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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노무현

노무현과 정몽준이 손 잡는다면···(2002.7.26)

정몽준 의원이 25일 여의도 민주당사를 방문 한화갑 대표와 만났다. 월드컵 이후 정 의원의 주가가 뜨고, 민주당 내에서 공개적인 '영입론'이 거론된 이후 첫 만남이다. 

이날 만남은 정 의원이 월드컵조직위 공동위원장 자격으로 이연택 공동위원장과 함께 월드컵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지원해준 데 대한 감사방문 형식으로 이뤄졌다. 정 의원은 최근 월드컵 개최 도시 순방과 아울러 지난 23일 자민련을 시작으로 각 정당을 감사방문 중이다. 이날이 민주당 순서였던 셈이다. 형식상 자연스런 만남이다. 

그러나 이날 두 사람은 의미심장한 대화를 주고 받았다. 

***한화갑 대표, "정 의원이 노 후보 성원해 달라"**

대화의 시작은 덕담이었다. 
먼저 정 의원이 사의를 표하며 "축구팀은 4강을 달성했으나 민주당은 4강이 아니라 정책여당으로서 더 잘해 나라를 잘 이끌어주기 바란다"고 덕담을 건네자 한 대표는 "월드컵 4강도 축하할 일이지만 정 의원의 일취월장이 보장된 월드컵이 아니냐"며 "월드컵 수혜를 제일 많이 받은 분이 됐다"고 화답했다.

정 의원이 "히딩크 감독이 제일 많이 받고 난 나머지를 받았다"고 응대하자, 한 대표는 다시 "히딩크 감독 바람에 여러 사람이 출세하고 특히 정 의원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기도 했다.

곧바로 영입론이 터져 나왔다. 
유용태 사무총장이 한 대표에게 "정 위원장을 모셔다가 당에서 특별히 예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보시죠"라고 제의하자 정 의원이 "대표님이나 총장님이나 최고위원님들 모두 평소 존경하고 있는데 여러분들이 바빠 잘 뵙기 어려운 게 문제"라고 넘어가려 했고, 한 대표는 "아니다. 만나자고 연락하면 우리는 시간을 낼 수 있다"고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피차 '덕담' 수준에서 주고 받은 얘기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고, 다른 한편 앞으로의 만남에 대한 고리를 걸어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날의 가장 미묘한 대화가 오간다. 

한 대표가 "우리 당이 노 후보를 앞세워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정 의원이 관심을 갖고 성원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고, 이에 대해 정 의원은 "노 후보가 쓴 `노무현이 만난 링컨'이란 책을 읽고 노 후보가 `정의를 세우고 성공도 하겠다'고 쓴 데 대해 `노 후보의 정의가 성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독후감을 써서 인터넷 홈페이지에도 올린 일도 있다"고 답했다. 

노무현과 정몽준. 두 사람의 연대 가능성을 암시하는 첫 발언이 나온 셈이다. 

그간 민주당 내에 등장한 '영입설'은 '노무현 대안론'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노무현으로는 12월 대선에서 안 될 것 같으니 다른 사람을 영입해 내세우자는 것이며, 정몽준은 그 첫번째 대상이었다. 다시 말해 노무현의 '대체재'가 정몽준이었다. 

그러나 노무현과 정몽준을 '대체재'가 아닌 '보완재'로 볼 수는 없을까.

***노 캠프, '노무현 + 정몽준 카드'의 상승효과 노린다**

지난 7월초로 거슬러 가 보자. 노 후보가 중립내각과 반부패입법을 위한 후보회담을 제안한 기자회견 직후다. 당시 노 후보 캠프의 한 핵심 관련자는 정몽준 의원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정몽준과 손 잡으면 어떨까" "다 들어와서 경선 다시 하자고 하면 어떨까"라는 등등의 얘기가 흘러 나왔다. 그리고 실제 지난 10일 노 후보는 "정몽준 박근혜 누구든 도전 받겠다"며 '완전개방형 후보재경선'을 제안하는 카드를 던졌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구상의 배경이다. 

'완전개방형 후보재경선' 카드는 노 후보가 당내의 각종 '영입설' '노무현 대안론'에 맞서 내놓은 카드다. 안팎에서 노 후보를 흔들지 말고 영입대상으로 검토될 사람이라면 누구든 당에 들어와서 재경선을 치르자는 제안이다. 후보로서의 기득권을 버리고 다시 경선에 임할 수 있다는 맞대응이다. 

언뜻 보기엔 노 후보가 정몽준 의원을 '적수'로 여기고 있는 듯 읽힐 수 있다. 하지만 이 구상의 배경에 깔린 것은 '노무현+정몽준 카드의 상승효과"다. 노 캠프에선 정몽준 의원을 노 후보의 '적수'가 아닌 '보완재'로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몽준 의원이 스스로 당에 들어와 노무현 후보를 지지해 준다면 더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안 된다면 재경선을 통해 승부를 겨뤄 이긴 자에게 승복하는 모양새로라도 두 사람의 연대를 이루자는 것이다. 

여기에 박근혜 의원까지 포함된다면 '새로운 정치를 하는 50대의 모임'을 만들 수 있다. '노풍'을 일으켰던 주된 힘은 '새로운 정치를 향한 국민적 바람'이다. 정몽준 박근혜에 대한 지지 역시 '새 정치'를 향한 바람의 또 다른 표현이다. 

이러한 국민적 바람을 한데 모아 상승효과를 거둘 수 있다면 이번 대선을 구정치 대 새정치의 대결구도로 몰아가 승리할 수 있다는 구상, 이것이 노무현 후보가 던진 '완전개방형 후보재경선' 카드의 속 생각이다. 

***'민주당 추대' 원하는 정몽준, 조만간 선택 내려야**

정몽준 의원은 이에 대해 아직은 반대다. 정 의원은 지난 16일 민주당 재경선 참여에 부정적인 뜻을 밝혔다. 

"민주당 경선은 국민경선이 성공한 제도로, 이를 가볍게 생각해도 되느냐 하는 것이 국민 생각"이라며 "국민과 (민주당) 국회의원 전체가 참여했던 행사에서 어느 분이 선출됐는데, 여론조사 결과가 오르내린다고 다시 (경선을) 한다고 하고, 내 이름이 거론되는 것은 국민경선 취지에 맞지 않고 자연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 입당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도 동시에 내놓았다. 

"미국의 경우 케네디 가문 등 부자들이 공화당이 아닌 민주당에 들어가고 있다. 우리도 미국처럼 신분에 제약받지 말고 부자일수록 진보정당에도 들어가야 정당이 의미있고 정치가 재미있다"는 표현이었다.

정 의원의 이러한 표현은 그날 처음 등장한 게 아니다. 그는 수시로 이런 표현을 구사했다. 사실 현재 정치구도에서 정 의원의 선택은 민주당 쪽일 수밖에 없다. 

보수 쪽을 장악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이회창 후보체제로 굳어진 지 오래다. 자민련은 거들떠 볼 가치가 없을 정도로 취약하다. 민주당 아니면 독자 창당인데, 손쉬운 쪽은 민주당에 영입돼 후보로 추대되는 길이다. 

현재 한참 상승세인 정 의원은 일단 '민주당 추대' 카드를 바라고 있다. 8.8 재보선 이후 민주당 사정이 복잡하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하지만 재보선 이후 민주당이 노 후보체제를 굳히거나 혹은 분당 사태로 치달을 경우 정 의원도 선택을 내려야 한다. 노 후보와 함께 하거나, 아니면 쪼개진 다른 한편에 합류하느냐의 선택이다. '노+정 카드'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25일 이뤄진 정몽준 의원의 민주당 방문, 이런 점에서 더더욱 의미심장하다. 

이날 민주당 방문에 앞서 정 의원은 "민주당에서 영입을 제의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란 기자들의 질문에 "안 받는 것보다는 좋지. 오라는 데가 있는 게 없는 것보다 나은 것 아니냐"면서 "그러나 구체적인 권유를 받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구체적 권유'가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권유를 하는 쪽은 노 후보 쪽일까, 아니면 반노(反盧)진영일까. 그때 정 의원의 대답은 무엇일까. 흥미진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