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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노무현

TV 속의 주자들 <4>-노무현

“조선이 언제까지 1등이겠나”(2002.1.25)



“현재 조선일보가 1등 신문인 것은 맞다. 그러나 왕년의 좋았던 시절에 쌓아올린 1등 신문이라는 자리가 계속 유지된다는 보장은 없다. 난 조선일보가 계속 1위를 누리는 것이 마땅치 않다.”

노무현 민주당 상임고문은 지난 24일 MBC 대선 예비주자 토론프로 ‘선택 2002, 예비후보에게 듣는다’에 4번째 주자로 출연해 수 많은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선일보에 대한 불만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이날은 패널들이 오히려 신중했다. “특정언론과 인터뷰도 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만약 그 신문 문화부에서 비정치적인 주제로 인터뷰를 요청한다고 해도 거절하겠냐”는 식으로 조선일보를 구체적으로 지칭하지 않고, 에둘러서 질문한 것이다. 

그러나 노 고문은 질문을 받자마자 “특정 신문은 조선일보를 말한다”며 ‘조선일보와 전쟁 중’임을 본인이 직접 밝혔다.

그는 “조선일보 문화부에서 나한테 인터뷰를 요청할 리 없고 정치 뉴스를 생산하는 정치인이 인터뷰를 거절함으로써 조선일보의 불공정한 보도 행태를 국민들에게 알리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노 고문은 조선일보 문제만이 아니라 패널들의 모든 질문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솔직하게 대답해 눈길을 끌었다. 노무현 캠프의 유종필 언론특보는 “전략적으로 솔직하게 답한 것이 아니라 평소 노 고문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 것”이라며 “솔직한 태도가 웃음도 자아내고 호감을 샀다는 것이 주위 사람들의 평가”라고 말했다.

***“이인제를 밀어야 하나...”**

이날 노 고문의 솔직함이 또 한번 두드러진 대목은 이인제 고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경선 결과에는 승복하겠지만 이인제 고문을 밀어야 할지는 고민 중”이라며 이 고문에 대한 개인감정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경선결과에 승복하겠다. 이미 경선에서 한번 불복했던 분과 게임을 하는 것이 억울하고 승복할 마음이 나기 어렵지만 악순환을 막기 위해 승복하겠다.

그러나 경선에서 패배하면 이인제 고문을 위해 뛰어야 하는데 고민이다. 지난 10년간 부산에서 DJ 깃발로 10년간 뛰면서 구박도 많이 받았지만 정통성은 있었다. 하지만 이인제 깃발로 뛴다고 생각하면 막막하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심각한 경선후유증을 예고하는 대목이었다.

***"재산 아내에게 압수당해"**

노 고문은 경선자금 마련 방법에 대해 “원외 의원이지만 지구당 위원장(부산 북구 강서을)이므로 지난해 지구당 후원회를 통해 3억원을 모금했다”며 “지구당에 많이 써야 하지만 지구당에는 적게 쓰고 경선자금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왜 개인 재산이 대부분 부인 명의로 되어 있냐”는 질문에 “정치를 하면서 개인 재산이 자꾸 줄어드니까 아내가 압수했다”고 답해 촬영장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다.

노 고문은 경선과 본선과정의 정치자금을 시민 옴부즈맨에게 공개할 용의를 묻는 질문에 “모든 후보에게 공정하게 적용되는 룰(rule)이 만들어 진다면 받아들이겠다”고 말했다.

노 고문은 이밖에 언론사 세무조사, 의약분업, 국가보안법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소신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국가보안법과 호주제는 폐지돼야 하며 의약분업은 옳은 정책이지만 시행과정에서 준비가 부족했다면서 제도 개선을 통해 3-5년 내에 진통이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3당합당 전 구도 복원하겠다”**

노 고문은 민주개혁세력 중심의 정계개편론과 관련, “그것이 역사적 흐름이란 믿음이 있고 실제로 약간의 기미도 있다”며 “이질적인 사람들이 묶여 있는 한나라당의 결속력은 지역주의와 '반(反) DJ'인데 내가 후보가 되면 민주당을 호남당이라고 말하기 어렵기 때문에 90년 3당 합당 이전의 정치구도가 복원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노 고문은 내각제 개헌에 대해 “중임제와 내각제 모두 일리가 있지만 권력교체기에 자신들의 정치적 유.불리에 의해 개헌론을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는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다음 대통령 취임 1-2년 안에 개헌한다는 것은 현실성과 책임성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구체적인 경제 정책 제시 못해**

노 고문은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대통령’을 기치로 내세웠다. 그러나 그는 빈부격차, 고용불안, 주택난 등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한 원칙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날 참석한 한 패널은 “경제 전반에 대한 식견과 비전이 부족하다”고 평가했다.

조세 형평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에 대한 질문도 “조세정책은 이해관계자들의 세력 균형의 문제이고 어떤 정치세력이 집권해 조세정책을 주도하는가가 핵심”이라는 원칙만 밝혔을 뿐 자영업자 소득 파악 강화 등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TV 토론 막전 막후**

노 고문은 오전 11시경 촬영장소인 한국여성개발원에 도착했다. 그는 후보 대기실에서 MBC 관계자들을 만나 “정치인들은 다 과오가 있는데 토론과정에서 경고를 받을 정도의 과오가 있는 사람과 완전히 퇴장을 당할 만큼의 과오가 있는 사람이 구분되지 않는다”며 TV 토론 진행 방식에 대해 문제제기 했다.

한국여성개발원 측에서 녹차와 떡 등을 대접하자 노 고문은 “대통령이 되면 여성개발원에 떡 값을 톡톡히 치루겠다”는 농담에 “정치인 중엔 의리 없는 사람들이 많아 잊어버릴지 모르지만 난 잊지 않는다”는 뼈 있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후보 대기실에서 보좌진들과 예상질문과 답변을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방송 시작 10분 전에 촬영장에 도착해 패널, 방청객들과 인사를 나눴다.

노고문은 TV 토론이 끝나자마자 다음 일정 때문에 바로 촬영장을 떠났다. 그는 오늘 토론회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냐는 질문에 “불안하다”며 다소 아쉬움을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