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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복종' 강요하는 사회에 외치다, '플라이백'!

(* 이 인터뷰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별세 전에 진행되고 발행된 인터뷰입니다.)

 

[인터뷰] 박창진 대한항공직원연대 지부장

 

'땅콩 회항'의 주인공(?) 박창진 대한항공직원연대 지부장의 책 <플라이 백>(박창진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은 '갑'에게 찍힌 '을'의 처절한 생존기다. 자존감과 인격을 끝내 포기하지 않은 '을'의 생존기이기에, 읽는 내내 독자에게 숱한 자문자답을 던지는 책이기도 하다. 

'땅콩 회항' 이후 5년여에 걸친 박창진 지부장의 '외로운 투쟁'은 한국 사회에 '큰 획'을 그었다고 할 만큼 성과를 가져왔다. 다소 진부하지만, '골리앗에 맞선 다윗의 투쟁'에 비견할 만 하다. '땅콩 회항' 사건을 통해 밖으로 알려진 조양호 일가의 각종 전횡과 횡포는 많은 이들을 경악하게 만들었고, 지난 3월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 대한 '불신임'(사내이사 연임안 부결) 결정이 내려졌다. '재벌 중심'의 한국 경제구조에서 사주 일가가 그룹에 끼친 해악이 인정돼 경영권이 제한된 첫 번째 사례다. 

지난 4일 오후 프레시안 사무실에서 만난 박 지부장은 지난 5년간의 싸움에 대해 "스스로 타협하거나 포기하고 싶은 적도 많았지만 '땅콩 회항' 사건 이후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있어서는 자신의 판단과 신념을 믿고 가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에 일관성을 지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지부장은 또 우리 사회가 절대다수인 '을'들에게 "복종 외에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노동권이 무엇인지, 인권이란 무엇인지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면서 이른바 '갑질 문화'의 폐해에 대해 역설했다. 

사주 일가의 부당한 폭력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사측의 각종 부당한 처우 뿐 아니라 사원들 사이에서 반(反)자발적인 '왕따'를 견뎌야했던, 이 모든 부당함과 억울함을 '먼저 눈 뜬 자의 운명'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박 지부장은 자신의 경험이 또 다른 이들에게 '해답'을 찾는 열쇠가 될 수 있는 '연대의 힘'을 믿는다고 했다. 실로 인터뷰어도, 인터뷰이도 줄곧 울컥하게 만든 인터뷰였다. 

 

▲ 박창진 대한항공직원연대 지부장.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책 <플라이백> 한 챕터를 고(故) 노회찬 의원에 대해 쓸 정도로 고인과 각별한 연을 가지고 있다. 마침 어제(4월 3일) 고인의 지역구(경남 창원·성산)에서 정의당 여영국 후보가 당선됐다.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다. 

박창진 : 고 노회찬 의원을 생각하며 지난 일주일 동안 비행이 있는 날에도 창원과 서울을 오가며 여영국 후보의 유세를 도왔다. 

내가 1인 시위를 하며 CCTV 공포에 떨고 있을 때 노회찬 의원이 동네 아저씨처럼 친근하게 다가와 손을 덥석 잡아줬다. 그러면서 "당신 잘못이 아니다"라고 말해줬는데, 순간 울컥 목이 멨다. 이야기를 하는 지금도 울컥해진다.(눈시울 불거짐) 

진보정당이나 시민단체를 '빨갱이'로 생각했던 때다. 하지만 내가 절체절명의 순간에 있을 때 손을 내밀어 준 누군가의 고마움은 절대 잊을 수 없다. 책에도 썼지만, 앞으로도 1인 시위를 하던 날 노 의원이 전해준 말의 온기를 간직하고 살 것이다.

조양호 '아웃' 되던 날, 안타까운 마음과 참혹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프레시안 : 3월 27일 대한항공 주주총회가 있던 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경영권을 상실한 날, 그때의 심정도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어떤 느낌이었나?

박창진 : 일부 언론에서는 웃는 얼굴만 내보냈는데, 그날 그 순간에 기쁨은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과 참혹한 마음이 동시에 들 뿐이었다. 

대한항공에서는 위기의식을 느낀 듯 주총 한 달 전부터 직원들에게 주주권 위임을 강요했다. 일부 직원들은 충성도를 보일 수 있는 기회라도 되는 듯 앞다퉈 달려갔다. 고립감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박창진은 끝까지 회사를 망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거센 공격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의지와 신념을 지켜야 한다는 내부적 갈등까지. 

'주주권 운동'을 시작한 이래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길을 걷는, 마치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 길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결과를 예상한 것은 아니지만, 이번 일로 대한항공 내부가 공정함이 무엇인지, 그리고 공정함을 위한 권리 행사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프레시안 : 대한민국과 같은 '재벌 지배 사회'에서 주주의 손에 총수가 퇴출당한, 그야말로 역사적인 사건이다. 

박창진 : 그동안 인터뷰도 많이 하고 공개적인 자리에도 나갔지만, 내부 구성원들이 한 번도 알은 척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몇몇 사람들이 이야기하더라. "너무 의미 있는 일이었던 것 같다"고. 그래서 사고를 쳐도 크게 쳐야겠구나 생각했다.(웃음) 


프레시안 : 지난 박근혜 정권 당시 '촛불집회'의 원동력 중 하나는 '갑에 대한 분노'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정권이 바뀌고 몇몇 재벌 총수가 법의 심판을 받았다고 하지만, 을의 입장에서는 체감이 쉽지 않다. 

박창진 : 그렇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꼭 보여줘야겠다고 각오했다.


지난 5년 동안 지탄받은 것처럼 실수도 있었고 개인적인 욕심도 있었다. 또 스스로 타협하거나 포기하고 싶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땅콩 회항' 사건으로 깨달은 게 있다면, 사회적 통념상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있어서는 자신의 판단과 신념을 믿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 <플라이 백>(박창진 지음, 메디치미디어 펴냄). ⓒ메디치미디어

 

프레시안 : 책 제목인 '플라이백(Fly Back, 회항)'에도 그런 의미가 담겨 있나? 

박창진 : 그렇다. '땅콩 회항' 사건에 처음부터 주체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 육체적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갑자기 어떤 상황에 내몰리다 보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 사건과 관련한 일련의 상황에 눈을 뜨고, 내가 직접 해결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러면서 '그동안 내가 주체적인 삶을 살고 있지 못했구나'라고 자각했다. 

'플라이백'은 사건을 당한 피해자라는 수동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내가 내 항로를 조정하며 돌아가겠다는 뜻이다. 과거보다 능동적인 모습이 더 담겨 있다. 운전이 서툰 만큼 길을 잃어 잠깐 서게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 의해 교신이 차단되기도 하겠지만 그럼에도 목적지까지 주체성을 갖고 플라이백할 것이다. 

'자발적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자

프레시안 : 책에는 국회의원 같은 일반적인 VIP 외에도 'KIP'(대한항공에서는 조 씨 일가를 항공사 영문명인 Korea Air의 앞글자를 따 VIP 아닌 KIP라고 부른다)의 횡포가 여럿 소개되어 있다. 강자가 약자를 어떻게 착취하는지, 가해자가 피해자를 어떻게 음해하는지 알 수 있다. 

박창진 : 가해자(또는 권력자)가 제일 많이 하는 행태가 피해자에 대한 음해다. 사건의 본질을 없애고 가십거리만 남기는 방식이다. 역사적으로 '빨갱이'라는 색깔론을, 일반적으로는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는다. 

'조현아 대 박창진'이라는 대결구도에서 제일 많이 받는 비판 중 하나가 '500억 소송' 건이다. '땅콩 회항' 사건 초기 여러 로펌을 찾아다녔지만, 변호해 주겠다는 곳이 없었다. 한 언론사는 '광고주' 운운하며 취재 기사를 삭제한 일도 있다. 이처럼 불공정한 상황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기 위해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었다. 

그런데 한 언론사의 오보가 사실인 양 확대 재생산 됐다. 피해 사실은 잊히고, 피해 보상만 부각됐다. 소송은 자신이 입은 피해에 대해 법적으로 정당한 요구를 하는 것인데, 소송 사실 자체로 비난의 대상이 된다는 게 어처구니없다. 

프레시안 : 모든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때마다 듣는 비난이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자식의 목숨을 돈으로 바꾸려 한다'는 음해에 시달렸다. 자식을 잃은 상실감과 훼손당한 인격 등 돈으로 배상이 불가능한 것인데도, 사회적 통념은 '금전'에 방점이 찍혀 있다. 

박창진 : 반면 조현아 씨가 '땅콩 회항' 관련 소송에 대한항공 돈을 쓴 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지 않는다. 또 조현아 씨가 대한항공에서 물러나면서 급여와 퇴직금 등 10억 원 이상을 받았지만,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조양호 회장은 270억 원 규모의 배임·횡령 혐의 등으로 재판을 앞두고 있다(4월 8일). 또 조현아의 '땅콩 회항' 사건, 조현민의 '물컵 갑질' 사건, 조원태의 일감 몰아주기, 이명희의 욕설·폭행 사건 등 오너리스크로 기업 가치가 추락했다. 

이 정도면 내부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 조 씨 일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런데 여전히 '자발적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인이 없으면 죽는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프레시안(최형락)

 


프레시안 : 산재 휴직 후 1년 4개월 만에 복직했는데, 복직하자마자 2차 가해가 시작됐다고 했다. 

박창진 : 마치 '깨진 유리창의 법칙'(깨진 유리창을 방치하면 할수록 도덕적 해이가 발생한다)처럼 한 번 낙인찍힌 사람에 대해서는 직급, 나이를 망라하고 우르르 모여들어 사람을 폄훼하고 공격하더라. 

안타까운 점은 2차 가해를 행하는 이들 대부분이 사측 앞잡이가 아닌 주변 동료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들도 만약 윤지오 씨나 내가 경험한 일을 당했다면 역시 억압의 대상이 되는 처지인데도, 관리자인 양 허울을 쓴 채 죄의식조차 없었다. 

그들에게 이 말은 꼭 해주고 싶다. "내부고발자나 약자를 보호해 줄 생각이 없다면, 최소한 적극적인 가담자는 되지 말라." 사측이 박창진에게 불이익을 주라고 했을지언정, 박창진의 팔다리를 자르라고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칼을 휘두르는 사람이 있다. 

박창진, 서지현, 윤지오공익제보자는 사회의 '공기청정기'다 

프레시안 : 내부고발(공익제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킨 사람도, 박창진 지부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창진 : 고 장자연 씨의 동료이자 사건의 증인인 윤지오 씨가 과거에 신변의 위협을 느껴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경찰이 키가 몇이냐고 물으면서 '키가 170센티미터 이상인 여성은 납치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는 것 아닌가. 시민을 보호해야 하는 경찰이 오히려 위협한 것이다. 

'땅콩 회항' 사건으로 검찰 조사를 받을 때도 그랬다. 나는 참고인 신분이었는데도, 법원 관계자 두 명이 강제 구금하듯 끌고 갔다. 검사가 "조현아 씨가 때렸다는데, 몇 대를 때렸느냐?"고 물어서 내가 "맞으면서 그걸 어떻게 기억하느냐?"고 했더니, "기억을 못 하는데 왜 맞았다고 하느냐"며 윽박질렀다. 이 사람들이 정말 사건을 조사할 생각이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이런 게 법이고, 이런 게 정의인가라는 생각에 탄식이 나왔다. 

윤지오 씨나 나나 피해자(또는 참고인)이었는데도, 그들은 자신의 목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를 보호하지도 존중하지도 않았다. 물론 착각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평범한 시민인 우리가 그런 착각을 하는 이유는 뭘까? 평범한 시민 다수가 아닌 일정 역할을 하는 소수를 보호대상으로 생각하는 사회적 구조 때문은 아닐까? 민주적인 사회라고 하지만, 어떤 자리(장)를 맡고 있지 않거나 이러저러한 이유로 낙인찍힌 사람은 무시한다. 그저 지배대상으로 여길 뿐이다. 

이 같은 사회적 인식 때문에 내부고발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내부고발이 갖는 사회적 정의성이 명확한 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은 무시된다. 

프레시안 : 박창진 지부장도 그렇고, 윤지오 씨나 서지현 검사 모두 사건의 피해자이면서 내부고발자이다. 

박창진 : 내부고발자들이 갖은 억압을 다 받으면서도 의지를 굽히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내가 생존해 있어야 증명이 된다'라는 생각 때문이다.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믿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적어도 생존해 있다는 것을. 

프레시안 : '생존'이라는 말이 참 쓰리다. 

박창진 : 정말 치열한 생존이다. 지금도, 앞으로도 생존해 있는 동안 계속 공격을 받을 테지만.(눈시울 불거짐) 지금 앉아 있는 박창진은, 어떻게 보면 팔다리가 잘려나간 박창진이라고 할 수 있다. 삶을 포기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부고발자나 약자를 위한 안정망이 없다. 

서지현 검사를 비롯해 몇몇 사람들과 모임을 갖고 있는데, 우리끼리는 스스로를 사회를 정화시키는 '공기청정기 같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웃음) 


수시로 "무릎 꿇어라" 요구하는 한국 사회 

프레시안 : 승무원은 대표적인 서비스직이자, 감정노동 종사자다. 책에도 "나는 늘 연습된 미소를 가면으로 쓰고 있었다"고 했다. 

박창진 : 대학교 4학년 때 대한항공에 입사해 25년째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땅콩 회항' 사건이 있기 전까지 비교적 빨리 진급하며 서비스맨으로 능력을 인정받을 수 있었던 것은 공감 능력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아버지 덕인 것 같다. 유공자이시기도 하지만, 밖에 나가면 항상 자켓을 벗어주고 오셨다. 그런 공감 능력 유전자를 받은 것 같다.(웃음)

그렇다 보니, 오해도 종종 받는다. 고통을 받거나 슬픈 일이 있으면 소리도 치고 해야 하는데, 항상 웃는다. 

프레시안 : 감정노동자에 대한 평가나 인식 모두 상당히 낮다. 감정노동자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경감해 줄 수 있는 사회적 보호 장치가 전무하다. 

박창진 : 비행 중 승무원을 수시로 호출하거나 무조건 옷깃부터 잡아당기고 보는 일은 허다하다. 뿐만 아니라, 서비스가 조금만 잘못돼도 "무릎 꿇어라"라고 한다. 조현아 씨만 그런 게 아니다. 일반 승객들도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호통을 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소비자의 권리'라고 포장하는데, 잘못된 인식이다. 자신이 상품을 구매했다고 그 상품과 관계된 사람 앞에 군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양대 항공사가 회사에 담당 부서까지 만들면서 승무원 또는 직원들에게 '군림'할 수 있다고 호도하고 있다. 

지금 생각해도 후회된다. 2014년 12월 5일 비행기에서 내릴 때까지 조현아 씨에게 "죄송하다"고 했을까. 왜 그랬을까.(웃음) 

프레시안 : 승무원 교육은 시작부터 고개 숙이는 걸 가르친다고 하던데. 

박창진 : 그렇다. 아주 복종적인 것부터 가르친다. 모멸감을 당해도, 성추행을 당해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웃도록 가르친다. 

갓 들어온 신입 중에는 21살인 친구도 있다. 그런데 복종 외에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 노동권이 무엇인지, 인권이란 무엇인지 아무도 이야기해 주지 않는다. 기회가 되면, 노동자와 인간의 권리에 대해 알려주고 싶다. 또 항공업계뿐 아니라 감정노동 종사자와 함께 연대의 목소리를 내고 싶다. 

사회적 인식 또한 바뀌어야 한다. 최근 여행 정보 프로그램이 많은데, 어떤 프로그램에서도 '에티켓'을 말하지 않는다. 경제 논리에 따라, 적은 비용을 들여 혜택을 누리는 데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 나라에 가면 그 나라 문화를 따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여행 프로그램에서는 김치를 어떻게 싸가지고 가서 라면을 어떻게 끓여 먹는지를 알려준다. 


눈을 못 감는 사람, 그렇게 '투사'가 되었다

프레시안 : 대한항공 노조인 '대한항공직원연대' 지부장을 맡고 있다. 박창진,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박창진 : 솔직히 언론에서 이야기 하는 갑질이나 재벌, 노동권을 위한 투사가 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조양호 회장이, 군대조직과 같은 기업문화가 나를 투사로 만들었다. '땅콩 회항' 사건 이후 나 역시 같은 인간인데 왜 그들에 의해 존엄성과 품격을 훼손당하고 주체성까지 잃어야 하지? 혼돈이 왔다. 

노조 활동도 마찬가지다. 직원연대 집회에 처음 참석했을 때 관두고 싶은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조합원들이 노조 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부당발령을 받거나 인사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를 보면서 그들이 입은 상처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동료에 대한 안타까움이 커졌다. 내가 이미 겪어봤기 때문에. 그렇게 투사가 되었다. 

조양호 회장의 경영권 상실을 '땅콩 회항' 사건에서 시작된 '나비 효과'라고도 하지만, 사실은 본인이 자초한 일이다. 조 회장은 사건 직후 주총에서 "우리 현아가 무슨 잘못을 했나?"라고 말했다. 이런 태도가 5년 후 '사내이사 연임안' 부결이라는 불신임까지 온 것이다. 이번에도 못 고치면, 언제든 또 불신임을 받을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난 5년간 깨달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눈을 못 감게 됐다는 것이다. 과거 민주노조운동을 했던 선배들도 그렇지 않았을까? 자신이 제거되는 '사회적 죽음'을 겪으면서도 후배들은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것 아닐까? 또한 선배들처럼 나 역시 온갖 공격에도 생존할 수 있었던 것은 '연대의 힘' 때문이었다. 

책을 내고, 인터뷰를 하는 것 역시 누군가가 정말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때 나의 경험을 통해 해답을 찾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일종의 연대 활동인데, 앞으로도 이런 활동을 이어나가고 싶다. 그게 정치적인 활동이 됐든, 사회적인 활동이 됐든 힘닿는 데까지 열심히 할 생각이다. 

프레시안 : 비행에 임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 있나? 

박창진 : 한동안 돌아가신 아버지 사진을 셔츠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아버지처럼 정의롭게 살자'는 각오였다. 그동안의 삶이 정의로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바르지 않은 길은 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요즘은 특히 미움보다 사랑을 품으려고 애쓰고 있다. '땅콩 회항' 사건 이후 갈수록 사람을 미워하게 될까 봐, 참 힘들었다.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다 보면, 타인을 원망하고 미워하게 되지 않나. 그래서 사람을 미워하기보다는 사랑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