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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청와대 금융팀장, 미래에셋, 삼성(2009.6.4)

과거 금융계에선 '금융계에서 출세하려면 은행에 가지 말고 경제관료가 되는 게 빠르다'는 얘기기 있었다고 한다. 은행 등 금융기관에 곧바로 들어가 봐야 임원 되기가 하늘에 별따기이므로 경제관료로 있다가 '낙하산 인사'로 내려오는 쪽을 택하는 게 승산이 더 높다는 것. '모피아(MOFIA : 재부무와 마피아를 합친 조어)'의 막강한 힘도 정부와 금융계 전반에 포진한 인맥에서 나온다.

민간기업이 앞다퉈 모피아를 영입하려는 것은 이들이 가진 인적 네트워크 때문이다. 경제관료 출신은 직접적인 로비 창구로 활용할 수도 있고, 관련기관을 포함한 정부 쪽의 정보 수집에도 유용하다.

정부와 민간기업을 넘나드는 '회전문 인사'는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게 공직자윤리법의 '취업제한 조항'이다. 이에 따라 고위 공무원들은 퇴직 후 2년 동안, 퇴직 전 3년 이내에 소속됐던 부서업무와 연관된 기업체에 재취업할 수 없다.

소망교회 출신 미래에셋 사외이사가 하루 만에 물러난 사연

장병구 전 수협중앙은행 신용부문 대표가 미래에셋증권 사외이사로 선임된 지 하루 만에 중도퇴임한 것은 공직자윤리법 때문이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2일 장 전 대표가 1일자로 사외이사에서 물러난다고 공시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 장 전 대표가 수협에 재직하던 당시 수협과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에 대비한 신상품 개발 및 투자금융 업무 등에 대해 포괄적 업무제휴(MOU)를 체결한 바 있다. 따라서 미래에셋과 수협은 직접적 이해관계에 얽혀있지만, 미래에셋은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승인을 거치지 않은 채 장 전 대표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미래에셋의 무리한 인사가 문제였다. 미래에셋이 수협과 관계를 염두에 두고 장 전 대표를 영입하려고 한 것인지, 아니면 장 전 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이 다니던 소망교회 신자라는 사실을 염두에 둔 것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장 전 대표는 '소망교회 금융인 선교회(소금회)' 회장이다. 200명 안팎의 회원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소금회'는 이명박 대통령이 회원이었고,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때 회장을 지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잘 나가는' 모임 중 하나다.

청와대 금융팀장 5개월째 공석인 사연

청와대는 지난 1월 21일 조직개편안을 발표하면서 경제수석 아래 금융과 구조조정, G20 정상회담 등의 업무를 담당할 금융팀을 신설하겠다고 밝혔었다. 금융팀장은 비서관급으로 하고 민간 전문가를 영입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팀은 꾸려져 돌아가고 있지만 금융팀장 자리는 아직까지 공석이다. 적합한 인사 영입에 실패해 팀장 인선은 안 하기로 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가 금융팀장 영입에 실패한 원인 중 하나가 공직자윤리법의 취업제한 조항이다. 이 법 때문에 금융팀장을 그만 두고 난 뒤 2년 동안 금융업계에 취업하는 게 힘들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 물론 더 중요한 이유는 돈 문제로 알려졌다. 금융팀장의 연봉은 7000만~8000만 원 선이나 영입하려는 능력 있는 투자은행(IB)의 전문가들은 보통 수억 원대의 연봉을 받는다는 것이다.

공직자윤리법을 피해가는 삼성

앞의 두 사례를 보면 공직자윤리법이 강력한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공직자 본인이 퇴직 3년 전부터 '경력 관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이 재취업을 원하는 기업과 연관된 업무는 일부러 맡지 않는 것이다.

또 고위공직자를 영입하려는 기업이 경제연구소 등을 통해 '신분 세탁'을 해주기도 한다. 참여연대가 지난 2005년 낸 <삼성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은 김익수 전 경제기획원 경제교육기획국장 등 5명을 영입하면서 2년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근무하게 했다. 하지만 이 기간동안 연구실적은 전혀 없었다는 것. 공직자윤리법을 피해가기 위해 삼성경제연구소로 발령을 냈지만 사실은 다른 일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삼성은 101명의 전직 관료를 영입해 가장 많은 관료를 영입한 기업이지만 공직자윤리법이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김병기 삼성경제연구소 사장, 정병기 삼성전자 전무, 연해철 삼성증권 감사 등도 삼성으로 옮겨올 당시 공직자윤리법을 어긴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으나 논란으로 그쳤을 뿐이다.

지난 3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의 일등공신 중 하나인 김현종 전 유엔대사가 삼성전자 사장급으로 영입됐을 때도 공직자윤리법 위반이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었다.

그러나 공직자윤리위원회는 김현종 전 대사가 맡았던 직위가 규제나 감시하는 업무가 아니라 지원하는 업무였기 때문에 업무연관성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로 취업허가를 해줬다.

공직자윤리법 강화돼야 하지만…고양이에게 생선 맡긴 꼴

이처럼 공직자윤리법의 취업제한 조항이 이런저런 '구멍'으로 허술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은 여러차례 있었다. 행정안전부도 지난해 8월 이를 강화하는 개정안을 입법예고하기도 했다.

당시 입법된 개정안은 △ '퇴직 전 3년'을 2년 늘려 '퇴직 전 5년간' 맡았던 업무와 연관된 기업에는 퇴직 시점부터 2년 동안 취업할 수 없도록 하고 △ 자본금 50억원 미만, 연간 외형 거래액(매출) 150억원 미만 기업이나 협회에 '일정액 이상의 보수'를 받는 조건으로 취업할 때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취업 확인이나 승인을 받도록 의무화했다. 김앤장 등 대형로펌이 전직 고위관료들을 영입해 로비 등을 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

하지만 국무회의를 포함한 공직사회 내부 반발로 이를 백지화했다. 행안부는 결국 작년 12월 두 조항을 모두 삭제한 새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을 재입법 예고 후 국회에 제출했다. 장관을 포함한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만큼 강력 저항했다는 얘기다.

참여연대 행정감시팀 장정욱 간사는 "공직자윤리법의 취업제한조항이 모든 공직자의 취업을 광범위하게 제한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주 최소한의 규정만 돼 있다"면서 "그런데도 이런저런 방법으로 피해 가기 일쑤"라면서 법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불행하게도 공직사회의 인식은 이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 듯 하다. 금융감독위원장에서 물러난 뒤 로펌 김앤장 고문으로 재취업했던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월 인사청문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업무처리에서 공정성이 우려될 수도 있지만 공직자 처지에선 직업선택의 자유에 해당하는 문제다. 그런 곳(김앤장)까지 가지 못하게 하면 공직자는 어떻게 하라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