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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미투, 그 싸움의 끝에 정의가 있기를 바란다"

[프레시안 books] 연구모임 '도란스'의 <미투의 정치학>


"jtbc 방송을 마치고 나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피해자들이 머물 수 있는 긴급 지원 쉼터가 있긴 했지만, 늦은 시간이라 입소할 수 없었다. 방송국에 동행한 쉼터 선생님께서 다음날 입소 전까지 자신의 집에서 머물 수 있게 해주신다고 하셨다.(...) 절대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충남도청에서의 지난 8개월, 나는 드디어 성폭력에서 벗어났다. 내 눈 앞에서, 더 이상 그의 범죄는 없다. 폐쇄된 조직 안에서 느꼈던 무기력과 공포로부터도 벗어났다.(...) 다만, 부여잡고 지키려 했던 한줌의 정상적인 삶도 함께 사라졌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 김지은 씨가 직접 쓴 글이다. 김지은 씨는 자신의 '미투'에 대해 직접 글을 써서 발표하려고 했다. 연구모임 '도란스'에서 최근 펴낸 <미투의 정치학>(권김현영,루인,정희진,한채윤 지음, 정희진 엮음, 교양인 펴냄)에 김지은 씨의 글이 실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해당 글이 "혹시라도 책의 발간으로 인해 다른 법적 분쟁이 생기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남아 있는 재판에 불리한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법조인들의 우려를 접했"고, 결국 수차례 논의 끝에 김지은 씨의 원고는 이 책에 실리지 않았다. <미투의 정치학>은 안희정 사건을 비롯해 2018년 이후 봇물 터지듯 터져나온 여성들의 미투운동을 둘러싼 쟁점을 분석하고 그 이후를 모색하는 책이다.  

▲ <미투의 정치학>(권김현영,루인,정희진,한채윤 지음, 정희진 엮음, 교양인 펴냄) ⓒ교양인

기자가 이 책의 서평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안희정 전 지사의 부인이 자신의 SNS에 김지은 씨를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는 소식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홀리는 '뉴스'가 되어 소비되고 있다. 이런 상황 자체가 <미투의 정치학>과 같은 논의가 왜 필요한지 보여준다.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김지은 씨처럼 피해자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에 대해 혹시라도 어떤 의심을 살지 모르기 때문에 표현을 최대한 자제할 것이 요구된다. 이에 반해 가해자와 그 주변인들은 망설임 없이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고, 이것이 또 한번 피해자를 의심하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을 통해 한국 사회는 성폭력 사건이 정치, 언론, 사법 등 다양한 사회적 층위에서 어떻게 다뤄지고, 이것이 대중들의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공동 체험하고 있다. 


'피고인' 재판인가, '피해자' 재판인가


다행히 2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던 1심 판결이 뒤집혀져 피고 안희정에게 징역 3년6월이 선고됐지만, 이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은 한국 사회에서 '미투의 정치학'이 어떻게 작동되고 있는지 명확히 보여준다.  

1심과 2심 결과의 차이를 만든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재판부는 '누구'의 진술과 주장에 더 귀를 기울였냐는 것이었다. 권김현영은 안희정 사건 재판을 지켜보고 쓴 글 '그 남자들의 '여자문제''에서 이를 지적했다.  

"안희정 쪽 변호인단은 이 사건을 최대한 '불륜'으로 몰아갔고, 피해자의 정치적 성향을 의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조장했다. 누가 무엇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안희정이 권력형 성폭력으로 재판을 받아야 할 재판정에서는 사건 관련 증언들이 불륜의 정황으로 배치되는 것이 허용되었고, 그 결과 부인의 증언이 끝나자마자 온갖 기사의 댓글을 "진짜 피해자는 부인"이라는 내용으로 도배되었다." 

권김현영은 "안희정 1심의 결정적인 장면을 꼽자면, 바로 부인을 증언대로 부른 안희정 측과 이를 허용한 재판부의 공조"라고 지적했다. 2심 판결이 나온 후 부인이 여전히 "불륜"이라는 주장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사실상 1심 재판부가 열어준 셈이다. 

1심 재판 내내 김지은 씨에게 요구되던 '피해자다움'이라는 말로 피해자들의 발언이 의심 받고 평가를 받는 상황은 다른 미투 사건 피해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됐다. 여전히 미투 사건은 가해자의 문제, 이처럼 무분별하게 성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남성 기득권 권력의 문제로 여겨지기 보다는 '여자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고 권김현영은 지적했다. 

"'여자 문제'라는 프레임에 담긴 또 다른 문제는 이 프레임이 이성애 남성의 성적 욕망을 그 자체로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승인하고 여성의 성적 욕망이 설 자리를 아예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남성의 세계에서 성적 욕망은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것으로 취급되어 '질문'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미투는 젠더 연속선에서 발생하는 문제...젠더는 권력 관계"


정희진은 이처럼 미투가 '여자 문제'로 치환되는 이유가 "미투가 젠더의 연속선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정희진은 '여성에 대한 폭력과 미투운동'이라는 글에서 거시적 관점에서 미투 운동의 의미와 과제를 분석한다. 


"우리가 젠더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결정적인 인식의 차이를 가져온다. 젠더는 '여자 문제'나 '여성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모순이며 권력 관계다. 젠더를 이해할 때, 미투 운동의 위상도 가늠할 수 있다. 젠더 체제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의 의미를 고려할 때, 미투 운동은 너무나 갈 길이 먼 첫 걸음이자 동시에 엄청난 사건이다.(...) 미투 운동은 젠더 폭력에 분명한 경고와 타격을 가했다. 게다가 미투 운동은 확실히 대중화되었다.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거치더라도, 여성들의 의식을 과거로 되돌릴 수는 없다."


우리 사회가 '젠더 질서'를 인식할 수 있게 되어야만 성폭력 피해자가 법정에서 질문을 받고 심문을 당하는 상황이 역전될 수 있다.   

"우리는 가해자에게 물어야 한다. (...) 왜 비서에게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키고 돈을 지불하지 않았습니까? 왜 안마를 요구했습니까? 왜 수시로 초과 노동을 시켰습니까? 왜 평소에는 여성 인권 운운했으면서도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습니까? 왜 자신의 성폭력 재판에 부인이 나왔죠? 본인이 생각하는 성폭력, 성관계, 사랑의 관계는 무엇입니까? 피해자와 사귀지도 않았으면서 왜 불륜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까..." 

사회적 모순이자 권력관계로서 '젠더'를 인식해야지만 우리는 법치국가에서 "범죄 신고 '캠페인'일 뿐인 미투"의 의미와 과제를 명확히 인식할 수 있다고 정희진은 지적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법치국가에서 미투는 비상식적인 운동이다. 성폭력과 성적 괴롭힘/학대/추행은 모두 법에 명시된 불법 행위다.(...)절도나 사기 피해를 당하면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상식이고, 시민은 신고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섹슈얼리티와 관련된 피해 사실을 말하려면, 인생을 걸거나 커리어와 평판을 버릴 각오를 해야 한다."


'성별간 위계에 기반한 폭력'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지 못한 한국 사회에서 미투는 "남성에 의해 선별되고" 있다. 정희진은 서지현 검사의 미투는 "검찰의 망신이었기 때문에, 그 망신이 싫은 다른 남성들이 나선 것"이며, "만약 이 여성검사가 가정 폭력 피해자라면 우리 사회는 관심이 없다. 가정 폭력은 집안일로 간주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가정 폭력 피해자, 성매매 종사자의 '미투'는 일어나기 힘든일이다. 가족 제도와 성매매에 존재하는 '불법성'은 아직 공격 받지 않고 있다. 때문에 정희진은 "미투는 시멘트를 뚫고 나온 씨앗이지만, 실상 그 씨앗은 즉정한 곳에서만 나올 수 있다"고 보았다. 때문에 미투는 '혁명'이지만 이제 '시작'인 셈이다.  


이 책에 실리지 못했던 김지은 씨의 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이는 미투를 지지하는 모든 이들의 공통된 바람일 것이다.  


"'미투'는 마지막 외침이었다. 이 싸움의 끝에는 정의가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