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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프덕프덕] 연희동 빨간바지를 아십니까? (2011.1.16)

혹시 '연희동 빨간 바지'를 아십니까? 한국의 부동산 불패신화를 만들었던 한 주축인 '복부인'들의 대명사가 바로 그녀였습니다. 그녀는 1969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17평의 집을 마련하면서 본격적으로 투기에 뛰어들었고, 1970년대 후반부터 불붙기 시작한 서울 강남의 투기현장을 '빨간 바지'를 입고 누볐다고 합디다. 이런 그녀의 열성적인 '내조'(?) 덕분인지 그녀의 가족은 '파란기와집'에서 7년을 살았고, 그 집에서 나온 뒤 남편은 '큰집'에서도 잠시 살았다고 하죠.

오는 17일과 18일 각각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와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쏟아져 나오는 두 장관 후보자 부인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보면서 '연희동 빨간 바지', 그녀가 생각났습니다.

"뛰는 공무원 위에 나는 복부인 있다." 부동산 투기로 골머리를 썩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복부인'을 포함한 투기세력은 정부 대책의 빈구멍을 찾아냈습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이것입니다. 투기가 본업인 이들이 정부 관료의 머리 꼭대기에 앉아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발생한 이면에는 또 하나의 숨겨진 비밀이 있었습니다. 바로 투기세력과 공무원이 '특수관계'인 경우가 많다는 점입니다.

▲ 정병국 문화부 장관 후보자(왼쪽)와 최중경 지경부 장관 후보자. ⓒ뉴시스
'연희동 빨간 바지'처럼 고위 공직자의 부인이 그런 한 부류입니다. '베갯머리 송사'를 통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부동산을 사고 팔아 엄청난 시세차익을 얻는 이들의 존재는 현재 한국의 부유층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보여주기도 합니다. 부인들의 이런 부동산 투기는 '내조'로 미화되면서, 투기를 잘하면 '내조'를 잘 하는 부인으로 주위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습니다.

2010년 4월 현재 재산을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하는 고위공직자 708명 중 절반에 가까운 48.87%(346명)이 서울 강남에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내일신문> 보도). 서울 전체 인구의 20%가 강남에 사는 것과 비교할 때 고위공직자들이 얼마나 강남을 선호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부인들의 '내조' 얘기로 돌아가서, 이런 관점에서 따지면 최중경 지경부 장관 후보자의 부인의 '살림 솜씨'는 정말 놀라울 정도입니다. 평생을 경제 관료로 살아온 최 후보자의 재산은 29억2820만 원으로 30억 원에 가깝습니다. 공무원이 안정적이기는 하지만 고액의 연봉을 받는 자리는 아니라는 점에서 참 '열심히 살았구나'라고 어렴풋이 짐작할 따름입니다.

최 후보자의 재산 목록 중에는 부동산이 유난히 많습니다. 그는 본인 명의로 서울 청담동 아파트(11억400만 원)와 배우자 명의의 대전 유성구 단독주택(4억8500만 원), 서울 역삼동 오피스텔(1억9083만 원)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최 후보자 부인이 보유한 부동산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경기 시흥의 대지(2억2443만 원), 대전 유성구의 논(1억2962만 원), 충북 청원의 임야(149만여 원) 등 땅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땅을 사랑하다 보니" 당연히 투기 의혹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최 후보자 부인은 지난 1998년 부친과 함께 그린벨트 내에 위치해 있던 대전 유성구 복룡동의 밭 850㎡를 샀는데, 이중 최 후보자 부인이 소유한 밭이 대전시 택지개발사업에 포함돼 매입돼 15배의 시세차익을 남겼다"고 투기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또 같은 당 노영민 의원은 최 후보자 부인이 언니와 함께 지난 1988년 9월 충북 청원군의 임야 1만 6562㎡를 매입했는데 4년 뒤 이 땅이 공단 조성 사업에 수용돼 최소 6배의 시세차익을 남긴 것으로 추정된다"고 의혹을 제기됐습니다.

최 후보자의 부인은 또 자신이 보유한 강남 오피스텔 면적을 고의로 축소 신고해 7년 간 500만 원을 탈세했다, 국민연금 보험료 39만9000원을 미납했다는 의혹 등도 제기됐습니다. 최 후보자 본인도 아파트 재산세 226만 원을 채납한 일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납세의 의무에는 불철저했던 최 후보자와 부인이 세금을 통해 지원되는 각종 혜택은 꼼꼼히 챙겼더군요. 최 후보자가 필리핀 대사로 있던 2008년 10월부터 2010년 7월까지 이들 부부는 초등학생 아들을 학비가 엄청 비싼 국제학교에 보냈습니다. 당시 아들의 학비로 총 2700만 원(2만4237달러)을 지원 받았고, 이는 외교부 규정에 따라 국비에서 지원됐습니다. 법이나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학비가 6분의 1에 불과한 한국학교는 외면했습니다. 외교부 고위관료들의 이같은 행태는 얼마 전 '똥돼지' 논란이 일면서 부적절한 특혜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었습니다. 게다가 최 후보자가 2010년 4월8일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부임함에 따라 사전에 지원받았던 4000달러의 학비는 다시 반납해야 하는데, 이 역시 슬그머니 챙겼습니다. 아마도 최 후보자의 부인은 큰 돈 벌면서 작은 돈까지 아껴 30억 원에 가까운 재산을 만든 일등공신일 것입니다.

정병국 후보자의 경우도 투기 의혹의 핵심에 서 있는 것은 본인 뿐 아니라 부인입니다.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정병국 후보자의 부인이 개발 이익을 노리고 공유자들과 함께 임야를 쪼개서 취득했다고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정 후보자의 부인은 지난 1997년 공유자 22명과 함께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내리 353-1번지(임야 14760㎡)와 354번지(임야 5200㎡) 임야를 취득했고 45분의 2에 해당하는 이 지분을 현재까지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 땅의 땅값은 취득 당시에 비해 4배 상승했습니다. 땅을 취득한 경위 등을 보면 분명 '기획부동산' 의혹이 드는데, 문제는 수익률입니다. 13년 동안 4배 상승했다면, 물가상승률을 감안하건데 그다지 성공한 재테크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정 후보자와 관련해 정 후보자가 소유한 경기도 연평군 소재 임야 가운데 800㎡가 양평군이 조성한 농어촌 도로로 편입돼 매입가보다 8배 높은 7234만 원의 보상을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땅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정 후보자와 부인은 실제로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도 농사를 짓는다고 허위로 신고했다는 의혹도 제기됐습니다.

정동기 감사원장 후보자가 전관예우 등 도덕성 문제로 낙마한 뒤 남은 두 후보자 역시 국민들의 기대수준에는 못 미치는 게 아닌가 우려됩니다. 두 후보자의 부인들에게 각종 투기의혹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병국 후보자 부인은 최 후보자 부인 덕분에 '면죄부'를 받을 것도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제기된 의혹이 사실이라면 두 명의 부인 모두 든든한 남편을 '백'으로 부동산 투기를 했는데, 한명은 5년 안팎으로 적게는 6배에서 많게는 15배로 튀기고, 다른 한명은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저조한 수익률을 기록했다는 차이 때문에 말입니다. 두 후보자들은 이런 의혹에 대해 아직까지 시원한 답변을 못 내놓고 있는데 부디 17-18일 열리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이런 의혹들이 말끔히 해소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 '내조의 여왕'인 '연희동 빨간 바지'의 결말이 어떤지 아십니까? 믿거나, 말거나, 전 재산이 29만 원에 불과하다고 합디다.

(어이없어 실소만 나오는 일들을 진지하게 받아쳐야 할 때 우리는 홍길동 됩니다. 웃긴 걸 웃기다 말하지 못하고 '개념 없음'에 '즐'이라고 외치지 못하는 시대, '프덕프덕'은 <프레시안> 기자들이 쓰는 '풍자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