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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노무현

노무현 "로비 하러 왔다" (2006.3.28)

"제가 여기 뭐 하러 왔나? 소통을 위해 왔다."

노무현 대통령이 28일 SK 최태원 회장, 포스코 이구택 회장,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 LG 전자 김쌍수 부회장 등 대기업 CEO 100명 등 재계인사 350여 명이 모인 자리에서 1시간 40분 동안 특강을 가졌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동반성장과 상생협력은 정부 힘만으로는 안되고 우리 경제를 주도하고 있는 기업인들이 문제 의식을 함께 갖고 노력하면 이 문제를 풀 가능성이 높아져 여러분에게 부탁드리러 왔다. 요새 유행어로 말하면 로비하러 왔다"며 평소와 달리 한결 부드러운 태도를 보였다.

지난 17일 여야 5당 원내대표단과 만찬간담회에 이어 이날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특강에서 보여준 대통령의 달라진 모습은 노 대통령이 이해찬 전 총리 낙마 이후 본격 가동하고 있는 '대화정치'의 일환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요새 유행어로 말하면 로비 하러 왔다"**

노 대통령은 "제가 말하고 나서 그날 저녁이나 다음날 아침 보도를 보면 내 말과 다르거나, 내가 중요하게 했던 말은 없고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양념으로 한마디 했던 것만 나와 제 생각이 국민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답답함을 갖고 있다"며 "제 불찰이지만 저와 국민 사이의 소통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언론 보도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지만 "대통령의 불찰"이라는 전제를 달았다.

노 대통령은 "듣기 좋으라고 (대통령) 선거할 때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고 했다"며 "실제로 마음에 그런 게 있긴 했지만 선거 구호는 선거 구호"라고 현실과는 거리가 멀었음을 시인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뿐만 아니라 국민들과 직접 대화하고 여러 가지 고민도 받아들이는 게 '국민이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내세웠던 생각과 현실이 어느 정도 일치되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며 변화를 꾀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심이 항상 옳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니다"며 국민들의 반대가 큰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추진하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다.

노 대통령은 또 이날 1시간 30분 동안 연설과 질의응답을 모두 가질 예정이었으나 연설 내용이 길어지면서 질의응답은 생략했다. 노 대통령은 이에 "무식하다는 소리 안 들으려고 욕심을 부려서 얘기를 많이 했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청와대 "대화와 소통의 기회 많이 가지려"**

노 대통령의 이같은 '변신'은 다분히 의도된 것이었다. 청와대 김만수 대변인은 이날 특강에 대해 "지난 17일 여야 원내대표들과 만찬간담회는 정당 지도자들의 견해와 의견도 듣고 이를 반영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의 하나였다"며 "정치권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사회 각계 각층의 의견을 듣고 대통령의 생각을 전달하는 자리로 마련됐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대화정치'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주 금요일 국회의장, 대법원장, 국무총리 등 3부요인 및 헌법기관장을 초청해 만찬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다.

노 대통령의 이런 '대화정치'는 크게 두 가지를 고려한 것을 풀이된다. 첫째,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들에게 안정적 국정운영의 모습을 보여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을 높이려는 것이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노 대통령의 지지율이 소폭 상승한 것을 보건대 이런 전략이 어느 정도 적중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둘째, 양극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이라는 정책 과제를 제시해 놓은 상황은 노 대통령이 야당, 재계 등에 협조를 구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특히 임기가 채 2년도 안 남은 노 대통령은 자신이 제시해 놓은 방향대로 국정을 끌어나가기 위해 '대통령의 힘'에만 기댈 수 없는 형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