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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낙태권 50년만에 뒤집히나…트럼프 '문화전쟁'의 승리?

보수 우위 연방대법원, 낙태권 보장 판결 뒤집기 시도…11월 중간선거 주요 쟁점으로

미국 연방대법원이 지난 50년간 미국에서 여성의 임신중단권(낙태권)을 보장해온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 초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3명의 보수 성향의 연방대법관을 임명하면서 만들어진 보수 절대 우위의 연방대법원은 여성의 임신중단권을 보장하는 1973년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는 초안을 마련했다고 2일(현지시간) <폴리티코>가 보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3일 성명을 통해 "법의 기본적 공평함과 안정성 측면에서 판결이 뒤집혀서는 안된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연방대법원 판결 초안이 유출된 것, 대통령이 삼권분립에 반한다는 비판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연방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는 성명을 낸 것 모두 이례적이다.

여성의 임신중단 문제는 미국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를 가르는 첨예한 이슈 중 하나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이 보수 성향의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기 위해 집중한 '문화전쟁'(Culture War)의 핵심 이슈 중 하나다. 임신 6주 이후부터 사실상 모든 임신중단을 금지하는 '심장박동법'을 제정한 텍사스주를 포함해 공화당이 우세한 다수의 주에서 이미 임신중단을 금지하고 있다.

연방대법원 판결 초안 "로 대 웨이드 판례, 처음부터 터무니없이 잘못됐다"

<폴리티코>가 입수한 98쪽 분량의 '다수의견 1차 초안'에 따르면, '로 대 웨이드' 판례에 대해 "처음부터 터무니없이 잘못됐다"면서 여성의 임신중단권리를 재확인한 1992년 '가족계획연맹 대 케이시' 판례도 폐기해야 한다고 밝혔다. 초안은 "이 판례의 추론은 유난히 약했고, 그 결정은 해로운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임신중단에 대한 국가적 해결을 가져오기는커녕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분열을 심화시켰다"고 명시했다. (관련기사 바로가기)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이 집필한 이 초안은 "현법은 임신중단을 언급하지 않았다"며 임신중단은 헌법 조항으로 보호받을 수 없다고 밝혔다. 또 헌법은 각 주의 임신중단 규제나 금지를 금지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제는 헌법에 충실하면서 임신중단 문제를 선출된 대표들에게 돌려보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다수의견은 보수 성향의 대법관 5명(새뮤얼 얼리토, 닐 고서치, 브렛 캐비노, 에이미 코니 배럿, 클레런스 토마스)이 동조했고, 진보 성향 3명(스티븐 브라이어,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레나 케이건)은 반대했다. 보수로 분류되는 존 로버츠 대법원장의 의견은 초안에 없었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이 초안의 진위에 대해 확인했지만 이 초안이 최종적인 결정은 아니라고 말했으며, 대법원 대변인은 논평을 거부했다고 한다.

연방대법원은 6월말이나 7월초께 판결을 내릴 것으로 예상되며, 초안대로 '로 대 웨이드' 판례가 뒤집힌다면 임신중단권은 개별 주의 법률에 맡겨질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11월 중간선거에서 여성의 선택권 옹호하는 후보 선택해야"

바이든은 이같은 보도가 나온 직후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바이든은 "여성의 선택권은 근본적이라고 믿는다"라며 "법의 기본적 안정성 측면에서 뒤집혀선 안된다"고 말했다.

바이든은 "텍사스를 비롯해 여성의 출산권을 제한하려는 입법 시도 이후 행정부 차원에서 낙태와 출산권 공격에 대한 대응을 지시한 바 있다"며 "우리는 대응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만약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는다면 모든 선출직 공직자는 여성의 권리를 지켜야만 하고 유권자들은 11월 중간선거에서 이를 옹호하는 후보를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신중단 문제를 놓고 보수와 진보, 공화당과 민주당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을 지지하라는 의미다.

민주당 "1억명 여성의 권리가 투표용지에...다른 기본권도 제한될 수 있다"

민주당은 연방대법원이 임신중단권을 부정하는 판결을 내릴 경우, 이를 성문화하는 연방법 통과를 시도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를 통해 텍사스주와 같은 공화당 주의 임신중단금지법을 무력화시키겠다는 뜻이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3일 "오늘은 미국에게 어둡고 불안한 아침"이라며 "올해 11월 선거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것이다. 1억 명의 여성의 권리가 투표용지에 올려져 있다"고 말했다. 올해 11월 중간선거에서 상원 다수당 지위가 공화당으로 넘어갈 경우 연방법을 통한 임신중단권 보장이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양원제(하원, 상원)인 미국에서는 하원을 거쳐 상원에서 통과돼야 법이 최종적으로 제정된다.

바이든과 민주당은 또 임신중단권 제한이 또다른 기본권 제한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도 경고했다. 바이든은 "이는 사생활과 관련된 모든 다른 결정이 문제되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며 "미국 법체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진보진영에서는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원 다수당을 점하더라도 소수당이 법안 통과를 막을 수 있는 필리버스터를 없애지 않는다면 임신중단권을 보장하는 법안 통과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진보진영의 대표격인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상원에서 과반 이상(민주당 의원 50표 + 상원의장인 부통령)으로 통과시키기 위해선 필리버스터를 끝내야 한다"고 말했다. 필리버스터는 법안에 찬성하는 의원이 60명 이하일 때 소수당이 법안 통과를 지연시켜 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다.

임신 6주 이후 근친상간 피해자도 임신중단 금지, 임신중절시 최대 징역 10년

연방대법원에 의한 임신중단권 보호가 사라진다면, 연방 차원의 법안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개별 주의 법안이 우선적으로 적용될 수 밖에 없다.

임신중단권을 옹호하는 구트마허 연구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공화당이 행정부와 입법부를 장악한 26개주에서 임신중단을 제한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22개주(앨라배마, 애리조나, 아칸소, 조지아, 아이다호, 아이오와, 켄터키주, 루이지애나, 미시간, 미시시피, 미주리, 노스다코타, 오하이오, 오클라호마, 사우스캐롤라이나, 사우스다코타, 테네시, 텍사스, 유타, 웨스트버지니아, 위스콘, 플로리다)에서 이미 관련 법안을 마련해 놓았다. 4개주(인디애나, 몬테나, 네브라스카, 와이오밍)는 관련 법안 통과를 시도한 적이 있거나 논의가 이미 시작됐다고 구트마허 연구소는 밝혔다.

개별 주가 통과시킨 법안들의 수준도 과도하다. 텍사스주에서는 지난해 9월 일반적으로 여성이 임신 사실을 감지하기 어려운 임신 6주부터 임신중절을 금지하는 법안이 시행됐다. 근친상간이나 강간 피해자도 예외를 두고 있지 않다. 오하이오주에서도 임신 6주 이후 임신중절을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으나 주 대법원의 저지로 시행이 보류된 상태다.

미시시피주, 플로리다주, 켄터키주 등은 임신 15주 이후 임신중절을 금지하는 법이 통과됐다.

오클라호마주에서는 임신 여성의 목숨이 위험한 경우를 제외한 임신중단을 중범죄로 규정하고 최대 징역 10년에 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미국 연방대법원 앞에서 임신중단권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여성들. ⓒAP=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