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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미국에도 트럼프發 북풍이 불고 있다"

[프레시안 人스타] 안병진 경희대 교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미국과 외교 갈등으로 고생하던 피델 카스트로가 1973년 "미국이 아프리카계 대통령을 선출하고, 세계가 남미계 교황을 선출하면 그때 협상하러 오라"고 농담을 했다고 한다. 놀랍게도 이 '농담'이 40년이 지나 현실이 됐다. 미국과 쿠바의 국교 정상화는 2015년 미국의 첫 아프리카계 대통령인 오바마 정부에서 이뤄졌다. 

2019년 한반도 상황을 이해하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상황을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는 문제의식은 '미국'에 대한 맥락적이고 역사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트럼프라는 '블랙 스완'의 등장으로 전개된 미국과 북한의 협상은 닉슨 정부 이래로 미국이 제3세계 국가들과 협상에서 활용해온 '광인 이론'의 관점에서 예측불가능성에 무게를 둘 수도 있지만, 오랫동안 미국 외교 정가를 지배해온 군산복합체와 매파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 정치 전문가인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이런 문제의식에 기반해 '쿠바 미사일 위기'를 통해 '2019년 한반도 평화를 위한 21가지 교훈'을 도출했다. 

안 교수는 지난 18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눈 앞으로 다가온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해 재선을 앞두고 성과를 내야 하는 트럼프의 이해와 이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김정은의 이해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예상보다 큰 진전을 이룰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이제까지 '피스 메이커' 역할을 훌륭하게 해온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는 한 발 더 앞선 고민과 준비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이 돌고 돌아 1999년 '페리 프로세스'로 돌아왔지만, 남한 정부는 '페리 프로세스' 이상의 장기적 로드맵을 준비해야 한다. 안 교수는 "북미 관계, 한반도 문제는 고차방정식"이라며 "모든 가정을 다 열어놓은 상태로 질문하고 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 안병진 경희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2019년 한반도를 이해하기 위해 1962년 쿠바를 보라

프레시안 : 책 <예정된 위기>(모던아카이브 펴냄)에서 앞으로 한반도에서 벌어질 일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쿠바 미사일 위기'를 복기해보자고 했다. 참 신선했다. 

안병진 : '쿠바 미사일 위기'는 워싱턴 정가에서 북한을 언급할 때 자주 등장한다. 또한 쿠바의 위기는 오늘날까지 느리게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1962년 미국과 소련 간 미사일 맞교환이라는 빅딜이 성사되고, 2015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미국과 쿠바 간 국교 정상화를 선언하면서 쿠바의 위기가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뒤집기(Anythig but Obama)'에 집중하면서 미국과 쿠바와의 관계는 다시 악화됐다. 

'쿠바의 미사일 위기'를 재조명하는 것은, 곧 한반도의 위기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작업이다. 

프레시안 : '쿠바 미사일 위기'는 미국과 소련의 체제 경쟁 하에 벌어진 일이다. 그러나 지금은 냉전시대가 아니다.

안병진 : 그렇다. 당시와 지금은 차원이 다르다. 당시 쿠바는 체스판 말에 불과했다. 피델이 있었지만,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과 니키타 후르쇼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 사이에 놓인 체스판 말이었다. 

북한은 쿠바와 또 다르다. 김일성 주석은 일본 제국주의 시절부터 중국과 소련 같은 강대국에게 엄청난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로 인해 강대국 간 균열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등거리 외교'를 전략으로 삼았다. 

김정은 국무위원장 역시 중국과 미국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등거리 외교'를 잘하고 있다. 북한의 위기는 자칫 한 발만 잘못 내디디면 벼랑 아래로 떨어지는, 김정은의 포석 하나하나가 사실은 목숨을 건 포석이다. 지금까지 행보를 보면, 김정은은 외교적 감각이 상당히 뛰어난 것 같다. 

▲ <예정된 위기>(안병진 지음, 모던아카이브 펴냄). 모던아카이브

프레시안 : 김정은을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는 것 같다. 

안병진 : 제3세계 전체주의 국가의 리더들을 잘 이해해야 한다. 라울과 김정은 모두 실용주의적 DNA를 가지고 있다. 형과 달리, 할아버지·아버지와 달리 국가의 전략 노선을 전면적으로 전환했다. 

미국과 쿠바 간 국교 정상화는 오바마가 아닌 라울이 주도권을 가지고 진행했다고 봐야 한다. 라울은 오바마 취임 직후인 2009년 1월 미국과 직접 대화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의 동력 역시 트럼프가 아닌 김정은이 만들었다. 김정은의 ICBM은 일부 보수주의자의 생각과 달리, 미국을 향한 구애 목적이었다. ICBM으로 위기를 최대한 끌어올려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고 시장을 개방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같은 측면에서 보면, 쿠바와 북한의 위기는 강대국이 아닌 제3세계 리더들에 의해 돌파구가 마련된 것이다. 라울과 김정은이 위기 타파를 주도한 셈이다. 다만, 라울과 김정은 모두 잔혹한 이미지와 온화한 미소가 공존하는 인물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쿠바와 북한의 결정적인 차이는 '문재인'이라고 하는 훌륭한 '피스 메이커(Peace Maker)'의 존재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한 공동의 위기인 한반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탁월한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트럼프 정권의 예측불가능성과 연속성

프레시안 : 국가와 국가 간의 위기라는 것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정보를 가지고 협상에 나서면서 그게 전부인 양 오해하고 왜곡하는, 그런 상황 아닐까? 그런 면에서 우리는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이면서도 북한과 미국을 단선적이고 몰역사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안병진 : 일반 시민뿐 아니라 지식인도 '미국'이라는 나라의 의사결정 구조에 환상을 가지고 있다. 체스를 하듯 치밀하고 전략적으로 계산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국의 의사결정이 꼭 합리적인 것만은 아니다. 오늘날 '트럼프의 시대'는 특히 더 불확실한 시대다. 

프레시안 : 2017년만 해도 한반도의 전쟁 위기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하지만 이듬해 문재인 정부의 노력과 여러 변수의 영향으로 한반도의 위기는 평화 모드로 바뀌었다. 2018년은 그래서 트럼프 정권의 예측불가능성이 두드러진 해이기도 하다. 

안병진 : 예측불가능성과 연속성의 측면으로 볼 수 있다. 

먼저 예측불가능한 측면에서 보면, 트럼프의 행보는 '광인 이론(Madman Theory)'에 가깝다. 협상 상대자에게 자신을 미치광이로 인식시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끄는 전략으로,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전 세계적인 핵전쟁 공포를 조성해 베트남 전쟁을 종결시키려고 했던 데서 유래했다. 그러나 '광인 이론'을 활용하는 데 있어 트럼프와 닉슨은 차이가 있다. 트럼프는 충동적이고 위험한 경향성을 가진 반면, 닉슨은 벼랑 끝 전술처럼 절제하며 하나의 전략으로 활용했다.

연속성이라는 측면으로 보면, 오바마조차 이란의 핵개발을 중지시키기 위해 사이버전을 벌였다. 북한을 상대로도 사이버전을 펼쳤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트럼프도 사이버전을 이어갔다. 하지만 북한의 사이버전 수준은 어마어마하다. 2014년 김정은 암살을 소재로 한 영화 <더 인터뷰>(에번 골드버그·세스 로건 공동 감독)를 제작한 '소니 피쳐스 해킹'에서도 봤듯이. 

그리고 오바마 정권의 오판이 있었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을 이렇게 빨리 완성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게다가 북한의 ICBM이 미국 본토를 겨냥하고 있다? 미국 정부 당국자들은 아마 '쿠바 미사일 위기'와 '9.11 테러'를 동시에 떠올렸을 것이다. 따라서 그 위기를 봉합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데, 결국 돌고 돌아 '페리 프로세스'로 가는 것이다. 영국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미국은 온갖 그릇된 결정 뒤에 올바른 결정에 도달한다"고 말했는데, 그릇된 생각을 했던 트럼프도 결국은 '페리 프로세스'라는 올바른 방안으로 회귀했다. 

('페리 프로세스'는 1999년 10월 클린턴 정권의 윌리엄 페리 대북조정관이 북한 비핵화에 대한 해결 방안을 적은 보고서다. 미국의 개입 정책, 한국의 햇볕 정책, 북한의 생존 전략을 절충했다. 그러나 2000년 클린턴에서 부시로, 민주당에서 공화당으로 여야가 교체되면서 폐기됐다. 편집자) 

프레시안 : 트럼프 정권에서 '한반도 비핵화'가 논의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한반도 전문가들은 트럼프보다 오바마에게 기대했던 측면이 있다. 

안병진 : 트럼프와 오바마,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 같지만 어떤 면에서는 '혁신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오바마는 초선 상원의원(일리노이주) 신분으로, 2007년 2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2008년 11월 미국의 44대 대통령이자 미국 최초의 유색인종 대통령이 됐다. 트럼프 역시 마찬가지다. 두 사람 모두 워싱턴 정가의 기존 문법과 고정 관념에 좌우되지 않았다. 

반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굉장히 준비된 대통령 후보였지만, 시대의 역행이기도 했다.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집권 전에는 리버럴 중에서도 혁신가였지만, 이후 보수 진영의 공격을 받으면서 스스로 기득권이 됐다. 기득권 입장에서 힐러리는 오바마에 대해 사사건건 불만이었다. 이란에 대해서도, 쿠바에 대해서도. 다만, 북한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이에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문재인 정부 통일외교안보특보)나 한반도 전문가들은 힐러리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 리버럴을 보면서 한반도 문제 해결에 대한 기대감이 아닌 절망감만 느꼈다. 다소 불확실하더라도 평형이 붕괴되면, 어떤 가능성이 열린다. 트럼프는 바로 그런 가능성이었고, 지금 상황을 보면 문정인 교수의 판단이 맞았다. 

남한, '페리 프로세스' 이상의 장기적 로드맵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미국의 리버럴도 그렇지만, 한국의 리버럴도 정말 북한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안병진 : 미국의 리버럴들이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관점에서 전향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대북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한반도의 위기가 평화로 전환된다면 미국은 미중 간 파워 게임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다. 결코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문재인 정부가 트럼프 정부와의 역지사지는 잘하고 있지만, 한반도 평화에 대한 국제사회와의 공감은 부족한 것 같다. '종전 선언' '평화 협정'과 같은 현실주의자로서의 조정도 중요하지만, 전(全) 지구적 인간 경험을 공유할 보편적 표현으로 현실을 재구성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만약 유엔총회에서 다시 연설하거나 미국 의회에서 연설을 하게 된다면, 1989년 '벨벳혁명'의 지도자로 체코 민주화를 이끈 바츨라프 하벨 전 체코 대통령의 연설을 참고해 한반도의 이슈이면서도 지구적 보편성이 담긴 아젠다를 공론화하길 바란다. 

프레시안 : 북한 인권 문제가 하나의 예가 될 것 같은데, 진보 입장에서 참 난감한 문제다. 

안병진 : 북한 인권 문제, 뒤로 미룰 수만은 없는 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신중하면서도 유연하게 점진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냉전시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도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서기장에게 비공개적이지만 지속적으로 인권 문제를 제기했다. 오바마도 쿠바와의 관계에서 같은 입장을 취했다. 

이 같은 문제의식은 두 가지 의미에서 중요하다. 첫째, 인권이라는 것은 국제 시민사회가 공감하는 보편적인 아젠다다. 둘째, 북미 간 국교 정상화 및 '평화 협정'이라고 하는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상황까지 나아가려면, 국제사회를 설득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초석을 다져야 한다. 아주 신중하게. 

한국의 진보 지식인들조차 북한 인권 문제를 금기시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역지사지의 관점에서 열린 태도를 보였으면 좋겠다. 보수 진영 일부에서는 북한 붕괴라는 목적을 위해 인권 문제를 악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보수 중에서도 진정성을 가지고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도 있다. 

프레시안 :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정상국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한국의 안내가 필요해 보인다.

안병진 : 케네디가 '엑스콤(EXCOMM)'이라고 하는 국가안전보장회의 집행위원회를 만들어 초당적인 합의를 이끌어냈듯 문재인 대통령도 다수의 합리적 보수가 참여하는 합의기구를 구성해 '페리 프로세스' 이상의 더 긴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김정은 방미'와 같은 엄청난 변화가 생겼을 때 이 합의기구를 통해 미국 의회와 시민사회를 설득하고, EU 등 국제사회의 공감을 끌어내야 한다. 


북미 정상회담, 상당한 진전이 예상된다

프레시안 : 2.27 북미 정상회담, 분위기는 좋아 보인다. 예측이 쉽지는 않겠지만, 어떻게 전망하나.

안병진 : 한반도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한계는 있겠지만, 전반적인 지형상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지금 트럼프나 김정은 둘 다 조금 더 대담하게 전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처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보수, 진보할 것 없이 '대북 제재를 완화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고 생각하고 있다. 국제정치 무대에서 상대방에게 약하게 보이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베두인 전설'을 바탕으로 한 미국의 편견이다. 그것도 아주 오만한. 그래서 트럼프라는 변수가 중요한데, 트럼프는 이런 고정관념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람이다. 

최근 트럼프나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있는 것을 보면, 현실의 문법을 조금 더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트럼프 입장에서는 2020년 대선에 내세울 게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짐작건대, 트럼프는 2.27 북미 정상회담에서는 워싱턴 정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행동할 것이다. 

김정은도 다소 위험하더라도 대담하게 행동할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인민들에게 경제적인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시점이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과 대외 선전매체 <메아리>가 지난 17일 김정은이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같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주도했다며 "이제는 미국이 화답해 나설 차례"라고 강조한 것 역시 내부 여론을 다지기 위한 것이다. 

프레시안 : 김정은의 ICBM으로 문이 열리고 트럼프의 예측불가능성 덕에 북미 간 대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한반도의 위기'는 미국의 보수 전략가나 군산복합체에게는 여전히 호재일 수 있다. 나중에라도 이 같은 힘이 작용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안병진 : 트럼프 시대도 그렇지만, 트럼프 이후에도 신중해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트럼프의 연임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트럼프의 집토끼 중에서는 일부는 벌써 상당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이 지난해 11월 치러진 중간선거 결과에 대해 '트럼프가 선방했다'고 분석했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트럼프는 중간선거에서 참패했다. 공화당은 트럼프 당선 후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 특정 후보자나 특정 정당에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에 주력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형을 만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화당은 하원을 민주당에 내줬다. 이건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국의 경우, 국내 정치 상황이 흔들릴 때마다 '북풍'이 분다. 그런데 지금 트럼프가 한반도 문제 해결을 절박하게 바라며, 베네수엘라를 향해 '군사 개입'을 언급하고, 미군을 시리아에서 철수시킨 것 등은 사실 미국판 '북풍'이라고 볼 수 있다. 

불확실성의 시대, 결정론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프레시안 : 문재인 대통령이 정말 잘하고 있지만, 미국과 북한 양측의 선한 의지에 기댄 채 중재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 입장에서는 또 다른 계획이 필요하지 않을까? 

안병진 : 북미 관계, 한반도 문제는 고차방정식이다. 모든 가정을 다 열어놓은 상태로 질문하고 답해야 한다. 특히 트럼프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트럼프는 좋게 말하면 유연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즉흥적인 사람이다. 10년 바라보고 가는 사람이 아니다. 

이렇게 불확실한 시대에 '미래'를 단선적으로 설정해놓고 움직이는 것은 '20세기 리더십'이다. 미군 철수에 대한 전제, 한반도 평화에 대한 전제, 북한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와 같은 기존의 전제에 대해 새롭게 질문해야 하는 시기다.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은 2016년 탄핵 정국 당시 디스토피아를 예견했다. '1000만 촛불'을 예상하지 못했다. 얼마나 협소한 생각이었나. 남북 정상에 이어 북미 정상이 만난다? 지금과 같은 한반도 상황을 누가 예측했겠는가. 그런데 지금보다 더 한 기적이 생길 수 있다. 

프레시안 : 책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21가지 교훈'을 제시했다. 21가지 중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게 있다면?

안병진 : 핵심 키워드 중 하나인 '베두인의 전설'이다. '베두인 전설'이 힘을 발휘할 때도 있지만, 지금과 같이 큰 축이 흔들리는 변화의 시대에는 '베두인 전설'과 같은 고정관념에 발목이 잡힐 수도 있다. 따라서 '베두인 전설'의 심리적 고비, 즉 고정관념을 뛰어넘어야 한다. 

다음으로는 '역지사지(易地思之)', 고차방정식처럼 복잡한 사안일지라도 '역지사지' 관점으로 문제를 바라보면 해법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미래 결정론적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바마 시대 이전만 해도 미국이 쿠바와 국교 정상화에 나설 것이라는 주장은 비웃음을 샀다. 피델은 1973년 "미국에서 흑인이 대통령이 되고 바티칸에 남미 출신 교황이 생기면 미국이 우리와 대화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이 말은 미국은 쿠바와 절대 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2015년 그의 동생 라울은 오바마와 국교 정상화를 선언하지 않았나. 

"하지만 이 모든 교훈보다 더 중요한 건 결국 리더와 대중이 미래 세대를 위해 정치적 의지를 발휘하는 것이다. (중략) 케네디는 기념비적인 아메리칸 대학교 연설에서 미래 지구행성에 살아갈 세대를 위한 현재 세대의 책임을 진정성 있게 강조했다. (중략) 결국 모든 것은 정치적 의지로 귀결된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만들어내는 것은 정치적 용기와 미래에 대한 책임의식이다."(<예정된 위기> 32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