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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나경원이 '아버지 문제'에 답해야 하는 이유(2011.10.18)

권력의 사사로움. 이명박 대통령 부부와 그 아들이 개입된 내곡동 사저 부지 파문의 핵심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렇다. 대통령과 아들과 청와대 경호처가 개인 돈과 국가 돈을 섞어서, 일반인들은 설명을 듣고도 알아먹기 힘들만큼 복잡한 방식으로 땅을 샀다. 그것도 경호처를 제외한 다른 참모진들은 몰랐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부동산 투기, 편법 증여, 배임 등 숱한 의혹이 쏟아져나온다. 야당은 영부인인 김윤옥 씨를 검찰에 고발하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하니, 이 검토가 현실이 될 경우 현직 대통령 부인이 검찰 고발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급기야 17일 이 대통령은 내곡동 사저 문제를 재검토하라고 지시했고, 이 문제를 총괄했던 김인종 경호처장이 사의를 표명했다. 하지만 파문이 쉬 가라앉을 것 같지는 않다.

청와대는 내곡동 부지를 국고에 환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 예정에도 없던 그린벨트를 포함한 땅을 국가가 갖고 있으면서 어찌할 것이며, 이처럼 시끄러웠던 땅이 빨리 팔리기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또 이시형 씨와 청와대 예산을 섞어서 땅을 샀기 때문에 돈 문제 역시 깔끔하게 정리되기 힘들다. 11억2000만 원이라는 이시형 씨(사실상 이 대통령 부부)의 개인 돈은 어떻게 할 것인가? 국고에서 돌려줄 것인가?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를 필두로 여당에선 이 대통령이 퇴임 후 논현동 현 사저로 돌아갈 것을 강하게 압박하고 있지만 이럴 경우에도 돈 문제가 남는다. 사저 경호시설을 만들 부지로 책정된 예산 40억 원이 이미 내곡동에 묻혔기 때문이다. 심지어 2억 원의 예비비까지 땡겨 내곡동 땅 사는 데 써버렸다. 내년 예산으로 배정된 대통령 사저 관련 예산은 경호시설 건축비에 불과하다. 논현동 땅값이 비싸서 내곡동으로 사저를 옮기는 것을 추진했다던데 이제 퇴임이 1년 5개월 밖에 남지 않았는데 어디서 경호시설 부지를 마련할 '급전'을 구할 것인가? 방법은 둘 중 하나다. 내곡동 사저 부지를 마련했던 것처럼 남들 모르게 또 편법을 동원하거나 아니면 300평이나 되는 이 대통령 논현동 현 사저 부지를 쪼개 경호시설을 짓거나. 서울시장 보궐선거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홍 대표는 후자를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런 문제들 때문에 이 대통령이 직접 "본의 아니게 사저 문제로 많은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게 되어 대단히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유감을 표명하고 재검토를 지시했지만, 내곡동 사저 파문은 끝나지 않았다.

▲ 유권자를 만나 지지를 호소하고 있는 나경원 후보. ⓒ뉴시스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부친의 사학재단 관련 의혹에 대해 나 후보가 "아버지 문제라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버려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은 사립학교법 개정이 진행 중이던 2005년 나경원 후보가 당시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소속 위원이었던 자신을 찾아 "아버지 소유의 학교를 교과부 감사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청탁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나 후보는 이 의혹과 관련해 17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손석희 교수와 설전을 벌여 화제를 낳았다. 나 후보는 "정봉주 의원하고는 연배가 비슷해서 제법 친하게 지냈었고, 그 당시 여러 가지 루머가 있어서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을 했을 뿐, 감사의 대상이 될 만한 무슨 사건이 없었고, 그래서 부탁할 건이 없었다"고 다소 '애매한' 답변을 했고, 이에 손 교수의 질문이 이어지자 "저는 제 선거와 관련해 자꾸 아버님과 관련된 의혹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선 제가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며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나 후보는 18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나는 어떤 청탁도 하지 않았다"고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했지만, 이 인터뷰에서도 나 후보는 부친의 사학재단 문제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고 이 신문이 보도했다.

나 후보는 이 인터뷰에서 상대편인 박원순 후보가 "병역, 재산, 학력, 후원금 등 모든 게 다 모호한 사람"이라고 비난하면서 자신과 캠프에서 제기하고 있는 각종 의혹에 대해 '검증'이라고 정당성을 부여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의혹제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자세로 받아들여야할 것이다. 특히 부친의 사학재단을 둘러싼 의혹은 현재 진행 중인 메가톤급 이슈인 내곡동 사저 파문과 똑같은 성격의 문제다. 정치인이 자신이 가진 권력을 사사롭게 활용해 가족의 이해를 도모했느냐는 13살 소년과 그 가족이 병역을 면탈하기 위해 호적을 쪼갰느냐는 의혹보다 훨씬 현실성이 크고 도덕적 책임이 무거운 문제다. 정치권 안팎에 떠도는 나 후보 부친 사학재단을 둘러싼 '루머'는 이 뿐이 아니다. 정 의원은 18일 한 라디오 방송 인터뷰에서 부친 사학재단 관련한 추가 폭로를 예고하기도 했다.

"이번 사저 파동은 대통령 가족의 사적 문제라도 반드시 공적인 기준에 비추어 판단해야 한다는 것과 함께 대통령 측근들도 대통령 가족의 이해가 걸린 문제와 관련해서는 공개적인 말썽이 나기 전에는 직언하기 힘들다는 권력을 속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 드러내 보여주었다"

나 후보의 인터뷰가 실린 이날자 <조선일보> 사설의 일부다. '주어'만 바꾸면 권력을 가진 모든 정치인들에게 해당하는 얘기다. 나 후보라고 예외는 아니다. 더구나 이번 선거과정을 후보자 가족까지 등장하는 '송곳 검증(?)'으로 만든 책임은 나 후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