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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김의성 "'친구' 이창근, 굴뚝에서 내려만 오면…" (2015.1.16)

[단박 인터뷰] 영화배우 김의성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안 70미터 굴뚝 위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는 해고자들이 14일 오전부터 굴뚝 밑에서 제공되는 물과 음식을 더 이상 받지 않기로 했다. 굴뚝농성을 벌이고 있는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기획실장은 "이곳에서 우리를 빨리 내려달라는 구조요청"이라고 밝혔다. 이 소식을 누구보다 안타깝게 들었을 사람이 있다. 영화배우 김의성 씨다. 김 씨는 지난해 12월 13일 이창근, 김정욱(쌍용차 지부 사무국장) 두 사람이 '굴뚝 농성'을 시작한 이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트위터를 통해 친해진 이창근 실장의 농성 소식에 "추운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게 맘이 좀 편할 것 같았다. 두 사람으로 대표되는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들, 또 지금 우리나라에서 너무 힘들고 외롭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뭔가 작은 신호를 보내고 싶었다"고 1인 시위를 시작하게된 이유를 설명했다. 

1인 시위를 이어가던 김 씨는 지난 11일 '굴뚝 데이' 이벤트를 제안하기도 했다. 각자 자기가 원하는 장소에서 쌍용차 해고자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를 담은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인 뒤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인증샷을 올리자는 제안이었다. 전국에서 무려 300명이 넘은 이들이 동참했다. 김 씨는 마찬가지로 쌍용차 해고자 문제에 관심을 표명해온 가수 이효리 씨에게 트위터 DM을 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고 한다. 

영화 <관상>의 한명회 역할 등 '존재감이 강한' 연기를 펼쳤던 배우 입장에서 '1인 시위'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배우라서, 조금이라도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 검열을 깨는 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됐다고 한다. "희망은 개인이 서로를 위해 작은 용기를 내 희생하다보면 커지는 것 아니냐."

서울대 조국 교수의 추천으로 영화배우 김의성 씨를 만났다. "영화배우가 왜 해고노동자를 응원하느냐"는 질문으로 시작된 두번째 '단박 인터뷰'는 지난 13일 진행됐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편집자 


"친구야, 나 여기 있어!" 

프레시안 : 조국 교수가 '단박 인터뷰'를 통해 만나고 싶다고 한 사람이 김의성 씨다. 영화배우가 왜 노동자를 응원하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김의성 : 영화배우는 직업이고, 나를 표현하는 여러 가지 중 하나다. 건강한 개인으로, 또 굴뚝에 올라간 사람의 친구로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굴뚝 농성을 응원하게 됐다.  

프레시안 : 이창근 실장과 친분이?

김의성 : 많이 친하진 않다.(웃음) 트위터를 통해 만화가 강도하 씨 등과 '누가 더 미남이다'라는 농담을 주고받다가 '미남당' 결성 차 처음 만났다. 그런데 이 사람들 얼굴을 보니, 참 우울했다.(웃음) 

이창근 실장은 출근하는 동료들에게 김밥을 팔며 2009년 이후 복직하지 못하고 있는 해고자 문제를 지속적으로 상기시키고 있었다. '김밥이나 만들자'는 생각으로 쌍용차 해고노동자 심리치유센터 '와락'에서 하룻밤 같이 지냈다. 그런 인연이다. 만나도 특별히 쌍용차 문제를 심도 있게 얘기한 적은 없다. 그냥 '미남'들끼리 뭉치는 모임이다. 

그런데 지난해 12월 13일 새벽 이창근 실장과 김정욱 사무국장이 평택 공장 굴뚝에 올라갔다는 애길 듣고 막막했다. 이렇게 추울 때 하필이면 그렇게 힘든 곳을 갈까. 이창근 실장은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주로 했던 사람인데, 이 사람이 굴뚝에 올라갔을 때는 벼랑 끝 상황에 처한 것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문자를 보냈다. '왜 올라갔느냐?'고. 그랬더니 '그냥, 그렇게 됐다'고 하더라.  

처음 생각은 '얼마나 추울까, 얼마나 외로울까'였다. 추운 시간을 같이 보내는 게 맘이 좀 편할 것 같았다. 그렇게라도 이창근 실장이 외로움을 덜 느꼈으면 하고 바랐다. 두 사람으로 대표되는 쌍용차 해고노동자와 가족들, 또 지금 우리나라에서 너무 힘들고 외롭게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뭔가 작은 신호를 보내고 싶었다. '당신들은 무시당하고 있지 않고, 잊히지 않고 있다. 작지만, 누군가는 지켜보고 있으며 누군가는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서울 광화문 광장에 나가서도 사람들에게 뭔가를 알리기보다 굴뚝에 있는 사람들에게 1인 시위 사진을 찍어 '나 여기 있어!'라고 알리는 게 제일 중요했다.   

"쌍용차 '조건부 복직' 발언에 화났다"

프레시안 : 오늘(13일) 티볼리 신차 발표회 현장 갔었나? 발표회장 밖에 놓인 쌍용차 희생자들의 신발 26켤레가 인상적이었다. '지난 6년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김의성 : 쌍용차 대주주인 마힌드라&마힌드라그룹의 아난드 마힌드라 회장과 쌍용차 이유일 사장이 '차가 많이 팔리면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을 고려하겠다'고 했다. 화가 많이 났다. 해고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굴뚝에 올라간 두 사람, 밑에서 그들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사람들, 또 쌍용차 문제에 대해 여러 가지로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만들어낸 작은 진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아직 부족하다. 오히려 분노가 치민다. 

'굴뚝 데이' 구호인 '김정욱, 이창근이 만드는 티볼리를 타고 싶어요'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자동차를 사고 안 사고가 쟁점인 소비자 운동이 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저로서는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쌍용 차와 멀리 떨어져 있는 한 개인으로 해고노동자를 응원하는 마음을 구호로 대변한 것인데, 그런 마음을 쌍용차가 너무 단순하게 자기 관점에서 바라보고 이해한 것 아니었나 싶다. 

지난 11일 '굴뚝 데이'에 참여한 사람들은 '차를 살 테니 해고노동자를 복직시켜 달라'가 아니라, '70미터 높이 굴뚝에 올라가 있는 이창근 실장과 김정욱 사무국장이 만든 차라면 어떤 차가 됐든 구매를 고려해 보겠다'는 뜻으로 1인 시위를 한 것이다. 해고노동자가 회사에 복직하는 아름다운 예가 생긴다면 '내 지갑을 열고 불편함을 어느 정도 감수하겠다'는 사인인데, 쌍용차 경영진이 '흑자 전환 뒤 해고자 복직'이라고 해석해 참 서운했다. 

하지만, 그날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재미있는 날이었다. 부산에서 촬영을 마치고 낮 12시에 맞춰 부산역에 갔는데, 이미 4명의 시민이 서 있었다. 가슴이 벅찼다.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어마어마한 숫자의 인증샷이 트위터에 올라왔다. 그날 확인한 것만 300여 건이다. 

처음엔 '50명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흥행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안 되면 모양새가 우습지 않나. 사실 '굴뚝 데이' 이벤트를 제안하기도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꾀를 좀 냈다. 그냥 '합시다'라고 했는데, 아무도 안 하면 어떡하나. '11일 시간되고 시키는 대로 할 사람 있느냐?’라고 물었더니, 몇 사람이 관심이 있다고 했다. 그 다음엔 DM(1대 1 메시지)을 보내 '내가 하겠다'고 하면, 자원하는 척 '하겠다'고 말해 달라고 했다. 십여 명의 사람들과 나름대로 치밀하게 작전을 짰다. 너무 겁이 나서….(웃음) 

그런데 막상 해 보니,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 준 이유가 있었다. 일단, 광장에 꾸준히 나갔던 것. 그래서 사람들이 '어, 저 사람이?'로 시작해 '아직도? 왜?'로 이어지고, '저렇게 나와 있어도 되나?'라며 걱정하고, 그런 나를 보며 용기도 생기고, 그렇게 '재밌는데 너희도 해 볼래?'가 됐다. 

사실 구호도 후지다. '이창근'과 '김정욱'이 누군지 누가 알 것이며, '티볼리가 타고 싶어요'가 무슨 구호인가. 그런데 이 정도가 구호여야, '굴뚝 데이'가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질 거라고 생각했다. '가상의 노동자'가 아니라, 정말 두 사람의 이름이 불리길 바랐다. 그리고 티볼리는 쌍용차가 회생의 기회를 노리며 전력을 다해 추진한 프로젝트다. 그래서 계속 떠들고 싶었다. 신경 쓰이게….  


프레시안 : 지난해 6.4 지방선거 때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는 발끈하지 않았나.  

김의성 : 그건 교통사고 같은 거다. 그냥 사고다. 맘먹고 한 것도 아니고, 혼잣말 한 게 잘못 새어나갔다. 하지만 말에는 책임을 져야 하니까. 그래서 나중에 '진담'이라고 한 것이다. 그렇게 예의 없이 행동하고 싶지 않았다. 그 점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있다. 김무성 대표에게 사과하고 싶다. 

그런데 내용은 그렇게 틀린 말이 아니었다. 김무성 대표가 당시 '도와주십시오'라고 적힘 푯말을 들고 표심을 자극했다.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뭐라고 하고 싶은 마음을 잘 대변한 말이었다. '거지 XX'라는 표현이 저질이긴 했지만….  

프레시안 : 가수 이효리 씨가 마힌드라 회장에게 '당신의 나라인 인도의 사랑을 해고자에게도 보여 달라'고 트위터를 보냈다. 쌍용차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보이고 있는 이효리, 김제동 씨와 교감이 있었나. 

김의성 : 이효리 씨는 날 몰랐을 테지만, 난 이효리 씨의 오랜 팬이다. 그런데 내가 1인 시위를 시작한 다음, 이효리 씨가 트위터에 '해고노동자가 복직된다면 티볼리 앞에서 비키니 입고 춤추겠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반응하더라. 너무 기뻤다. 이후 이효리 씨가 트위터 DM으로 '고생하신다'고 보냈다. 너무 감사하고 가문의 영광이다.(웃음) 이효리 씨에게 DM을 받게 될 줄이야.  

김제동 씨는 만난 적도 이야기를 해 본 적도 없다. 직접적으로 관계를 갖거나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마음을 맞춰가면서 작은 캠페인을 하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약자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연예인의 사회적·정치적 발언을 금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들어 더 어려워진 것도 있고. 1인 시위를 결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김의성 : 고민 많이 했다. 배우뿐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도 사회적·정치적 발언을 하기가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자기 검열도 강해지고. 특히 박정근 씨는 '우리민족끼리' 리트윗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았었다. 지난해 8월 무죄로 결론났지만…. 

일련의 흐름이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위해가 될 수도 있지만, 겁을 주려는 것 같다. 의식적으로 자신의 말과 행동을 검열하게 해 조용히 있게 하기 위한 겁주기. 진보·보수 또는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 노동당, 그리고 해산된 통합진보당 지지자 할 것 없이 사람이 신념에 따라 자기 목소리를 자유롭게 내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장하는 헌법적 권리라고 생각한다. '표현의 자유'가 제한되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한 사회다. 

자연인으로 1인 시위에 나섰다고 했지만, 배우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사회적 존재로 조금이라도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있다면, 자기 검열 행위를 깨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배우에게는 1인 시위가 좋은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어쩌겠나. 이미 저지른 건데! 몇 달 가만히 있으면서 고양이 사진 열심히 올리고 그러면….(웃음) 쌍용차 해고노동자 복직 1인 시위에 따른 피해를 계산해봤는데, 감수할 만하다.(웃음)  

방송국은 사회 참여에 직접적으로 불이익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TV 드라마 쪽에 중점을 둔 배우라면 나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계는 사회적·정치적 발언에 부드럽게 용인해주는 분위기가 있다. 대단한 용기를 내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기보다는 상황이 좀 편하지 않았나 싶다. 물론, 매니지먼트 회사에서는 굉장히 싫어하고 있지만….  

프레시안 : 언제부턴가 노동 운동에 있어 사회적 연대가 중요해졌다. 노동자와 시민, 노동자와 학생, 노동자와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주민들 등. 배우라 노동 문제를 자기화하는데, 더 어려운 위치에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김의성 : 나는 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계약에 의해 돈을 받는 자영업자다. 노동자의 구체적인 사정도 잘 모른다. 

먼 거리에서 노동 운동의 대의와 관계없이, 어려움을 겪는 이웃과 약자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갖고 그들의 삶이 개선돼 고통이 경감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단체에 속해 있지도 한다. '굴뚝 데이'에 참가한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약자에 대한 관심, 지금부터 더 필요하다고 본다. 그리고 강해져야 한다. 희망이 없다. 정치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절망적이다. 1987년 국민의 힘, 시민의 힘으로 억압적인 정치 체제를 뒤집었지만, 그때 관성에 젖어서 ○○연대나 ○○회의 등이 난립해 있다. 그러나 이런 단체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일이 생길 때마다 성명서 내는 정도, 참여자 몇 명이 기자회견하는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희망이란 건, 결국 개인에게 있지 않겠는가. 개개인이 서로에게 조금 더 관심을 가지고, 서로를 위해서 남을 위해서 작은 용기를 내 희생하며, 스스로가 성장하는 게 희망 아닌가? 그렇게 성장한 개인들이 조금씩 손을 잡고 앞으로 나가다 보면, 손을 잡은 수가 늘어나게 되고, 갈수록 손잡은 써클(원형, 집합 등)이 커지는 게 희망 아닌가? 

프레시안 : 개인의 연대와 각성이 사회적 집합으로 모이는 과정이 중요한데, 예를 들면 2008년도 촛불집회 때도 개개인이 모여 거대한 집합을 만들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광우병 수입 소고기 수입과 관련해 사과를 이끌어 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부가 탄생했다. 그래서 한계 또한 분명해 보인다. 

김의성 : 나의 원칙은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프레시안 : 80년대 학번으로 대학 시절 연극반 활동을 했다고 들었다. 당시 시대상이 현재 본인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나?  

김의성 : 누구나 젊은 시절의 자신이 지금의 자신을 만드는 것 아니겠나. 87년 민주화 경험은 특별했다. 그런데 긍정적인 면 못지않게 부정적인 면도 있었다. 1984년 대학에 입학했다. 당시엔 겉으로는 다 운동권이었다. 대학 졸업 후 회사에 들어가면 배신이라는 마음을 갖고 살았던 때다. 그런데 난 학교를 열심히 다니지 않았다. 졸업 전부터 학교 밖에서 계속 연극을 했다.   

"존재감 강한 배우? 미남 배우!"

프레시안 : <국제시장>(2014, 윤제균 감독)의 경우, 사회적·정치적 갈등이 커졌기 때문에 세대 간 논쟁으로까지 번진 것 같다.  

김의성 : 같은 업계에 있는 입장에서 영화 한 편을 좋다 나쁘다 얘기하긴 어렵다. 그리고 <국제시장>을 아직 못 봤다.  

내가 하는 일 대부분은 상업적으로 오락을 제공하고 돈을 버는 것이다. 큰 의미를 부여할 영화가 많지 않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한 번 울게 해 주고, 아버지 세대에게 고마움을 느낄 수 있게 해 준다면 훌륭한 영화라고 본다. 

그런데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자식들이 왜 아버지 세대에게 고마움을 안 느껴. 느껴봐'라고 말하는 순간, 이상해진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아버지들이 나에게 해 준 게 뭐가 있느냐. 그러면서 고마움을 느끼라고 말하느냐'라고 대꾸하는 순간, 이상해진다. 

프레시안 : 상업적 영화를 주로 한다고 했는데, 출연작 대부분이 '사회성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의성 : 사회성 없는 영화에도 많이 출연했다. 그리고 사회성 있는 영화도 그 영화가 던지는 사회적 의미 때문에 선택한 건 아니다. 적절한 출연료와 소화 가능한 캐릭터여서 선택했다. 물론, 속아서 한 것도 있지만…. '이 영화가 얼마나 건강한가(사회적 의미가 있는가)'는 선택 사항이 아니다. 직업이니까.

프레시안 : '존재감 또는 개성 강한 배우'라는 말에 동의하는지?

김의성 :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미남 배우'라면 몰라도.(웃음) 

프레시안 : 차기 작 계획은? 선한 역과 악역 중 뭐가 더 편한가?  

김의성 :  <연애의 온도>(2013)를 만든 노덕 감독과 <저널리스트> 촬영을 곧 시작한다. 정치적인 건 아니고, 블랙 코미디다. 
 
악역이 더 좋다. 그래서인지 <건축학개론>(2012, 이용주 감독)의 강 교수 역은 힘들었다. 악역이 스트레스도 풀리고 편하다. 세금을 월급으로 받는 직업군, 공무원·국가정보원·경찰·검사 등 나쁜 역할을 주로 했다. 

프레시안 : 그런 역할이 악역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김의성 : 영화에서 검사가 착하게 나오면 재미있겠나. 사회가 건강하다면 착한 검사가 분투하는 모습에 감동이 있겠지만, '저런 사람, 현실에는 없는데…'라는 생각에 영화 속 착한 검사를 기대하지 않는 것 같다. '높은 곳에 있는 사람들, 다 도둑놈 아니야?'라는 사회적 인식이 있다. 

프레시안 : 문화예술계 노동 상황이 궁금하다.   

김의성 : 영화계 얘기밖에 할 수 없을 텐데, 사실 잘 모른다. 여러 스텝 중에서도 가장 젊은 친구들 처우에 문제가 많은데, 그런 면에 있어 영화계는 제일 빨리 변화하는 곳인 것 같다. 과거와 달리, 임금 표준 계약서를 개별적으로 작성한다. 물론 지금도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지만, 영화계는 그래도 변화를 위해 자체적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영화계에서 선배로 영향력 있는 배우로 발언할 기회가 생긴다면, 영화 노동자의 처우 개선 문제를 더 깊이 고민해보고 싶다.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 권력, 파렴치하다"  

프레시안 : 여야가 2012년 대선 전 쌍용차 문제로 국정조사를 논의했으나, 문제 해결을 위해 구성한 '6인 협의체' 역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흐지부지됐다. 정치권의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김의성 개별 기업의 문제라고 해도 사회적 갈등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어마어마한 비용을 치르고 있다면, 당연히 정치권이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애써야 한다. 그게 정치 아닌가. 그래서 많이 분노했다. 

지난해 11월 대법원의 쌍용차 정리해고 적법 판결에 대해서도 너무너무… (분노했다).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는 무효'라고 한 고등법원 판결문을 읽었다. 어마어마한 분량이었다. 그런데 대법원에서는 종이 몇 장짜리 판결문을 툭 던지며, 6년간의 상황을 한순간에 끝냈다. 

약자들은 법의 보호를 받아야 살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마지막 보루인 법원과 최후의 보루인 대법원이 자본 친화적인 판결을 냈다. 이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약자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 계속되면, 사법 체계의 신뢰성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로 인해 지출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 또 그로 인해 어두워질 국가의 미래, 공동체 파괴 현상 등이 발생할 수 있다.

눈앞의 일을 돌파하기 위해서 소위 권력 상층부, 즉 사회를 이끌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약자를 보호하지 않는 길을 택한다는 것은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파렴치한 일이라고 본다. 너무 심하게 말하면 안 되는데…. 

프레시안 : 1인 시위를 두 사람이 내려올 때까지 하겠다고 했다. 이창근 실장에게 귀띔 받은 게 있는지? 겨울 추위에 언제까지 굴뚝 농성을 할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김의성 : 서로 농담 주고받는 사이다. 일정이나 계획은 얘기하지 않는다. 대신 입장을 바꿔 생각해 봤는데, 내가 이창근 실장이라면 아무 성과 없이는 못 내려올 것 같다. 두 사람이 내려올 명분을 만들어 줘야 한다. 

지금 광장에서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일을 하는 이유도 두 사람에게 명분을 달라는 요청이다. 쌍용차 문제 해결도 중요하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두 사람이 굴뚝에서 내려오는 것이다. 언제 내려올지는 알 수 없지만, 두 사람이 내려올 수 있는 최소한의 명분이 필요하다.   

프레시안 : 사회 변화에 대한 열망이 있는 시민들에게 일상에서 가볍게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추천한다면? 

김의성 : '국제엠네스티(AI)' 가입을 권하고 싶다. 의미도 있으면서 손쉬운 일은 편지를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통받는 사람을 위해서 힘을 가진 사람에게 편지 쓰는 일. 편지를 쓰려면  사안이나 대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누가 힘든지, 누가 외로운지, 지구 반대편 사람들은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 등. 세계를, 세상의 가난을 다 구제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회가 조금이라도 바뀌길 원한다면, 편지를 쓰라고 권하고 싶다. 

프레시안 : '미남 친구' 이창근 실장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의성 : 빨리 내려왔으면 좋겠다. '이렇게 맛있는 게 있었어?'라고 할 만큼 맛있는 것, 지금까지 한 번도 못 먹어 본 음식을 사주고 싶다. 


 

(이 기사는 이명선 기자와 함께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