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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박근혜 반사효과에 기대면 궤멸적 타격"(2015.11.17)

(이 기사는 이명선 기자와 함께 작성했습니다.)

 

[단박 인터뷰] 이철희의 정치 썰전 ② 야당편

 

이제는 대중들에게 Jtbc 예능 프로그램 <썰전> 출연자로 더 익숙할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그는 오랫동안 야당에 몸 담았던 '당료' 출신의 정치인이었다. 정치인이 곧 '(국회)의원'(혹은 의원이었거나 되려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협소하게 인식되는 대한민국적 시각에서 보면 많은 이들이 의문을 품을 만도 하지만 말이다.

이철희 소장이 제시하는 2016년 총선 필승 전략은 '문안박 연대'다. 야당의 대권주자로 유권자들에게 인지되고 있는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세 사람이 손을 잡고 새 판을 짜라는 조언이다. 그래야 현재 자신의 재선만을 고민하는 '자영업자 정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제대로 '혁신'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유능한 진보"가 되는 물꼬를 틀 수 있고, '헬조선'이란 자조까지 등장한 우리 사회가 바뀐다. 이 소장은 
"한 사회가 좋아지는 게 모두 진보의 몫은 아니지만, 그 시작은 진보의 유능함에서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지금은 "깨알같이 무능하다."

이철희 소장이 이런 고민을 바탕으로 16개월 동안 월간 <인물과 사상>에 연재한 글을 묶어 <이철희의 정치 썰전>(인물과사상사 펴냄)을 냈다. 이 소장은 책머리에서 "정치를 더럽고, 나쁘고, 무익한 것으로 여기는 정치 불신 때문에 피해를 보는 건 오히려 서민이고 약자들"이라며 "정치가 보통 사람들이 삶을 바꾸기 위해 의존하고, 참여하고, 활용하는 '보통의 일'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이 소장과 진행한 인터뷰를 두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문재인 흔들기', 본질은 '공천 보장하라'


프레시안 : '문재인 사퇴론'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친노 대 비노' 계파 싸움으로 볼 수도 있지만, '문재인으로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패배론이 자리해 있다. '문재인 흔들기'의 본질은 뭐라고 보는가. 

이철희 : 새누리당이 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체제'로 재편되고 있지만, 야당은 이에 대한 최소한의 위기의식도 없다. 의원총회를 열면,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요구서에 서명을 받아 자신의 공천을 기정사실화하려는 사람들만 있다. 지금 이런 사람들이 당을 흔들고 있다. 

'문재인 체제로 진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그렇다면, '이기는 체제'는 무엇인가. 당대표 사퇴를 요구하는 이들이 전면에 나서서 선거를 치르면, 이길 수 있나? 임기를 보장받은 대표에게 '사퇴하라'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정치적 필요로 당대표 사퇴가 불가피하다면 요구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나도 출마하지 않고 당을 위해 헌신할 테니, 당신도 희생하십시오'라고 요구하는 게 맞다. 전당대회를 통해 합법적으로 뽑은 대표인데, 선거에서 설령 안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도 감수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기본 갈등은 '친노 대 비노', '주류 대 비주류'가 아니다. '기득 대 혁신'이다. 소속 국회의원 127명(기득권)이 '공천을 보장하라'며 아우성 하는 것이다. '문재인 흔들기'도 실제는 문재인 대표 사퇴가 아니라, 공천 보장 요구다. 당대표를 압박해 자기 것(공천)을 따내려는, 일종의 '담합'이다. 

선거란, 잘하면 상을 주고 못하면 벌을 주는 상벌 시스템이다. 특히 선거에서 정당의 후보가 되는 것은 사천(私薦)이 아닌 공천(公薦)이다. 정당도 책임정치의 차원에서 '이 사람이 잘못했으니 다른 사람으로 바꾸겠습니다'라며 새 인물을 추천해야 한다. 

새정치, '레시피'도 없는 상가번영회 

프레시안 : 새정치민주연합을 '자영업자들의 정당'이라고 한다. 자영업자 또는 상인들의 연합체라는 비판이다. 

이철희 :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프랜차이즈 정당'이라고 했다. 프랜차이즈는 중앙에서 브랜드를 만들어 가맹점을 모집하는 형태다. 레시피도 주고 디자인도 통일시켜준다.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은 그런 것도 없다. 그래서 '상가번영회'라고 얘기한다. 

상가번영회는 현직 의원들에게 행복한 구조다.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들은 위아래 모든 압박에서 자유롭다. 강력한 대선주자나 리더가 선거 승리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한다'는 강제력이 없다. 지구당 폐쇄로 아래로부터의 저항력도 없다. 

안철수 의원이 밖에서 신당을 만든다고 하자 번영회 상인들이 담합해 결사반대를 외쳤다. 하지만 새정치민주연합 입당으로 외부 요인이 사라지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각자 먹고살고 있다. 스스로 제1야당을 상가번영회 수준으로 전락시켰다. 또 달리 말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국회의원 연합체' 또는 '국회의원 구락부'다. 선거 출마 시 통일된 기호가 필요해 해당 간판 아래 머물러 있을 뿐이다. 

안타까운 점은 이 당으로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선거에서 못 이긴다는 사실이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국정화 반대 등 새정치연합은 유리한 분위기를 투표로 연결시키지 못했거나 못하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호박이 넝쿨째 굴러떨어져도 먹지 못할 정도로 무능한 정당, 선거치(選擧癡)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11월 3일 자 <경향신문> 칼럼)

프레시안 : 문재인 대표의 정치력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 또한 검증된 것 아닌가?

이철희 : 검증됐다고도 볼 수 있다. 다만, 문제를 좁혀서 '문재인 사퇴'로 왜곡하지 말아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무능력은 문재인 대표의 리더십 때문만은 아니다. 그저 하나의 요인일 뿐이다. 문재인 대표가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게 하는 교란 요인도 많다. '어떻게 하면 내년 총선에서 이길 수 있을까?'라는 차원에서 당대표 요인, 국회의원 요인, 도전자 요인, 지역 변수 요인 등 넓은 시야로 문제를 봐야 한다. 그런데 2016년 총선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이 다수당이 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사람은 없다. 각자 재선 의지는 충만하지만, 총선 승리에 대한 열망은 없다. 밖에서 보기엔 그렇게 결론 낼 수밖에 없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총선 승리를 위한 염원보다 의원 개인의 재선 의지가 더 강한 정당이다.   

프레시안
 : 개인으로는 재선, 당 차원으로는 제1야당으로 만족하는 것 같다. 이대로라면, 새정치민주연합에는 희망이 없을 뿐 아니라 야권도 지리멸렬해질 것 같다. 

이철희 : 또 개헌론 역풍이 불 조짐도 있어 매우 심각하다. 개헌론은 사실 모든 정치 상황을 집어삼킬 이슈다. 야당이 처음 개헌을 주장할 때는 전략적으로 약간 의미가 있었다. 새누리당 내 친이계가 독자 행동에 나서면, 내용상으로 박근혜 정부의 의회 과반을 무너뜨릴 수 있었다. '개헌 연대'를 통한 '박근혜 견제', 야당이 전략적으로 고민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실효성이 전혀 없었다. 친이계가 박근혜 대통령과 각을 세우긴 했지만, 의회 표결 상황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과거 박근혜 의원이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했을 때처럼 결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여당의 의회 과반수를 무너뜨리기 위한 '개헌 연대'는 실효성이 없다는 게 증명됐다. 그럼 폐기해야 한다. 

주의할 점은 홍문종 의원을 중심으로 한 친박 일부가 개헌론을 언급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가 원하니, 그럼 합시다'라고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굉장히 위험한 상황이다. 이런 수세 속에 개헌이 된다면, 야당은 얻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경제민주화 조항 등 '87년 개헌'으로 얻은 성과마저 잃어버릴 수 있다. 

'엄숙한' 문재인, '궤멸적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프레시안 : '문재인 리더십' 중 개인적으로 크게 느끼는 문제는 모든 사안을 '민주 대 반민주' 구도로 인식하고 프레임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국정교과서를 '친일·독재 교과서'라고 비판하자, 새누리당은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교과서'라며 반격했다. '민주 반민주' 프레임은 전형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는 접근이다. 야당 입장에선 절대 이길 수 없는 접근 방식이다.  

이철희 : 시민들과 학생들이 교과서 국정화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은 '자유와 다양성에 대한 침해' 때문이다. '친일·독재'라는 단어와 '자율화·다양성'은 다르다. 이를 '민주'로만 설명하면 안 된다. '자유'와 '민주'라는 개념을 같이 놓고 접근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늘 '자유민주주의'를 외치면서 이번 교과서 문제에서는 스스로 '자유'의 가치를 버렸다. 안타깝다. 

지금 시민들은 80년대 학생운동 방식과 달리, 발랄하고 유쾌하다. 프랑스 '68혁명' 자료를 보면, 구호가 재밌다. 데이비르 로렌스의 시구처럼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소름 끼치도록 심각하게"가 아닌 "그저 재미로"해야 한다. 그런데 새정치민주연합은 엄숙주의에 빠져 있다. 너무 무겁다. 실제로는 그렇지도 않으면서 가당치 않게 무겁다. 요즘 아이들 관점에서 보면 '꼰대 짓'이다. 벗어던져야 한다. 

지난해 7.30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카우보이모자에 반바지를 입었듯이 새정치민주연합도 유쾌하게 해야 한다. 문재인 대표도 소위 하는 말로, 망가져야 한다. 이종걸 원내대표가 지난 6일 '새정치민주연합 역사교과서 국정화저지 문화제'에서 '그날이 오면'을 부르며 피아노를 쳤다. 당이 의원들과 지역위원장들에게 시국 집회가 아니라 문화제를 하라고 이끌어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 지지층은 새누리당과 달리 젊은 사람들이다. 이들의 기호에 맞게 '꼰대 짓'을 하면 안 된다.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로 일관하면서, '그래도 박근혜 대통령이 미워서 표를 줄 것'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반사이익에 기대다가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의 말대로, '궤멸적 타격'을 받을 수 있다. 

'헬조선' 탈출, 그 시작은 '유능한 진보'

프레시안 : 2004년 노무현 탄핵 이후, 그래도 야당이 주목받고 이겼다고 평가할 수 있는 선거는 '복지' 아젠다를 내세웠을 때다. 지금 청년들 사이에서는 '헬조선'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야당은 대안을 못 찾고 있다. 걱정스럽다. 

이철희 : 한 사회가 좋은 사회가 된 과정을 진보와 보수라는 개념으로 설명해 보자. "지키자는 게 보수고, 바꾸자는 게 진보다. 따라서 바꾸자는 쪽, 즉 진보가 유능하지 않으면 그 사회는 쉽사리 좋아지지 않는다. 비스마르크Bismarck의 수동혁명처럼 예외적, 그리고 한시적으로 보수가 먼저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리나 선진국의 예를 보더라도 대개는 진보가 유능해서 보수와 '더 좋은 사회 만들기' 경쟁을 펼치면 그 사회는 좋아졌다. 유럽의 복지국가가 그런 예다. 반면에 진보가 사회경제적 갈등으로 보수와 대결하는 구도를 만드는 데 실패하면 그 사회는 보통 사람이 살기 힘든 사회가 되었다. 신자유주의 세력의 득세를 지지하지 못해 양극화가 심해진 미국과 영국이 그 예다."(276쪽) 

야당이 유능한 정치세력으로 보수의 집권을 위협하고 실제로 권력을 뺏을 수 있는 힘을 가질 때 사회 변화와 함께 복지가 이뤄진다.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은 그런 대안 세력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새누리당(보수)가 개혁을 위해 내걸었던 대선공약도 철회한 것 아닌가. 야당이 강력했다면,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공약을 이행했을 것이다. "한 사회가 좋아지는 게 모두 진보의 몫은 아니지만, 그 시작은 진보의 유능함에서 비롯된다."(266~277쪽) 


문재인-안철수, 차라리 'I.박근혜.U' 외쳐라 

프레시안 : '더 좋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권 교체가 먼저다. '총선 승리'를 발판으로 차기 집권을 모색해야 할 텐데, 방법이 있을까? 

이철희 : 그나마 희망은 가까운 시일(2016년 4월 13일)에 선거가 있고, '이대로는 못 이긴다'라는 게 상식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 여야 할 것 없이 당내 리더십이 교착 상태다. 김무성 대표나 '친박'도, 문재인 대표나 '친노'도 일방적으로 끌고 갈 힘이 없다. 사거리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정체 상태이기 때문에, 오히려 돌파구가 생길 수 있다. 

혼란·혼돈·정체를 풀 수 있는 '충격'이 어떻게 어디서부터 가능할까를 고민하고 있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문안박 연대'가 답이다.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 그리고 박원순 시장이 연대하는 것이다. 이들은 새정치연합의 새로움을 상징한다. 낡은 체제나 기득권으로부터 자유롭다. 대중적 지지가 강한 차기 대선주자들이다. 이들 셋이 힘을 합치면 새정치연합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참신한 정당'이 된다."(2월 24일 자 <경향신문> 칼럼) 

개인적으로는 지금 야당이 2004년 지구당 폐지, 모바일선거 등 정당개혁으로 정당을 무력화시킨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본다.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 선거 때마다 후보를 내세워야 하는데, 당내에는 인물이 없었다. 그렇다 보니 외부에서 사람을 불러들일 수밖에 없고, 그래서 불려 온 사람들이 '문안박'이다. 당내 구성원들이 이들이 더 진화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데, 그런 생각은 또 별로 없어 보인다.

'문안박'도 외부에서 불려 나오긴 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에 몸담은 만큼 누가 선거에 나가도 이길 수 있는 구도를 만드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 누가 나가도 이길 수 있었던 분위기가 이명박-박근혜가 겨룬 2007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이런 분위기 속에 내부 혁신을 통한 총·대선을 치러야 한다. 그럼, 일종의 '혁신적 통합(통합적 혁신)'도 가능하다. '문안박' 외에도 김부겸 전 의원, 박영선 의원, 안희정 충남지사가 대선후보 경선에 나올 수 있다. 세 사람이 번갈아 집권해도 10년이고, 네 사람이 집권하면 20년이다. 최소 10~20년까지 집권이 가능한 '진보 황금시대'를 열 수 있다. 

문재인-안철수-박원순, 세 사람의 영어 이름 첫 글자를 모으니 'MAP'이더라. 2018년 집권 지도란 뜻 아닌가. 이런 말장난까지 했지만, '문안박 연대'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프레시안 : 전·현직 당대표인 문재인-안철수 두 사람도 그렇고, 이들 주변 세력도 서로에 대한 불신이 큰 것 같다. 

이철희 : 불신이 원래 그렇다. '불신'이라는 나무는 순식간에 커지는 속성이 있다. 링컨의 일대기를 그린 <권력의 조건(Team of Rivals)>(도리스 컨스 굿윈 지음, 이수연 옮김, 21세기북스 펴냄)을 보면, 링컨은 자신의 대선 경쟁자를 내각으로 불러들였다. 병법에도 '적은 가까이 두라'는 게 있다. 불신할수록 곁에 두고, 손잡고 가라는 말이다. 좋은 해법 아닌가? 못 믿겠다고 등을 지면, 서로 무엇을 하는지 몰라 해코지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같은 정당 사람 아닌가. 국민들도 두 사람이 함께하길 원하고 있다. 그런데 왜 박근혜 대통령처럼 경쟁자를 멀리하며 거리를 두려 하나. 그럴 거면, '나 박근혜유(I·PARK GEUN HYE·YOU)'라고 외치던가. 

"유방이 한 왕조를 창업할 수 있게 만든 장량, 그가 선택한 신의 한 수는 한신을 별도 세력으로 풀어준 것이다. 유방의 휘하에서 벗어난 한신은 마음껏 항우를 유린했다. 광대한 땅과 군사를 거느리게 되면 한신이 독립할 우려가 있음에도 장량은 유방을 설득해 한신이 자유롭게 놀게 해줬다. 그래서 숱한 전투에서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이겼다. 지금 새정치연합엔 이처럼 담대한 전략이 필요하다."(11월 3일 자 <경향신문> 칼럼) 

문재인 대표가 안철수 의원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가?'라고 물으며 '좋다. 받아들이겠다. 같이 하자. 당신이 주(主)가 되면 내가 부(附)가 될 테니, 같이 해 보자'라고 제안하면, 지난 대선에 안철수 후보가 양보한 빚도 갚고 총선 승리도 만들 수 있다. 

두 사람은 살면 같이 살고, 죽으면 같이 죽는다. 문재인-안철수는 YS-DJ와 마찬가지다. 김영삼-김대중, 두 사람은 필생의 라이벌이었으나 협력할 때는 과감했다. 그럼에도 '80년 민주화의 봄'(5월 항쟁) 때 협력하지 않아 10년 이상 전두환-노태우 군사 정권이 군림했다.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이런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깨알같이 약한' 진보, '일상 정치'로 승부하라 

프레시안 : 책 <이철희의 정치 썰전> 상당 부분에 걸쳐 정치 제도를 이야기했다. 헌법재판소가 현행 선거구별 인구편차(3대 1)가 위헌이라며 2대 1 이내로 조정할 것을 권고하면서 국회의원 정수 확대 문제가 떠올랐다. 하지만 야당은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진보 진영이라면, 이런 의제를 부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철희 : "개헌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헌법재판소가 던져준 셈이다. 그런데도 야권 또는 진보 진영은 선거제도를 이슈화하는 데 소극적이었다. 지금의 선거제도에서 제2당으로서 누리는 이점을 놓기 싫기 때문이다. 제2당에 만족하는 순간 집권의 가능성은 멀어진다. (중략) 집권이 용이한 그림으로써 진보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바꿔야 한다."(106쪽) 

새정치민주연합과 정의당이 시민사회단체를 포함한 '선거법 연대'를 해야 했다. 국정화 반대 연대는 하면서 선거법 연대는 왜 못하는가. 안타깝다. 선거제도가 이번에 개편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결국 다음 기회를 다시 잡아야 한다. 2016년 20대 총선이 아닌, 2017년 19대 대선을 시작으로 2018년 지방선거와 2020년 총선을 염두에 두고 다시 고민해야 한다. 

'선거'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일상을 열심히 살다가 필요할 때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고 정치적 의사결정을 몇 년에 한 번 투표를 통해 국회 의석(seat)으로 전환한다. 이게 '선거제도'다. 따라서 표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시스템이 엉망이면, 민의가 제대로 표출되지 않는다. 이는 헌법보다 중요할 수 있다. 

지금 야권, 진보 진영은 정말 빈틈없이 깨알같이 약하다.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 어떤 것이 균형을 깨고 한순간에 전파되는 극적인 순간)에 와 있다. "경제에서 공짜 점심이 없다고 하듯, 정치에서 공짜 승리는 없다. 차분하게 또박또박 한 걸음씩 나아가야 한다. 진보를 표방한 정치 세력은 어젠다 세팅과 정치 기획을 보여주어야 한다. 반사이익이 아니라 실력으로, 선거가 아니라 일상 정치로 승부하라는 말이다."(287~28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