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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여성혐오는 현상이 아니라 구조다"

[전홍기혜 기자의 세 가지] 우에노 치즈코가 말하는 신자유주의적 가부장제의 작동 원리

 

"많은 남성들이 '여성혐오'라고 하면 '나는 여성을 좋아한다. 사랑한다'면서 이를 부정한다. 여기서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표현을 존경한다로 바꿀 수 있는가 묻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은 상대방에 대한 존경을 포함한다. 남성들이 말하는 '여성을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말의 뜻은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서의 여성을 말한다."

지난 해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한국 사회를 강타한 화두 중 하나가 '여성혐오(misogyny·미소지니)'다. "여자라서 죽였다"는 살해범의 말에 많은 여성들은 분노했고, 강남역 앞의 추모의 물결은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의 물꼬를 텄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다. '페미니즘'을 둘러싼 극단적 대립 구도와 감정적 반발은 사회적 합의점을 찾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과제가 아닐까 의문을 갖게 만든다. 

분명한 것은 같은 경험을 다르게, 또 다른 경험을 다르게 인식하고 규정하는 '82년생 김지영'들, 아니 '92년생 김지영'들도 이미 성인이 되어 자신들의 생각과 주장을 말하고 싸우고 있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들은 자기를 혐오하고 스스로를 열등한 지위에 놓고 적응하지 않으면 적응 장애를 일으킨다."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사회'가 이상하다고 말하기 시작한 '사회 부적응자' 여성들의 목소리가 늘어가고 있고, 이는 분명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다. 

<여성혐오를 혐오한다>(은행나무 펴냄)의 저자 우에노 치즈코 도쿄대 명예교수가 지난 25일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주최로 서울 여성플라자 내 성평등도서관 '여기'에서 강연을 가졌다. 이 공간을 가득 채운 400명의 청중들의 존재는 '페미니즘 리부트' 시대를 절감하게 했다. 

치즈코 교수는 '여성혐오'를 둘러싼 오해에 대한 설명부터 시작했다. 

"'여성혐오'는 현상이 아니라 구조를 지칭하는 말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를 타자화 함에 따라 남성이 남성이 되는 작동 원리를 뜻한다. 사회적으로 남성이 남성이 되고, 여성이 여성이 되기 위한 요소는 비대칭적이다. 여자가 여자가 되기 위해선 남자의 승인이 필요하다. 

가부장제 사회는 남성 집단들로 구성되며, 그 속에서 남자에게서 남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배제된다. 여자가 사회적 승인을 얻기 위해선 남성 누군가에게 선택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여자들끼리는 잠재적 라이벌 관계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수수께끼는 여기서 풀린다. 서로가 남자라고 인정한 남자들끼리의 연대가 '호모 소셜'을 이룬다. 남자들의 삶의 보람은 라이벌인 남자와 서로 겨루고, 상대방 남자를 누르고 '역시 너는 강하다'라는 말을 듣는 것이다. 이 관계에서 서로의 에로티시즘은 억제되어야 한다. 남자는 성적 욕망의 주체여야 한다. '호모 포비아'는 남성들이 '다른 사람이 나를 성적 객체로 만들 수 있다'는 공포에서 온다. 

'미소지니'는 남성에게는 여성혐오, 여성에게는 자기혐오를 설명할 수 있는 개념이다. 여성들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적응하려면 자기를 혐오하고 자기를 열등한 지위에 놓고 적응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적응장애를 일으킨다. 

이렇게 호모 소셜(성적이지 않은 남성들 간의 유대), 호모 포비아(동성애 혐오), 미소지니(여성혐오), 이 세 가지가 합쳐져야 가부장제의 작동 원리가 설명될 수 있다. 미소지니만 단독으로 설명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군대는 매우 중요한 호모 소셜이다. 한국 남성들은 군대에서 살생과 폭력을 배운다. 문제는 이런 작동 원리를 적극적으로 배운 남성들은 평화적 생물로 존재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전쟁을 경험한 나라에서 복역 장병이 가정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사회적 문제다. 한국과 일본이 공통적으로 경험한 사회 문제다." 

가부장제의 작동 원리 중 하나인 여성혐오는 시대마다 조금씩 다른 양상을 보인다고 치즈코 교수는 말했다. '내 삶이 여성들의 삶보다 더 힘들다'는 젊은 남성들의 주장은 신자유주의 시대에서 보여지는 양상이다.  

"미소지니는 역사적으로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다. 시대마다 미소지니의 양상이 바뀌며, 지금 보여지는 모습은 모든 사람을 승자와 패자로 나누는 경쟁사회인 신자유주의 시대의 양상이다. 과거에는 승자가 될 수 있었는데 지금은 패자로 전락한 사람들은 피해자 의식을 갖게 된다. 그리고 과거에는 패자일 수 밖에 없었던 대상들을 상대로 돌을 던진다. 남성들 안의 소수자 의식과 피해 의식이 격렬하게 일어나며, 이들이 여성들을 상대로 분노하는 것은 이런 매커니즘 때문이다.  

여성들 사이의 분화도 일어난다. 일본에선 이를 여여 격차라고 표현한다. 승자 여자와 패자 여자, 이렇게 됐을 때 여성들 사이의 연대는 더욱 어려워진다. 누가 적이고, 누가 연대의 대상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더욱 어려워진다. 

'이 사회 안에서 파워게임을 하게 만든 것은 누구이며, 이로 인해 누가 이득을 보는가'를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이처럼 '적대적 경쟁구조'를 통해 작동되는 신자유주의적 가부장제 사회를 바꾸기 위해 페미니즘은 무엇을 지향해야 하나? 치즈코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사람은 태어날 때 누구나 아기이다. 독자적인 생존이 불가능하다. 또 나이가 들면 누구나 의존적인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다. 강한 사람만 살아 남는 게 좋은 사회인가? 남성만큼 강해지는 게 페미니즘의 목표인가? 나는 약자가 약자의 모습 그대로를 인정 받고 존중 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페미니스트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