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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코로나와 美대선의 방정식...'두 개의 미국'이 보여준 현실은

[2020 미 대선 읽기] '공화당 주' vs.'민주당 주'...두 개의 미국, 두 개의 현실

미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발생했지만, 일부 미국인들은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보도가 "가짜 뉴스"라고 믿고 있다.

이들은 감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주지사들의 행정 명령에 강력하게 저항하며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거리에 나와 성조기를 흔들며 하루라도 빨리 봉쇄를 풀고 경제 활동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절대 다수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지지자들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언론과 야당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마스크 착용을 고집스럽게 거부하면서 이들과 정치적 신념을 공유하고 있음을 행동으로 보여준다. 

바이러스 감염은 빈부 격차, 인종, 종교 등과 무관한 문제이지만, 미국은 사회-경제적 변수들이 실제 거주지역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회다. 미국에서 바이러스 감염은 사회-경제적 변수들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다보니 감염병 확산이라는 국가 위기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단합으로 현재의 정치적 분열과 갈등이 어느 정도 봉합될 수 있으리란 기대를 무참히 깨버렸다. 

코로나19 사태는 공화당 지지자와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의 현실 인식과 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대응책 마련과 관련된 생각의 폭을 오히려 크게 만들었고, 이들 사이의 반목과 갈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계산해 이런 정치적 갈등을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파란 주'에 집중된 코로나19 피해...코로나 사망자의 21%만 '빨간 주' 주민 

공화당 지지자들은 코로나19의 위험성을 부풀리는 민주당 지지자들 때문에 경제 재개에 어려움이 생기고 당장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는 공화당 지지자들 때문에 코로나19 확산 속도가 줄지 않고 있다고 비난한다. 

이런 인식은 자신의 신념에 의존해 현실을 인식하는 '확증 편향적' 사고라고 여길 수도 있지만, 실제 코로나19 관련 통계를 보면 그렇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25일 오후(현지시간)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확진자는 169만 여명, 사망자는 9만8000여 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런 피해는 전국적으로 골고루 분포하지 않는다. 미국 전체 확진자와 사망자의 약 5분의 1 가량이 뉴욕주에서 발생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최근까지 대도시 지역, 해안, 공업 지역 등을 중심으로 감염병이 확산됐다.

코로나19 피해는 인구밀도와 비례해서 나타났다. <워싱턴포스트>(WP)의 25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인의 3분의 1이 인구 밀도가 가장 높은 100개 카운티에 살고 있으며, 이들 카운티는 도시와 교외 지역을 구성하고 있다. 이 지역의 코로나19 확진자 발생 비율은 다른 지역보다 3배, 사망률은 4배 높았다. 

이런 인구밀도의 차이는 정치적 분열과 일치한다. 대도시 지역은 민주당 지지자가 많은 '파란 주'(블루 스테이트)다. 뉴욕, 뉴저지, 일리노이, 캘리포니아, 매사추세츠 등 현재까지 코로나19 피해가 큰 지역은 모두 '파란 주'다.

이에 비해 공화당 지지자들이 많은 농촌, 남부 지역 등 '빨간 주'(레드 스테이트) 상대적으로 인구밀도가 낮고, 코로나19 피해가 적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한 카운티들에는 미국 인구의 45%가 살지만 코로나19 확진자의 27%, 사망자의 21%만이 이 지역에서 발생했다고 WP가 보도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코로나19가 지역사회를 황폐화시킨 지역에 거주할 가능성이 높고, 공화당원들은 상대적으로 코로나19 피해가 적은 지역에 살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레드 스테이트'와 '블루 스테이트'의 현실은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코로나19 확진률과 사망률의 차이는 코로나19의 위험성과 이로 인한 경제 불황을 바라보는 인식의 근본적인 차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WP는 "앨라배마는 인구 10명 당 코로나19 사망자가 11명인 반면 뉴저지는 10만 명당 사망자가 122명이다. 하지만 두 주 모두 실업수당 신청자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크게 증가했다"며 '빨간 주' 주민들이 상대적으로 코로나19의 위험성을 가볍게 여기고 경제 재개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이유를 지적했다. 

정치 불신의 증가..."내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 

미국 사회에서 개인의 권리에 대해 다룬 책인 <자기 나라의 이방인>의 저자 UC 버클리 알리 헉샤일드 교수는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공화당 지지자들의 불신이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이들 사이에서 성장한 정부(정치)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했다고 WP는 지적했다. 민주당 정권도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로 빈부 격차가 확대되는 과정에 제동을 걸지 못했다. 소위 '리무진 진보주의자'(정치적으로는 진보를 지향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최상층인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들은 말만 그럴싸하게 늘어놓았을 뿐, 미국의 (백인) 노동자 계층이 느끼기에 자신들의 삶은 오히려 피폐해졌다. 

이들의 분노가 정당하다고 인정해주면서 정치적인 에너지와 자산으로 가져간 정치인이 바로 트럼프 대통령이다. 트럼프는 자신을 공격하는 야당, 언론들을 외부의 적으로 규정하는 방식을 통해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귀속감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정치, 언론 등 공론의 장에서의 제공하는 정보와 비판을 불신하기 때문에 이들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직접 보는 정보를 신뢰한다. 

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한 언론 보도를 "가짜 뉴스"라고 부정하며, 자신이 직면하는 현실이 전부라고 주장하는 미국인들은 이런 정치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WP는 텍사스의 공화당 지지자들에게 마스크는 나약하고 까탈스러운 자유주의자를 지칭하는 '눈송이'(snowflake)의 상징으로 여겨진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이들에게 마스크를 착용하라는 지침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자신이 정치적으로 가장 혐오하는 세력을 받아들이라는 요구로 여겨지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코로나19 정국에서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의 정치적 인식은 각기 다른 현실에 기반해 갈수록 분열이 극대화되고 있다. 이런 갈등은 11월 대선 전까지 봉합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2020년 대선으로 어느 당이 집권하더라도 결코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 

▲봉쇄가 풀린 텍사스주의 한 해변에서 가족들이 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성조기를 들고 나온 것을 보면 공화당 지지자들이라고 짐작 가능하다. ⓒAP=연합뉴스

 


출처: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0052608375193084 프레시안(http://www.pressi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