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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이명박

MB정부, '대한민국 1%' 위해 상속세 폐지? (2008.4.4)

재계가 이명박 정부에 '상속세 폐지'를 공개적으로 요청하고 나섰다.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은 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승수 총리 초청 전국상공회의소 회장단 간담회'에서 "상속세를 폐지하고 상속받은 재산을 처분할 때 과세하는 자본이득세, 즉 양도소득세를 과세하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말했다.

특히 손 회장은 상속세를 폐지해야 하는 이유로 '경영권 유지'를 언급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손 회장은 "상속세는 미실현 이익에 대해 과세하기 때문에 상속받은 주식이나 부동산을 팔아야 납부할 수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렇게 되면 경영권 유지마저 위협받게 된다"며 "캐나다, 호주, 이태리, 스웨덴, 홍콩 등이 이미 상속세를 폐지했으며, 미국도 폐지법안이 상원에 계류 중인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승수 총리는 "현재 상속세와 증여세를 어떻게 바꿀 지 논의하고 있는 중"이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총리는 "중소기업에는 매우 중요하므로 좀더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밝혀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경영권 보장? 재산권과 경영권은 별개

손 회장의 이같은 요구는 기업의 경영권 승계를 보장해달라는 말이나 다름없다. 윤종웅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006년 상속세 폐지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고 나서는 등 삼성에서 이를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해온 것도 바로 경영권 승계와 연관된 문제이기 때문. 현행 상속.증여세법은 상속 재산의 규모에 따라 10-50%의 세금을 내도록 돼 있다. 과표가 30억 원이 넘어서면 50%의 세금을 내야 한다. 따라서 삼성 등 대주주 지분이 낮은 기업의 경우 지분을 상속할 경우 상속.증여세로 대주주 지분이 감소해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재산권과 경영권을 혼동하는 전근대적인 사고 방식이다. 참여연대 조세개혁센터 이상민 간사는 "상속재산의 경우 사유재산이니까 일정 정도의 세금을 납부한 뒤 자녀에게 물려주겠다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기업 경영권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 간사는 "상장기업의 경우 주주들의 인정을 통해 경영권을 얻는 것"이라면서 "단순히 지분을 유지해 자자손손 경영권을 유지하겠다는 것은 전근대적인 사고"라고 지적했다.

2006년 상속세 납부 인원 2200여 명…대한민국 99%와는 상관 없는 세금

손 회장은 또 캐나다, 호주, 스웨덴 등 해외 사례를 들어 상속세 폐지를 주장했지만, 이들 나라와 한국을 바로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이상민 간사는 "캐나다는 자본이득세가 50%를 상회한다. 상속세가 이름만 폐지된 것이다"고 말했다.

또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로 전환하기 위해선 개별 자산의 가치를 계속 추적, 파악해 놓아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태에서 상속세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지금도 조세 행정을 허술한 구석을 노려 부동산, 주식을 통한 이익에 대해 '탈세'를 밥 먹듯이 하면서 혜택을 더 달라고 하는 셈이다.

이상민 간사는 "2006년 통계에 따르면 상속이 발생한 인원 중 실제로 상속세가 부여된 사람은 2200여 명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는 대한민국의 1%가 채 안 된다"며 "한해 2000여명 밖에 안 되는 일부 특권층이 납부하는 상속세가 부담이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미 기업가들은 상속세 폐지 반대하는데...
워런 버핏 "상속세 폐지로 혜택 입는 집단은 소수 부자들뿐"


세습 경영을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면서 '상습세 폐지'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는 한국의 일부 기업인들과 달리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등 미 기업인들은 부시 정권의 상속세 폐지 움직임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버핏 회장은 지난해 11월 미국 상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해 "상속세 폐지로 혜택을 입는 집단은 소수 부자들뿐"이라며 상속세의 존속을 주장했다. 그는 "사회의 자원이 왕조가 세습되듯 대물림돼서는 안된다"며 "우리는 (세습된 부가 아닌) 능력 중심의 사회와 기회 균등의 가치를 지켜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버핏 회장은 빌 게이츠 MS 회장의 아버지 게이츠 시니어, CNN의 창업자 테드 터너, 배우 폴 뉴먼 등과 함께 '책임지는 부자'(Responsible Wealth)라는 단체를 결성해 상속세 폐지를 반대하고 있다. 이들은 또 주식배당소득세 폐지 반대, 공평과세, 최저임금 인상, 최고경영자 봉급 축소 등을 주장하고 있다.

버핏 회장은 또 지난 2006년 37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자녀에게 상속하는 대신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혀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빌 게이츠 회장 역시 자녀들에게 1000만 달러만 물려줬고, 경영 승계 역시 생각하지 않고 있다.

부시 정권은 대선공약에 따라 상속세를 점진적으로 줄여 2010년 한해 동안 한시적으로 폐지하도록 했다. 의회가 그전에 법을 제정하지 않으면 2011년엔 면세 범위가 100만 달러로 줄고 세율은 55%로 늘어나므로 공화당은 상속세를 완전히 폐지하는 법안 통과를 추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