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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노무현

노무현 바람의 진원지 ‘노사모’

<르포>회원 1만9천여명인 최초의 정치인 팬클럽(2002.3.25)


"대전경선 때 노사모 회원 2백70여명이 R호텔에서 묵었다." 
민주당 이인제 후보 측이 '노무현 후보는 서민후보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지난 21일 폭로한 내용이다. 

이에 대해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장 명계남)측은 22일 기자회견을 열고"명계남 회장 등 25명의 회원만 대전경선 하루 전인 16일 Y여관에서 숙박했다"고 반박했다. 노사모 측은 숙박 당일 대전시 Y 여관의 방 6개를 빌려 묵었던 회원명부와 30만원을 지불한 사실을 증빙하는 영수증을 공개했다. 

민주당 경선이 이인제-노무현 양강 구도로 굳어지면서 두 후보간의 치열한 공방전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이인제 후보 측은 경선 초부터 불기 시작한 '노무현 태풍'으로 수세에 몰리자 노 후보의 정책노선, 자질 등을 문제 삼으며 적극적인 공세를 펴고 있다. 

이 후보 측이 노무현 후보에 대한 공방에 노사모를 끌어들인 것은 이들이 '노풍'의 주요한 근거지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본격화되면서 노사모는 인터넷상의 팬클럽을 넘어서 실질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노무현 태풍'과 함께 화제의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는 노사모, 그 실체에 다가가 보자. 

***회원 1만9천여명인 최초의 자발적인 정치인 팬클럽**

지난 21일 기자가 서울 여의도 정원빌딩에 위치한 노사모 사무실을 찾은 오후 7시경, 사무실은 4명의 상근직원과 10여명의 자원봉사자들로 선거캠프를 방불케 했다. 노사모 홈페이지 관리자인 조슬기씨는 "매일 10-15명의 회원들이 사무실을 찾아 온다"고 말했다. 

노사모(www.nosamo.net)는 지난 2000년 4.13 총선에서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며 부산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노무현 후보의 낙선이 출범의 계기가 됐다. 노 후보의 낙선을 안타까워한 많은 네티즌들이 그의 홈페이지에 격려의 글을 올렸고, 이러던 중 이정기(35. 회사원)씨가 팬클럽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했다. 

이 제안에 따라 노사모는 노무현 후보 홈페이지(www.knowhow.or.kr)에 게시판을 만들어 2000년 6월 6일 공식출범했다. 
출범 당시 6백여명이던 회원수는 3월 25일 현재 1만9천여명으로 늘었다. 지난 16일 민주당 광주경선 이후 하루평균 8백-1천명이 신규회원으로 가입하고 있다. 

명계남 노사모 회장(50. 영화배우)은 "노사모는 지역대결구도 등 기존 정치에 혐오감을 느낀 사람들이 모인 자발적인 조직"이라며 "이런 모임은 네티즌들이 인터넷을 통해 직접 현실정치에 참여하면서 이를 변화시켜 나가려는 노력으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명 회장은 개인적인 가입동기에 대해 "지난 4.13 총선 직후 노무현 후보 홈페이지를 통해 가입하게 됐다"며 "노무현 후보와는 이전에 전혀 친분이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노무현은 원칙과 상식에 입각해서 신념을 지켜온 드문 정치인"이라며 "우리나라의 망국적 지역감정을 타파하려고 혼자 외롭게 싸워온 점 때문에 지지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노사모는 국민경선과정에서 '국민경선대책위원회'(상임위원장 김진향(34. 대학강사). 이하 국대위)를 꾸리는 등 조직적인 움직임으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 16일 광주경선에는 전국 각지에서 3백여명의 노사모 회원이 참가하기도 했다. 

지난 1월 꾸려진 국대위의 가장 중요한 사업은 국민선거인단 모집. 광주지역의 한 노사모 회원은 혼자서 3천여명의 국민선거인단을 모집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국대위 박시영 공동위원장(34. 무역업)은 "30만명의 국민선거인단을 모집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선거인단들에게 왜 노무현 후보를 찍어야 하는지 설득하는 편지를 보내는 사업도 하고 있다"면서 "광주지역 당원, 대의원들이 이 편지를 보고 마음을 많이 바꿨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20ㆍ30대 직장인이 다수**

노사모 회원은 초등학생부터 70대 노인까지 다양하지만 20-30대가 전체의 50%를 차지한다. 직업별로는 일반 사무직 종사자가 2천여명 정도로 가장 많고 의사, 대학교수 등 전문직 종사자도 1천여명에 이른다. 
명계남씨가 회장을, 영화배우 문성근씨가 상임고문을, 1대 회장인 김영부(41. 학원경영)씨가 고문을 맡고 있고 영화배우 권해효, 영화감독 이창동, 정동철 전주 우석대 교수, 이기명 한국방송작가협회 이사 등이 회원으로 활동중이다. 

노사모는 광주/전남, 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 등 21개 지역과 미국, 캐나다, 일본, 중국, 호주 등 해외 지역 조직으로 구분된다. 지역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노사모의 중요한 특징이며 서울 지역의 경우 구별, 동별 모임도 조직되어 있다. 서울경기 지역의 회원수가 2천여명 정도로 가장 많고 부산이 1천3백여명, 광주전남이 1천5백여명, 울산경남이 7백여명 정도다.

중요 의사결정은 3달에 한번씩 각 지역 대표들이 회의를 갖고 결정하며 이들은 부정기적으로 온라인 회의를 갖기도 한다. 매년 있는 회장 선출 등 전체 회원의 의사가 반영되어야 하는 일은 전자투표를 통해 결정한다. 

"운영경비는 전적으로 회원들의 회비를 통해 조달된다"고 노사모 측은 밝혔다. 원하는 회원만 회비를 납부하며 정기적으로 납부하는 '십시일반' 회비와 부정기적으로 납부하는 '낮은 울타리' 회비가 있다. 

정연승 사무처장은 "노무현 후보 측에서 받는 돈은 전혀 없다"며 "중앙 사무실 유지비(75만원), 2명의 유급상근자 급여(1백만원), 무급 상근자 2명의 교통비(50만원) 등 경상비 지출을 빼면 크게 돈 드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노사모의 수입과 지출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된다. 지난 1월달에는 회비수입과 물품판매수입을 합쳐 총 5백8만5천원의 수입 중 2백38만원을 지출했다. 

***온라인 선거운동의 신천지 개척**

노사모는 온라인인 인터넷이 근거지이며 주요활동 무대이다. 때문에 '민주산악회' 등 기존 정치인들의 오프라인 지지조직에 비해 큰 파급력과 빠른 전파력을 갖고 있다. 자발적인 조직이며 중앙에서 통제를 하지 않으며 어느정도 익명성이 보장되는 인터넷에 기반하고 있다는 노사모의 특징은 커다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기도 하다. 

김중권 고문은 지난 21일 "한화갑 고문의 사퇴(19일) 이후 노무현 후보 측 지지자로 보이는 네티즌들이 '영남후보 단일화 하라'며 김 후보의 사퇴를 촉구하는 내용의 글을 자유게시판에 올리고 있다"면서 "온라인 테러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노사모 홈페이지 관리자인 조슬기씨는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했다. 조씨는 "가끔 다른 국회의원들도 비난성 글에 대해 노사모 회원이 올렸다며 IP 주소를 조회해 달라는 경우가 많았지만 조회결과 노사모 회원으로 밝혀진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명계남 회장은 "솔직히 이런 부작용을 막을 방법은 없다"고 인정했다. 명 회장은 "누구나 쉽게 가입할 수 있는 조직이므로 회원이나 회원을 가장한 사람들이 물의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면서 "그러나 충분히 자정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노사모를 이용하려는 지방선거 출마자도 생겨**

최근 노무현 바람에 큰 위압감을 느끼고 있는 이인제 후보측은 노사모를 자신이 주장하는 '음모론'의 한 근거로 제시하고 있기도 하다. 
이 후보의 한 측근은 지난 23일 노사모를 지칭하며 "아직 자원봉사의 개념이 정착되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1만5천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조직이 움직일 때는 분명히 배후가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에 대해 노사모측은 당연히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강력반박하고 있다. '돈과 조직'으로 대규모 조직을 움직여온 구시대 정치인의 시대착오적 시각에서 기인하는 음모론이라는 반박이다.

그러나 이런 음모론과는 다른 차원에서 부작용도 우려되고 있다. 한 예로 최근 지방선거를 앞두고 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노사모에 가입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노무현 바람에 편승해 반사이익을 보려는 일종의 약삭빠른 '줄서기'인 셈이다.

국대위 공동위원장인 박시영씨는 "회원이 급증하면서 노사모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다"며 "징계 등 자체 내규를 좀더 엄격하게 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노사모의 영향으로 민주당 김근태 전 고문의 'GT(김근태라는 이름의 이니셜) 클럽 희망', 정동영 후보의 '정동영과 함께 하는 사람들의 모임(정사모)' 등 정치인 팬클럽이 생겨 활동 중이다. 

노사모를 비롯한 정치인 팬클럽은 국민참여경선제라는 선거제도와 함께 새로운 '풀뿌리 참여 민주주의'의 한 모델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정치인 팬클럽 사이트에 상대 후보에 대한 근거없는 비방이 난무하는 '진흙탕' 선거를 가중시시키는 부작용도 발생하고 있다. 

노사모가 이러한 부작용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고 인터넷을 매개로 한 자발적인 정치참여의 모델로 자리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