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칼럼

최장집 교수를 통해 본 '연정' 제안의 문제점 (2005.7.28)

노무현 대통령이 28일 지역구도 해소를 위한 선거구제 개편을 전제조건으로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한 것은 '지역주의'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토대를 둔 잘못된 해법 제시로 보인다.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을 한나라당이 "0%의 가능성도 없다"며 일언지하에 거부해 현실화될 가능성은 미미하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진정으로 대통령 권한뿐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자산이던 '개혁 정체성'까지 버릴 만큼 지역구도 해소가 중요한 문제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정작 필요한 게 무엇인지를 청와대 참모진이나 여당 지도부 등 측근 그룹을 벗어나 보다 다양한 의견을 들을 필요가 있다.

이런 문제의식에 따라 최장집 고려대 교수가 자신의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후마니타스. 2002)에서 한국의 지역정당체제의 발생과 발전 과정에 대해 논의한 내용을 토대로 지역주의에 대한 노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을 짚어보자.

***"지역주의는 변화.발전하는 역사적 결과물"**

우선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주의'를 고정된 문제로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지역주의는 한국 정치의 발전과 더불어 발생하고 강화되고 또 약화될 수도 있는 역사적 결과물이다. 따라서 지역주의가 선거구제 개편으로 해소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다. 아니면 당장의 정치적 손익 계산에 따른 정략적 발상일지도 모른다.

최장집 교수는 한국 지역정당체제의 발생 근원을 1950년대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는 과정에서부터 찾는다. 최 교수는 6.25 전쟁 이후 "1950년대 여당과 야당의 형성은 냉전 반공체제의 산물"이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정당간 경쟁이 극히 협애한 이념적 스펙트럼 내에서 이뤄지게 됐고, 여야당을 포함한 한국정치의 대표체계가 사회의 이익과 요구를 광범위하게 대변하지 못하고 사회의 가장 기득적인 보수층을 대변하게 됐다"고 밝혔다.

'협소한 이념적 스펙트럼'은 "정치적 경쟁의 틀을 협애한 이념적 공간 내에 가두었고 갈등과 균열을 표현할 수 있는 정치 언어와 담론의 범위를 최소한으로 축소했고, 그 결과 정당이 사회갈등을 표출하고 대변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졌다"고 최 교수는 설명했다.

이런 소수 명사 중심의 '엘리트적 보수정당'은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거쳐 대중을 지지기반으로 하는 대중정당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냉전 반공체제는 대중동원의 기반을 지역에서 찾게 만들었다. 최 교수는 "사회의 다른 직능적.계층적 갈등과 이익, 열정이 표출되고 동원될 수 있는 정치적 경쟁이 어려운 상태에서 지역의 지지 시장은 정치 엘리트와 정당이 목전에 당도한 선거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었던 가장 손쉬운 정치적 자원이었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 교수는 1980년 광주항쟁의 실패 이후 전두환 정권의 집권이 현 지역주의를 만든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봤다.

"광주항쟁이 그 직접적인 결과로 민주화를 가져오지 못하고 반대로 실패한 운동으로 5공 정권의 성립으로 귀결됐기 때문에 정권은 그들의 집권과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여러 형태의 정치 교육과 선전홍보수단을 동원해 광주항쟁의 의미를 축소.왜곡했다. '민주화운동'이 아닌 '급진 좌파적 민중봉기'로 채색해 반호남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이런 이데올로기 교육은 1987년 대선에서 반호남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킨 보다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5공정권은 민주화와 더불어 새로운 정치적 경쟁과 갈등의 축이 형성될 시점에서 민주 대 반민주의 대립구도를 호남 대 반호남이라는 퇴영적 지역대결구조로 변화시켰던 결정적 변수였다."

***"운동과 야당의 약함이 지역구도 극복의 최대 걸림돌"**

이런 과정을 거쳐 강화된 지역주의를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 최 교수는 '운동의 약함'과 '야당의 약함'을 꼽았다.

약한 운동세력의 문제에 대해 그는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민주화의 계기가 마련했지만, 급속하게 선거공간으로 이동하면서 12월 대선에서 누구를 대통령 후보로 지지할 것인가를 놓고 운동권은 분열됐다"며 "'후보단일화', '비판적 지지', '독자후보' 등은 운동권이 제도권 야당에 종속되는 관계의 역전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운동의 약함이 한국 민주주의의 구조적 제약의 결과만이 아니다"며 "강력한 군부 독재와의 투쟁에서 운동권은 가장 급진적이고 강력한 이론에서 투쟁의 무기를 발견하려고 했으며, 운동권의 이념적 급진성은 선거 경쟁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함께 선거 불참여주의적 경향 또는 선거에 소극적 태도를 갖게 했다. 이런 이념적 급진성은 정치세력화에 장애 요인이 되어 기존의 보수적 정당들과 다른 대안적 이념과 비전을 발전시키지 못하게 했다"며 운동의 주체적 역량과 관련된 문제를 지적했다.

허약한 야당의 문제에 대해 최 교수는 "긴 권위주의 시기를 경과하는 과정에서 야당은 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발전이 정지된 채 퇴화를 거듭해 왔고, 소수의 지도자와 그를 둘러싼 소수의 추종자 집단으로 유지돼 왔다"며 "(1980년대) 군부 권위주의 후기에 이르러 민주화 기운이 싹트면서 이들은 특정 지역과의 연계를 넓히고 정당의 대중적 지지 기반으로서 지역 기반을 강화하게 된다"고 밝혔다.

따라서 민주적 경쟁의 틀을 만든 '정초선거'라 할 수 있는 1987년 제13대 대선에서 나타난 것은 지역당적 성격의 투표형태와 정당체제였다. 그는 "지역정당체제는 선거 경쟁에 들어온 그 어떤 정당도 보수적 이념 이외의 것을 대변하지 않았다"며 "지역적 기반만 상이할 뿐 그들의 이념적 정향은 한결같이 보수적이었다"고 밝혔다.

***"노대통령, 한국정치 비정상성·편법으론 해소 안 돼"**

따라서 정치적으로 좁은 이념적 스펙트럼 때문에 대중 동원의 수단으로 이용돼 온 지역주의 문제는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이념과 노선의 차이를 대중 동원의 수단으로 삼을 수 있는 방법을 통해 해결하는 게 정상적인 방법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양당의 실제 노선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다. (지역주의 해소라는) 더 큰 목표와 가치를 위해 그만한 차이는 뛰어넘자"며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한 것은 심각한 문제를 내포한 발언으로 보인다.

정책 노선의 차이가 없는 게 지역주의를 극복하지 못하는 핵심적 문제인데 오히려 노선 차이가 없으니 연정을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지역주의를 극복하자고 하니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정상적 민주주의 발전에 역행하는 발상이기도 하다. '한국정치의 비정상성'을 해소하자는 노 대통령 자신이 비정상적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지난 대선에서 노 대통령의 당선 자체가, 지역주의가 한국정치를 지배하는 주요 변수에서 그 힘이 조금씩 약화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영남 출신의 민주당 후보'였던 노 대통령의 당선은 영-호남 지역구도가 다소나마 약화되고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개혁-보수라는 노선 대결에서 개혁 세력의 승리라는 의미가 더 크다. 또 남북관계, 한미관계 등에 대한 인식을 놓고 세대 대결의 양상을 보이기도 했다.

당장에 부동산 대책, 신용불량자 문제 등 서민들의 생활에 직결된 정책은 지역주의가 아닌 정책적 차이로 엄청난 규모의 대중 동원이 가능하기도 하다. 국정운영의 책임자이기 때문에 노 대통령이 천착해야 할 문제는 오히려 이런 정책적 차별성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으로 최 교수는 김영삼, 김대중 등 앞서의 두 민주정부의 실패와 관련해 이렇게 충고했다. 현재 여소야대 상황 때문에 국정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는 노 대통령이 꼭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노선 차이를 무시한 대연정은 필연적으로 국정의 비효율적 운영과 정책의 보수화를 낳는다. 독일과 프랑스 등 좌-우 세력의 연정의 경험을 가진 국가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노 대통령은 무엇을 위해 지역주의를 극복하고자 하나. 5차례나 연정을 주제로 편지를 발표하는 등 계속적인 몰아치기를 하고 있는 노 대통령이 다시 한번 자문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

"민주 정부의 실패는 보수적 이데올로기의 헤게모니, 기득 이익의 강력함, 여소야대, 지역기반의 소수자적 협애성 등과 같은 요인이 있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민주적 리더십의 약함과 정부 운영 능력의 약함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정부의 실패를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민주적 참여를 확대하고 이를 통한 민주적 국정수행능력을 확대하는 것이다. 자신의 조직적 기반과 리더십을 끊임없이 민주화하는 것만이 집권 민주 정부가 유능한 성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다. 기든스가 강조하듯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민주화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잘못된 '지역주의 이해'에 대해서는 더 말하고 싶지 않다. 그 잘못된 이해가 영남 출신 정치인이라는 태생적 한계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차기 대선, 총선 등을 고려해야 하는 위치에 따라 의도된 연출인지도 더 이상 따지고 싶지 않다.

다만, 그가 정말 자신의 말처럼 '지역주의 극복'에 올인하려 한다면 지금 당장 착수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자명하지 않은가. 자신의 정책적 차별성을 분명히 하는 동시에 민주적 리더십을 더욱 강화해 나가는 것, 이것이 바로 그의 승부처인 것이다. 자신의 잘못된 대목을 명명백백하게 알면서도(혹은 알게 되고서도) 궤도를 수정하지 않을 경우, 그가 뭔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