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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친부모가 누군지 알 권리가 있습니다"

[심층취재-한국 해외입양 65년] 10명 중 1명 성공한 친부모 찾기...최선일까?

 

 

유정현(한국 이름) 씨는 38년 만에 처음으로 본인이 태어난 한국을 찾았다. 생후 10개월인 1979년 4월 10일 미국으로 입양돼 한국을 떠났던 정현 씨는 "어디를 가도 나와 같은 얼굴을 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편안함을 느낀다"고 첫 고국 방문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정현 씨는 1978년 6월 3일 태어나 같은 해 11월 25일 버려졌다. 이름과 생년월일이 적힌 종이쪽지와 함께 서울시 도봉구 수유동 한 단독주택 앞에서 발견된 그는 경찰서를 거쳐 한국사회봉사회로 인계됐다. 그로부터 5개월 뒤에 미국 미네소타에 사는 현재의 양부모에게 입양됐다. 

현재 두 아이의 엄마인 정현 씨는 10년 전부터 친생부모 찾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좋은 양부모님을 만나 행복한 어린 시절을 지냈습니다. 하지만 낳아준 친부모를 만나고 싶다는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아이들도 엄마의 뿌리에 대해 알고 싶어 합니다. 친부모에 대한 원망은 없어요. 만나면 잘 지내왔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는 '23and ME'라는 기관을 통해 DNA검사를 하고, 한국사회봉사회와 미국에 있는 입양기관에 연락해 관련 정보를 요청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미국으로 입양된 후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방문한 이유도 친생부모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다. 정현 씨는 지난 21일부터 10박 11일 동안 진행되는 해외입양인연대의 '고향으로의 첫 여행(First Trip Home)' 행사 참여자로 한국을 찾았다.


▲ 입양 당시 정현 씨 사진(왼쪽 위)과 대학 졸업 당시 정현 씨. ⓒ유정현


 

▲ 한국을 처음으로 방문한 정현 씨. ⓒ유정현


채금지(한국 이름) 씨도 이 행사를 통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하게 됐다. 금지 씨는 1985년 6월 13일 부민 클리닉(마산 혹은 부산 소재)에서 태어났으나 출생과 동시에 친모(30살 추정)는 병원을 떠났다. 금지 씨는 불과 생후 2달 만인 그해 8월 22일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덴마크로 입양됐다. 현재 로펌에서 법률사무보조원으로 일하고 있는 금지 씨는 3년 전부터 친생가족 찾기를 결심하고 노력했으나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고 한다.

 

▲ 어린 시절의 금지 씨의 모습 ⓒ채금지



 

▲ 현재의 금지 씨의 모습 ⓒ채금지


입양인들이 자체적으로 만든 사단법인 해외입양인연대가 주관하고 보건복지부와 중앙입양원이 후원하는 행사인 '고향으로의 첫 여행'은 지난 2008년부터 시작됐다. 올해 15명의 입양인이 참여했고, 10년 동안 총 160여 명의 해외입양인들이 이 행사를 통해 한국을 찾았다. 

한국 땅을 밟는 입양인들의 가장 큰 바람은 친생부모를 찾는 것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제 7조(The child shall have the right to know and be cared for by his or her parents.)는 아동이 자신의 부모를 알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 입양인들의 친생부모 찾기는 쉽지 않다. 입양인들은 입양특례법 제36조에 따라 자신의 입양과 관련된 정보를 청구할 권리가 있다. 하지만 친생부모의 이름, 생년월일, 주소 및 연락처 등은 친생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공개가 가능하다(입양특례법 제36조 2항). 입양인들이 중앙입양원이나 자신이 입양보내진 입양기관(홀트아동복지회, 동방사회복지회, 대한사회복지회, 한국사회봉사회)을 통해 입양 관련 정보 공개를 청구하면, 이들 기관은 45일 안에 결과를 통보해줘야만 한다. 


▲ 중앙입양원 홈페이지에 있는 입양 관련 정보공개 절차에 대한 안내문 (입양특례법 시행령 제14조-17조)ⓒ프레시안



2015년 국정감사 당시 보건복지부가 최동익 국회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런 절차를 통해 입양기관을 통해 접수된 입양정보공개청구 중 친생부모의 소재지가 파악이 되어 친생부모의 동의에 따라 정보가 공개된 경우는 14.7%에 불과하다. 친생부모의 소재지가 파악되었음에도 대상자의 거부, 사망, 무응답으로 인해 정보 공개가 거부된 경우가 33.3%, 애초에 소재지 파악이 불가능한 경우는 50.9%에 달했다. 입양인 10명 중 1명이 친생부모를 찾았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소라미 변호사는 "입양인의 알 권리보다는 친부모의 사생활을 보호해야 한다는 이익을 우선시한 결과"라면서 "친부모의 사생활을 보호할 이익과 입양인의 알 권리가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해외 입양인의 친가족 찾기 무엇이 문제인가' 글에서 인용) 

이경은 박사(서울대 법대, 국제인권법 전공)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 권리는 근본적인 인권에 포함되고, 일부 유럽국가에서는 헌법상 권리로 명시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1991년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가입했고, 따라서 친생부모에 대해 알 권리를 명시하고 있는 이 협약 7조는 우리나라에서 국내법과 마찬가지 효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친생부모 찾기가 어려운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이경은 박사는 "한국에서는 2013년 국제입양에 대한 법원 허가제가 도입되기 전까지 입양인과 관련된 모든 서류가 입양기관 소관으로 되어 있었고, 공적기관은 그 어디에서도 해당 입양인과 관련된 정보와 자료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기아'로 발견된 경우 입양기관에서 단독호적(고아호적)을 만들어 해외입양을 보냈다. 1979년 미국으로 입양됐던 아담 크랩서 씨도 원래 이름인 '신성혁'이 아니라 '신송혁'이라는 이름으로 단독호적을 만들어 입양됐다. 이처럼 대부분의 입양 서류가 공적기관의 관리와 통제 영역 밖에서 만들어져 부정확한 정보를 담고 있을 수 밖에 없다. 


이 박사는 또 현재 입양특례법에 이를 명시한 것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입양특례법은 아동의 입양 절차에 있어서 안전과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라면서 "이 법에 입양인의 정체성 권리 보장이 끼어들어가는 건 법의 목적, 법체계 상 맞지 않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는 "입양인들의 알권리 보장의 책임을 입양기관에 떠넘기기 위해 이런 방식을 선택했다고 밖에는 이해되지 않는 처사"라고 말했다. 


이 박사는 "입양인의 정체성에 대한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고자 한다면 이를 위해 행정기관 혹은 사법기관에 어떤 의무를 부여하고, 어떤 역할을 하도록 해야 하는지 결정해 국가의 의무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지난 65년간 20만 명 넘게 해외로 입양보냈다면 관련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