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피플/노무현

노무현 "멀로니가 캐나다 구했다" (2006.6.9)

노무현 대통령이 캐나다의 브라이언 멀로니 전 총리를 수 차례나 집착에 가깝게 인용하는 데 대해 <프레시안>을 비롯한 대다수 언론들이 비판적 보도를 이어가자 이번엔 청와대가 정색하고 반박에 나섰다.
  
  김종민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은 9일 <청와대브리핑>에 '다시, 멀로니 얘기를 꺼내는 이유'라는 글을 올려 "대통령 얘기의 핵심은 멀로니라는 정치인이 아니다"며 "멀로니 사례를 놓고 우리가 갑론을박해야 할 것은 멀로니 개인에 대한 정치적 평가가 아니라 이런 전환기에 책임 있는 정부, 책임 있는 정당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대통령 "멀로니가 캐나다 구했다"
  
  김 비서관은 "대통령 얘기의 핵심은 멀로니에 대한 인물평을 하거나 그의 리더십을 평가하자는 게 아니다"면서 "1991년 멀로니가 추진한 연방부가세 도입이라는 정책과 그 결과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말꼬리 잡는 것 같지만, 이 문제와 관련된 노 대통령의 언급을 직접 들었던 기자로서 기억과 기록을 되짚어보자면 노 대통령의 언급은 분명히 연방부가세 도입 결정을 계기로 살펴본 국가지도자로서의 멀로니에 대한 평가였다. 그저 정책에 대한 평가만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오찬간담회에서 "멀로니는 결과적으로 당을 몰락시켰지만 캐나다를 구했다"고 극찬했다. 또 93년 총선에서 맞붙었던 자유당 크레티앙 당수와 비교하면서 "누가 소신있는 정치인이냐, 누가 진정한 지도자냐"고 반문하기까지 했다.
  
  그 직후 청와대는 <청와대브리핑>을 통해 "멀로니는 부가세 도입 외에도 미국과의 FTA 체결, 퀘벡주 문제 등 국가적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치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결단한 지도자이었음에는 틀림없다"며 "멀로니가 집권 다수당 소속이었다는 것은 캐나다의 행운이었다"고 강조하지 않았나?
  
  멀로니 정책이 노무현 정부 정책 방향과 일치하나
  
  사실은 이런 말 바꾸기에 대한 지엽적인 비판을 떠나 근본적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다. 과연 멀로니의 '연방부가세'(GST, Goods and Services Tax)가 노무현 정부의 철학과 일치하는 것이냐는 점이다.
  
  멀로니는 우리의 법인세 격인 '생산자판매세(MST, Manufacturers' Sales Tax)'를 없애고 대신 '연방부가세(GST)'를 전 업종으로 확대했다. 기업이 부담하고 수입에 따른 누진률이 적용되는 직접세 대신에 징세는 용이하지만 소득수준에 관계없이 똑같이 부담해 결과적으로 역진적 성격이 강한 간접세를 강화한 것이다.
  
  따라서 캐나다의 학계 및 시민사회 내에서 연방부가세는 '조세 정의'라는 측면에서도 비판받아 왔다.
  
  가뜩이나 사회복지 시스템이 취약한 데에다 조세 정의가 제대로 실현되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역진적 성격이 강한 멀로니의 연방부가세는 바람직한 정책 방향이라고 평가하기 힘들다. 연방부가세가 비록 캐나다의 재정적자를 줄이는 데에는 기여했을지 몰라도 양극화 해소를 주요 정책 과제로 내세우고 있는 노 대통령 입장에선 과연 마음 편하게 "나라를 구한 정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나아가 캐나다 내에서 이 연방소비세 제도는 재정적자 해소 등 경제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느냐는 점에 있어 그다지 긍정적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멀로니 집권 시에는 재정적자가 큰 폭으로 늘어났으며, 97년 재정수지가 흑자로 돌아선 것은 멀로니 이후 집권한 자유당 정권이 재정지출 축소 노력을 경주한 데에 기인한다는 평가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노 대통령은 "보수당이 국민들의 지지를 되찾아 지난해 재집권에 성공했다"고 주장했지만, 지난 1월 당선된 보수당 스티븐 하퍼 총리는 연방부가세 축소를 공약으로 내세웠다는 대목에 이르면 우리가 무엇을 '멀로니의 유산'으로 치부해야 할지 더욱 막연해질 뿐이다.
  
  "지금이 멀로니 논쟁을 할 때인가"
  
  김종민 비서관은 이 글에서 "멀로니 사례를 놓고 우리가 갑론을박해야 할 것은 국가의 장래와 국민에게 진정으로 책임 있는 자세는 무엇인가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말은 옳다. 청와대 참모진들이 '국가의 장래와 국민에게 진정 책임있는 자세'를 고민한다면 대통령과 청와대의 '오류'를 시인하는 데 인색해서는 안 된다.
  
  김 비서관이 예로 든 행정수도 이전과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논란에서 일부 보수 언론들의 비판과 주장에 문제가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하지만 멀로니를 둘러싼 논란은 다르다. 이번엔 언론이 맞고 청와대가 틀렸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것은 청와대가 언론과 논쟁을 계속 이어갈 만큼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책임 있는 정부"로 평가받기 위해선 이렇게 '한가한 논쟁'에 집착할 때가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