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피플/이명박

MB, 도덕성 검증으론 안 무너진다 (2007.8.20)

"아마 다른 사람 같으면 무너졌을 것이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20일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기까지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그가 지난 15일 대학생 지지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말했던 것처럼 '다른 사람'이었다면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후보는 '도곡동 땅' 의혹, BBK 의혹, 국회의원 당시 선거법 위반과 관련된 위증교사 의혹 등 숱한 의혹에도 불구하고 한나라당 대선 후보 자리를 꿰찼다.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도 지지율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한나라당 후보로 확정됨에 따라 이 후보의 지지율은 당분간 상승세를 탈 전망이다. <동아일보>가 이 후보 당선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 선호도는 56.6%로 지난 12일 조사와 비교해 17.1%포인트 올랐다고 21일 보도했다.

이전까지 상대 후보를 거꾸러뜨리는 '필살기'인 도덕성 검증이 별로 먹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는 '이명박 신드롬'이라고 불릴 만한 정치 현상이다. '이명박 신드롬'이 발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또 범여권, 민주노동당 후보 등과 경쟁하는 본선에서도 '이명박 신드롬'은 계속될 것인가?

요인 1 : "부패해도 좋다. 경제만 살려다오"...경제대통령에 대한 기대

▲ 대선후보로 확정된 뒤 손을 들어 환호하는 지지자들에게 답례하고 있는 이명박 후보. ⓒ연합뉴스

지난달 19일 한나라당 검증청문회 후 <문화일보>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7.6%가 이 후보의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해소되지 않았다"고 답했다. 또 최근 검찰이 '도곡동 땅'과 관련해 "제3자 소유 의혹이 있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지만 경선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많은 지지자들이 이 후보의 부동산 관련 의혹이 사실일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그를 지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정황들이다.

이는 이번 대선에서 도덕성이나 부정부패의 문제가 민심을 움직이는 주요 요인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번 대선의 첫 번째 화두는 '경제'이고, 이런 잣대로 이 후보가 박근혜 후보를 누르고 선택됐다는 것이다.

특히 이명박 후보는 현대건설 사장 경력, 또 서울시장 재직 당시 업적인 청계천 복원 및 노선버스 체계 개편 등 '가시적인 성과'를 가졌다는 점에서 국민들에게 경제대통령 감으로서 신뢰를 획득하고 있다.

이에 반해 박근혜 후보는 경제와 관련해 가시적 성과를 남긴 것이 없고, 경제회복에 대한 신뢰를 주지도 못했다.

요인 2 : "이명박의 경제정책은 잘 몰라"...도덕성 검증의 역효과

이 후보가 경제대통령 감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정작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그의 경제정책은 제대로 검증받은 적이 없다. 그의 대표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는 환경문제 뿐 아니라 경제적 효과를 놓고도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또 그가 내세운 '7.4.7 공약'(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7위 경제대국 달성)의 실효성도 제대로 검증받지 않았다.

냉정히 보면 경제인 출신이니까 정치인 출신들보다 경제에 대해 더 잘 알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그에 대한 기대감의 실체라고 할 수 있다. 손혁재 성공회대 교수는 이런 점에서 이 후보에 대한 기대가 "실체가 없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후보의 경제정책에 대한 검증이 상대적으로 부실했던 것은 한나라당 경선 과정이 '도덕성 검증'으로 점철됐기 때문이다. 김윤철 전 진보정치연구소 연구실장은 "이 후보의 도덕성 문제를 물고 늘어지면 늘어질수록 정책은 관심을 끄는 이슈가 되지 못한다"면서 "동시에 도덕성 검증은 이 후보의 능력은 이미 인정받은 것으로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 집권당인 자민당이 정치 부패로 지지율이 급락했지만 장기집권에 성공했다"면서 "야당인 사회당은 자민당의 부패 문제를 끊임없이 문제제기했지만, 자민당에 부패 문제 밖에 없었던 것은 역으로 외교안보, 경제발전 정책은 국민들이 동의하고 있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도덕성 검증은 박 후보를 견제세력으로만 인식하게 만드는 역설적 프레임을 낳았다"고도 지적했다.

요인 3 : "모든 게 노무현 탓이다"...민주화 정권 학습효과

도덕성 이슈가 전처럼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배경에는 소위 '노무현 학습 효과'가 놓여 있다.

지난 2002년 개혁에 대한 열망으로 노 대통령이 당선됐으나, 국민들이 지난 5년간 권력의 주체만 바뀐 것이지, 권력의 속성은 바뀌지 않는다는 '권력의 악마성'에 대해 깨닫게 됐다는 것.

박상훈 박사(정치학)도 현직자에 대한 심판이 투표의 일차적 기준이 되는 '회고적 투표' 경향의 반사이익을 이 후보가 가져갔다고 봤다. 박 박사는 "합리적 선택 이론과는 안 맞지만 노무현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다른 미래지향적인 것보다 일차적인 투표의 기준이 되고 있다"고 현 상황에 대해 지적했다.

이미 민주화 세력도 두 번이나 집권해, 민주화가 더 이상 시급한 과제가 아닌 상황이 됐다. 또 두 번의 민주화 정권, 특히 김대중 정권에서도 각종 게이트 등 권력형 비리사건이 일어났다는 것도 도덕성 검증에 대한 면역효과를 낳았다.

김윤철 전 연구실장은 "노무현 정권에 대한 학습효과로 국민들의 선택기준이 변화했다"면서 "진보, 보수의 문제를 떠나 국정운영 능력이 있느냐를 우선적으로 따지기 시작했다는 지표로 보인다"고 말했다.

요인 4 : '굴러들어온 돌' 이명박...반(反)한나라당 정서 상쇄
▲ 이명박 후보가 13일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과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당 지지율 1위의 한나라당 대선 후보 자리에 올랐지만 이 후보의 정치 경력은 길지 않다. 이 후보는 지난 1992년 14대 총선에서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발탁으로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된 뒤, 95년 서울시장 경선에 나섰으나 고배를 마셨다. 또 96년 총선에서 서울 종로구에서 당선됐으나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2002년 서울시장에 당선되기 전까지 '정치인 이명박'으로 특정 이미지를 형성할 만한 일이 없었다. 오히려 그는 '성공한 경제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그러나 '굴러온 돌'이라는 점은 이 후보에게 오히려 강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후보의 정치 이력이 짧기 때문에 '오래된 구시대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도 없고, 한나라당 색채가 강하게 배어 있지 않기 때문에 비(非) 한나라당 성향의 유권자들도 그를 지지할 수 있다.

요인 5 : 호남도 찍는 이명박...전통 지지층 붕괴 현상의 가속화

한나라당 색채가 짙지 않기 때문에 이 후보는 지역구도를 포함한 전통적 지지층을 붕괴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수도권, 30-40대, 화이트칼라 등 이 후보의 주요 지지층은 전통적으로 여권 지지 성향이 강했던 계층이다. 이 후보는 다른 한나라당 정치인들에 비해 호남에서의 지지율이 높다. 지난 7월20일 <매일신문>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3.0%가 이 후보를 진보성향의 정치인이라고 답했다. 이 후보는 진보-보수의 경계도 넘나들고 있다. 실제로 이번 경선의 지역별 득표 상황을 보면 이 후보는 수도권-호남에서만 박근혜 후보를 이긴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명박 신드롬'은 전통적인 지지층 붕괴 현상의 원인이라기보다는 결과인 측면이 강하다. 노무현 정권에서부터 시작된 여권의 분열 현상으로 호남 유권자들의 분열 현상이 촉발되기 시작했고, 개혁성향의 유권자들이 일부 한나라당으로 이동하게 된 것은 노무현 정권과 여당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에 보수색이 강하게 덧씌워진 후보만이 존재했더라면 이 같은 '교란'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요인 6 : 한나라 경선 승자는 <조선>.<동아>?...보수언론의 '물타기'

'이명박 신드롬'을 부추긴 정치 외적인 요인으로 '언론'을 꼽을 수 있다. 정치 권력의 감시자가 아니라 직접 정치권력을 창출하는 역할을 하려는 한국 언론의 속성 역시 그간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왔었다. 이번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도 <조선일보>, <동아일보> 등 소위 보수언론의 '이 후보 편들기' 의혹이 제기됐다.

이 후보의 부동산 의혹 등과 관련해 이들 보수언론이 초점을 맞춘 것은 의혹의 진위 여부가 아니라 "현 정부로부터 의혹이 제기됐다"는 등 소위 '음모론'이었다고 손혁재 교수는 주장했다. 손 교수는 "이를 통해 여론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는 등 '물타기'가 가능했다"고 말했다.

또 최근 '<조선일보> 오보 소동' 등 보도의 공정성과 관련해 보수언론과 박근혜 캠프간에 직접적인 갈등이 일기도 했다. <조선>은 지난 16일 '도곡동 땅' 의혹과 관련한 기사에 대해 이 후보 측이 '오보'라고 강력히 항의하자, 이날 낮 황급히 '사과문'을 홈페이지 머릿기사로 올리는 등 신속하면서도 과도한 반응을 보였다. 이에 대해 박 캠프 측은 "(정보를 제공한) 검찰은 오보가 아니라는데 스스로 오보라고 격하하는 이유가 뭐냐"면서 "언론 역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고 강한 불만을 제기했었다.

박 캠프는 앞서 <동아>의 여론조사 관련 오보에 대해서도 "의도적인 것"이라면서 30억 원의 손해배상소송을 청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관련기사 보기 : 朴측 "역사에 길이 남을 <조선>의 오보 소동" , 李ㆍ朴 난타전, 불똥이 <조선>ㆍ<동아>에도? )

'이명박 신드롬'의 지속 여부는?

이런 이유들로 한나라당 경선까지 계속돼온 '이명박 신드롬'이 본선에서도 계속 유지될까?

이 질문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예측이 갈렸다.
▲ `도곡동 땅' 차명재산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와 관련, 8월 14일 오전 이재오 한나라당 최고위원 등 이명박 전 서울시장 캠프 소속 의원들이 검찰의 수사발표에 항의하기 위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을 방문, 검찰총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윤철 전 연구실장은 '이명박 신드롬'은 유권자들의 의식, 정치환경의 변화 등에 기인한 것이므로 본선에서 정말로 치명적인 사실이 드러나지 않는 한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광일 교수도 '이명박 신드롬'에 대해 "신자유주의 시대의 정치 실종 현상이 반영된 것"이라면서 "경제도 결국 사회관계가 반영된 정치의 문제라는 것을 다른 당 후보들이 부각시키는 데 실패한다면 이번 대선전은 이 후보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손혁재 교수는 "실제 대선에서는 현재의 '회고적 투표 성향'이 줄어들고 미래지향적 선택이 드러날 것"이라면서 "'이명박 신드롬'에는 한계가 있다"고 예측했다. 손 교수는 경선 과정에서 적당히 넘어간 각종 도덕성 의혹에 대해서도 본선에서는 이 후보에게 큰 '짐'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본선에서도 상대 후보들이 이 후보의 '도덕성'을 주요 공략지점으로 삼을 경우 승산이 높지 않다는 점은 공통적으로 지적했다. 박근혜 후보가 빠진 '덫'에 똑같이 걸려들 수 있다는 것. 이런 맥락에서 '도덕성'은 이 후보의 가장 약한 고리가 아니라 가장 강한 고리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