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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프덕프덕] "경솔했다. 강용석은 그들처럼 될 수 없다"

서울시 마포을 주민 입장에서 이 지역 자랑을 좀 할께요. 마포구 성산동에는 '성미산 마을'이 있어요. 이곳은 서울에서 찾아보기 힘든 '풀뿌리 공동체'를 일궈낸 마을이랍니다. 공동육아로 시작된 공동체가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대안학교인 성미산 학교를 만들었고, 유기농 반찬가게 등 생활협동조합으로 확장됐고, 마을 사람들의 소통 수단인 라디오 방송국 <마포 FM>까지 개국했었죠. 최근 성미산 일부를 소유하고 있는 홍익대에서 산을 깎아 학교를 짓겠다고 해 이 마을에 위기가 찾아왔지만, 지난 2003년에도 힘겨운 투쟁을 통해 성미산을 지켜온 주민들의 저력을 믿습니다. 만에 하나 성미산이 훼손된다 하더라도 주민들이 만들고 지켜온 '풀뿌리 공동체'마저 파괴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또 그 옆 동네인 망원동에는 '민중의 집'이 있어요. 지역 주민들을 위한 조금 큰 '사랑방'이죠. 이 집은 각종 문화 행사를 열 뿐 아니라 지역 내 저소득층의 생계비 지원 실태 조사, 노동 조건 실태 조사 등 지역 현안에 관심을 갖고 개입하기도 한답니다.

마포에 이런 '도시 공동체'가 생기게 된 건 자발적인 일이었습니다.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둘 씩 모여들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게 됐죠.

왜 이 얘기를 갑자기 꺼냈냐구요? 이 지역 국회의원이 한나라당 강용석 의원이거든요. 그래요, 최근 성희롱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바로 그 의원이죠.

제가 그랬죠? 강 의원의 성희롱 사태가 알려진 바로 그날 한나라당이 신속하게 제명 결정을 내렸지만, 결코 강 의원의 '정치생명'이 끝났다고 속단하면 안 된다구요. 성희롱으로 정치생명이 절단난 정치인은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다는 게 제 판단의 근거였습니다. 이번에도 불길한 예언은 딱 들어맞더라구요.

게다가 강 의원은 고맙게도(?) 제 조언을 그대로 따르고 있네요. '수습 딱지 갓 뗀' 여기자에게 된통 당한 뒤 여기자를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 줄 알았는데, 역시 강 의원은 평소 "기자가 아나운서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나 봐요. '아나운서' 운운하는 성희롱 발언을 무마하기 위한 수사가 아니었어요. 전 그 생각에 동의하진 않지만요. 어쨌든 제가 한나라당 사무총장 출신인 최모 의원과 관선에 민선까지 합치면 5번째 지사를 하고 있는 우모 도지사가 대표적인 성희롱 사태를 정면 돌파한 정치인이라고 얘기했었잖아요. 강 의원께서 나름 두 분 사례를 열심히 연구하신 거 같네요. 두 정치인의 대응 방식을 적절히 활용하는 걸 보니까요.

강 의원은 한나라당에서 제명 결정이 난 뒤 한동안 휴대폰을 꺼놓고 잠적했다죠. 최모 의원을 벤치마킹한 거네요. 그리고 중앙일보 기자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더라구요. 이건 우모 지사를 따라한 거네요. 그러다 1일 언론중재위원회에서 반론 보도 결정이 나자 '옳다구나' 싶어 보도자료를 뿌리셨나봐요. 근데 어쩌죠, 여기서부터 강 의원의 '삑사리'가 시작된 거 같아요.

▲ 강용석 의원 ⓒ프레시안(자료사진)
강 의원은 이 보도자료에서 "(성희롱 보도와 관련해)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며 본인의 결백을 주장했습니다. "<중앙일보>는 아나운서 발언과 관련해 취재기자가 해당 학생에게 직접 확인하지 않고 취재한 것을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앙일보>는 3일 기사를 통해 강 의원의 주장에 대해 반박했습니다. "본지는 강 의원의 성희롱 발언을 확인하기 위해 당시 모임에 참석했던 학생들을 상대로 취재를 했고, 철저한 확인 작업을 거쳐 기사화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강용석 의원, 거듭된 거짓말이 더 문제다"라는 제목으로 사설까지 썼네요. 이 사설에서 <중앙일보>는 "강용석 의원의 언행이 막장으로 치닫고 있어 그를 국민의 대표로 두고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지경"이라며 "어린 여대생을 상대로 성희롱을 한 것도 모자라 거짓말을 거듭하더니 이제 언론중재위의 결정문까지 조작해 언론사와 취재기자의 명예를 더럽히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 정도까지 가면 최모 의원과 우모 지사의 전례에서 한발 더 나간 거 같네요. 제가 그랬잖아요, 따라만 하라고!! 이렇게까지 막 나가면 어떡하라구요.

두문불출하면서 소송과 보도자료 등을 '배후조정'하고 있는 강 의원의 계산을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재보선을 앞두고 터져 나온 성희롱 파문이라 한나라당이 발 빠르게 제명 결정을 내렸지만, 국회 차원에서 강 의원에 대한 징계 결정이 신속하게 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가재는 게편'이라고 의원님들께선 항상 동료 의원들의 징계엔 느긋하더라구요. 강 의원 징계안 처리를 위해 2일 소집된 국회 윤리위원회도 한편의 코미디였죠. 오후 2시에 시작하기로 한 회의가 오후 4시 10분이 돼서야 겨우 시작됐습니다. 겨우겨우 성원이 채워져 회의를 시작했는데 '회의 내용을 공개하면 소신 발언을 못 한다'며 일부 한나라당 의원이 퇴장하면서 회의가 파토 났었습니다. 그 의원님의 평소 소신이 무엇인지 심히 궁금하더라구요. 뭐, 의원님들도 사람인지라 손에 피 묻히기 싫은 걸 이해 못 할 바는 아닙니다. 하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 의원님들께서 국민의 대표를 자처하시려면 누구보다 품행이 방정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국회 차원에서 의원직 제명이라는 중징계 결정이 내려진 건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단 한명이라고 합니다. 그것도 박정희 정권 말인 1979년에 있었다고 하니 강용석 의원이 야당에서 주장하는 '의원직 박탈' 정도의 징계를 받을 리는 만무합니다. 기껏해야 한나라당에서 제명당하는 정도에서 그칠 것으로 예상됩니다. 아, 제 말을 믿으세요. 이제까지 제 말대로 됐잖아요? 그러면 이제 18대 국회에는 '묻지마 무소속'이 된 두 명의 의원님이 생기게 되네요. 성희롱 파문으로 무소속이 된 최모 의원과 강 의원께서 나란히 국회 본회의장에 있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참 '거시기'하네요.

그런데 어쩌죠? 강 의원 입장에서 제 예상대로 되면 안 되는 일이 딱 하나 있네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강 의원은 최모 의원이나 우모 지사처럼 '성희롱 파문에서 불구하고' 다시 당선되는 일은 없을 거 같아요. 강 의원 지역구의 특수성을 생각해봐도 그렇구요, 당선된 뒤 2년 동안 강 의원이 한 일이라고는 성희롱 말고 뚜렷하게 떠오르는 게 없다는 점도 불길한 예언의 근거입니다. 또 서른 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의 강 의원을 뽑은 유권자들의 심리는 한나라당에 젊은 의원이 하나라도 더 들어가면 뭐라도 나아질까 하는 기대감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기대로 뽑아줬더니 노친네들보다 더 망발을 쏟아 놓았으니…. 그래도 제 말이 틀린 건 아니네요. 강 의원의 정치생명이 '당장' 끝나는 건 아니니까요. '2년'이라는 시한부 생명일지라도 유지하는 게 더 나은 선택일지는 강 의원만이 알겠지요.

딱 하나 부탁하고 싶은 건 성희롱 파문을 극복한 최모 의원만큼만 '쿨'했으면 하는 거랍니다. 최모 의원은 자기가 성추행한 여성이 '음식점 주인'인지 '여기자'인지 헷갈려서 그렇지 자신의 '오른(?) 손이 한 일'을 며칠 지나 안 했다고 번복하지는 않았답니다. 어쩌면 거기에 강 의원과 결정적 차이가 있는지 모릅니다. 이거야말로 연륜이고 내공의 차이가 아닐까 싶네요.

(어이없어 실소만 나오는 일들을 진지하게 받아쳐야 할 때 우리는 홍길동이 됩니다. 웃긴 걸 웃기다 말하지 못하고 '개념 없음'에 '즐'이라고 외치지 못하는 시대, '프덕프덕'은 <프레시안> 기자들이 쓰는 '풍자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