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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 참여 독려, 당장 집에 가서 할일이 생겼어요"

[현장] 미 의회를 방문한 55명의 한인 대학생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을 보니 제 선거 캠프가 떠오른다. 선거운동을 하면서 한국계 미국인들이 정치적 목소리를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깨닫게 됐다. 내 지역구는 백인 유권자들이 다수이지만, 우리는 미 전역의 다양한 커뮤니티와 연대하려고 노력했고, 이런 전략을 통해 이길 수 있었다.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내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미국인으로서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이민자인 내 부모님의 삶과 내 삶은 오늘날 미국인들의 삶과 역사를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여러분들에게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의회에 입성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 'KAGC U 리더십 서밋'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는 앤디 김 의원. ⓒ프레시안(전홍기혜)

 

앤디 김 (38세, 뉴저지 3선거구) 민주당 의원은 현재 미국 의회에서 유일한 한국계 미국인 의원이다. 고아 출신으로 어렵게 공부를 해 과학자가 된 아버지와 간호사인 어머니가 미국으로 이주해 정착한 한인 2세 출신 정치인이다.

외교안보문제 전문가로 부시 행정부와 오바마 행정부 모두에서 일한 앤디김 의원은 2018년 선거에서 공화당 현역의원인 톰 맥아더 후보를 상대로 당선됐다. 그는 이 지역에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졸업했지만, 유권자의 절대 다수인 85%가 백인이며 2016년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6%를 앞섰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더 값진 승리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는 9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워싱턴DC에 있는 레이번 하우스 오피스 빌딩(미 하원 건물 중 하나)에서 한국계 미국인 대학생 55명에게 동일한 정체성을 가진 '롤모델'이자 '멘토' 입장에서 이야기를 했다.

그는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넘어서 안보전문가로서 행정부에서 일했던 경력, 비영리단체 활동 등을 통한 다양한 사회 경험 등이 정치인으로서 중요한 자산이 됐다고 조언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매일 매일 스스로 하루의 마지막에 가장 만족스러운 것이 무엇인지 묻는" 일들을 반복하면서 자신의 삶을 충실히 채워가라고 당부했다.

이날 김 의원의 이야기를 경청한 학생들은 미국 전역 22개 주, 39개 대학에서 선발된 한국계 미국인 대학생들이다. 미주한인유권자연대(Korean American Grassroots Conference, 대표 김동석)는 지난 2016년부터 매년 50-60명의 한인 학생 대표자들을 선발, 워싱턴DC로 초청해 정치 참여 교육을 해왔다.

올해도 지난 8일부터 2박3일 동안 KAGC U Leadership Summit(한인 대학생 대표자 회의)를 진행했다. 9일 오전 강연도 이 행사 중 한 프로그램이었다. 이날 강연에는 앤디 김 의원 이외에도 그레이스 맹 (민주, 뉴욕 6선거구), 길 시스네로스 (민주, 캘리포니아 39선거구), 롭 우달 (공화, 조지아 7 선거구), 주디 추 (민주, 캘리포니아 27선거구), 아미 베라 (민주, 캘리포니아 7선거구), 젠 셔코우스키 (민주, 일리노이 9선거구) 등 7명의 현역 의원이 참석했다. 이날 참석한 의원들은 미국 내 한인 사회의 정치적 과제들인 입양인시민권법, 이산가족상봉법 등을 공동 발의한 의원들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이날 의원들과 대담 시간을 가진 뒤 오후에는 조별로 흩어져서 직접 정책 이슈들을 갖고 사전에 약속된 의원실을 방문해 의원 및 보좌관들을 만나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다. 저녁에는 이수혁 주미대사의 초청으로 주미한국대사관을 방문해 이수혁 대사와 환담을 나눴다. 

첫날인 8일에는 미주한인 이민역사, 정체성 등의 문제와 미국 정치에 대한 기초적인 교육을 했다. 또 한미관계, 한반도 평화의 문제 뿐 아니라 서류미비 청소년 보호 등 이민 문제, 입양인 시민권 취득, 이산가족 상봉 등 한국계 미국인들의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프로그램에 참석한 루카스 엄(사우스캘리포니아 대학(USC) 재학) 씨는 기자와 인터뷰에서 "오늘 여러 의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현재 한국계 미국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정치적 이슈에 대해 알게 됐다"며 "또 무엇보다 우리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목소리를 의원들의 의정 활동에 더 잘 반영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알게 됐다. 우리 가족들 대부분이 유권자 등록을 하지 않았는데, 돌아가서 이들에게 유권자 등록을 하고 투표를 하라고 독려를 해야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앤디 김 의원의 강연이 매우 인상 깊었는데, 나도 정치에 관심이 많아서 직접 선거에 출마하는 것에도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내 자신의 미래에 큰 희망을 갖게 했다"고 덧붙였다.

▲ 미 의회를 견학 중인 한인 대학생들. ⓒKAGC 제공

 

미주 한인들, 유권자 등록 비율 떨어져

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은 약 200만 명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미국 의회 내 한인 출신 의원은 1명(앤디 김)에 불과하다. 앤디 김 의원마저도 20년 만에 탄생한 한인 출신 하원의원으로, 그 이전에는 아애 한인 출신 의원이 한명도 없었다. 뉴저지, 엘에이 등 한인들이 밀집한 지역에서도 한인 출신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기본적으로는 아시안계 미국인들에게 시민권이 주어진 것은 1943년, 투표권이 주어진 것은 1952년으로, 오랫동안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기본적인 권리가 인정받지 못했었다. 이처럼 이민자 출신으로 주류 사회에 편입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 존재했지만, 기본적인 권리가 주어진 이후인 현재 가장 큰 장벽은 정치 참여 자체에 대한 무관심이다. 이민자로서 '먹고 사는 문제'의 고단함 때문에 정치에 관심을 갖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무관심은 이민자, 소수자로서의 차별 등 자신이 직면한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만드는 '악순환'을 가져온다.  

미국에서는 모든 시민권자에게 투표권이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유권자 등록을 해야만 한다. 유권자 등록 제도는 이민자 등 소수자들의 투표권 행사의 장벽으로 작용한다. 미주한인유권자연대에 따르면, UC 샌디에고 대학의 최근 연구에 의하면 귀화한 시민들은 12.7% 덜 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개인의 정치 참여를 제한하고 어렵게 하는 제도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현 시점에서 우선적으로 필요한 일은 모든 시민을 대상으로 투표권 행사를 독려하는 것이다. 정치를 바꿀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빠른 길은 정치적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일이라는 것은 이번 한인 대학생들을 대상으로한 서밋에 참여한 의원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한 지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