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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바이든 취임식에서 '샌더스 털장갑'이 큰 화제가 된 까닭은?

[워싱턴 주간 브리핑] 바이든 정부에 대한 기대 vs. 뒤따르는 저항들

이제 막 출발선에 선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취임식과 그 이후 행보를 통해 전임인 트럼프 행정부와 분명한 차별성을 보여주고 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은 20일(현지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트럼프 지지자들에 의한 의회 폭동의 여파로 '무관중' 취임식으로 진행됐지만, 그 면면을 보면 백인 인종주의와 극우를 상징하는 트럼프 정권 4년 동안 억압 받았던 2021년 미국의 또 다른 '오늘'을 확인하는 자리였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부통령, 첫 흑인이자 아시안계 부통령이라는 역사를 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취임 선서 장면은 '백인 남성'(특히 수십건의 성범죄 의혹이 제기된 남성)이 이끌던 시대의 종말을 별다른 설명 없이도 분명히 보여줬다. 흑인 여성이 라틴계 여성 대법관 앞에서 미국의 부통령으로서 맡은 책임을 다하고 헌법을 수호하겠다고 맹세했다. 지난해 대선 승리 선언 행사에 과거 서프러제트(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의 상징생인 흰색 정장을 입었던 해리스는 취임식에는 보라색 정장을 입었다. 보라색은 공화당의 상징색인 빨간 색과 민주당의 상징색인 파란 색을 섞은 색이다. 

미국 국가를 부른 가수 레이디가가는 평화를 상징하는 황금색 비둘기 브로치를 통해 화합과 평화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히스패닉계 영화배우이자 가수인 제니퍼 로페즈는 축가를 부른 뒤 스페인어로 축하 인사를 전했다. 카우보이 모자와 부츠 등 전형적인 컨트리 가수 복장을 하고 무대에 올라 '어메이징 그레이스'를 부른 브룩스는 공화당 지지자이지만, "분열에 매우 지쳤다"며 기꺼이 민주당 대통령 취임식에서 축하 공연을 했다. 

이날 취임식 참석 인사 중 바이든이 정부가 트럼프 4년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는 과제를 누구보다 잘 보여준 사람으로 평가 받는 이는 22세의 흑인 여성 시인 아멘다 고먼이었다. 고먼은 바이든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 언어 장애(말 더듬증)이 있었는데 이를 극복하고 2017년 미국 의회도서관이 주최한 '전미 청년 시 대회'에 참가해 수상했다.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인 질 바이든 영부인이 당시 고먼을 눈여겨 봤다가 이번 취임식 축시를 낭독할 시인으로 추천했다고 알려졌다. 고먼은 지난 6일 의회 폭동을 보고 쓰게 됐다는 자작시 '우리가 오르는 이 언덕(The hill We Climb)'은 이날 취임식의 주제이자 바이든 정부가 직면한 정치적 과제이기도 한 '통합과 화합'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다. 

▲ 바이든 취임식에서 축시를 낭독하고 있는 고먼 시인. ⓒAP=연합뉴스

"우리는 나라를 함께 공유하지 않고 나라를 찢으려는 힘을 목도했다...그러나 민주주의는 잠시 멈출 수 있어도, 영원히 패배할 수는없다는 것도 목도했다...빛은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가 그 빛을 직시할 용기가 있고, 스스로 그 빛이 될 용기가 있다면." 

시 낭독 전에 자신을 "노예의 후예이자 깡마른 흑인 소녀"라고 소개하기도 한 고먼은 열성적인 인종차별 철폐 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로 알려졌다. 고먼은 "203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서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취임일 저녁 행사에 턱시도를 입고 등장한 대통령의 딸 애슐리 바이든도 젊은 여성들의 찬사를 받았다. 애슐리 바이든은 검은 턱시도에 묶지 않은 나비 넥타이, 뒤에서 하나로 묶은 머리로 공식 석상에 등장했다. 이런 모습은 전임 대통령의 딸 이방카 트럼프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자신 뿐 아니라 남편인 제러드 큐슈너까지도 백악관에서 보좌관으로 일했던 이방카와 달리 애슐리는 백악관에서 공식 직함을 맡을 계획은 아직 없다고 한다. 다만 영부인인 질 바이든이 노던버지니아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교수직을 계속 맡을 것으로 알려지면서 영부인이 하는 일들(행사 참여, 귀빈 응대, 백악관 내부 장식 등)을 도울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언론에 알려졌다. 

▲취임일 저녁 파티에 턱시도를 입고 참석한 조 바이든 대통령의 딸 애슐리 바이든. ⓒ 트위터 갈무리

샌더스의 털장갑, 대중들이 열광하는 의미는? 

바이든 취임식에 연단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아직까지도 계속 화제를 모으고 있는 이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이다. 취임식 관중석에서 두터운 점퍼에 털장갑을 끼고 앉아있던 샌더스의 사진은 다양한 '밈'(meme : SNS에서 유행해 다양한 모습으로 복제되거나 패러디된 사진이나 영상)으로 재탄생했고, 샌더스 사진을 다른 사진에 합성해 '밈'을 만들어 주는 앱마저 만들어졌다. 

샌더스는 2020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바이든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였다. 2016년 민주당 대선 경선 때도 '돌풍'을 일으켰지만 힐러리 클린턴에게 후보 자리를 내줘야 했던 그는 트럼프 재집권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위해 2020년 대선 경선에서도 중도 사퇴해야만 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등 민주당 중도 진영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샌더스로는 트럼프를 상대로 본선 승리를 담보하기 어렵다며 바이든으로 몰아주는 물밑 작업을 벌였다는 설도 파다했다.) '메디케어 포 올'(전국민 의료보험), 그린 뉴딜(기후변화 관련 정책) 등 진보적 정책을 내세운 샌더스는 민주당 주류이자 중도를 대표하는 바이든과 정치 철학과 정책이 확연히 다르지만, 지난 대선에서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바이든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그러나 대선 승리후 바이든 정부의 요직은 '오바마 정권 사람들'로 분류될 수 있는 중도진영의 사람들이 독식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온다. 민주당 경선에 함께 했다가 바이든 지지를 선언하며 사퇴한 카멀라 해리스는 러닝 메이트로 지명돼 부통령이 됐고, 피트 부티지지 전 사우스밴드 시장은 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에이미 크로버샤 상원의원은 이날 취임식 사회자로 등장했다. 진보진영인 샌더스와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은 의회에 남았다.

샌더스가 이날 취임식 연단이 아니라 관중석에 앉아 있는 모습은 처음에 지지자들에게 안타까움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취임식 연단에 오른 인사들의 화려한 복장과 대비되는 소박하지만 가장 실용적인 복장을 한 샌더스의 모습은 그의 정치 철학을 보여주는 또 다른 상징으로 인식되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샌더스가 낀 털장갑은 2년 전 한 지지자가 폐플라스틱으로 재생한 친환경 털실로 직접 떠서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샌더스는 화제를 모은 자신의 취임식 복장에 대해 자신의 지역구인 버몬트는 겨울에 매우 춥다는 것을 얘기하면서 "버몬트 사람들은 따뜻하게 입는다"고 웃으며 답했다.

'샌더스 밈'은 바이든 정부에서도 여전히 유효할 '샌더스 정치'에 대한 기대와 응원이 담겼다고 보여진다. 대통령 취임식에도 털장갑을 끼고 나타난,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서민들을 위한 정치를 계속할 한결 같은 샌더스에 대한 찬사와 박수다. 샌더스는 소셜 미디어에서 '밈' 놀이를 하는 청년층의 현실에 대해 가장 목소리를 높여온 정치인이기도 하다. 

샌더스는 민주당이 다수당이 된 상원에서 예산위원장을 맡아 예산안 통과에 중요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게 됐다. 예산위원장은 상원 가결에 필요한 60표가 채워지지 않아도 단순 과반으로 개별 예산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조정권'을 행사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는 샌더스가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자신의 진보적 정치 이념을 구현할 다양한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바이든 취임식에 참석한 샌더스 상원의원. ⓒAP=연합뉴스

공화당, 바이든 각료 인준-코로나 부양책-이민법 개혁 등에 '딴지' 시작 

이런 '문화적 코드'를 통해 시대 착오적이었던 전임 정권에 '한방'을 시원하게 날리는 데는 성공했지만, 바이든 정부를 기다리는 것은 엄연히 트럼프와 그 지지세력들이 팔짱을 끼고 지켜보는 현실이다. 

공화당에서 당장 제동을 거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치 매코널 상원 공화당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공화당은 바이든과 협력할 의사가 있지만, 자신들이 지지하지 않는 법안들을 차단하는 것 또한 꺼리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민주당이 상식에서 벗어나거나 물러날 때, 그들의 제안이 공공의 이익을 해칠 때, 공화당은 미국 국민들이 우리에게 준 힘을 이용해 옳은 것을 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상원과 하원 모두 민주당이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지만, 상원에서 법안 처리를 방해하기 위해 시간을 끄는 필리버스터(소수파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 중 하나다)를 제지하기 위한 정족수는 60명이다. 상원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이 각각 50석을 차지하고 있고 상원의장인 해리스 부통령까지 합치면 민주당이 51표로 다수당이지만 공화당이 필리버스터를 할 경우 막을 방법이 없다. 

게다가 공화당 원내대표인 매코널은 "오바마 정부를 사실상의 단임 정부로 만들었다"는 평가까지 받는 노회할 대로 노회한 정치인이다. 매코널은 오바마 정권에서 공화당이 상원 다수당이 된 뒤 오바마 정부의 주요 정책과 인사를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로 철저하게 방해한 인물이다. 

공화당이 '딴지'를 걸고 나선 부분은 크게 3가지다. 첫째, 상원에서 트럼프 탄핵재판이 열리는 시점을 2월 이후로 늦출 것, 둘째, 1조9000억 달러에 달하는 바이든표 코로나19 구제정책, 셋째, 이민개혁 정책 등이다.

이런 가운데 공화당은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는 바이든 각료 인준을 무기로 트럼프 탄핵재판 연기를 강하게 요구하고 나섰다. 취임 첫주 상원에서 인준된 바이든 내각은 2명(국가정보국장, 국방장관)에 그쳤고,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과 재닛 옐런 재무부 장관도 아직 인준을 통과하지 못했다. 

결국 민주당은 한발 물러설 수 밖에 없었다. 상원 다수당(민주당) 원내대표인 척 슈머는 매코널 대표와 회동을 하고 23일 트럼프 탄핵재판을 2월 9일 이후로 미루겠다고 발표했다. 

또 일부 공화당 지지자들은 바이든이 취임사에서 '백인 우월주의'에 대해 비판한 것에 대해 비판했다. 바이든은 "정치적 극단주의, 백인 우월주의, 국내 테러리즘의 등장에 맞서야 하며 우리는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해 터커 칼슨 폭스뉴스 앵커 등 보수 인사들은 "무엇이 백인 우월주의냐"고 반문하면서, 트럼프 정부의 정책은 '백인 우월주의'가 아니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12300264798443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