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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박근혜

'막말' 윤창중, 박근혜 '공포정치'의 신호탄(2012.12.28)

민주통합당은 왜 졌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새누리당은 어떻게 이겼나? 이번 대선을 통해 드러난 민심을 곰곰이 들여다볼 때 향후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방향과 패배한 야권의 수습 방안이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근혜 당선인(이하 직함 생략)이 첫 인선으로 윤창중 씨를 인수위원회 대변인으로 '깜짝 발탁'한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박근혜는 경제민주화, 복지 등 야권의 정책 이슈를 대폭 수용하고도 모자라 '국민대통합'을 대선의 첫 번째 공약으로 내걸고도 3.6%포인트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51.6%의 과반 득표율에 의미를 부여하지만, 역으로 48%의 '반대'가 엄연히 존재한다. 더구나 20-40대라는 '미래세대'에서 박근혜와 새누리당에 대한 '비토'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5년 뒤 대선을 생각하면 새누리당 입장에선 희희낙락할 결과가 아니다. 아니, 그렇게 멀리갈 필요 없이 당장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국정운영에 있어서도 결코 만만한 상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문재인 패배가 '멘붕'? 예견된 상황이었다

다수의 야권 지지자들이 민주통합당 문재인 대선 후보의 패배를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일부 지지자들은 전자개표기를 통한 개표를 했다는 이유로 '재검표' 주장까지 한다. 많은 이들이 '멘붕(멘탈 붕괴)'을 호소한다.

하지만 문재인의 패배는 사실 예견된 일이었다. 여론 조사 공표 금지 기간 직전까지 나온 모든 여론조사에서 박근혜가 앞섰다. 한국일보와 한국리서치가 함께 한 마지막 여론조사에서 0.4%포인트 역전한 결과가 나왔을 뿐이었다. 2002년 대선에선 노무현과 정몽준의 단일화 이후 노무현은 이회창을 오차범위 이상 줄곧 앞섰다. 10여일 동안 여론이 뒤집어지기를 기대한 것 자체가 무리였다.

문재인의 패인에 대한 여러 분석이 나오지만,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야권이 오랫동안 주장해온 한국 사회 여론지형에 있어 보수와 진보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그대로 투표에 반영됐기 때문이다. 박근혜와 문재인의 사실상 일 대 일 구도가 짜여지면서 보수와 진보가 표로 똘똘 뭉쳐 나온 결과로 보수 후보가 3.6%포인트 차이로 이겼다.

문재인과 민주당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뒤흔들 '담대한 기획'도 없었고, '메가 이슈'도 만들지 못했다. 안철수와 단일화만이 유일한 기획이었으나, 후보 단일화는 10년 전 이미 한 번 쓴 전략이다. 선거판 자체를 흔들 '기획'이라고 하기엔 '올드 버전'이었다.

다수의 야권 지지자들이 선거 당일 '반짝 기대'를 가졌던 이유는 75.8%라는 높은 투표율 때문이었다. '높은 투표율=야당의 승리'라는 공식을 철썩 같이 믿었다. 하지만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투표율은 결과와 상관 없다"며 "투표율 몇 % 이상이면 야권에 유리하다는 식의 분석은 옛날식 분석"이라고 지적했다. 높은 투표율은 보수 대 진보의 일 대 일 구도가 짜여지면서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었다.

"이번 선거 결과는 보수와 진보의 격차를 못 줄인 것이다. 다른 복잡한 설명이 필요 없다. 야권이 이긴 두 번의 대선에서 김대중, 노무현 후보는 전체 유권자를 놓고 보면 존재하는 진보와 보수의 격차를 알기 때문에 굉장히 과감한 수를 뒀다. DJ는 김종필과 지역 연합을 했다. 대선 때만이 아니라 95년 지방선거에서부터 지역분권론을 내세웠고, 대선에선 김종필과 손잡았다. 노무현도 행정수도 이전 공약을 내세워 일종의 지역연합 효과를 노렸고, 정몽준과 후보단일화를 통해 중도층을 끌어들였다. 이번엔 그런 담대한 전략도 없었고, 메가 이슈도 없었다. 그러면 보수와 진보 양쪽이 똘똘 뭉쳐서 가는데, 이렇게 가면 유권자 사이에 존재하는 진보-보수간 격차를 줄이기 어려운 것이고, 그게 패배라는 결과로 그대로 나타났다."

 당선이 확정된 직후 광화문에서 소회를 밝히고 있는 박근혜 당선인 ⓒ프레시안(최형락)

50대의 분노, 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권의 패배는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정권교체' 여론이 선거 막판까지 높았다는 점에서 뼈아픈 것임은 분명하다. 특히 10년전 다수가 노무현을 지지했던 50대가 박근혜로 돌아선 것이 뜻하는 바를 민주당은 두세번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는 야권에 대한 50대의 상처를 표출한 결과라고 보여진다. 이들 세대는 산업화의 끝물이자 민주화 세대의 맏형 세대다. 산업화 세대로 열심히 일하고 부모도 부양하고 당시 기대되는 것을 다 했다. 또 80년대 민주화 운동도 참여하고 지지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대한민국을 바꿨다'는 자부심이 있다. 이걸 야권이 인정 안 해줬다. 60대 이상 세대와 마찬가지로 '꼰대' 취급을 한 것이다."(박성민)

민주당은 20-30대의 '불안'과 '분노'에 주목했지만, 이들 못지않게 불안한 50대의 현실은 외면했다. 서울을 제외한 경기, 인천에서도 박근혜가 앞섰고, 이 표심이 대선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 된 것도 야권에 대한 '50대의 분노'와 밀접한 연관이 있어 보인다. 수도권, 40-50대의 하우스푸어가 박근혜를 택했다. 박근혜가 선거 기간 내내 강조한 '민생' 중 핵심 대책이 하우스푸어와 가계부채 문제였다.

90%에 가까운 50대가 투표장에 나와 다수가 박근혜를 찍은 표심에서 드러난 민주당의 문제를 요약하자면 이렇다. 젊은 시절 민주화운동에 기여하고 이들을 지지했던 50대가 그 결과로 얻은 것은 가계 빚과 불안한 미래다. 김대중, 노무현, 두 번의 민주당 정권도 경제구조에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오히려 집값 폭등을 통해 자산 불균형을 더 심화시켰을 뿐이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여전히 유권자들을 '동원'하려고만 했다.

"선거는 실용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이겨야만 하니까. 당이 약해지면서 선거 주도권이 정치권이 아니라 시민사회, 학계 등 외부로 넘어가면서 나타난 첫번째 문제는 명분이나 가치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된 점이다. 그러면서 '담대한 기획'이나 '메가 이슈'를 만들지 못하게 됐다. 명망 있는 분들이 선거에 참여해 찬조연설도 하고, 트위터도 하고 했지만, 이런 정도로는 보수의 벽을 넘기는 어렵다. 중도보수층을 깰 수 있는 전략이 없었다. 

명망가들이 선거를 주도하면서 나타난 또 하나의 폐해가 상대편 지지자들을 공격하는 행태가 나타났다. 이번 선거에서도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생각없는 무뇌아라고 노골적으로 경멸했다. 정치인이 절대 하면 안 되는 행동 중 하나가 상대편 지지자들을 공격하는 것이다. '어떻게 박근혜를 찍냐'. 이건 경멸하는 말이다. 

DJ는 조중동 언론사 사주를 구속시켰고, 안티조선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조선일보에 기고를 하는 필자를 공격했다. 그러다가 친노는 노무현 정부 들어 조선일보 구독자를 공격하고 나섰다. 그러면 안된다. 그러면 공격 받은 사람들은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건가' 하는 마음이 들고, 투표를 통해 확인받고 싶어진다. 이번에도 박근혜 지지자들이 그런 마음으로 우르르 나왔다."(박성민) 

종편과 나꼼수, 그리고 윤창중 

상대 지지자를 공격하는 '편 가르기식 정치'의 상징이 '나꼼수'다.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비판하기 위한 '가카 헌정방송'으로서 '나꼼수'가 그간 야권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젊은 층이 정치에 관심을 갖도록 만든 '공'은 매우 크다. 그러나 지난 4월 김용민 씨가 정봉주 전 의원 지역구인 서울 노원갑에 직접 출마하면서 '나꼼수'는 정치 비평자에서 당사자가 됐고, 보수진영의 집중 표적이 됐다. 야권 지지자들에겐 '카타르시스'를 줬던 나꼼수의 거친 언사는 보수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팟캐스트를 듣지 않던 중년 이상의 보수층에겐 '모욕'과 '굴욕'으로 다가왔다.

이번 대선에서도 '나꼼수'는 '박근혜 고액 굿 의혹', '신천지 의혹' 등을 제기하며 네거티브의 최전선에 섰다. 민주당은 안철수와 단일화 이후 문재인이 "네거티브를 자제하겠다"고 선언한 뒤 '국정원 여직원 사건'을 제외하곤 네거티브라고 여겨질 만한 이슈를 거의 던지지 않았다. 새누리당이 비난한 네거티브의 상당 부분이 '나꼼수'가 제기한 내용이었다.

"이번 대선은 어떤 의미에선 '종편과 나꼼수'의 싸움이었다. 나꼼수는 서울시장 선거를 정점으로 계속 내려가고 있다면, 종편은 이번에 대선관련 프로그램을 계속 쏟아냈다. 거기서 제가 보기엔 어떻게 저런 말을 할까 싶을 정도로 노골적인 말들을 쏟아냈다. 나꼼수는 욕도 하지만, 종편은 욕만 안 하는 수준이었다. 조갑제 씨는 점잖은 수준이더라. 이걸 50-60대가 열심히 보시더라. 지지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준다는 측면에서 종편이 노년층 나꼼수였다."(박성민) 

보수층에서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막말'을 하던 대표적인 언론인이 윤창중이었다. 그는 대변인 임명 직전인 대선 이후에도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국민은 '반(反)대한민국 세력'이고, '대한민국을 공산화시키려는 세력'이라면서 박근혜 후보에게 '단칼', '한방'으로 정권을 세워야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후보를 지지한 보수 인사들을 향해 "정치적 창녀"라고 비난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추모인파를 놓고 "황위병이 벌인 거리의 환각파티"라고 힐난했다.

그는 대변인 임명 직후 25일 기자회견에서 "제가 쓴 글과 방송에 의해 마음에 상처를 입은 분들께 송구스럽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가 쏟아낸 '막말'과 그 '막말'에 내포된 정서가 사과 한번으로 끝낼 수준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국민대통합'을 첫번째 공약으로 내세웠던 박근혜가 야권 지지자들이 보기엔 '저주'에 가까운 막말을 쏟아낸 윤창중을 '수석 대변인'으로 '깜작 발탁'한 점은 놀라운 정도를 넘어서 충격적이다. 이명박 정권이 반대자들을 상대로 '공포의 정치'를 해왔던 것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의도로도 읽힐 수 있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 박근혜의 승리는 2007년 대선과 질적으로 다르다. 75.8%라는 높은 득표율 가운데 48%가 그를 지지하지 않았다. 이들을 '한방'에 때려잡을 순 없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선 '통합'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번 대선을 통해 확인된 사실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이제 상당히 '수평'으로 변했다는 점이다. 겨우 3.6%포인트 차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니까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대통령이 되는 순간 '아버지의 후광' 효과는 더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국민들은 '박정희의 딸'이 아니라 '대통령 박근혜'로 냉정히 평가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막 출범하려는 박근혜 정권도, 새누리당도, 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