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

<다음소희> GV 여는 말 (2023. 4. 18)

 

 

수십년전 제가 대학원생이었을 때, 현재는 특성화고, 당시엔 실업계라고 불렸는데, 여자 실업계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취업 문제에 대해 소논문을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시 IMF 직후라서 모든 계층의 실업이 사회 문제였고, 한국 사회의 마이너 중에 마이너인 실업계 여고생의 실업률은 사회적으로 이슈화되지도 못한 문제였지만 개인적인 관심으로 이 문제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그때는 이화여대 앞이 여대생, 여고생들이 쇼핑을 하고 커피를 마시러 많이 왔습니다. 그래서 이화여대 앞을 어슬렁거리면서 인터뷰 대상자들을 물색하러 다녔습니다. 그렇게 '헌팅'을 통해 만난 여고생들은 제가 예상하지 못했던 '다른' 이야기들을 들려줬습니다. 

학교에서는 취업률을 높이려고 자꾸 '나 홀로 사장님'인 소규모 회사에도 밀어넣으려고 하는데, 그런 회사에 경리로 취업하는 것은 다들 꺼린다, 왜? 월급 문제가 아니라 성희롱을 당할 위험이 너무 크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한명이 아니라 만나는 여고생들마다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당시엔 1995년 서울대 신정휴 교수 사건으로 성희롱이란 개념이 한국 사회에서 알려지기 시작한 때였는데, 당시엔 어른들에게도 낯선 개념인 성희롱이 그들 사이에서 직업 선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결정되고 있다는 매우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만큼 안타깝게도 그 여학생들의 삶과 제 삶에는 거리가 있었죠. 

오늘 여러분들이 보실 영화 <다음 소희>의 소희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와 동시대를 살았던 소희, 여느 여고생들처럼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엄마 아빠에게 투정도 하고, 선생님에게 혼나는 등 비슷한 일상을 살았던 소희, 그러나 우리는 경험하지 못한 콜센터에서 비인간적인 노동을 강요 받았던, 여성이 다수라서 저임금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감정 노동'을 강요받던 소희의 일상은 우리의 경험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가 경험한 고통과 절망감은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깊이였습니다. 

오늘 <프레시안>이 '다음 소희'라는 영화 GV를 개최하게 된 것은 이 영화가 대중적으로 큰 찬사와 관심을 모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영화의 바탕이 된 홍수연 양의 이야기는 <프레시안>에 가장 자세하게 실렸습니다. 허환주 당시 기자, 지금은 편집국장이 어떻게 수연양의 죽음을 접하고 취재하게 됐는지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영화를 보고 나서 좀더 자세히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제가 지금 들고 있는 책 <열여덟, 일터로 나가다 : 현장실습생 이야기>에는 홍수연 양 이외에도 안산 반월 공단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자살한 영수의 이야기, 더 나아가 현장실습생들이 경험하는 우리 사회 가장 열악한 노동 현장이 교육이라는 명분과 어떻게 연계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영화만큼 재미나진 않겠지만 보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프레시안은 올해 창간 23년이 된 인터넷 언론이며, 한국에서 유일한 전국 단위 언론 협동조합입니다. 언론 협동조합이 뭐냐면, 출자금 3만원을 내시고 다달이 1만원씩 조합비를 내시면 여러분도 프레시안 사주가 될 수 있습니다. 주식회사는 '1원 1표', 즉 투자한 돈이 많으면 의결권이 커지는 원리라면 협동조합은 '1인 1표'입니다. 3만원을 출자하든, 1억원을 출자하든, 1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습니다. 돈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불공정하다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사람을 기준으로 생각하면 가장 공정한 시스템입니다. 이런 언론사이기 때문에 <다음 소희>와 같은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취재하고 보도할 수 있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프레시안이 '힙'하진 않지만, '딥'하긴 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 중에서도 '딥'한 사람들과 '찐'한 교류를 원하신다면 주저하지 마시고 나눠드린 엽서에서 큐알코드를 찍어 조합원, 후원회원 가입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일회 후원금도 보내실 수 있습니다. 

사실 제가 앞에서 이런 저런 말씀 드리는 이유가 행사를 준비할 시간을 벌어드려야 해서인 거 다들 아시죠? 이제 다 준비가 됐겠죠? 그럼 <다음 소희> 영화 잘 감상하시고, 저희는 영화가 끝난 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