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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영변+스냅백, '굿 이너프 딜' 가능하다"

[프레시안 人스타] 이혜정 중앙대 교수

 

북한과 미국의 제2차 정상회담('하노이 회담')이 많은 이들의 예상과 달리 결렬된 지 한 달 만인 지난 3월 29일, 한국 문재인 대통령과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내달 11일 미국 워싱턴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노이 회담' 결렬 후 충격에 빠졌던 많은 이들이 다시 '희망'을 갖게 됐다. 

이혜정 중앙대학교 교수는 지난 3월 29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내달 있을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하노이 회담' 결렬 후 교착 상태인 북미 관계 돌파구부터 찾아야 한다"고 의의를 부여하면서도 "회담 결과에 따라 희망과 절망을 오가는" 단기적이고 즉자적인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든, 가지고 있지 않 북한과 공존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늘 북한의 정세를 관리해야 한다. 즉, 북한이나 미국이 어떤 행동을 취하든 한국은 '외통'일 수밖에 없다. (...) 한미 관계를 조정하는 것, 남북 관계를 관리하는 것, 그리고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한국 외교안보의 숙명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는 '한반도 평화 정착'과 관련해 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능동적인 대응을 모색해야 한다.  

기존의 미국 정치외교적 문법에서 벗어난 트럼프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대북 협상의 물꼬가 트였지만, 이런 트럼프의 정치적 상황은 '하노이 협상' 때 보여줬듯이 북미 관계의 불안 요소로도 존재한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선 2020년 대선 때 '북핵 협상'이 자신의 정치적 성과로 내세울 만한 요인으로 여겨져야 하고, 그런 점에서 다음 대선 때 북핵 문제가 미국의 국내 정치 이슈가 될 것인가가 매우 중요한 지점이라고 이 교수는 지적했다. 

이 교수는 또 보다 근본적으로 '평화'와 '동맹'의 문제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반도 평화 체제를 중장기적으로 본다면, 남과 북이 평화롭게 지내면서도(평화) 미국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동맹)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국내 정치뿐 아니라 미국 주류와도 '확약(assurance)'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이혜정 중앙대 교수. ⓒ프레시안(이명선)

 

'한반도 평화-비핵화-한미 동맹' 트릴레마를 깨야 한다 

프레시안 :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한과 미국은 '밀당(밀고 당기기)'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국 역시 충격에 빠졌는데, 마침 오늘(3월 29일) 한미 정상회담이 예고됐다. 일련의 상황을 어떻게 봐야할까? 

이혜정 : '하노이 회담'에 대한 희망과 기대가 과도했던 측면이 있다. 한 달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이에 대한 감가상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은 북한이 핵을 가지고 있든, 가지고 있지 않든 북한과 공존할 수밖에 없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 늘 북한의 정세를 관리해야 한다. 즉, 북한이나 미국이 어떤 행동을 취하든 한국은 '외통(외곬)'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회담 결과에 따라 희망과 절망을 오가는, 그게 '희망 고문'이든 '절망 고문'이든, 이제는 끝내야 한다.  

한미 관계를 조정하는 것, 남북 관계를 관리하는 것, 그리고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한국 외교안보의 숙명이다. 그런데 '이명박근혜' 보수 정권은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외교안보를 '미국 유일주의'로 가져갔다. 그 결과, 한국의 외교안보 인식은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으면, 북미 관계도 남북 관계도 진전은 없다'는 식으로 단순화됐다. 

여기에 노무현 정권 당시 '남남갈등'을 겪은 문재인 정부마저 '한반도 평화 체제'를 띄우면서 '비핵화'와 '동맹'을 강조하고 있다. 구갑우 북한대학원 교수의 말처럼, '한반도 평화-비핵화-한미 동맹'이라는 트릴레마(trillemma)에 걸려 있다.  

4월 10~11일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반도 문제를 다시 궤도 위에 올려놓기 위해서는 일련의 상황을 복기하고 이를 바탕으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보수든, 진보든 트릴레마에서 벗어나야 한다. 연계를 일정하게 끓어야 한다.  

프레시안 : 미국 역시 문제를 단순화시키고 있다. '비핵화'라는 커다란 목표 하나를 세워놓고, 북한에게 '비핵화할 거야? 말 거야?'라는 것만 묻고 있는 것 같다. 

이혜정 : 북한은 처음부터 '조건부 비핵화'라는 일관된 입장이었다. 그렇다면 한국이든 미국이든 조건에 맞는 상황 조치를 해줘야 하는데, 그에 대한 논의는 없이 '비핵화'만 강조되고 있다. 따라서 '김정은 위원장이 비핵화 의지가 있느냐?'라는 질문은 잘못된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부족했다는 것인데, '영변+알파'를 이야기하면서도 영변 핵시설을 특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면, 북한의 입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은 '스냅백(Snapback)'을 제안했지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이 반대했다는 것 아닌가. 

확실한 것은, 북한은 지난해 5월 '싱가포르 회담' 이후 제재와 협상은 병행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일관적으로 밝혔다. 당시 '조미(북미) 공동성명'을 북한식으로 읽으면, 새로운 조미 관계와 새로운 한반도 평화체제를 통해서 한반도 전체를 비핵화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북한은 세 가지가 순차적으로 또는 동시에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번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에 일괄 타결을 제시했다. 비건 국무부 특별정책대표가 '단계적/동시적 비핵화'를 강조한 지난 1월 스탠포드대 연설과 비교하면, 미국이 입장을 바꾼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득의 단초는 열려 있다고 본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에 대해서 구체적인 검증을 거쳐 확실하게 폐기하고, 미국은 그에 대한 대가로 대북 제재를 해제하는 한편 스냅백 조항을 합의사항에 넣으면 된다. 그러면 문재인 정부가 마련한 중재안, '굿 이너프 딜(Good Enough Deal, 충분히 괜찮은 거래)'도 가능하다.  

▲ 트럼프 대통령이 3월 28일(현지시간)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열린 정치 유세에서 연설하는 가운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선거 구호가 적힌 빨간색 모자를 쓴 지지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AP=연합


트럼프에게 북핵 문제는 '국내용'이다  

프레시안 : 미국 내 정치적 문제 역시 '하노이 회담' 결렬 요인 중 하나가 아닐까? 

이혜정 :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처한 '러시아 스캔들 수사(뮬러 특검)'과 같은 문제 외에도, 도널드 트럼프 개인이 가진 한계도 영향을 미쳤다. 트럼프는 권력 엘리트인 클린턴 부부와 달리, 유명인사에서 대통령이 된 '듣보잡(주변 인사)'에 불과하다. 비록 그가 미국 주류 전체, '이스태블리시먼트(Establishment, 기득권)'을 깨고 대통령으로 당선됐지만 동원 가능한 인적 자원에 있어서는 제한적이다.  

특히 외교안보에 있어서는 미국의 장점인 '다중 기관 조정(Multi-agency Coordination)'이 가능한 인적 자원이 필요한데, 지금 트럼프 행정부는 이런 코디네이션이 불가능하다. 그나마 남아있던 자원도 볼턴 보좌관이 들어가면서 와해됐다.  

그동안은 미국에 대한 기대, 미국 외교에 대한 신뢰가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대북 제재'만 하더라도 하루 만에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없던 일로 만들지 않나. 개인적으로는 트럼프 외교안보 실무진(볼턴, 폼페이오, 비건 등)의 발언에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 대해 '내가 딜(Deal)할 거야'라고 결심하면, 상황은 언제든 바뀐다.  

프레시안 : 북핵 문제 해결은 트럼프 대통령 의지에 달려 있다는 말인데, 북미 정상 간 대화를 통한 '톱다운(Top-down) 방식'이 유효한 이유다.  

이혜정 :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북핵 문제는 국내 정치용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감사를 받기 위한 게 아닌, 자신의 정치적·역사적 성취와 국내 정치에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가 우선이다. 따라서 2020년 대선에 도움이 된다면, 빅딜이든 스몰딜이든 미디움딜이든 문제 해결에 앞장설 것이다. 도움이 안 된다고 판단하면, 내버려 둘 것이고. 

현지시간으로 3월 28일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의 대형 유세전을 보면, 그의 대선 전략은 명확하다. 지난 대선에서 경합이 벌어진 플로리다주, 오하이오주, 미시간 주와 같은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의 표심을 공략하는 것이다.

'러시아 스캔들'에서 자유로워진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유세에서 '뮬러 특검'은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자들이 벌인 미국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판했다. 또 한국과 FTA를 재협상했고,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과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를 탈퇴했으며, 중국과 무역협상도 진행 중이라며 조만간 미시간주에 자동차 공장이 다시 들어올 것이라고 장담했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본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낙태' 이슈를 들고나왔다는 점이다. 2016년 대선 때와는 다른, 종교를 중심으로 한 사회문화적 보수를 공략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는 자신의 대선 구호인 '메이크 아메리카 그레이트 어게인(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로 마무리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북핵 문제가 트럼프 재선의 주요 이슈가 되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정권이었다면 북한과 전쟁을 벌였을 것이라고 호언하고 있지 않나. '대북 제재'로 일관한 지난 정권에서 북핵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는 문제 제기와 함께 '협상과 타협'이라는 대안이 선거 이슈로 부각되어야 한다.  

▲ '하노이 회담' 첫 날(2월 27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만면에 웃음을 띄며 악수했다. 하지만 다음 날, 두 정상은 빈 손으로 헤어졌다. ⓒAP=연합


프레시안 : 트럼프 정부가 다시 들어서든, 정권이 바뀌든, 북핵 문제가 미국 내 이슈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혜정 : 미국 주류를 대표하는 리차드 하스 외교협회(CFR) 회장은 최근 칼럼(3월 15일 자 CFR)에서 "북한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법을 택할 시점"이라면서 일괄 타결 방식인 "올 오어 낫씽(All-or-nothing)은 어떤 결과도 가져오지 않을 것이며, 미국의 외교적 지원이 시작되기도 전에 상황을 악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로 가기 : Picking Up the Pieces After Hanoi)  

그는 값비싼 전쟁(군사적 옵션)과 대북 추가 제재는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강요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더구나 북한에 더 많은 압력이 가해지더라도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 생존에 필요한 모든 일을 할 것"이라며 "북한이 자국의 무게로 무너질 것이라는 희망은 비현실적"이라고 꼬집었다.  

하스 회장은 또 "현상 유지가 해결책은 아니"라고 조언했다. 이어 "북한이 주요 미사일 시험장을 재건한다는 증거가 있"지만 이를 바탕으로 회담을 일시 중단하거나 추가 제재를 가한다면, "우리는 2년 전 상황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는 부당함과 불신이 섞여 있다"다고 경고했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모든 현실적인 정책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가 조만간 현실적인 전망이 아니라는 현실을 받아들이기 시작해야한다"며 미국이 북핵 문제에 단계적으로 접근할 것을 권했다.  

그는 북한이 핵실험과 핵무기 생산을 동결하고 비핵화를 선언한 뒤 국제기구의 검증을 받는다면, 그 대신에 70년 전쟁의 종식과 워싱턴-평양 간 연락사무소 개설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제재 조치와 외교 정상화는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올 것"이라며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를 재확인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 덜 야심찬 (단계적) 접근법조차 대단히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북핵 문제 해결 방법은 장기적 안정을 보장할 때 실행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뉴욕타임스> 데이빗 생어 기자 역시 비슷한 조언을 하고 있다. 북한 핵·미사일 실험과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주고받은 '쌍중단'에 핵물질 생산 중단을 더한, 실질적인 비핵화를 조건으로 대북 제재를 완전히 풀어주는 방법이다. 

미국, 한반도 평화를 감당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 : 그 정도 조건이면, 북한과 미국이 협상할 수 있다? 


이혜정 : 개인적으로는 이 정도도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미국 주류에서도 군사적 옵션과 대북 제재는 해결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보수언론은 미국의 군사적 옵션과 강력한 대북 제재를 주장하고 있지만, 미국 주류마저 '제재 만능론'에 회의적이다. 최근 <뉴욕타임스>는 기사에서 '대북 제재가 결국 '우리는 너희가 싫어'라는 정치적 의사 표현 말고 무엇이란 말인가'라고 비판했다. 

결국 해결 방법은 협상인데, 협상이란 타협하는 것이다. 타협은 또 상대방에 대한 양보를 전제로 하고 있다. 북한과 미국이 양보를 통한 타협을 하지 않고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다. 

또 다른 문제가 있는데, '미국이 과연 한반도의 평화를 감당할 수 있겠는가?'이다. 미국 주류도 70년 지속된 전쟁에 대해 종전선언을 하면, 유엔사가 해체되고, 한미동맹이 해체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만약 그렇게 되면, 한미동맹은 중국 견제용이거나 전(全) 지구적 평화유지군으로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  

'평화'와 '동맹'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인데, 이와 관련해 브루킹스연구소의 마이클 오 핸론 연구원은 지난 1월 '한미동맹을 보다 장기적으로 가져갈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바로 가기 : The Long-Term Basis for a U.S.-Korea Alliance)

프레시안 : '평화와 동맹이 같이 갈 수 있을까?'는 미국보다 한국이 더 고민해야 하는 문제 같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 상황에서는 말 꺼내기도 쉽지 않다. 

이혜정 : '정치적인 금기(禁忌)'나 다름없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 체제를 중장기적으로 본다면, 남과 북이 평화롭게 지내면서도(평화) 미국과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동맹)을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는 국내 정치뿐 아니라 미국 주류와도 '확약(assurance)'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프레시안 : 곧 워싱턴으로 향할 문재인 대통령에게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혜정 : 당장은 '하노이 회담' 결렬 후 교착 상태인 북미 관계 돌파구부터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