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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노무현

노무현, 정몽준, 이명박, 박근혜(2009.5.28)

경남 봉하마을에 '회장님'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전국에서 70만이 조문을 다녀갔지만 '회장님'들께서는 내려오지 않았다. '높으신 분'들께서는 노 전 대통령의 급작스런 죽음에 상심하고 분노한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차린 서울 대한문 앞 분향소도 찾지 않았다.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를 포함한 대다수 한나라당 의원, 한승수 국무총리 등 이명박 정부 인사, 그리고 재벌 총수들은 정부에서 마련한 서울역사박물관 분향소에서 분향했다. 이건희 전 삼성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준양 포스코 회장 등이 이곳을 찾았다.

'회장님' 중 누구도 봉하마을을 찾지 않았다는 것은 노 전 대통령과 재벌의 관계를 드러내준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하면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재계는 노 전 대통령과 '불편한 관계'를 끝내 풀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이 임기말 자신의 지지층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재계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라는 엄청난 선물을 안겨줬는데도 말이다.

"정몽준과 나, 살아온 길이 다르다"

이명박 대통령은 헌정사상 첫 CEO 출신 대통령이다. 2007년 17대 대선에서 그는 '경제 대통령'을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워 당선됐다. 그가 대통령이 된 것은 그가 현대건설 CEO 출신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CEO 대통령' 시대가 좀 더 빨리 올 수도 있었다. 2002년 대선에서 정몽준 의원은 유력 주자 중 하나였다. 그는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의 아들이자 현대중공업 대주주다.

정 의원은 2002년 대선에서 '국민통합21'이라는 당을 창당해 노무현 당시 민주당 후보에 대적하는 '개혁후보'로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후보와 '3파전' 구도를 형성했었다. 그러나 막판 후보단일화 과정에서 노무현 후보에 패해 대권의 꿈을 접어야만 했다. 만약 후보단일화에서 정몽준 의원이 이겼다면? CEO 대통령 등장 시기는 5년 앞당겨졌을 수도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당의 반노(反盧) 세력을 중심으로 후보단일화 요구가 부글부글 끓던 2002년 9월 정몽준 의원과 후보단일화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는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내 손으로 (정몽준 의원과 연대 가능성에 대해) 선을 긋고 싶지는 않다"면서도 "그동안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와 함께 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비교해보면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라며 '차별성'을 강조했다.

▲2002년 대선 당시 후보단일화를 합의한 뒤 여의도 포장마차에 들러 '러브샷'을 하고 있는 정몽준(왼쪽)과 노무현. ⓒ연합

현대가의 '황태자'인 정몽준 의원과 88년 12월 국회의원 신분으로 현대중공업 파업 현장에 찾아가 파업 지지 발언을 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살아온 길"이 달랐다. 당시 민주당에서 정 의원과 연대에 있어 가장 부정적인 사람은 노 전 대통령이었다. 대선 후보 지위를 지키기 위한 측면도 있었지만, 그는 '정책'과 '철학'의 차이를 언급했다.

노 전 대통령이 정몽준 의원 측과 '공동정부' 구성에 대해 끝까지 약속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대선 전날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정몽준 의원 측과 공동정부 구성에 대해 일체 약속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의 한 참모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내가 낙선해도 좋으니 제대로 하는 대통령이 나오도록 하자. 제대로 할 수 있는 대통령이 아니면 저는 대통령 하지 않겠다"며 공동정부 약속을 할 수 없다고 버텼다고 한다. 김대중 정부가 'DJP연대'의 대가로 초기 내각의 절반을 자민련에게 내주며 개혁정책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일을 염두에 뒀기 때문으로 보인다.

노 전 대통령은 정 의원 측이 선거 전날 밤 돌연 지지 철회를 선언하며 후보단일화 약속을 저버렸지만, 그를 적극적으로 붙잡지 않았다. 정대철 당시 선대위원장 등 대다수의 참모들의 종용에 못이겨 노 전 대통령은 이날 밤 정 의원을 찾아가 면담을 요청했으나 문전박대 당했다. 참모진들은 노 전 대통령이 끝까지 정 의원을 기다려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이내 발길을 돌렸다.

후보단일화, 공동정부 구성 밀약 거부, 정 의원의 후보단일화 철회, 당선에 이르기까지 노 전 대통령은 특유의 승부사 기질을 발휘했고, 결과적으로 '재벌 대통령' 탄생을 온몸으로 막았다. 또 '재벌'이 국정 최고의 파트너가 되는 것도 막을 수 있었다.

"재벌 회장과 독대하지 않겠다…권력이 시장에 넘어갔다"

▲ 노무현 전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과 삼계탕 회동. 좁은 식당과 먹기 불편한 삼계탕은 이건희 삼성 전 회장을 비롯해 재벌 총수들을 적잖이 당황케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
노 전 대통령은 집권하면서 "재벌 회장과 독대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대통령과 재벌회장과 독대 자리에선 '청탁'과 '돈'이 오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노 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의 내밀한 독대 대신 집권 4개월 만에 재벌 회장들을 삼계탕집으로 불렀다. 노무현 정부는 그해 12월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의 '재벌개혁' 의지는 계속되기 힘들었다. 2003년 '카드대란'이 나면서 경제상황이 악화되자 재벌에 계속 '뻣뻣한' 태도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노 전 대통령은 결국 2005년 5월 "권력은 이미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고백을 털어놓았다.

노 전 대통령은 집권 4년차인 2006년 들어서는 한미 FTA 협상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해 2월 "한미 FTA 협상은 우리가 주도적으로 여건을 조성하고 제안해서 성사된 것"이라며 자신의 소신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 과정에서 "농민은 염치도 없다. 한미FTA하면 또 돈 내놓으라고 하고, 한중(FTA)하면 또 내놓으라고 한다"고 농민들을 힐난하기도 했다. 반면 재계에서는 "'승부사' 노무현이 아니고서는 못할 일"이라고 박수를 보냈다.

이명박 집권의 의미, '자본=권력'

노 전 대통령은 재벌 계열사 CEO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에게 권력을 넘겨줬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은 재벌 총수들에게 독대 수준을 넘어 언제든지 즉각 연락이 가능한 '핫라인'을 터줬다. 또 재벌의 방송사와 은행 소유도 허용해주겠다고 하고 있다. 이는 공공성을 훼손할 수 있고, 경제시스템 자체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금기시되고 있는 일들이다. 또 법인세, 소득세 등 '부자 감세'에 종합부동산세 완화 등 노무현 정부가 도입한 부동산 투기 억제책도 다 풀어줬다.

노 전 대통령은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시인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시장(자본)이 곧 권력이 된 셈이다.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품었던 'CEO 대통령'은 나라 살림을 잘하는 대통령이 아니라 '기업=국가'로 여기는 대통령이었다.

'두번째 정권교체'라는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실패, 또 그를 지지했던 많은 진보적 인사들이 등을 돌린 배후에는 '재벌(자본)과의 관계'가 놓여 있었다. 이명박 정부에 권력을 넘겨줌으로써 노 전 대통령은 재벌과 '힘겨루기'에서 패했고, 개혁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기반으로 집권한 노무현 정권 역시 지지자들의 실망과 비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두번째 민심 폭발…그 끝은?

퇴임 1년 3개월 만의 급작스런 그의 죽음은 이명박 정부에서 맹렬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자본과 권력의 일체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의 노골적인 신자유주의 정책에 분노한 민심이 첫 번째로 폭발한 것인 지난해 '촛불집회'였다. 그리고 노 전 대통령의 추모 열기는 두 번째 민심의 폭발이다. 보수언론들이 연일 "화해와 통합"을 말하고, "촛불시위와 같은 무법천지가 재현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동아>, 28일 사설)고 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반면 많은 이들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 '더 가지기 위해 타인을 죽음에까지 몰아넣은 세태'를 안타까워하고 있다. 또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의 생전의 서민적이고 소탈한 모습에 감동 받고 가슴 아파하고 있다. 다른 대통령과 비교해 가장 서민적이었던 그를 그리워하고 있는 분위기다. 1년 반 전 'CEO 대통령'의 탄생을 기대하며 그의 도덕적 결함은 눈감아 주던 때와 사뭇 다르다. 물론 여기에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뿐 아니라 지난해부터 계속되고 있는 경제위기도 큰 영향을 미쳤다. 노 전 대통령의 추모 열기는 국민장이 끝나는 이번 주가 지나면서 서서히 사그러들겠지만, 두 번째 폭발한 민심은 어디로 튈지 모른다.

지금까지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에 대한 반사이익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쏠렸지만, 다른 국면이 펼쳐질 수도 있다. 국민들이 박 전 대표에게 쏠렸던 것은 '피도 눈물도 없는' 이명박 대통령에 비해 박근혜 전 대표는 어머니 이미지에 기반한 '따뜻한 보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자본의 입장에서도 이미 권력을 잡았으니 또다시 CEO 출신 대통령이 나올 필요는 없다. 이를 잘 유지, 관리할 '검증된 인물'이면 족하다.

박근혜 전 대표가 다음 대통령이 된다면, 그는 헌정사상 첫 '2세 정치인' 출신 대통령이 된다. 미국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일본의 고이즈미 전 총리, 아소 다로 전 총리 등이 '2세 정치인'이다. 대를 이은 최고권력자가 나온다는 것은 정치가 점점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박 전 대표는 정몽준 의원과 초등학교 동창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