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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세계 10위 경제대국이자 세계 3위 국제입양 송출국 한국, 왜 그럴까요?

[인터뷰] '어머니 산신 기관' 작가 장세진(사라 반 데어 헤이드)

"나는 아이가 네덜란드에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아이는 양부모로부터 '너를 데려오는데 1300만원이 들었다'는 말을 계속 들었다고 했어요. 아이는 이제 방글라데시로 돌아와서 살고 있어요."

한국계 네덜란드인 장세진(사라 반 데어 헤이드) 작가의 작품 '어머니 산신 기관'(The Mother Mountain Institute)에 등장하는 사연이다.

입양 서류에 따르면 울산에서 태어나 부산 고아원으로 보내진 뒤 네덜란드로 국제입양된 장세진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국제입양제도에서 가장 소외된 친생모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장 작가를 20일 <올 어바웃 러브 : 곽영준 & 장세진> 전시가 진행 중인 서울 혜화동에 위치한 아르코 미술관에서 만났다. 

'어머니 산신 기관'은 대형 키네틱 사운드 설치 작품이다. 방 크기의 박스는 19세기 유럽의 태양계 천체 모형(orrery)을 크게 확대한 것으로 어머니를 상징하는 해와 자식을 상징하는 달이 공전한다. 이 둘은 서로 떨어질 수 없다. 박스 안에서 국제입양으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들의 이야기가 내레이션을 통해 소개된다. 어머니들의 목소리에 화답하는 산신은 국제입양으로 인한 상처를 보듬어주는 존재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한국과 방글라데시 어머니의 사연은 유사하다. 아이가 미혼모나 가난한 가정에서 차별받으면서 어렵게 사는 것보단 잘사는 서구의 백인 가정에 보내서 좋은 환경에서, 좋은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아이의 미래를 위해 나을 것이란 말에 어머니는 아이 양육을 포기한다. 방글라데시 어머니의 사연은 더 기막히다. '사기'에 가깝다. 방글라데시는 1971년 해방전쟁을 통해 파키스탄으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 전쟁 고아들이 많이 생겼다. 파키스탄 의용군들이 방글라데시 여성들을 성폭행해 생긴 아이들도 많았다. 또 1974년 심각한 기근과 홍수로 먹고 살기 힘들어지자 많은 이들이 무작정 도시로 몰려왔다. 수도 다카 주변엔 난민 캠프가 만들어졌고 여기에 서구의 비영리 단체들은 학교를 세웠다. 작품에 등장하는 어머니는 아이를 학교에 잠시 맡겼는데, 아이는 자신에게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네덜란드로 입양 보내졌다. 1972년부터 1976년까지 네덜란드 입양단체 '세계의 아이들'과 연계된 기관들은 이처럼 난민캠프의 부모들에게 아이를 맡기면 교육, 의복, 보육, 숙소를 제공할 수 있다고 꾀어 아이를 맡기게 한 뒤 부모들의 동의 진술을 조작해 국제입양을 보냈다는 의혹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어머니 산신 기관' ⓒ프레시안(전홍기혜)
 

장 작가는 친생부모를 찾지 못했다. 20년 전 부산을 직접 방문해 가족을 찾으려다 실패했다고 한다. 국제입양인이 친부모 찾기에 성공해 만나는 비율은 1%로 극히 희박하다. 아동권리보장원에 2020년 신청된 입양정보청구 1381건 중 상봉이 성사된 경우는 10명에 불과했다. 이처럼 가족 찾기가 어려운 이유는 국제입양을 보내기 위해 '고아호적'을 만드는 과정에서 출생과 관련된 다수의 정보가 조작됐기 때문이다. 이름과 출생연월일이 가짜로 기재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며, 친생가족에 대한 정보는 멸실되거나 은닉되는 경우도 많았다. 한국은 출생의 진실에 기초해서 신분이 등록될 권리를 국가가 보장하기는커녕, 제도적으로 이를 방해하는 시스템을 갖고 있는 나라다. 

그는 이 작품을 통해 국제입양의 폭력성, 가부장성, 식민지성에 대해 고발하고자 한다. 한국은 1953년 한국전쟁 직후부터 현재까지 20만 명에 이르는 아동을 국제입양 보낸 최대 송출국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국제입양이 '폭력적'인 제도라는 생각은 여전히 낯설다. 

"부모를 잃은 고아들이 국제입양 보내졌다고 하지만, 이들 중 절대 다수가 고아가 아니었고 어머니들은 살아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입양서류에 우리는 '고아'라고 적혀 있고 입양부모나 입양된 국가의 모든 이들에게 그렇게 이야기됩니다. 우리는 노숙자가 되거나 매춘부가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입양인들은 매우 운이 좋았다고 말해집니다. 우리를 입양 보낸 국가 뿐 아니라 입양된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에 '감사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실제로 고아가 아니라 서류상 고아였고, 입양산업 속에서 입양 보내질 만한 아이들이었습니다. 이 지점에 가장 큰 거짓이 존재하고 입양인들은 이 거짓 속에서 평생 살아야 합니다. 이는 얼마나 좋은 가정에 보내졌는지와는 무관한 문제입니다. 때문에 저는 국제입양 시스템이 폭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이 국제입양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전쟁과 가난이라는 이유가 존재했다. 지금은 세계에서 10위의 경제규모(2020년 기준)를 가진 국가다. 그러나 한국에서 국제입양은 계속되고 있다. ISS(international Social Service)에 따르면, 한국은 2020년 266명을 해외입양 보냈다. 1위 콜롬비아(387명), 2위 우크라이나(277명)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수치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이 아동들을 자국에서 키울 형편이 되지 못해 해외로 내보낸 것일까? 2019년 코로나19 발생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인적 이동이 제한되면서 대부분의 국가에서 국제입양이 줄었지만 한국은 오히려 증가했다. 노무현 정부 이래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해외입양 중단을 약속했다. 입양 아동의 인권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헤이그국제입양협약 가입도 마찬가지였다. 두 가지 약속 중 하나라도 지킨 정부는 없다. 장 작가는 한국이 70년째 국제입양을 계속 보낸다는 사실이 국제입양의 제국주의적 성격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미개한 국가에서 태어난 아동을 부유할 뿐 아니라 기독교를 믿는 서양국가들이 구원한다는 서사구조에 기초하고 있다. 장 작가는 또 한국이 해외입양을 중단하지 못하는 까닭은 해외입양이 한국 아동 복지 체제에서 이미 곁가지로 '제도화'된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제입양시스템은 한국에서 그 모델이 만들어졌습니다. 한국에서 아동복지는 공적인 영역인데 입양은 사적 입양기관의 절대적 영향력 하에 있습니다. 서울에서 지하철 이름으로 불릴 만큼 커다란 빌딩을 소유할 정도로 입양기관은 돈을 많이 벌었고, 한국 정부도 경제 개발 과정에서 이득을 취했습니다. 그러나 입양인들은 한국 정부로부터 어떤 말도 듣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산신 기관'은 2017년 시작해 현재 진행형인 프로젝트다. 그는 아이를 입양 보낸 어머니의 이야기와 그 역사적 배경에 대해 전시장 한쪽 벽에 빼곡히 기록해 놓았다. 이런 작품 설명도 작품의 일환이라고 강조한다.

"내가 이 작품에 '기관'이라는 제목을 붙인 것은 좀더 공식적인 성격을 부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작품은 영적인 프로젝트이자, 정보제공적인 프로젝트입니다. 동시에 치유적인 성격도 가집니다. 제가 어머니들의 이야기에 집중한 이유는 이들은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싶어하지 않았고, 평생 그리워하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 입니다. 그래야 해외입양을 중단시킬 수 있고 입양인들의 상처도 치유될 수 있습니다."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는 <올 어바웃 러브> 전시는 오는 7월 17일까지 열린다. (아르코 미술관 제1,2 전시실, 오전 11시-오후 7시, 매주 월요일 휴무, 관람료 무료) 

▲장세진 작가와 인터뷰는 20일 아르코 미술관에서 진행했다. ⓒ프레시안(전홍기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