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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트럼프를 제외한 모두가 시험에 들다?

[분석] 트럼프 탄핵안 통과로 확인된 4가지 사실

모두가 예상했던 바대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 미국 의회에서 공식적으로 탄핵됐다.

미국 하원은 이날 본회의를 열고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첫 번째 탄핵 사유인 '권력 남용'에 대해서는 찬성 230표, 반대 197표, 두번째 탄핵 사유인 '의회 방해'에 대해서도 찬성 229표 대 반대 198표가 나왔다. 표결 결과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의석 수와 거의 일치한다. 민주당에서 권력 남용에 대해 2명, 의회 방해에 대해 3명의 '이탈표'가 나왔고 공화당은 '이탈표' 없이 전원이 똘똘 뭉쳐 트럼프 대통령을 비호했다. 이탈표 숫자마저도 예상한 그대로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제 역사상 3번째로 탄핵당한 대통령이 된 '역사적인 순간'이었지만, '이변'은 전혀 없었다.(트럼프 대통령에 앞서 1868년 앤드류 존슨 대통령, 1998년 빌 클린턴 대통령이 탄핵 당했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4년 하원 법사위원회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되자 본회의 표결에 앞서 자진 사퇴했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탄핵 표결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상원에 당장 탄핵소추안을 송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에서 탄핵재판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논의가 진행되는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일종의 '힘겨루기' 차원이다. 하지만 상원 탄핵재판의 결론은 이미 예상이 가능하다. 공화당이 다수인 상원의 탄핵재판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은 부결될 것이며, 트럼프 대통령은 해임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계속 수행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를 논하는 '탄핵' 과정에서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는 더 공고해지는 역설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트럼프 탄핵'을 통해 시험에 들게 된 것은 오히려 민주당과 공화당이다. 2020년 대선에서 '탄핵 당한 대통령'을 선택지 중 하나로 받아들게 된 유권자들도 역사적인 시험대에 들어섰다고 할 수 있다.  

하원의 탄핵안 통과가 확인시켜준 미국 정치 현실을 4가지 현상으로 정리해보았다.

1. 미국 정치는 극도로 분열됐다. 

<워싱턴포스트>는 19일(현지시간) 탄핵안 표결 결과에 대해 "부족주의와 양극화라는 말이 워싱턴을 현재 장악하고 있는 현상을 잘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표결 결과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의석 수를 그대로 옮겨 왔고, 여기엔 어떤 '이념'과 '철학'도 스며들 여지가 없었다.

<워싱턴포스트>는 "클린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재판에서 5명이 (당론과 달리 탄핵 찬성으로) 선을 넘어왔을 때도 이처럼 당파적이지 않았고, 닉슨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에 대한 하원 법사위원회 표결에서 6명의 공화당 의원들이 당론과 달리 탄핵 찬성표를 던졌을 때도 지금과 같지는 않았다”고 과거 사례와 현재를 비교했다.  

 

▲ 탄핵안 표결 결과 ⓒCNN 화면 갈무리

 

2. 공화당은 '트럼프당'으로 거듭 났다. 

이번 표결에서 공화당 이탈표는 단 1표도 나오지 않았다. 앞서 지난 11월 하원의 탄핵조사 결의안에 대한 표결에서도 공화당 의원 전원이 반대표를 던졌다. 대통령이 여당을 정치적 위기에 몰아넣은 것에 대한 책임을 추궁하는 목소리는 일절 없었다. 18일 탄핵안 표결에 앞선 찬반 토론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예수에 비유하는 발언까지 나왔다. 공화당의 배리 라우더밀크(조지아) 의원은 이날 "예수가 반역죄로 억울하게 기소됐을 때 본디오 빌라도도 고발자는 대면하도록 해줬다"고 주장해 소셜미디어에서 입길에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통령으로 당선되기 전까지 공화당에서 철저한 '비주류'였다. 그는 하원의원을 거쳐 상원의원, 혹은 주지사를 지내면서 쌓은 정치적 이력과 인지도를 바탕으로 대통령에 도전하던 기존 대권후보들과는 전혀 다른 경로를 거친 정치인이다.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얻게 된 재력을 바탕으로 사교계에 이름을 알리고 "넌 해고야!"라는 유행어를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만든 'TV 쇼'를 통해 얻은 대중적 인지도를 바탕으로 대권에 도전했다. 기존 정치인들과 '다름'을 강조하기 위해 대선 전까지 스스로도 '마이너리티' 자리를 고수했던 트럼프 대통령은 대권을 거머쥔 다음부터는 공화당을 장악하려고 애썼다.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큰 자산은 '열혈 지지자'들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소셜미디어(특히 트위터)를 통한 정치에 능한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 양극화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양극화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존재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또 이 지지자들을 상대로 후원금을 모으는 것에 능하다. 이번 탄핵 국면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캠프는 지지자들을 상대로 '탄핵 반대 모금'을 독려해 수백만 달러의 후원금이 쏟아졌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눈에 들지 않으면 2020년 총선에서 공천과 당선 모두가 힘들어지는 현실 속에서 하원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을 "예수"에 비유하면서까지 감쌌다.

하지만 공화당 의원들도 모르지는 않는다. 1998년 클린턴 전 대통령이 탄핵 당했던 혐의와 비교할 때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혐의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미국 역사학자 750명은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비영리단체인 민주주의 보호(Protect Democracy)는 지난 16일 "깊이 생각한 결과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잘못이 탄핵 수준에 달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아무것도 탄핵 사유가 되지 못한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성명을 냈고, 여기에 퓰리처상 수상자인 론 처노, 존 미첨, 테일러 브랜치를 포함해 저명한 대학교수 등 750여 명이 서명을 했다고 밝혔다. 이같은 입장은 하원 법사위원회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다수의 헌법학자가 밝힌 견해와 동일하다. 대통령선거에서 자신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외국 정부를 끌어들인 행위에 대해 하원 정보위원회는 "닉슨 대통령보다 더 나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3. 민주당의 정치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과반 의석을 기반으로 탄핵소추안 통과까지 밀어붙인 민주당은 고민에 빠졌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게 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닌 민주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트위터를 통해 열심히 지지자들에게 억울함으로 토로하고 민주당을 비난하기만 하면 된다.  

상원에서의 탄핵재판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상원 전체 100석 중 53석이 공화당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되기 위해선 67명의 찬성이 필요하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백악관과 완전히 협력하겠다"고 공언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최측근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공정한 배심원인 척 하지 않겠다"고 충성 서약을 했다. 이처럼 이미 드러난 불공정성에 대해 린지 긴즈버그 대법관은 "배심원을 선정하는 절차가 있고 배심원이 편견을 드러내면 자격이 박탈된다"고 쓴소리를 하기도 했다.  

상원에서 부결이라는 예정된 결론이 바뀌기는 힘들지라도 민주당 입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최대한 많은 상처를 내야 한다. 너무 싱겁게 결론이 나버리면 공화당과 트럼프 대통령이 주장하는 '별 것도 아닌 일로 탄핵이라는 정치적 소동을 일으킨' 모든 책임을 민주당이 다 뒤집어 써야 한다.  

게다가 '탄핵'이라는 이슈에 민주당의 대선 후보 경선이 전혀 주목을 못 받는 것도 간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존 허닥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17일 열린 토론회에서 현재 짜여진 탄핵 찬반 진영에서 "새로운 어떤 폭발적인 정보를 가져온다고 해도 바늘이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 같다는 점에서 민주당 입장에서 탄핵재판은 이미 끝났다. 그래서 탄핵재판을 길게 끌고 가는 것인 민주당에게도 이롭지 않다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탄핵 당할 만큼 부패한 인사가 백악관을 여전히 지키고 있고 그 책임은 전적으로 공화당에 있다"는 민주당이 얻고 싶은 결론이 명확해질 때까지만 이슈를 끌고 가고 싶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상원의 탄핵재판 끝에 대중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결론("탄핵은 처음부터 정략적 시도에 불과했다")에 손을 들어줄 것인지, 아니면 민주당의 결론("탄핵은 정치적으로는 정당했으나 상원 의석 분포 때문에 역부족이었다")에 손을 들어줄 것인지는 아직 모른다. 민주당의 정치력에 달렸다.  

4. 트럼프 대통령은 '아직' 상처 입지 않았다. 그러나...
 

하원에서의 탄핵안 통과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개인적으로 굴욕감을 안겨주기는 했겠지만, 정치적인 측면에서는 크게 상처를 입히지 못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탄핵 찬반 여론도 반반 수준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고,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공화당 지지자들의 결집이 확인되는 상황이다. 후원금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오히려 늘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공연히 탄핵이 자신에게 "호재"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에게 남은 과제는 2020년 재선에 성공할 것인가 뿐이다. 이 역시 여론조사를 보면 상당한 가능성이 엿보인다. USA투데이와 서폭 대학이 지난 10-14일 미 전역 유권자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 선거 가상대결에서 민주당 후보를 모두 앞섰다.  

이미 결론이 정해진 '탄핵'이지만 이 절차가 갖는 분명한 정치적 함의가 있다. '대통령 트럼프'에 대해 한번이라도 더 생각해보게 만드는 효과다.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혐의는 클린턴 대통령과는 무게가 전혀 다르다. '정치적 이단아' 이미지를 활용한 기존 정치인과의 '구별짓기'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숱한 단점을 오히려 장점으로 활용하거나 별 것 아닌 일로 만들어왔다. 정치적 절차와 법적 규제를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기간 내내 무시해왔다. 이런 제재가 관료주의적 구습인 경우도 있지만, 민주주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가이드라인이 경우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면서 사실상 '법 위의 대통령'으로 군림하려 했고, 그 와중에 '우크라이나 스캔들'이 터졌다.

2020년 대통령 선거에서 던져지는 질문은 '이런 트럼프 대통령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가 아니라 '이런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시 4년 동안 집권을 허락할 것인가'다. 열렬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아닐 경우,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유권자들도 트럼프 대통령을 '탄핵 당했지만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으로 받아들일 것인지 시험대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