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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종 대학살을 기리는 방식...바이든의 털사 방문 vs. 트럼프의 털사 방문

[워싱턴 주간 브리핑] '털사 대학살' 100주년과 미국의 감춰진 '잔혹사'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6월 1일(현지시간) 오클라호마주 털사를 방문한다. 올해 5월 31일은 '털사 인종 대학살(Tulsa Race Massacre)'이 일어난지 꼭 100년이 되는 날이다.

흑인 린치, 털사 대학살...숨겨진 흑인 대학살의 역사

1921년 5월 31일 백인들의 공격으로 '블랙 월스트리트'라고 불리던 털사 그린우드에서 1200여 채 이상의 건물이 불타고 약탈을 당했을 뿐 아니라 300명 이상의 흑인이 사망했다. 6월 1일 정오 계엄령이 발표됐지만 이미 그린우드의 번창하던 상업지구인 '블랙 월스트리트'는 폐허가 된 이후였다. 이 사태를 계기로 약 1만 명의 흑인들이 지역을 떠나야만 했다.

사건의 발단은 <털사 트리뷴>이란 신문에 실린 19세 흑인 소년이 17세 백인 소녀를 폭행했다는 기사였다. 이 기사를 보고 흥분한 백인 남성들은 흑인 소년이 구금돼 있던 경찰서로 몰려들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 남부지역에선 백인들이 범죄를 저지른(실제로 저지르지 않은 사람도 다수) 흑인들을 사적으로 목매달아 죽이는 '린치'(lynch, lynching)가 흔하게 일어나던 때였다. 이런 린치는 특히 남북전쟁 이후인 1890년부터 1920년대까지 횡행해 매년 50-100명이 처형됐으며, 민권운동이 불붙었던 1960년대 중반까지도 계속됐다. 흑인들에 대한 린치는 사전에 전단지 등을 통해 시간과 장소를 공개하고 참가비를 받는 일도 많았다. 이를 통해 수백명의 군중들이 모여들어 돌을 던지는 등 집단 구타를 한 뒤 공개적으로 목을 매달아 죽였다. 미국 터스키지 연구소에 따르면, 1882년부터 1968년까지 3446명의 흑인(백인 린치 피해자들도 1000명이 넘었다)이 불법적으로 처형됐다고 한다.

털사 대학살도 린치를 하려고 백인들이 모여들면서 시작됐는데, 이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폭동으로 비화됐다. 백인들은 눈에 보이는대로 흑인들을 상대로 주먹질을 하고 총격을 가했을 뿐 아니라, 흑인 소유 가게에서 약탈, 방화 등을 저질렀다. 폭동이 발생하자 경찰은 오히려 가해자인 수백명의 백인들을 특별 대리인으로 임명해 총기를 제공하는 등 오히려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이처럼 끔찍한 일이 발생했지만 털사 대학살은 오클라호마주가 1997년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릴 때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 위원회가 4년간의 조사를 거쳐 20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발표하면서 사건의 윤곽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에미상'을 수상한 미국 드라마 <왓치맨> 1회에 나오는 학살 장면이 털사 대학살을 묘사한 것이다.

표면적인 이유는 흑인의 백인 여성 폭행이었지만, 대학살로 비화된 근본 원인은 흑인들도 부를 형성하는 것에 대한 백인들의 거부감과 분노라고 할 수 있다. 진상조사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180만 달러 이상(현재 가치로는 2700만 달러)의 흑인들 소유의 부동산이 파괴됐고 이때 흑인들이 입은 경제적 손실은 아직까지도 전혀 회복되지 않았다. 1920년 털사에서 흑인과 백인이 주택 소유 비율은 엇비슷했지만, 현재 흑인들의 주택 소유 비율은 백인의 절반에 불과하다고 한다. 현재 털사에서 백인들이 연평균 가계 소득은 5만5448달러인데, 흑인들의 소득은 3만463달러에 그친다.

털사 대학살 생존자 레시 베닝필드 랜들(105세) 등 2명은 지난해 9월 털사시, 경찰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다. 이들은 "1921년 발생한 인종 차별, 경제적 불평등, 불안이라는 공공의 피해가 학살 후 99년이 지난 뒤에도 계속 되고 있다“며 소송 이유를 밝혔다. 

2020년 대선에서 흑인 유권자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바이든은 1일 털사를 방문해 당시 발생한 대학살 뿐 아니라 현재도 계속되고 있는 인종차별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밝힐 것으로 알려졌다. 

▲ 1921년 털사 대학살 당시 건물이 불타고 있는 장면. ⓒAP=연합뉴스

1년전 트럼프의 털사 방문...바이든과 정반대 메시지 

거의 1년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도 털사를 방문했다. 바이든과 정반대의 정치적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였다.

2020년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백인 우월주의를 내세웠던 트럼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폭증하던 지난해 6월 20일 털사에서 대규모 유세를 강행한 바 있다. 트럼프가 털사를 장소로 택한 이유는 자신의 지지자들이 결집해 있는 러스트벨트(쇠락한 중공업 지대)와 선벨트(보수적 기독교 신자들이 많은 남부 지역)가 만나는 지역이 오클라호마주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다분히 털사에서 일어난 대학살(백인들 입장에서는 흑인들과 전쟁에서의 승리)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처음엔 유세일도 '노예 해방일'인 '준틴스'(6월19일)로 잡았다가 비난 여론 때문에 하루 미루기도 했다. 당시 트럼프 캠프에서는 유세 참가 신청자가 100만 명이 넘는다고 자랑했지만, 알고보니 트럼프의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BTS(방탄소년단) 팬들을 포함한 10-20대 젊은이들이 '틱톡'을 이용해 '노쇼' 캠페인을 벌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흑인 대학살이 일어났던 도시에서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집결해 인종주의 정치 캠페인을 벌이려던 트럼프의 유세장에는 당초 기대의 10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6600여 명의 지지자들만 참석했다. 

▲1년전 털사에서 강행한 트럼프의 선거유세 . 당초 트럼프 캠프는 100만 명이 모일 것이라고 자랑했지만 6600여명이 참석해 행사장이 텅텅 비는 장면이 연출됐다. ⓒAP=연합뉴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60109121238012#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