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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송언석 사태'와 한부모 가족의 시민권

[기자의 눈] 국가 예산이란 무엇인가


이달 초 제주도 해안가에서 3세 여아의 시신이 발견됐다. 그리고 3일 뒤 33세의 엄마(A씨)까지 정반대 방향의 바닷가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 수사 결과, A씨는 경기도에서 미혼한부모로 조부모와 함께 생활하다 딸을 데리고 제주도로 왔다. 이들 모녀가 3일 동안 묵었던 제주의 숙소에서 번개탄을 피운 흔적이 발견됐다고 한다. 아직 수사가 완결되지는 않았지만 생활고를 비관한 자살일 가능성이 높다고 경찰은 보고 있다. (관련 기사 바로 보기)

지난 4월 충청북도 증평군의 모 아파트에서 40대의 한부모 B씨와 네살 된 딸이 숨진 지 두달 가량 만에 발견되는 일도 있었다. B씨는 유서에 "혼자 살기 너무 힘들어 딸과 함께 간다"는 말을 남겼다. 남편이 1년 전 자살한 뒤 생활고와 빚 독촉에 시달려 왔던 그는 자살한 뒤 두달 만에 발견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사 바로 보기) 

"올해에만 미혼한부모 3명이 자살했습니다." 

변화된 미래를 만드는 미혼모 협회 '인트리' 최형숙 대표가 28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최근 자유한국당 송언석 의원이 한부모가족 시설 지원 예산 전액 삭감을 주장하면서 한부모 가족 관련 논란이 뜨겁다.  


송 의원은 지난 25일 국회 예산결산특위 소위에서 61억 원 규모의 한부모가정 시설 지원 예산 전액 삭감을 주장했다. 송 의원은 "한부모가정의 어려운 환경과 상황엔 동의하지만 국가가 책임지는 것은 곤란하다"며 전액 삭감을 주장했다. 이에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예산을 삭감해야 한다는 것은 비정해 보인다"고 비판하자, 송 의원은 "아픈 부분이 있다고 해서 국가가 다 책임질 수 없다"며, "비정하다"는 발언을 취소하라며 맞섰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송 의원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고, 송 의원은 결국 27일 "한부모가족 복지시설 지원 사업’ 예산 삭감과 관련해 상처받은 분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는 입장문을 내면서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송 의원의 사과로 예산 삭감 사태는 일단락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한부모가 양육과 생계, 가사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이들을 위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한 현실의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저소득 가정에만 월 13만 원 양육비 지원하는 현실, 송언석 의원은 알까?


송 의원이 예산 전액 삭감을 주장하면서 "한부모가정의 어려운 상황을 국가가 왜 책임지냐"는 말은 우리 사회가 이들의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현재 한부모가정에 대한 직접 지원은 저소득(월 148만 원) 가정의 만 14세 미만 아동에게 월 13만 원의 양육비를 지원하는 것이 전부다. (만 24세 미만의 청소년 한부모의 경우, 아이가 만 5세 이하일 경우 자녀 1인당 월 5만 원의 추가 양육비를 받을 수 있다.) 

때문에 상당 수의 한부모가정이 소위 '복지 사각지대'에서 양육, 생계, 가사라는 '삼중고'를 오롯이 혼자 해결해야만 한다. 앞서 언급한 증평의 한부모가정도 남편이 죽으면서 1억5000만 원이나 되는 빚을 남겼고 별다른 소득이 없었지만, 매달 딸에게 지급되는 가정양육수당 10만 원이 그가 받은 지원의 전부였다. 보증금이 1억2500만 원인 임대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다는 이유로 더이상의 복지 지원을 받지 못했다. 그는 건강보험료가 5개월이나 체납됐지만 '5만 원 이하 6개월 이상' 밀려야 하는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긴급복지지원 명단에도 오르지 못했다고 한다.  

취재 과정에서도 기자는 유사한 사례의 한부모를 만났다. 그가 지적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남편이 죽은 지 7개월 됐습니다. 아이는 33개월, 14개월 둘입니다. 남편이 갑자기 죽고 나니 슬퍼할 겨를도 없이 제가 가장 먼저 해야할 일은 두 아이와 함께 살 방도를 알아보는 일이었습니다. 이 일을 당하고 알았는데 제가 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저소득(월 148만 원)이라는 것을 증명을 해야 한 달에 13만 원을 지원해 주더라구요. 저소득이 안 되면 한 푼도 안 줍니다. 저는 전업주부로 살다가 남편이 아무 것도 남긴 것 없이 죽었고, 그나마 남긴 재산도 사업 빚 때문에 아무 소용이 없고, 소득이 0원이었는데, 아무도 저를 돌아봐주지 않더라구요.

그런데 제가 아이를 포기하고 입양을 보내면 입양가족에는 입양수수료 270만 원도 지원해주고, 매달 15만 원의 양육수당과 20만 원의 심리치료비, 의료비도 전액 지원해줍니다. 또 제 아이를 위탁 가정에 보내면 그 가정에는 월 67만 원을 지원해줍니다. 입양가정이나 위탁가정의 지원은 소득에 상관없이 다 줍니다. 또 보육원에 보내면 아이 1명당 월 160만 원을 지원해줍니다. 저는 그런 혜택 아무 것도 없습니다...저처럼 아이를 혼자 키우고 있지만 저소득이 아니라는 이유로 어떤 양육지원도 못 받는 이런 사람들을 복지의 '사각지대'라고 하던데, 사각지대라는 말은 정말 온화한 말이고, 그냥 죽으라는 말인 것 같습니다." (관련 기사 바로 보기 

"한부모가족의 문제는 국가가 해결해야할 문제다" 

송 의원의 발언이 알려진 뒤, 그에게 쏟아진 비난은 한부모가족의 문제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한 사회 구성원이자 시민으로 성장할 아동의 양육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국가가 져야 한다는 공감대가 그만큼 확산됐다는 의미라는 점에서 참으로 다행이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와 이를 반영한 정책은 아직 아동 양육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고 있다. 결혼 외 출산에 대해선 출생신고 과정에서부터 차별하는 등 미혼한부모과 그 자녀에 대한 '낙인찍기'가 여전히 존재한다. 그간 한국은 미혼한부모 가족의 존재를 은폐하고 비가시화함으로써 이들의 문제에 대한 책임을 개인에게 돌려왔다. 미혼한부모 가족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통해 이들이 동등한 '시민'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이들에 대한 국가 책임을 회피해오면서 국가 재정을 아끼는 경제적 이득을 취해왔던 셈이다. 송언석 의원이 "가뜩이나 부족한 국가 재정"을 운운하며 이들에 대한 예산을 삭감하자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생각의 반영이다. 그런데 미혼모 가족에 대한 정책의 부재는 이제 미혼모 개별 가족의 위협을 넘어 국가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2017년 현재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1.05명으로 세계 제일의 저출산 국가가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자유한국당 송 의원의 '막말'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정의당 등 타당 정치인들의 비판은 정략적 언술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정치적 실천이 되어야 한다. 이번에 전액 삭감될 뻔한 예산은 한부모가정 지원 '시설'의 보육 지원에 관한 예산이다. 송 의원이 막무가내로 이 예산을 삭감하자고 나선 배경에는 이 예산이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예산(시설 지원 보육교사 충원)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상처를 내야 한다는 '정략적 계산'에 따른 것이었다.   


현재 미혼한부모 가정은 약 3만3000 가정(미혼모 가정 2만4000여 명, 미혼부 가정 9000여 명)으로 추정된다. 이들 중 전국 125개 한부모시설에서 거주 중인 만 12세 이하의 아동은 2000여 명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미혼한부모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재가 양육 미혼한부모들은 이번에 지켜진 61억 원의 예산의 직접적인 수혜자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양육 미혼한부모 가정에 대한 지원을 어떻게 늘릴 것인지 정치권은 '송언석 사태'를 계기로 고민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