완화됐다. '나를 통해서만 성경 즉, 하나님을 접하라'라는 메시지는 그대로지만, '성경의 기본은 사랑'이라며 배타성보다 사랑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후 세계 종교가 됐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는 초기 유대교 수준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세월호 The Sewol 

프레시안 : 현재 가장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세월호 희생자 가족이다. 심리학자 입장에서 듣고 싶다. 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고, 또 어떻게 도와야 하나. 

김태형 : 세월호 가족이 원하는 것은 '진실'이다. 진실이 밝혀지지 않으면, 치유가 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자식이자 가장 가까운 사람이 죽었는데, 죽은 이유를 모른다. 그러니 진실을 알아야 그 사람을 떠나보낼 수 있다. 그런데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경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진실 규명을 막는 것은 이별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별을 못한다는 건, 평생 그 사람(고인)과 같이 살아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즉, 이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란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 세월호 가족이 원하는 것은 재발 방지다. '다시는 이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 아이들이 죽었는데, 재발 방지조차 만들지 못하면, 사회를 바꾸지 못한다면, 4월 16일 세월호에서 죽은 아이들은 어떤 의미란 말인가. '죽음의 의미'를 생각해 봐야 한다. 304명의 아이들이 죽은 대신 세상이 바뀌어야 하지 않겠는가. 부모도 자식의 죽음이 '의미 있는 죽음'이 될 때 위안받을 수 있다. '너희들은 떠났지만, 너희들의 죽음이 세상을 바꾸었다'라고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너희는 죽었지만, 세상은 여전히 똑같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 않나. 

세월호 참사처럼 중대한 사건은 마음속에 한 번 박히면, 억압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올라오게 되어 있다. 5.18민주화운동과 비슷하다고 할까? 1980년 당시에는 다들 피했다. 하지만 10년, 그 10년이 지나자 올라왔다. 세월호 참사는 지금 덮는다고 해도 5.18보다 더 빨리 올라올 것이라고 본다. 진실을 은폐하고 누른다고 덮이는 상처가 아니다. 진실을 규명하고 끄집어내야 치유되는 상처다. 

■ 인간 Human

프레시안 : 한국은 식민과 독재, 근대화와 산업화를 거치며 남아 있는 전통이 거의 없다. 그렇다 보니, 사회가 흔들릴 때 사상적으로 반추해야 할 무엇인가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종교 국가의 경우 근원인 종교로 돌아가기 마련인데, 한국은 그럴 것을 잃어버렸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더 물질적인 가치만 중시하는 것은 아닐지. 

김태형 : 돌아갈 곳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한국 우리 민족처럼 인간을 중심에 놓고 인간을 중시한 민족이 없다. 건국이념 자체가 '홍익인간(弘益人間)' 아닌가. 이런 이념을 가진 민족은 전 세계에 없다. 또 백성을 위해 글자(한글)를 창조한 나라도 없다. 우리 전통은 인간 중시 문화다. 조상들이 '개만은 못한 놈' '개 같은 놈'이란 말을 하지 않았나. 짐승과는 다른, 인간 본연을 중시하는 전통이 있다.

한국 사람이 가장 좋아하고, 원하는 말이 '사람답게 살고 싶다' '사람대접을 해 달라' '우리도 사람이다'다. 외국 사람들은 '무슨 이야기냐?'고 물으며,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지 않나. 그만큼 사람을 존중하는 문화(전통)가 있다. 이 같은 전통 덕에 대한민국 위정자(爲政者)는 늘 민중(국민)의 눈치를 봤다. 

민중들이 나름대로 물질주의에 오랫동안 저항했는데, 90년대 신자유주의 광풍이 불면서 기세가 꺾였다. 하지만 80년대만 해도 물질주의에 대한 저항력을 바탕으로, 5.18민주화운동을 성공시켰다고 본다. 그 본성이 어디 가겠는가. 전 세계에서 권력과 맞서는 싸움을 제일 잘하는 민족이라고 생각한다. 


 행복 Happiness

프레시안 : 앞서 살펴본 여러 문제를 치유하고 극복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김태형 : 개인적 차원에서는 한국 사람의 맹목적인 믿음을 의심해 봐야 한다. '돈이 행복일까?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돈일까?'라는 점을 의심하다 보면, '아니다'라는 답이 나올 것이다. 지금은 어떤가. 의심 없이 살고 있다. 

우리의 꿈이 정말 부자가 되는 걸까? 부자가 되면, 행복해질까? 의심하고 고민하다. 맹목적으로 '돈이 있으면 행복해질 거야'라고 믿고, 인생을 건다는 것은 불행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한국인의 불행 지수가 제일 높은 이유 중의 하나다. 돈을 추종한다고, 행복해질 수 없기 때문에…. 그 어떤 심리학 연구에서도 '돈이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결과는 없다. 전혀 없다.(웃음) 

공동체 차원에서는 행복 마인드를 찾아야 한다. 개개인의 마음의 변화만으로는 좋은 세상이 올 수 없기 때문에 사회적 안전 체계인 소득격차를 줄이고 보편복지를 늘려야 한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행복해진다. '돈=행복'이라는 연구는 없어도 '관계=행복'이라는 연구는 많다. 학자들이 어떤 시기에 어떤 대상을 상대로 연구해도 결과는 똑같다. '관계의 질'과 '공동체'가 행복을 좌우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현재 불행히도, '관계' 때문에 죽는 시대가 됐다. 

프롬의 행복론은 공동체주의적 행복론이다. 프롬은 사람이 동포들과 연대해 병든 사회를 변혁해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러 심리학적 연구들은 사람이 혼자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근거로, 심리학자들은 행·불행을 좌우하는 첫째 요인을 '관계'라고 말하기도 하고, 건강한 공동체에 소속되어 살아가야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 위의 책, 330쪽

 

(이 기사는 이명선 기자와 함께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