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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산업화된 해외입양을 시작한 한국, 끝맺을 책임이 있다

(다음은 지난 4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해외입양 70년, 해외입양을 다시 생각한다' 토론회 토론문입니다.)

1. 출산율 0.7 과 해외입양 송출 3

 한국의 2022년 합계 출산율은 0.78로 전세계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전쟁이나 대기근이 아니고 일상이 유지되는 시기에 이처럼 낮은 출산율을 기록한 것은 세계 역사에서 드문 일이라고 합니다. 지난해 신생아수는 24만명을 가까스로 넘겼습니다. 이처럼 '인구 절벽'을 걱정해야하는 상황에서도 한국은 여전히 매년 수백명의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 기간 동안인 지난 2020년에는 한국 아동을 입양하러 들어오는 양부모의 입국시 방역 절차를 간소화 시켜주면서 콜롬비아, 우크라이나에 이어 3번째로 많은 아동을 입양 보낸 나라로 기록됐습니다(International Social Service 통계).

 

한국은 전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가장 많은 아동을 해외입양 보낸 국가입니다. 우리가 현재 목격하는 형태의 국가, 문화, 인종적 차이를 뛰어넘는 해외입양의 발원지는 한국입니다. 1953년 한국전쟁 직후 해외입양이 시작됐습니다. '일국일민주의'를 내세운 이승만 정권은 '순혈주의'를 강조하면서 외국 군인과 한국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동을 "아버지의 나라"로 보낸다는 명분을 내세웠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해리 홀트 등 당시 미국 기독교 세력들과 손잡고 '대리 입양(입양기관이 입양부모를 대신해 입양 대상 아동을 수용국으로 이동시키는 형태의 입양)'을 탄생시켰고, 이 과정에서 입양기관이 입양부모로부터 거액의 수수료를 받는 해외입양 시스템이 탄생했습니다.

 

2. 지하철 2호선 '홀트아동복지회역'

 

제가 일하는 <프레시안>은 지하철 2호선 합정역 근처입니다. 지하철 2호선의 또다른 이름은 홀트아동복지회역입니다. ‘역명부기 유상판매 사업으로 돈을 주고 역 이름은 샀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내리면서 안내 방송을 들을 때마다, 합정역 인근의 커다란 홀트아동복지회 빌당을 볼 때마다 지난 2007년부터 해외입양 문제에 대해 취재해온 기자 입장에서 기분이 정말 묘합니다. 제가 만난 입양인들 중에서도 이 건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거의 20년에 가까이 해외입양 문제에 대해 취재하는 동안 정책적 변화는 2012년 입양특례법이 전면 개정된 것이 유일합니다. 이 법이 시행된 2013년 전까지 한국은 대리입양제도가 유지되고 있어서 미국 등으로 입양된 이들 중 일부가 국적(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미국에서 현재 최대 49000여 명이 입양됐지만 시민권을 획득하지 못한 것으로 추산되는데, 이중 한국 출신 입양인이 약 2만 명으로 가장 많습니다. 시민권을 취득하지 못한 경우 본국으로 추방되기도 하며, 지난 2017년 추방된 입양인 필립 클레이씨가 자살한 사건은 제가 이 문제에 대한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3. 한국은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에 왜 가입하지 못하나

 

한국은 지난 2013년 가입 전 단계인 서명을 한 이후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헤이그 협약에 가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제입양 과정에서 아동의 인권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1993년 만들어진 이 협약의 논의의 시작점은 1980년대 한국의 입양 실태였습니다. 한국이 아직도 이 협약에 가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한정윤 변호사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이행법안이 만들어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헤이그 협약은 현재 한국에서 민간기관이 하고 있는 입양 업무를 중앙 당국이 책임지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4. 진실화해위원회는 조사 결과를 발표할 수 있을까

 

칠레는 지난 2017년과 그 다음해에 걸쳐 해외입양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아동을 해외로 입양 보낸 송출국 중에서는 칠레와 아일랜드(2020)가 해외입양에 대한 국가 차원의 조사를 했습니다.

아동을 받은 수용국 중에 국가 차원의 조사를 실시했거나 진행 중인 나라는 스위스(2019), 덴마크(2020-21), 벨기에(2021), 네덜랜드(2021), 스웨덴(진행 중), 프랑스(진행 중), 노르웨이(2023년 예정) 등 입니다.

한국은 지난해 12 6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가 해외입양인 34명에 대한 조사 개시를 결정했습니다. 국가 차원의 첫 조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지만, 진실화해위에 조사를 신청한 해외입양인 372명 가운데 10%도 안 되는 숫자입니다. 또 진실화해위 활동 종료기한은 2024 5월로 1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연 제대로된 조사 결과가 나올지 의문이 제기됩니다.

 

5.  해외입양에 대한 중단 선언이 필요하다

 

숭실대 노혜련 교수, 서울대 소라미 교수 등이 참여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지원한 <해외입양인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통한 인권보장 방안 연구>에 따르면, 해외입양인 95% "해외입양 이전에 원가족 보호를 우선해야 한다"고 답변했으며, 85% "해외입양을 지속해야 할 정당한 이유가 존재하지 않으며 해외입양을 중단해야 한다"고 답변했습니다.  송출국인 인도는 지난 2018년 미국으로 입양된 아동이 양부모에 의해 살해되자 입양기관인 홀트인터내셔널을 통한 국제입양을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수용국인 네덜란드는 2019년 국가 차원의 조사를 통해 해외입양 절차상 구조적이고 체계적인 인권 침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해외입양 당분간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프레시안>은 지난해부터 진실화해위에 조사를 신청한 입양인들에게 자신의 입양 경험에 대한 글을 받아 연재하고 있습니다. 이 글들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 해외입양에 대한 달라진 인식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은 산업화된 형태의 해외입양을 시작한 나라입니다. 한국전쟁 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한국은 어느덧 세계 경제 규모 10위의 부자 나라가 됐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여전히 자신의 나라에서 태어난 아동 중 일부를 키울 수 없다고 다른 나라로 입양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제는 달라져야 합니다. 지금도 충분히 너무나도 늦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