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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노무현

노무현-유시민은 주연 강박증 (2007.4.8)

정치인 유시민의 행보엔 대중의 관심이 따라간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달변이자 독설가인 그가 가는 곳엔 설화가 끊이지 않는다. 또 그는 자타가 인정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적자'(嫡子)다.

그런 그가 지난 6일 국민연금법안의 국회 부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노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져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장관직을 수행하느라 몸조심, 입조심해야 했던 그가 12월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조만간 '자유인'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중의 주목을 받고 있는 정치인 유시민에 대해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고독한 정치인"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최근 <고독한 한국인>(강준만 지음. 인물과 사상 펴냄)에서 노 대통령과 그의 닮은꼴인 유시민 장관을 대표적인 '고독한 한국인'으로 꼽았다.

"한국인들의 인정 투쟁은 고독의 증표"

월간 <인물과 사상>, <한겨레 21>, <한국일보> 등에 발표했던 글을 모아서 펴낸 이 책의 서문에서 강 교수는 '고독'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게 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한국인은 고독할 겨를이 없을 것 같지만, 실은 고독을 경험해볼 기회가 거의 없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다. 역설 같지만, 그래서 고독한 사람들이다. 자신보다는 남을 더 의식하고 살아간다. 남들로부터 인정받아야만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는 인정 투쟁의 대가들이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선 잘 모르면서 남에 대해 전문가다. 고독해선 안 된다는 강박으로 의례적인 사교에 몰두하면서 질주하는 게 일반적인 삶의 모습이다."

또 이런 고독은 중독을 부른다고 강 교수는 주장했다. '고독으로부터의 탈출'을 도와주는 '고독산업'이라 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게임. 도박산업, 또 인터넷.휴대전화 산업을 보면 고독과 중독의 연관성을 알 수 있다.

강 교수가 보기엔 정치도 대표적인 고독산업이자 중독산업이다. 정치는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자신이 무엇에 분노할 만큼 사회에 관심이 있고 의식 있는 존재라는 걸 확인시켜 주는 기능을 한다.

▲ <고독한 한국인>(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 2007)

노무현과 유시민의 '주연강박증'

강 교수 이 책의 3장과 4장으로 각각 '대통령의 고독 : 노무현', '정치인의 고독 : 유시민'을 썼다. 이들 두 사람과는 정치적 색깔이 확연히 다른 작가 이문열 씨에 대해서도 '문인의 고독'이라는 장을 할애했다.

그는 이 세 사람에 "이들은 모두 탁월한 능력과 불굴의 투지로 큰 성공을 이룬 훌륭한 분들이지만 반대자가 많다는 점도 같다"면서 "이들은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강력한 고독감과 더불어 자신이 주인공이 되지 않으면 못 견뎌하는 '주연강박증'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주인공을 하면서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기고자 하는 욕망은 그것이 옳건 그르건 끊임없이 사회적 갈등과 분란을 일으키게 돼 있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이들의 고독감이 해소된다"고 주장했다.



돌아온 유시민은 어떤 역할을 할까

강 교수가 유 장관과 지면을 통해 대립각을 세워 논쟁을 벌여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는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을 가까이 두라"고 조언했지만, 노 대통령에겐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을 응징하는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처한 유 장관의 모순된 언행에 대해 문제제기했다.

또 열린우리당 내에서 김근태 전 의장과 386의원 등 자신과 의견을 달리하는 세력을 '보수화된 기득권 세력'으로 몰아붙이면서 '개혁'이라는 이슈를 선점하고 네티즌들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유 장관의 정치적 형태에 대해 '사이버 보스 정치'라고 비난했다.

유 장관이 실제로는 "타협의 정치비용이 민노당이 훨씬 많이 들어간다. 차라리 한나라당과 합의하는 게 낫다"고 말할 정도로 보수적 인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개혁'을 표방하는 것에 대해선 "과도한 자기주관주의, 즉 나르시시즘에 빠져 있다"고 강조했다.

이 책에 실린 유 장관에 대한 글은 2006년 9월이 마지막이지만 장관직을 마치고 당으로 복귀한 뒤 강 교수는 유 장관에 대한 비판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노 대통령의 '정치적 경호실장'을 자처하는 유 장관에겐 상당수의 지지자들이 반대하는 한미 FTA를 강행하는 등 진정 '고독한 길'을 걷고 있는 노 대통령을 엄호하는 게 '애프터서비스'를 하는 것이라면, 강 교수에겐 노 대통령과 그에 대한 비판이 일종의 '애프터서비스'이기 때문.

강 교수는 "대통령이 되기 전의 노무현을 지지하는 책들을 썼던 사람으로서 집권 후 노무현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기 때문에 과거 나의 지지행위에 대해 평생 무한책임을 져야 할 의무가 있다"며 현 정부에 대판 비판적 글쓰기를 계속할 것임을 밝혔다. 그는 또 이 같은 책임의 일환으로 앞으로는 특정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