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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노무현

"盧의 '균형발전' 5년, 웃는 자는 따로 있었다" (2007.10.9)

지역간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국가균형발전' 정책은 지난 5년간 노무현 정부와 보수세력의 정치적 논쟁이 됐던 주제 중 하나다. 최근에도 한나라당 의원 출신인 박세일 서울대 교수와 성경륭 청와대 정책실장(전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위원장) 사이에도 한 차례 논쟁이 일었다. (관련기사 :수도권 식수원에 공장 짓는 게 '발전'인가")
  
  한나라당 등 보수세력은 현 정부의 균형발전전략이 수도권의 발전을 억압해 국가경쟁력을 떨어뜨렸다고 비판하고, 이에 현 정부는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이 국가경쟁력 저하의 근본 원인이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시민사회와 일부 학자들은 이런 논란이 사실과 다르다고 지적한다. 실제 노무현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수도권에 대한 규제 완화를 더 많이 추진했으며, 각종 개발 사업을 위해 기업들에게 특혜를 주는 일에도 전혀 인색하지 않았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세력은 노무현 정권에 '좌파'라는 정치적 레테르를 붙이기 위해, 또 현 정권은 보수세력과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수도권 규제 완화를 놓고 논쟁을 벌였다.
  
  하승수 제주대 교수(법학부)는 <지역, 지방자치, 그리고 민주주의 : 한국 풀뿌리민주주의의 현실과 전망>(후마니타스 펴냄)에서 "노무현 정부의 균형발전전략은 중앙집권적이고 불균형한 개발전략이었다"고 평가했다.
  
  현 정부, 지역간 불균형을 수도권-비수도권 문제로 단순화
  
  시민자치정책센터 운영위원으로, 또 풀뿌리자치연구소 '이음' 운영위원으로 일찍부터 지방자치문제에 대해 관심을 갖고 활동해온 하 교수는 보수세력과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현 정부의 균형발전전략을 비판한다.
  
  우리사회 양극화 문제 중 하나인 지역 간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문제의식에 기반한 노무현 정부의 '균형발전 전략'이 궁극적으로 '불균형 개발 전략'으로 귀결된 원인에 대해 하 교수는 "노무현 정부와 일군의 학자집단은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지역 간 불균형과 지역격차 문제를 수도권과 비수도권 문제로 단순화해 파악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지방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발전 가능성이 큰 거점 중심의 지역 성장 정책, 개발 전략을 채택했다는 것.
  
  노무현 정부는 또 이런 개발전략을 뒷받침하기 위해 각종 특례를 인정했다.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 혁신도시 등의 특례는 주변의 땅값을 상승시켰고, 이런 구상이 현실화될 경우 상대적으로 먼 거리에 있는 농ㆍ어ㆍ산촌의 인구를 흡인하여 농ㆍ어ㆍ산촌의 공동화를 더욱 가속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하 교수는 주장했다.
  
  역대 어느 정부보다 수도권 규제 푼 노무현 정부
  

▲ <지역, 지방자치, 그리고 민주주의>(하승수지음,후마니타스펴냄)ⓒ프레시안

  노무현 정부의 '균형발전 전략'은 국가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한 '신개발주의'를 정책기조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런 부작용은 이미 예상된 일이었다.
  
  하 교수는 "균형발전전략은 말로만 소프트웨어를 강조했을 뿐 실제로는 하드웨어 중심의 개발이 압도하고 있고, 균형발전을 전면에 내세우나 실제로는 대형 공공사업을 통하여 환경을 훼손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신개발주의, 신성장주의에 기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경쟁력 강화를 중시하는 정책 기조 때문에 겉으로는 지역발전을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 역대 어느 정부보다 많이 수도권에 대한 규제 완화 정책을 추진한 모순을 낳았다고 하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2004년 1월 발표한 '신국토구상'에서는 '수도권의 계획적 관리'이니 '수도권의 질적 발전'이니 하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규제 완화와 수도권 경쟁력 강화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면서 지난 5년간 현 정부가 추진한 수도권 규제 완화 정책에 대해 제시했다.
  
  - 성장관리 권역 내 첨단산업 공장 증설 100%까지 허용(수원의 삼성전자 증설 가능)
  - 25개 첨단업종 외국인 투자 기업의 공장 신증설 2007년까지 연장 허용
  - 8개 첨단 업종의 국내 대기업 공장신설 2006년까지 허용
  - 주한미군의 평택이전에 따른 61개 첨단 업종의 외국인 투자에 대해 공장 신증설 허용
  - 관리 지역 내 공장 설립 면적 제한 폐지

  
  정주민의 입장에서 지역개발 바라봐야
  
  이런 지역개발의 문제는 지역경제, 환경 뿐 아니라 지역 민주주의의 문제와 직결된 것이라는 점에서 현 정부의 정책 실패는 더욱 냉정하게 평가해야할 대목이다.
  
  현 정부에서 지역발전을 위한 지역혁신은 지역의 무능, 부정부패 등을 척결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경쟁력 제고를 위한 수단 정도로 치부됐다. 이에 따라 지역혁신의 일차 대상이 돼야할 지방의 정치와 행정, 기득권 세력이 오히려 혁신주체가 됐고,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각종 특례를 따내는 일에 몰입했다. 결과적으로 지역의 무능ㆍ부패 구조는 그대로 유지될 수밖에 없었다.
  
  하 교수는 "각종 특례를 따기 위해 지방자치단체들은 자체 역량을 강화시키기 보다 중앙정부가 짜놓은 틀에 맞춰 무한경쟁을 벌이는 일에 골몰했다"며 "노무현 정부의 균형발전은 중앙집권적인 국가구조는 전혀 변화시키지 못했고, 오히려 중앙집권을 유지ㆍ강화시켜 지역 민주주의에 악영향을 미쳤다"고 비판했다.
  
  하 교수는 현 정부의 균형발전전략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지역발전의 문제를 계속 거주할 지역주민(정주민)의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종종 지자체나 정부가 개발사업과 관련해 지역주민의 찬성 여론이 더 많다는 사실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지역주민들이 자신이 사는 마을은 더 이상이 희망이 없으므로 보상금 등 경제적 이익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처럼 땅을 팔고 떠나겠다는 사람, 보상금을 받고 떠나겠다는 사람, 이미 그 지역에 거주하지 않으면서 사업만 하는 사람, 인근도시에서 출퇴근하는 공무원, 자식 세대부터는 도시에 살게 하겠다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역의 환경이 파괴되든, 장밋빛 계획이 실패하여 지역경제가 더욱 파탄에 처하게 되든 별 상관이 없을 수 있다는 것.
  
  하 교수는 "이런 사람들의 입장에 선 지역개발은 성공할 수도 없고, 그 결과는 지역주민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서 "정주민의 입장에서 출발해 문제에 접근할 때에만 신개발주의 열풍에 따른 무분별한 개발, 난개발, 약탈적 개발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 정부 뿐 아니라 이번 대선에서 가장 유력한 후보인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한반도 국운 융성을 위한" 대규모 개발사업인 '한반도 대운하'를 주요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이 후보가 집권한 이후에도 이 공약을 실제 추진할지는 아직 모르지만, 이 개발사업도 정주민의 입장에서 출발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