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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박원순

무소속' 서울시장 박원순 앞에 놓인 '세가지 난제'(2011.10.27)

박원순 서울시장(보궐선거라 당선 다음 날 바로 취임하므로 편의상 시장으로 쓰겠다)이 참여연대에 있었던 마지막 해인 2002년에 인터뷰를 했었다.

"나도 한때는 정치를 생각했었다. 변호사를 하던 지난 85년 전직 국회의원 등 고향(경남 창녕) 선배들이 출마를 권유했었다. 지역주민들한테 때 되면 편지도 보냈다. 그러다 '젊음의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뒀다."

시민운동가로 변신한 뒤에도 그는 끊임없이 정치권으로부터 호명됐다. 2007년 대선, 2010년 지방선거에서도 이름이 오르내렸고, 구체적인 압박도 들어왔다. 10년 가까이 완강히 버티던 그의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는 (극소수를 제외한) 주변 사람들이 모두 깜짝 놀랄만한 급작스런 결정이었다. 지난달 6일 백두대간을 종주하다 급히 내려와 수염도 깎지 못한 채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원장과 후보 단일화 합의 기자회견을 가진 모습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 안철수 원장과 후보 단일화 합의를 이룬 뒤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프레시안(김하영)

젊은 시절 한때 정치를 생각해봤다는 얘기를 끄집어 내지 않더라도 '개인' 박원순 입장에선 일관성을 설명할 수 있다. 인권 변호사에서 시민운동가로, 시민운동의 영역에서도 권력감시운동에서 기부운동, 사회창안운동까지, 그는 끊임없이 우리 사회를 더 많이, 더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를 고민하고 그 방향으로 몸을 옮겼다. 시민운동에서 정치로 이동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정치 진입 성공 여부는 단순히 '개인 박원순'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시민운동의 대부"라는 그가 좋아하지 않는 수사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시민운동가로서 그의 '상징성'은 매우 크다. 다행히 이겼지만, 그가 졌다면 시민사회의 정치 진출은 큰 난관에 부딪혔을 것이다. 선거라는 게임의 룰과 박원순의 상징성을 연관시켜봤을 때, 그의 급작스런 개인적 결정은 비판받을 여지가 분명 있다. 더욱이 박 시장의 정치 진출은 그간 시민사회진영에서 진행돼온 현실 정치 참여를 둘러싼 논의와 별개의 개인적 결단이었다.

서울시장 임기를 시작하는 첫날 굳이 '과거지사'에 해당하는 문제를 지적하는 이유는 이렇다. 정치인으로 첫발을 내딛는 과정과 선거과정에서 보여준 박 시장의 '치명적 약점'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장은 일년에 21조 원의 예산을 주무르고, 3000여 개의 정책을 조율하고, 1만5000명의 공무원 인사권을 가지며, SH공사 등 11개 산하기관도 관할하는 자리다. 당선 다음 날인 27일 임기를 시작하는 박 시장은 당장 내년 예산을 짜서 시의회에 넘겨야 하는 등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바로 코앞에 놓여져 있다.

"시민운동 리더십으론 안 된다"

박 시장은 '실무가형 리더'다. 일에 있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부지런하고 꼼꼼하다는 게 함께 일해본 시민운동 활동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일에 대한 장악력이 높으니 스스로의 판단에 대한 자신감도 높다. 한 참여연대 전직 간사는 "팀 워커 스타일이라기보다는 혼자 앞서서 던지고 달리는 스타일"이라면서 "솔직히 민주적 리더십은 아니다"라고 평했다.

한 민주당 의원 보좌관은 이번 선거과정에서 드러난 박 시장의 가장 큰 약점으로 "시민운동 리더십"을 꼽았다.

"시민단체는 다 '후배'로 이뤄진 조직이었다. 박 시장은 이미 지적이나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는 조직이다. 도덕적 권위에 따른 위계질서에 입각한 시민단체에서 작동했던 리더십과 서울시장으로 요구되는 리더십은 다르다. 스케일 차이 뿐 아니라 이해관계가 서로 엇갈리는 집단들의 갈등을 조정하고 풀어야한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도 절감했겠지만 '박원순의 정당성'은 작동되지 않는 공간이다."

선거 초반 민주당과 경선룰을 합의하는 과정에서 양측 실무자들끼리 논의가 진행 중인데도 문재인 노무현재단이사장과 만난 자리에서 "민주당 안을 수용하겠다"고 결정한 일,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세에 후보가 직접 나서서 "대응하지 말라"고 지시했던 일 등은 모두 박 시장의 '독선적 리더십'의 일면을 보여줬다.

특히 박 시장이 선거 중반까지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은 자신의 '도덕적 정당성'에 대한 자신감 때문이었다. 정치 아마추어의 '순진함'이 그대로 반영됐고, 선거 참모 중 어느 누구도 그를 제어하지 못했다고 보여진다.

"선거전에서 네거티브는 사실 너무나 당연한 거다. 한나라당이 '박원순, 너 뭔데' 이런 식으로 도덕성 검증을 하는 거 자체가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건 별로 유권자들에게 먹히지 않는다. 한나라당의 네거티브에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세요, 말을 왜 그렇게 험하게 하세요'라는 식으로 난망해 하는 걸 볼 때마다 솔직히 아찔했다." (민주당 의원 보좌관)

'복마전'으로 불리는 서울시정을 이런 '순진무구한 리더십'으로 개혁해 나가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치 9단'으로 불리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정치 승부사' 기질을 자랑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도 국정운영에 있어 '관료의 늪'에 빠졌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얘기다.

"박 시장은 행정집행에 대한 경험이나 능력은 검증되지 않았다. 문제제기 능력은 강하지만 갈등 조절 능력까지 강할지, 이런 게 위험 요소가 아닐까 싶다." (전 참여연대 간사)

무소속 야권단일후보에게 당선 후 날라온 '계산서'는 어쩌나

박 시장은 야권단일후보였지만 무소속이다. 한나라당 정권 하에 무소속 서울시장의 정치적 입지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정치적으로 우호적 관계보다는 비우호적 관계에 노출된 상태"(여론조사 전문가)라고 할 수 있다.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서울시의회와 관계는 우호적일 수 있나?

두 가지 변수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정무부시장 등 인사를 어떻게 하느냐. 둘째, 내년 총선과 대선까지 이어지는 야권 재편 과정에서 민주당에 대해 어떤 스탠스를 취하느냐에 달렸다는 것.

민주당은 호남 등 일부 당내 반발에도 불구하고 박원순의 '입당'을 끝까지 압박하지 않았다. 또 선거 중반 이후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세에 대응하고 맞불 작전에 투입된 것도 같은 '선수'들인 민주당이었다. 박 시장은 정치적으로 민주당에 빚을 진 셈이다. 박 시장은 당선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에 제가 큰 빚을 졌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이 민주개혁세력의 맏형으로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본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덧붙이자 현장에 있던 민주당 당원이 "반드시 입당해야 한다"고 소리치기도 했다. 민주당의 정서가 어떤지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야권이 단합해 선거를 치뤘으니 서울시정부 구성도 공동으로 구성하는 게 당연하다. 여기서 시민후보였던 박 시장이 앞에 놓인 난제 중 하나가 등장한다. 바로 인사의 문제다.

"인수위 구성이 첫 단추가 될텐데, 결국 사람의 문제다. 선거과정을 보면 민주당에 의존적인 선거를 한 셈인데, 기존 정당정치를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했지만 과연 그럴만한 인적 구성을 할 수 있을까. 정무부시장이 누가 되는지를 보면 어느 정도 판단이 가능할 것이다. 까놓고 민주당 인사를 제치고 하승창('희망과 대안' 공동운영위원장)처럼 경험과 고민을 공유하는 사람을 선임할 수 있겠냐."(전 참여연대 간사)

"민주당을 포함한 야권이 같이 선거를 치룬 것인데, 이들과 관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 누구를 정무부시장으로 할 것인가 등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야권단일후보로 확정된 뒤 선거대책위원회를 꾸리는 과정에서 민주노동당은 자리 배분 문제를 놓고 선대위에 불참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고려해야할 역학 관계가 민주당과 시민사회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진보정당들도 있다.

민주당과 관계 설정에서 또 하나의 변수는 야권통합과정에서 박 시장이 어떤 스탠스를 취할 것이냐다. 민주당 관계자는 "박 시장이 야권통합 과정에서 민주당을 해소돼야 하는 존재로 볼 것이냐, 아니면 보완해야할 존재로 볼 것이냐, 이에 따라 민주당 지지자들의 입장이 정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호남의 민주당 지지자들을 "내가 좋아서 찍은 게 아니라 한나라당이 되는 걸 막으려고 찍은 거 아니냐"고 비난하면서 민주당을 깨고 열린우리당을 창당했던 기억을 떠올릴 수도 있다.

"짧은 잔여임기 동안 시정부의 인적 구성, 민주당에 대한 부채, 대통합 과정에서 스탠스 등이 내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큰 정치일정과 맞물려 애초 기대했던 시민정치가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애초 구상했던 것들이 이런 문제들과 혼재돼 제대로 실현될 수 있을까. "(전 참여연대 간사)

박원순의 새로움, 구호는 있는데 내용은?
▲ 박원순 시장의 당선을 기뻐하며 서울광장에 모인 지지자들. ⓒ프레시안(최형락)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박 시장은 선거 과정에서 지난 10년간 한나라당의 서울시정을 '낡은 것'으로 평가하면서 '새로운 희망'을 얘기했다. 하지만 박 시장의 대표 공약이나 구호를 묻는다면 떠오르는 게 없다. '새로움', '희망'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를 구체화할 내용이 정작 드러나지 않았다.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세 때문에 각 후보들의 정책에 관심이 집중되지 못한 탓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정책 검증에서 박 시장이 받은 성적도 그닥 좋지 않다. 급작스럽게 출마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네거티브 공격에 억울하다고 읍소했는데 정치엔 그런 건 통하지 않는다. 네거티브를 뚫고 나가 새로운 프레임을 제시해 내는 게 정치력이다. 한나라당의 네거티브전에 왜 밀렸는가. 시민운동을 했다는 '과거의 무기'는 있는데, 앞으로 뭘 하겠다는 '미래의 무기'가 없었기 때문 아닌가. 네거티브를 덮을 비전이 명확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새로운 희망'이라는 구호에 걸맞는 비전들, 뭐가 새로운 건지, 새로운 걸 통해서 뭘 만들 것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구체적인 정책도 정책이지만 시민들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욕구에 부응하겠다고 했는데 시민들과 어떻게 새로운 시정 모형을 만들 것인지 제시돼야 한다."(김윤철 교수)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시민사회, 노동계의 관계는 시너지가 있었다기 보다는 어정쩡한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박 시장이 복잡한 정치지형 속에서 새로운 정치, 진보정치의 기반, 진지를 구축할 수 있을까."(전 참여연대 간사)


이는 박 시장이 자신이 놓인 정치적 지형과 무관하게 자신을 찍은 지지자들의 기대와 요구를 충실히 대변할 수 있을 것이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박 시장을 당선시킨 동력은 사회.경제적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나타난 '박탈감'이라고 할 수 있다. 20-40대가 박원순 시장을 압도적으로 지지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런데 박 시장이 말하는 '희망 서울'에는 부의 일차적 분배에 해당하는 노동, 조세 등 문제에 대한 구상이 뚜렷하지 않다. "사람을 위한다", "복지를 우선하겠다"는 말만 있다. 박 시장은 앞으로 이 질문에 어떤 답을 제시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