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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원희룡의 '발가락', 김진숙의 '발바닥'(2011.6.28)

원희룡 한나라당 의원이 28일 자신의 발가락을 공개했다. 자신의 군면제 사실이 논란거리로 등장하자 사유를 밝히기 위해서였다.

내달 4일 열리는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출마한 원 의원은 이날 당내 모임인 '새로운 한나라' 초청 토론회에서 "다섯 살 때 시장에 가는 아버지의 리어카에 올라타려다가 미끄러지면서 바퀴에 발가락이 끼는 사고를 당했고, 오른쪽 두 번째 발가락이 절단에 가까운 골절상을 입었다. 시골 의원에서 바로 접합수술을 받았으나 열악한 상황에서의 수술이었기 때문에 그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했고 성장과정에서 기형이 가속화 되면서 발가락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이 때문에 병무청 신체검사에서 군 면제 판정을 받았다는 것. 고의로 군 복무를 회피한 게 아니라는 주장이고, 실제 공개된 원 의원의 발가락 사진을 보면 수긍할 만한 얘기다.

전임 대표가 '행방불명'이라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병역 면제를 받았을 뿐 아니라 대통령, 총리 모두 병역 면제자라는 점에서 여당인 한나라당 대표의 '병역 문제'는 국민 정서상 가벼운 문제는 아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원 의원의 병역 면제가 뒤늦게 논란거리로 등장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고의로 병역을 기피한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굳이 이 얘기를 꺼낸 것은 원 의원만을 탓하기 위한 게 아니다. 그의 병역 면제 사실은 이번 전당대회에 출마한 다른 후보 측이 슬쩍 흘리고 다니면서 문제가 됐다. '원 의원의 발가락'은 이번 한나라당 전당대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코너에 몰린 원 의원은 홍준표 의원 등 다른 후보들이 "친이계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공격을 받고 있는 당사자다. 한나라당 내 개혁파로 분류되던 원 의원이 이같은 의심을 사게 된 이유는 전임 친이계 지도부에서 사무총장을 맡았기 때문. 또 다른 경쟁후보인 남경필 의원은 "한때 한나라당 개혁을 같이 한 원 의원이 친이계 지원을 받는다는 의혹을 사서 안타깝다"고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후보자간 논쟁이 한나라당내 고질병인 '계파싸움'으로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한나라당 전당대회는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가고 있다. 내년 있을 총선의 공천권을 둘러싼 '이전투구'임을 누구도 부정 못하는 진흙탕 선거로 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국민의 3명 중 2명이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관심이 없다고 한다(<한국리서치> 27일 여론조사). 원 의원은 28일 '친이계 지원설'을 처음 주장한 홍준표 의원에게 "'공작정치'를 주장한 근거를 대라"며 "이를 밝히지 못한다면 허위 사실로 당을 내분으로 내몬 책임은 반드시 져야한다"고 '정계 은퇴'라는 극단적 카드까지 뽑아 들었지만 별다른 반향이 없다. 이미 국민들이 보기엔 '그놈이 그놈'인 듯 하다.

이런 '울림' 없는 계파 싸움을 하고 있는 지난 이틀간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진 뉴스가 바로 한진중공업 파업에 대한 것이었다. 사측의 일방적인 정리해고와 이를 철회하기 위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의 170일이 넘는 고공 크레인 농성, 사측과 노조 지도부의 급작스런 합의와 공권력 투입, 개처럼 끌려나오는 노동자들, 전기조차 공급이 끊긴 85호 크레인에서 사실상 감금된 김진숙 지도위원. 27일부터 많은 이들이 가슴을 졸이며 영도조선소에서 전해지는 소식에 눈물짓고, 안타까워하고, 크게 분노했다. 이런 '1박2일'을 함께 한 국회의원들도 있었다. 민주당 정동영, 민주노동당 이정희,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이다.

▲ 크레인 위에서 손을 들어 보이는 김진숙 지도위원. ⓒ민주노총 부산본부 제공

한진중공업 사태는 한국의 노동자들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필요하면 뽑아 쓰다 가차없이 내버려지는' 노동자와 정치 권력의 견제 따위는 우스운 무소불위의 권력이 된 대기업. 대다수의 노동자들에게 한진중공업 사태는 '남의 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공감을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진행 중인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도 후보들이 재벌 총수 일가의 '전횡'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반론할 수도 있다. 보수 정당에서 재벌에 대한 비판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치인이 비판적 발언을 하는 것은 쉽다. 김진숙 지도위원이 "이미 충분히 고통스럽다"고 현재의 심정을 토로했던 것처럼, 국민들이 지금 원하는 건 현재의 고통의 경감시켜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현실적 변화는 엄연히 정치의 몫이다.

2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을 불러 한진중공업 사태에 대한 청문회를 가질 예정이다. 지난 22일 국회 환노위 출석 요청을 한 차례 거부했던 조 회장은 내달 2일까지 해외에 머물 것으로 알려져 29일 청문회에도 불참할 가능성이 높다. 야당은 조 회장이 불참하더라도 사태의 원인이 그와 사측에 있었던 만큼 청문회는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진중공업 측이 노사합의가 이뤄졌고 일부 '강경파'들이 저항하고 있을 뿐이라며 한나라당 의원들을 회유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27일 밤 전기가 끊겨 크레인 위의 김진숙 위원은 그동안 '무사함'을 알리던 전화, 트위터 등을 할 수 없었다. 많은 이들이 김 위원의 안녕을 궁금해하자 현장에 있던 한 트위터리안이 "별일 엄씨 비만 옵니다. 지도님, 발바닥이 간간히 보여요"라고 글을 올렸다. 김진숙 위원은 그동안 언론 인터뷰를 통해 사측이 끝까지 밀어붙일 때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했다. 그가 오른 크레인에서 8년전 고 김주익 씨가 똑같은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진숙의 발바닥. 많은 이들이 애타게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엄한 발가락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