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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탄핵 무죄'로 날개 단 트럼프에 휘둘리는 공화당의 앞날은?

[워싱턴 주간 브리핑] 공화당, ‘트럼피즘’ 늪에 빠져 극우정당화 되나

"일본 총리, 전직 총리들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 오해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에 반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는 지난 1월 6일 의회 폭동에 참여한 트럼프 지지자들의 태도와 다를 바가 없다. 이들이 얼마나 진실을 무시하고 거짓 정보를 주장하고 있는가?"

마이크 혼다 전 미국 하원의원(캘리포니아, 민주당)의 발언이다. 그는 지난 17일 하버드대 로스쿨 학생들이 주최한 온라인 토론회에서 아베 신조, 스가 요시히데 전·현직 일본 총리들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부인하고 있는 것을 지난 1월 6일 일어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의회 폭동에 비유했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역사적 사실에 대해 지속적으로 부정하며 '가상 현실'을 만들어 국민들을 현혹시키는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태도가 수차례의 재검표, 수십건의 소송 등을 통해 재확인된 2020년 대통령 선거 패배라는 객관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태도와 똑같다는 지적이다. 혼다 전 의원이 트럼프 전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을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대선 불복'의 주체는 트럼프 자신이다. 

혼다는 2007년 미국 하원에서 통과된 '일본군 위원부 결의안'(H.Res 121)을 주도했다. 이 결의안은 '1930년대부터 2차 세계대전 동안 아시아, 태평양 여러 섬 지역의 식민통치 및 전시 점령 당시 일본 제국군이 젊은 여성들을 강제적으로 "위안부"라고 일컬어지는 성노예로 동원한 바 있음을 일본 정부가 명확하면서도 번복 불가능한 방식으로 인정하고 사죄하며 역사적 책임을 받아들일 것을 촉구'하고 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가 이를 소재로 다뤘으며, 배우 나문희 씨가 당시 미국 의회에서 증언한 이용수 할머니 역할을 맡았다. 당시 이 할머니를 비롯해 3명의 피해자가 미 의회에 출석해 직접 증언을 했고, 이는 결의안 통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혼다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미국 대학(원)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지난 1월 6일 일어난 의회 폭동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너무나 딱 들어맞는 그의 비유와 설명은 반대로 전직 대통령으로 물러났음에도 여전히 현실정치에 개입하려는 트럼프와 그에 휘둘리고 있는 공화당이 미국의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시사해준다고도 할 수 있다.

아베 이은 스가, 일본 극우 정치인들의 잇단 '현실 부정' 

스가 총리는 지난 1월 8일 서울중앙지법이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일본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1억 원씩 지급하라고 명령하며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위안부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며 한국 사법부의 판결이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그는 "아베를 계승하겠다"며 정권을 이어받은 총리답게 위안부 문제에 대해 완벽하게 부인하고 나섰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1993년 '고노 담화'(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에서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인정하고, 1995년 '무라야마 담화'(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에서 식민 지배와 일본이 행한 전쟁 범죄에 대해 반성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담화도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사과,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책임 등에 대한 내용은 담기지 않았다.)

그러나 외할아버지가 'A급 전범'으로 복역했던 극우 정치인 아베는 총리로 있던 2014년 "고노 담화를 다시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서면서 본격적으로 '위안부' 문제를 부정했다. 

아베 정권은 집권 내내 '역사 왜곡'을 이어갔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매년 8월 15일 종전기념일에 야스쿠니 신사에 공물을 헌납하면서 일본이 입었던 피해에 대해서만 강조하는 발언을 하는 등 '가상현실'을 만들어나갔다.

아베가 꿈꾸던 일본의 미래는 패전 이전 일본 제국의 부활이었다. 그는 군사적 공격을 금지한 평화헌법 개정을 통해 군사력 행사가 가능한 보통국가로 전환을 주장했고, 이에 대한 반대를 무마시키기 위해 위안부 문제 등 전쟁 범죄를 '없던 일'로 만들어야 했다. 

트럼프, 탄핵 면죄부 받은 뒤 '기지개'...공화당 자중지란 

정의롭지 못한 '가상현실' 속에 지지자들을 가두고 이를 정치 기반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트럼프는 아베와 똑같다. 트럼프는 "선거 부정" 주장을 기반으로 열성 지지자들을 동원해 2020년 대선 결과를 뒤집고 재집권하려던 계획이 실패하면서 지난 1월 20일 퇴임했다. 퇴임 후 한 달 가까이 상대적으로 조용히 지내던 그는 지난 13일 미국 상원의 탄핵재판에서 의회 폭동과 관련된 '내란 선동' 혐의에 대해 최종 무죄 판결이 내려지자 다시 정치 전면에 나섰다.

트럼프는 이날 개인 성명을 내고 탄핵재판에 대해 "미국 역사상 최대의 마녀 사냥"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라는 우리의 역사적이고 애국적인 운동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라며 본격적인 정치 재개 입장을 밝혔다. 

그는 최측근 중 한명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을 통해 14일 "트럼프는 2022년 (중간선거)에 대해 들떠 있다"며 "라라 트럼프(트럼프의 며느리)가 공화당의 미래"라고 메시지를 전했다. 

이어 트럼프는 16일 현 공화당 1인자인 미치 매코널 상원 원내대표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성명을 냈다. 그는 "매코널은 완고하고 음침하며 웃음기 없는 정치꾼"이라며 "그의 정치적 통찰력과 지혜, 기량, 인격 부족은 자신을 다수당이 아닌 소수당 리더로 전락시켰다"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특히 "공화당이 매코널과 함께 한다면 승리하지 못할 것"이라며 "우리는 훌륭하고 강력하고 사려 깊고 공감을 할 줄 아는 리더십을 원한다"고 강조했다. 2022년 중간선거를 매코널이 아닌 자신이 주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트럼프가 매코널을 집중 공략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매코널은 13일 탄핵재판 표결에서 반대(무죄) 표를 던졌지만, 이후 본회의장 연설에서 트럼프에 대해 "실질적으로, 도덕적으로 책임이 있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자신에 대해 어떤 방식으로든 반기를 든 정치인들에 대한 '복수' 차원이다. 

둘째, 공화당 주도권 싸움이다. 탄핵재판에서 '유죄' 표결한 의원들은 50명의 공화당 상원의원 중 7명에 그쳤지만, 이번이 역대 탄핵재판 중 대통령이 속한 정당에서 가장 많은 이탈표가 나왔다. 트럼프 임기 중에 있었던 하원의 탄핵소추안 표결 때에도 10명의 공화당 의원이 찬성표를 던졌다. 대선 불복 사태와 그 정점에 있었던 의회 폭동을 계기로 공화당 내에서는 '탈 트럼프'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트럼프 정권 당시에도 '링컨 프로젝트'(링컨 정신이 공화당 정신임을 강조하며 트럼프 재선에 반대하던 공화당 온건파 조직) 등 트럼프의 정치 노선에 반대하던 '네버 트럼퍼'(트럼프 반대론자)들이 있었지만, 트럼프 임기가 끝난 뒤 '트럼프 충성파'들에 맞서 주도권 싸움이 가시화되고 있다. 트럼프는 자신에게 반기를 든 매코널을 짓밟고 자신이 공화당의 중심임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트럼프 '가상현실'의 핵심, 백인민족주의 

탄핵재판 표결에서도 드러났듯이 공화당은 아직 트럼프의 자장에서 벗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폴리티코>와 여론조사전문기관인 '모닝컨설턴트'가 지난 1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들(600명 대상) 중 59%가 '트럼프가 공화당에서 주요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답했다. 이들은 또 '오늘이 2024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뽑는 날이라면 누구를 뽑겠냐'는 질문에 54%가 트럼프를 택했다. '지난 1월 의회 폭동과 관련해 '트럼프가 책임이 있다'고 답한 이들은 27%에 불과했다. 

또 의회 폭동과 관련해 트럼프 탄핵에 동조한 공화당 의원들(하원의원 10명, 상원의원 7명)의 다수가 자신의 지역구에서 트럼프 지지자들로부터 '불신임' 등 거센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트럼프는 17일 퇴임 후 첫 언론 인터뷰에서 '선거 사기' 주장과 '2024년 대선 재출마 의지'를 거듭 밝혔다. 그는 이날 <뉴스맥스>와 인터뷰에서 2024년 대선 출마에 대해 "말하기 너무 이르지만 여론조사 결과들이 좋다"며 "지붕을 뚫고 있는 지지율을 보고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폭스뉴스>와 인터뷰에서는 지난 대선과 관련해 "우리가 크게 이겼다고 본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이날 자신의 강력한 지지자였던 극우 방송인인 러시 림보가 사망한 것과 관련해 보수매체와 연달아 인터뷰를 가졌다. 

트럼프가 기반하고 있는 '가상현실'의 요체는 백인 우월주의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MAGA)'이라는 트럼프의 선거 구호는 '과거의 위대했던 미국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의미다. 여기서 '과거'는 짧게는 트럼프의 전임인 '오바마 정부 이전', 길게는 '남북전쟁 이전' 까지 내려갈 수 있다. 트럼프 집권 후 극우세력 결집의 결정적 계기가 됐던 2017년 '샬러츠빌 폭동'의 원인을 살펴보면, 극우세력들이 그리워하는 '과거'는 노예가 존재하던 '남부연합' 시절임을 알 수 있다. 당시 버지니아주에서 인종차별을 해소하고 역사를 바로잡기 위한 차원에서 샬러츠빌에 있던 남부연합의 리 장군 동상을 철거하려고 했다. 이에 격분한 백인 극우세력 2만여 명이 총으로 중무장하고 몰려들었고, 이들과 동상 철거를 지지하는 좌파 운동세력이 충돌해 좌파 운동가 중 1명이 사망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트럼프는 당시 극우세력들을 감싸는 발언을 했고, 이 사건을 계기로 백인 극우인종주의자들은 전국 각지에서 정치집단화 됐다. 이들 정치집단이 일으킨 사건이 지난 1월 6일 의회 폭동이라는 점에서 2017년 샬러츠빌 폭동과 2021년 국회의사당 테러는 '한몸'이다.

미국 유권자들은 2020년 선거를 통해 트럼프라는 '극우 정치지도자'를 아웃시켰다. 그가 기생하던 공화당은 대선 뿐 아니라 상원선거, 하원선거에서 모두 졌다. 트럼프가 만들어낸 '가상현실'과 달리 실제 현실에서 트럼프와 공화당은 선거에서 졌으며, 소수당으로 전락했다. 15일 퀴니피액대학이 발표한 전국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5%는 트럼프가 2024년 대선을 포함해 공직선거 출마 자격을 박탈해야 한다고 답했다. 유권자 다수는 트럼프의 재출마에 반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와 백인우월주의자(민족주의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위대한 미국'은 아베가 꿈꾸던 '전후 체제를 극복한 일본'과 닮아 있다.

공화당은 선택의 기로에 서있다. 국민들이 선거를 통해 어렵게 도려낸 '트럼프'라는 극우 정치인에게 다시 휘둘려 극우정당화 되는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 전 대통령의 정신을 되살려 건강한 보수 정당의 뿌리를 되찾을 것인가. 공화당 정치인들이 과연 백인우월주의의 망령과 싸울 수 있을까. 

▲ 지난 15일 '대통령의 날'(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 생일)에 트럼프를 보기 위해 플로리다 마러라고로 모인 지지자들. ⓒAP=연합뉴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21907354786248#0DKU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