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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이명박

이명박 대통령의 '가족애'와 용산참사(2013.1.10)

일년 가까이 지난 일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최하는 한 오찬 간담회에서 오갔던 얘기다. 이 간담회에서 한 참석자가 이 대통령에게 '조만간 있을 특별사면 대상자에 용산참사 구속자를 포함시킬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순간 이 대통령의 표정이 굳어졌고, 간담회장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이 대통령 답변의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현 정부 들어 생업 관련해 300만 명 이상 사면시켰다. 민생관련 사범은 먹고 살기 힘든 사람이 실수했을 경우 사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용산참사의 경우 살기 힘든 사람이 했나, 아니면 (시위를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이) 직업적으로 다른 동네 사람이 건너와서 했나, 그런 차이가 있다. 또 용산참사와 같은 상황이 전국적으로 많이 있다. 이에 대한 일관성 문제도 필요하다. 사면이 있으면 그런 기준에 의해 하겠다. 일관되게 하겠다."

사실상 용산참사 구속자 8명에 대한 사면에 반대한다는 말이다. 이들은 단순 민생사범이 아니라 전문 시위꾼이라는 인식도 드러났다. 이 대통령이 건설사 사장 출신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주는 반응이었다.

이후 이 대통령이 용산참사 구속자 사면 문제에 대해 달라진 입장을 밝혔다고 전해 듣지 못했다.

오히려 달라진 건 특별사면에 대한 입장이다. 이 대통령은 2009년 6월 측근 비리 문제와 관련해 "임기 중에 일어난 사회지도층의 권력형 부정과 불법에 대해서는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대로 관용을 베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었다.

그러나 지난 연말부터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을 포함해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등 최측근 인사들에 대한 특별사면을 검토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최시중, 천신일, 신재민(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김재홍(전 케이티앤지 이사장, 김윤옥 여사 사촌오빠) 등 측근들이 줄줄이 상고를 포기하고 형이 확정되면서 감지됐던 기류다. 특사는 형이 확정돼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상고를 포기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고, 이들에 대한 '성탄절 특사 검토설'이 나왔다.

이런 의혹은 현실이 되지 않고 해를 넘기더니 이젠 청와대가 대놓고 '설 특사를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박정하 청와대 대변인은 9일 "임기말 대통합 차원에서 각계의 특사 요구가 많아 실시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며 특사 시기, 대상 등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임기말 특사를 강행하겠다는 뜻이다.

더욱이 청와대는 이상득 전 의원도 특사 대상에 포함될 수 있음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이 전 의원은 지난해 7월 저축은행 로비와 관련해 알선수재 등 혐의로 구속돼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1심 재판이 2월 초 끝나고 항소를 포기해 형이 확정되면 특사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성탄절 특사를 단행하지 않은 게 대통령의 형을 특사 대상에 넣을 수 없기 때문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역대 정부에서 대통령의 친인척이 비리로 구속된 사례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 씨, 김대중 전 대통령의 차남 홍업 씨가 모두 대통령의 임기에 아들이 구속된 경우다. 하지만 이들은 둘 다 후임 대통령 때 풀려났다. 이 대통령이 이상득 전 의원을 사면한다면 자신의 임기에 구속된 친인척을 자기 손으로 풀어주는 경우는 첫 케이스가 된다.

여당에서조차 "국민 상식에 부합되지 않는다"(이혜훈 최고위원)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은 비리 측근인사들에 대한 '설 특사'를 강행할까? 가족과 측근들을 정말 끔찍이도 아끼는 이 대통령이 용산참사 사태로 남편을 잃고 아들을 감옥에 보낸 피해자들의 마음을 헤아려보길 바란다. 용산참사 피해자들은 '전문 시위꾼'들이 아니라 경찰의 과잉진압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이다. 용산참사는 이달 말 4주기를 맞는다. 수감자들은 차가운 감방에서 4년째 지내고 있다. 이상득 전 의원은 구속된 지 6개월도 채 되지 않았다.

▲ 이상득 전 의원 ⓒ프레시안(최형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