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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코로나, 중앙정부 통제 불가...오래가고 많은 피해 예상"

[인터뷰] 美전국간호사노동조합 로이 홍 조직실장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미국에서만 1억6000만~2억1400만 명이 감염되고, 심하면 1년 넘게 이런 상황이 지속될 수도 있다는 전문가들의 관측이 나왔다.

<뉴욕타임즈>(NYT)는 14일(현지시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관리들과 대학 전문가들이 비공개로 논의한 미국 내 코로나19 확산의 모델분석 결과를 입수해 보도했다.

이 분석결과에 따르면, 최악의 경우 최대 2억1400만 명이 감염되며 사망자는 20만~170만 명, 병원 입원자는 240만~2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감염 여부 검사 확대, 감염자 접촉 동선 추적, 대규모 집회 중단 등 사람들 간 교류 축소, 재택근무, 이동제한 등 감염 예방을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통해 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지적됐다. 이 NYT 보도는 악영향 비율로만 구성된 CDC의 모델을 입수해 전문가 분석을 거쳐 절대 수치로 바꾸는 방식으로 추산치를 내놓은 것이라고 한다. 

지난 10일 샌프란시스코의 저명한 의과대학 UCSF(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 캠퍼스)에서 주최한 전문가 좌담회에서 조 데리시 수석 연구원 등은 "미국 인구의 40~70%가 향후 12~18개월 동안 감염될 것"이라면서 최악의 경우 150만 명의 미국인이 사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코로나19는 독감과 달리 전적으로 인류에게 새로운 질병이기 때문에 잠재적인 면역력이 없다고 봐야 한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충격적인 전망이다.

의료 현장에서 환자들을 가장 많이 접하는 간호사들이 바라보는 코로나 사태에 대한 예측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13일 만난 전국간호사노동조합(National Nurses United) 로이 홍 조직실장은 "현재의 미국 의료 시스템으로는 굉장히 오래 가고 크게 확산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홍 실장과 그 동료들과 나눈 코로나 사태에 대한 의료계 현장의 우려와 버니 샌더스 지지자들이 인식하는 미국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두 번에 걸쳐 싣는다. 첫 번째는 미 의료 현장에서 바라보는 코로나 사태다. 

▲ 로이 홍 미 전국간호사노조 조직실장. ⓒ프레시안(전홍기혜)

 

미 주류 의료계, 독감과 코로나19를 비교하며 가볍게 생각했다

미 전국간호사노조는 전국적으로 15만 명 이상의 조합원을 가진 노조이자 전문협회다. 이들은 간호사와 환자의 이해를 도모함으로써 모든 사람을 위한 접근 가능한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증진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전국간호사노조는 지난 2016년에 이어 2020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샌더스의 '전국민 의료보험'(메디케어 포 올)이 간호사노조의 목표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있는 조합 사무실에서 13일 홍 실장을 만난 것은 당초 샌더스 지지자들을 인터뷰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마침 코로나 정국이 매우 빠르고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데다 홍 실장은 지난 2001년부터 간호사노조에서 일해왔기 때문에 이 사태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제일 일선에서 환자와 접촉하는 사람이 간호사다. 특히 미국은 의사가 환자를 직접 보는 시간은 매우 짧다. 업무상 간호사가 환자와 가장 많이 접촉하기 때문에 전염병 사태가 발생하면 간호사가 제일 위험하다. 에볼라 사태 때도 그랬다. 그래서 간호사가 안전하게 보호되는 시스템이 되면, 그 자체가 환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하지만 현재 그렇지 못하다. 그런 점에서 노조 차원에서 미국CDC에 건의도 많이 하고 항의도 열심히 하고 있다. 현재 트럼프 정부의 접근 방식에 대해서도 맹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오후 예상보다 훨씬 빨리 '비상사태'를 선포했지만, 그 이전까지 트럼프 정부의 반응은 상당히 미온적인 것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 사태 초기인 지난달 26일 기자회견 때만 해도 "매년 독감으로 2만5000명에서 6만9000명이 사망한다는 사실에 대해 보고 받고 매우 놀랐다"며 독감과 코로나19를 비교하며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메시지를 발표했다. 홍 실장은 이런 인식이 미 주류 의료계의 입장에 기반한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겨울에 매년 독감이 확산되는데, 백신이 있고 처방이 가능한데도 미국에서 독감으로 폐렴까지 가서 사망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처음 코로나19에 대한 미 주류 의료계의 반응이 '1년에 독감으로 몇만 명이 죽는다'면서 신속하게 대응을 안 하고 있다가 지금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미 의료시스템을 알기 때문에 낙관적인 예측을 하기 힘들다. 현재 미 의료시스템이 이런 대규모 전염병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가 아니라서 굉장히 오래 가고 예상보다 확산될 수 있다."

"시장화된 의료시스템은 위기 대응 못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오후 코로나19와 관련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기는 했지만, 막상 지방정부에서는 전혀 준비가 안 되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지역정부는 전혀 준비가 안 돼 있는 상태다. 병원 현장에서는 94마스크도 부족하다. 마스크를 재사용해도 되는지, 재사용하면 안 되는지 등 기본 지침도 없고 정보도 너무 부족하다.

무엇보다 걱정은 미국에서 의료보험 미가입자가 워낙 많다는 것이다(2018년 기준 2750만 명). 이들은 아파도 병원에 안 간다. 비용이 무서워 못 간다. 이들이 아니더라도 워낙 미국 의료비가 비싸기 때문에 병원에 가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그러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에 감염됐더라도 초기에 모르고 그냥 일상생활을 계속하면서 감염을 확산시킬 가능성이 높다. 전국민 의료보험이 되는 한국과 같은 나라도 문제인데, 미국은 어떻겠냐.

또 미국은 땅 덩어리가 넓다보니 인구 밀도가 높지 않다는 점은 장점으로 작용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중앙정부의 통제가 상대적으로 어렵다는 단점으로 작용한다. 지금 시애틀 등이 크게 확산돼서 여기에 조치를 취하려고 하면 뉴욕 등에서 발생하고, 이런 식으로 중앙정부에서 통제가 안 되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결국 코로나 사태가 오래 가면서 많은 피해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코로나 사태에 고개를 든 '재난 자본주의'

홍 실장은 또 코로나 사태를 기회로 '재난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재난 자본주의'란 재난을 맞닥뜨려 대중들이 당황하고 겁에 질려 있을 때, 그 사회 기득권들이 평소에 자신들이 원하던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을 말한다. 그는 2가지 '규제 완화'를 밀어붙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의 힘이 세고 조직화가 잘 되어 있는 캘리포니아에만 있는 법 중 하나가 간호사 대 환자 비율 관련법이다. 간호사가 담당할 수 있는 최대 환자 숫자를 제한해 놓았다. 일반 병동은 최대 5명이고 그 이상은 불법이다. 간호사의 고유 권한으로 담당 환자가 중증일 경우 담당 환자 숫자를 줄일 수는 있다. 무려 10년을 투쟁해서 쟁취한 법안인데 이걸 잠깐 폐지하자고 하고 있다.

또 하나가 미국에서는 간호사 자격증이 주별로 발급이 되고, 주마다 기준이 조금씩 다르다. 그런데 주들이 협약을 맺어서 서로 받아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업계에서는 장려한다. 왜냐면 이렇게 이동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간호사 숫자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병원 입장에서 보면 간호사의 인건비가 제일 많이 든다. 의사는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기에 덜 든다. 간호사의 인력과 역할을 줄이고 이를 분산시켜서 저임금 노동자에게 나눠주면 전체 비용이 줄 수 있다. 그러니까 코로나 사태와 같은 상황을 이용해 '간호사 자격증을 그냥 다 받아주자, 지금은 비상상황이니까.' 이런 뒤에 지나고 나서 '봐라, 아무 문제 없지 않았냐.' 이러면서 규제를 없애려고 한다."

홍 실장은 결국 코로나 사태가 지나친 자본주의화로 무너진 미국 의료시스템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 점에서 '전국민 의료보험'(메디 케어 포 올)과 같이 공공 의료 시스템을 강화하자는 정치적 목소리가 대중적인 공감대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계속)

▲ '메디케어 포 올' 도입을 촉구하는 간호사노조 조합원들. ⓒNational Nurses Uni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