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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박근혜

박근혜, 박정희는 잊고 육영수를 이어라!(2013.2.25)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취임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자 첫 2세 대통령이다.

두 가지 특징은 다른 하나가 없었으면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이기 때문에 첫 여성 대통령이 됐다. '박정희'가 그가 가진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이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다.

아버지나 남편의 후광에 힘 입어 탄생한 여성 국가원수는 아시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들 중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가 드물다는 점이다.

필리핀의 첫 여성 대통령 코라손 아키노는 남편의 후광으로, 그 이후 탄생한 아로요 대통령은 아버지 덕분에 대통령이 됐다. 인도네시아는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의 딸 메가와티 수카르노가 첫 여성 대통령이 됐다. 인도에서는 초대 총리 네루의 딸 인디라 간디가 두 차례 총리를 지냈다. 파키스탄에서는 베나지르 부토 전 총리가 아버지 줄피카르 부토에 이어 총리가 됐다.

이들이 실패한 원인은 크게 1)일반인과는 다른 삶을 살았던 이력과 2)취약한 정치 기반에 있다. 대통령의 딸이거나 부인은 어린 시절부터 경호원에 둘러싸인 '특권층'으로 살거나 보조적인 역할이 부여되는 정치인의 부인으로 살기 마련이다. 삶 자체가 일반인과 유리된 폐쇄적인 패턴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사람에 대한 평가나 인적 네트워크가 일반인과 다르다. 박근혜 대통령이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 등 당선 이후 인사에 있어 연일 '충격'을 주는 것도 이런 특성 때문인 듯 하다.

둘째, 아버지나 남편의 후광이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인 이들은 다른 정치인에 비해 국가 원수의 자리에 비교적 쉽게 올랐다. 세력을 규합하고 경쟁자를 물리치는 정치적 쟁투를 통해 최고의 권력에 오른 다른 정치인들에 비하면 '탄탄대로'였던 셈이다. 또 아버지나 남편에 대한 지지에 기반한 '대중적 인기'는 일종의 판타지다. 다른 정치인들의 '지지'에 비해 취약할 가능성이 크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집권은 쉽게 했지만, 통치는 쉽지 않았다는 얘기다. 특히 '여성'이라는 사실은 남성중심 사회에서 '약점'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다. 아시아의 여성 국가원수들의 국정운영을 보면 각료 뿐 아니라 심지어 친인척, 남편들도 '말'을 듣지 않아 고생했다. 필리핀의 아로요는 남편의 부정부패로 탄핵 위기에 시달렸고, 파키스탄의 부토는 남편이 연루된 비리로 물러났다. 그 남편은 현재 파키스탄의 총리인 아시프 알리 자르다리이다.

▲ 25일 취임한 박근혜 대통령. ⓒ연합뉴스

이제 막 첫 발을 내딛은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도 하기 전 낮은 지지율로 고심하고 있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이 지난 22일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평가는 44%에 그쳤다.

앞에 제시한 아시아 여성 국가원수들의 사례를 보건데,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초 낮은 지지율은 이례적 상황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는 보수정당에서 탄생한 첫 여성 대통령으로 아직도 유교적 질서가 지배적인 우리 사회에서 애초부터 취약할 수 밖에 없는 조합이다. 보수이기에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될 수 있었지만, 여성이므로 보수 내에서 취약한 기반을 가질 수밖에 없다. '여성이므로 안보가 불안하다'는 메시지는 야당에서 나온다가 보다는 보수 쪽에서 주로 제기된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가능했던 이유는 사실상 진보의 아젠더인 경제민주화, 복지 등을 대선 과정에서 적극 수용했기 때문이다. 두 번의 민주정부와 이명박 정부를 거치면서 사회-경제적 양극화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갈등 요소로 떠올랐다. 보수정당의 후보도 양극화 문제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박근혜 당시 후보는 좀더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노태우 정권 때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을 추진하면서 재벌개혁, 경제민주화의 상징격이 된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을 영입했고, 생애주기별 복지에 기반한 '한국형 복지'를 대선 1년 전부터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 양극화 완화라는 시대적 과제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 재집권하게된 배경에는 대선 후보 시절 박근혜가 주도한 '보수의 좌클릭'이 있었다. '짝퉁 경제민주화'란 비판이 야당에서 제시했지만, 시대적 과제를 제대로 파악했고 이를 치유하기 위한 나름을 해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대선 후보로서 박근혜의 정치적 안목은 다른 후보를 한발 앞서 나갔다.

문제는 대선 이후 불거졌다. 대선 과정에서 보수 진영은 당장 집권이 중요하고, 박근혜가 아닌 다른 카드는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변화'를 용인해줬다. 하지만 일단 대선에서 이기고 난 뒤 사정은 달라졌다. 당내 시장주의자와 재계, 보수언론의 '박근혜 흔들기'가 본격화됐다. '공약 포기론'이 당과 보수 언론에서 연일 제기됐고, 이 와중에 박근혜 대통령이 초대 총리로 지명한 김용준 인수위원장이 언론 검증 과정에서 낙마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일차적인 책임은 검증을 소홀히 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언론 검증 과정에 보수 언론도 크게 기여한 점은 한국의 정치와 보수언론의 '특수관계'를 감안하면 이례적인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이 내걸었던 공약을 일부 포기했다. 지난 21일 발표된 박근혜 정부의 국정목표 및 국정과제에서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대신 '창조경제'를 내세웠다. 4대 중증질환 등 주요 복지 공약도 '말 바꾸기'라는 비판을 들으며 후퇴했다. 그 결과가 낮은 지지율이다. 전형적인 '집권은 쉽고 통치는 어려운', 여성 대통령의 패턴이 시작된 것이 아닌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현재 박근혜 대통령이 설정한 방향은 '다시 우클릭'인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지지기반인 보수를 안고 가겠다는 생각이 '공약 후퇴'를 통해 확인된다. 이는 촛불집회 이후 이명박 정권이 선택했던 방식이다. 보수정권 입장에서 가장 편한 길이지만, 성공한 정부라는 평가를 받을 확률은 높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화끈한 '우클릭'으로 서민들의 삶은 이미 벼랑 끝으로 몰렸다. 성장을 우선시하는 시장주의 경제정책은 더 이상 밀고 나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자신이 대선 과정에서 내세웠던 경제 민주화와 복지를 통해 양극화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 그게 잃어버린 '지지율'을 되찾고, 성공한 정부라는 궁극적 목표로 가는 길이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취약한 정치 기반에 있다. 정치인 박근혜가 가졌던 힘은 그가 '미래권력'으로 작용할 때 가능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되는 순간, 판타지는 현실이 됐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은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싸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자리를 가능하게 했던 '아버지 박정희'는 잊어야 한다. '정치인 박근혜'는 박정희의 대리인이 될 수 있었지만, '대통령 박근혜'는 '대통령 박정희'를 대리할 수 없고, 대리해서도 안 된다. 아버지가 통치했던 시대와 그 딸이 통치해야할 시대는 엄연히 다르다. 이번 대선에서도 40대를 가운데로 놓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 여부가 크게 갈렸다.

'절대권력'이었던 아버지의 스타일을 차용한 현재의 정치 스타일도 대폭 바꿔야 한다. 비선에 의존할수록 인적 네트워크가 협소한 박근혜 대통령의 성공 가능성은 줄어든다. 정권 인수 과정에서 총리 등 인선에 사실상 실패한 이유를 잘 따져봐야 한다.

비교적 낮은 지지율로 공식 임기를 시작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을 바라보는 일반 지지자들에겐 아직 판타지가 남아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 시절 "복지국가가 아버지의 꿈"이라고 말했던 바로 그 지점이다. 박정희 정권의 공과를 떠나 한국이 그 시절에 '절대적 빈국'에서 벗어났다는 건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에 놓여진 가장 큰 과제 역시 '가난'의 문제다. '빈부격차'를 줄여 국민 모두가 먹고 사는 문제 만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국가로 만드는 일이다.

이런 점에서 '첫 여성 대통령'이란 자신의 존재 조건에 주목하길 바란다. 자신은 굶어도 자식은 굶기지 않는 게 어머니의 마음이다. 미혼인 그에게 '어머니의 마음'을 요구하는 게 무리일 수 있겠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또 다른 정치적 자산 중 하나가 그의 어머니 육영수 여사다. 대선 과정에서 그의 손을 부여 잡고 눈물을 보인 숱한 지지자들이 떠올린 건 사실 박정희가 아닌 육영수였다. '따뜻한 보수'에 대한 기대인 셈이다. 그 기대는 그야말로 판타지에 그칠까? 답은 박근혜 대통령이 만들어갈 현실에서 찾아질 것이다.

대한민국은 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아시아에서는 유일한 나라로 꼽힌다. 산업화의 기수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이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성공한 '2세' '여성' 대통령이 되기를 기원한다. 왜냐하면 그의 성공은 곧 대한민국의 성공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