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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이명박

정몽준-이명박-박근혜 '애증의 삼각관계'(2007.12.3)

정몽준 무소속 의원이 3일 한나라당에 전격 입당하면서 이명박 후보 지지선언을 했다. 정 의원이 지난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후보단일화를 했다가 막판에 철회한 전력이 있지만, 민주노동당이 논평했듯이 두 사람의 결합은 "현대그룹 출신의 귀족정치인들의 재결합"이라는 측면에서 별로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또 '현대그룹 CEO 출신의 경제인'이라는 비슷한 배경을 가진 두 정치인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2002년 노 대통령과 정몽준 의원의 결합이 가져왔던 것과 같은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몽준 의원이 한나라당 입당과 이 후보 지지 선언을 통해 다시 정치 전면에 떠오른 것을 '유유상종'이라고 가볍게 보고 넘길 일이 아니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한나라당 경선 승리로 본격화된 '경제인 출신 정치인들의 전성시대'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몽준 "경제인들도 정치에 책임있는 모습 보여야"

이런 흐름은 정 의원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한 발언을 통해서도 읽을 수 있다.

▲정몽준 의원이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사 회의실에서 가진 입당식에서 이명박 후보와 악수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정 의원은 이날 "우리나라 경제인들도 정치발전에 책임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일본 경제인협회에 가면 자유민주주의 제도, 시장주의 제도를 지지한다고 하는데 우리 경제인들은 그런 말을 못하시는지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경제인들이 정치에 좀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하며, 자신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치세력을 적극 지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정 의원은 또 "미국의 경우 민주당에는 케네디 가문이 있었고 공화당에는 록펠러 가문이 있어 양당 제도에 기여를 했다"며 "저도 조금이나마 우리나라의 양당 제도의 발전에 기여하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현대가(家)가 한나라당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제까지 어떤 정치인도 "경제권력으로 정치에 개입하겠다"는 뜻을 이처럼 당당하게 밝힌 적이 없었다.

정몽준-이명박, 20년만의 '화해'의 의미는…

지난 92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대선에 출마했을때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또 2002년 정 의원이 대권에 도전장을 내밀었을 때도 '재벌가의 후계자'라는 출신성분은 그에게 플러스라기 보다는 마이너스 요소였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의 '대기업 CEO' 경력은 '이명박 대세론'을 형성한 주요한 근거였다. '경제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유권자들의 가장 큰 요구가 되면서 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후보라는 게 각종 도덕적 하자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지 않는 주요한 이유다.

도덕성이나 이념과 같은 정치적 용어가 아니라 능력과 효율성과 같은 경제적 용어를 내세운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대선후보가 된 것은 '새로운 보수주의'의 등장을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그리고 이회창 전 총재가 이명박 후보의 '대북노선'에 대해 문제제기하며 '선명한 보수'를 기치로 내세워 독자 출마함으로써 보수세력의 분화는 현실화됐다.

이명박 후보가 '실용주의'로 포장된 경제적 패러다임으로 '신보수'의 내용을 채워 나가는데 정몽준 의원은 좋은 파트너다. 개인적 지명도는 있지만 어쨌든 홀홀단신으로 입당한 정 의원은 이 후보가 대권을 잡는데 성공하고 한나라당 내부의 '물갈이'가 있어야만 당내 권력을 확보하는데 유리하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창당한 '국민통합 21' 이후 줄곧 무소속으로 활동을 하던 정 의원이 한나라당 행을 선택한 것은 정치적 운신의 폭을 넓히려는 의도로 보인다. 이미 한번 대권에 도전했다 실패했던 정 의원의 입장에서 차차기 대권을 다시 한번 노려보기 위해 한나라당이라는 발판을 마련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했다고 보여진다.

이명박-정몽준 연대는 따라서 고(故) 정주영 회장 때부터 20년간 계속된 현대가와 이명박 후보의 '껄끄러운 관계'가 일거에 해소됐다는 단편적인 차원에서만 바라볼 문제가 아니다. 이들의 '화해'는 구보수와 경쟁하는 신보수의 패러다임으로 '노골적인 시장주의'가 채워지는 과정의 상징적인 사건이다. 정치비평가인 김윤철 씨는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 경제권력의 정치진입이라는 신자유주의 지배가 조금씩 완성되어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동창인 정몽준-박근혜, 이들 '우정'의 결말은?

정 의원의 한나라당 입당과 관련해 또 하나 눈여겨볼 대목이 있다. 정 의원과 박근혜 전 대표의 관계다. 박 전 대표는 이날 "입당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박 전 대표와 정 의원은 초등학교 동창으로 오랫동안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지난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정 의원이 박 전 대표를 물밑에서 지원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정 의원의 입당으로 두 사람은 향후 당권 등을 놓고 하루 아침에 '경쟁자'가 됐다. 이 후보는 입당하자마자 정 의원에게 박 전 대표와 똑같은 선대위 상임고문 자리를 줬다.

또 당내에서 이명박 후보와 정몽준 의원은 '신보수'를 대표한다면, 박근혜 전 대표는 '구보수'를 대표한다. 정 의원과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셈이다. 곽성문, 김병호 의원 등 박근혜계 의원들이 잇달아 탈당해 이회창 전 총재 지지로 돌아선 것을 보면 이 후보가 집권할 경우 불어닥칠 한나라당 내 '물갈이'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이 전 총재 측에서 박 전 대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것도 궁극적으로 두 사람의 정치적 성향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정 의원과 박 전 대표의 '경쟁'의 결말은 정 의원이 한나라당 내에서 어느정도 세력을 확보하느냐는 '정치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날 정 의원이 20년간의 '앙숙'과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선택을 함에 따라 40여년의 우정이 '풍전등화'에 처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