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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센진이라 벌줬다!" 학교폭력, 혐오범죄를 뛰어넘은 '도전하는 마음'

일본 교토 우토로에서 외조부모와 유아기를 보낸 '김창행'은 어머니가 사는 교토 시내로 건너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오카모토 마사유키'가 됐다. 어린 나이라서 재일코리안이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그는 "초등학생이 되면 모두 이름이 하나씩 더 생기네"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누군가가 자신의 실내화를 몰래 훔쳐 교내 수조에 빠뜨려 놓았던 일을 시작으로 "조센진"이라는 이유로 학교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폭력의 수위는 점점 높아져 초등학교 4학년 때는 6학년 형들에게 수시로 맞다가 급기야 미술용 조각칼로 팔을 난도질 당하는 일, 4층에서 돌이 든 알루미늄 양동이를 던져 맞을 뻔한 일까지 일어났다. 가해자였던 6학년 중 한 명은 교장실에 불려가자 "엄마가 조센진은 적이니까 벌을 주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구요!"라는 섬뜩한 항변을 늘어놓았다. 

재일코리안 3세인 저글링 프로퍼포머 창행 씨가 쓴 <도전하는 마음>(창행 지음, 한정윤 옮김, 나라이 카나이 펴냄)에서 발췌한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일본 사회에서 차별을 극복하고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도전해 '1등'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어릴 때부터 받았던 그는 2000년 열다섯이란 어린 나이에 저글링 세계 챔피언이 됐다. 그는 세계 엔터테이너 대회 3연패(2000, 2004, 2008), 2002년 시즈오카 길거리 예술 월드컵 최연소 인기투표 1위, 2010년 제50회 뭄바 페스티벌 최우수 퍼포먼스상, 2022년 라스베이거스 스타즈 콘테스트 우승 등 다수 수상 경력을 자랑한다. 노벨평화상 수상자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마이클 잭슨, 김정은 국무위원장 앞에서도 공연한 바 있다.

재일코리안으로서의 경험은 그를 프로 퍼포머로 돈을 많이 주는 공연장을 찾기 보다는 아프리카 빈민가, 팔레스타인 난민캠프 등을 찾아 공연을 하도록 이끌었다. 자신처럼 폭력과 차별에 시달리는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내가 창행 씨를 2006년 일본의 피스보트와 한국의 환경재단이 공동으로 주최한 '피스앤그린보트'에서 만나 인터뷰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연장선상이었다. (관련 기사 : 나는 일본인의 애국심과 투쟁하고 있다)

 

이 책은 2020년 일본에서 출간돼 베스트셀러가 됐다. 창행씨의 개인사를 통해 재일코리안들의 가슴 아픈 차별의 역사도 엿볼 수 있다. 그의 외조부모와 어머니는 모두 창행씨가 프로 퍼포머로 활동을 하기 위해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전까지 무국적자로 살았다. 일제 식민지 시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거주하게 된 교민 중 일부는 남한과 북한으로 조국이 분단됐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일본, 한국, 북한 어느 쪽의 국적도 취득하지 않고 살았고, 이들은 남한과 북한 어느 쪽의 편도 아니라는 의미에서 재일조선적, 지금은 재일코리안이라고 부른다.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을 극복하고 프로 퍼포머로 세계를 누비는 창행씨는 '혐오발언'에 대해 처음에는 "조선인에 대한 것이지 조선인의 문제가 아니라 (혐오 발언을 하는) 일본인의 문제"라고 거리를 두는 태도를 보이다가 혐오발언이 구조화된 차별 문제을 더욱 공고히 한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이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기로 했다. 다만 그의 저항 방식은 퍼포머답게 참신하고 유쾌했다. 그는 혐오발언 시위가 열리는 현장을 친구와 함께 찾아 집회에 참석한 청년들에게 접근해 소통을 시도했다. 이날 저녁 창행씨는 이 청년들과 한국식당에서 아는 친구들을 총동원해 함께 식사를 하고 술을 마셨다. 이렇게 가까워진 두명의 극우 청년들은 이후 한국 음식 매니아와 케이팝 팬이 됐다.

'도전하는 마음'은 일본 땅에서 차별에 저항하며 살아온 재일코리안들의 정신을 의미한다. 이 책의 저자 창행씨는 18년전 인터뷰에서 밝힌 꿈("세계 빈민가를 돌며 자선공연을 하고 싶다")을 실천하며 매순간 '도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도전하는 마음>, 창행 지음, 한정윤 옮김, 니라이 카나이 펴냄. ⓒ니라이 카나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