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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박스 선동 기사, 이젠 그만 씁시다"

한국의 혼외 출생율은 전체 출생의 2% 정도에 불과하다. 반면 OECD 평균 혼외 출산율은 39.9%에 이른다(OECD 통계, 2014년). 이미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제 9회 싱글맘의 날 국제 컨퍼런스'에서 이 같은 통계 수치는 "혼외 출생 자녀에 대한 한국 사회의 편견이 어느 정도 강고한지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지난 10여년간의 미혼모, 성인이 되어 귀환한 해외입양인들의 운동을 통해 미혼모(부)의 양육 보장과 관련된 인식과 제도에 큰 변화가 있었다. 과거에는 입양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원가정 보호와 아동의 이익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 정부 정책 방향으로 인정되고 있다. 정부가 올해부터 매년 5월 10일을 '한부모가족의 날'로 제정, 기념하기로 한 것은 이런 인식 변화를 보여준다. 

그러나 여전히 다수의 미혼모(부)가 정서적으로는 고립되고, 경제적으로는 빈곤한 상황에서 출산을 경험한다. 2018년 국내외 입양 아동의 90% 이상이 미혼모 아동이다. 또 상황이 크게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보다는 앞날에 대한 걱정이 더 큰 상태에서 아이를 양육해야 한다. 미혼모(부)의 자녀 양육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며, 지원.전달 체계가 복잡해 실수요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현실보다 미혼모(부)와 입양인 당사자들을 더 힘들게 하는 것은 여전한 사회적 편견과 자신들의 상황에 대한 몰이해다. 이를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아동 유기와 베이비박스를 둘러싼 논란이다.  

소라미 서울대 법학대학원 임상교수는 이날 토론회에서 "2011년 입양특례법 개정 이후 아동유기가 증가했고, 특히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아동이 증가했다는 주장이 십년 가까이 되풀이 되어 왔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아동 이익 최우선의 원칙'에 부합하도록 어렵게 개선한 현실을 과거로 회귀하기 위한 선동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입양특례법 때문에 아동 유기가 증가했다'는 요지의 기사는 매년 입양의 날 전후로 끊이지 않고 재생산되고 있다. 

소 교수는 "이 주장은 2011년 입양특례법 개정으로 입양을 위해서는 반드시 출생신고를 하도록 강제가 되었고, 그 결과 출생신고를 기피하는 미혼모들이 입양 대신 아동유기를 선택하게 되었다는 단계의 주장을 거친다"며 "하지만 2011년 입양특례법의 개정으로 출생신고가 강제된 것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입양특례법 개정과 무관하게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은 친생부모에게 자녀에 대한 출생신고 의무를 부여하고 있었지만, 입양기관과 부모의 편의와 선호 때문에 입양 대상 아동은 출생 신고를 하지 않는 '불법'을 저질러왔고, 정부는 이를 묵인해왔다는 것이다. 유엔 아동권리협약에는 모든 아동이 출생 등록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출생등록은 아동에게는 부모를 알 권리와 동시에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 교수는 또 "2009년 가족관계 등록법의 개정으로 일부 증명제도가 도입되어 혼인외 출산 사실이 현출되지 않을 수 있게 됐으며, 다시 2016년 법 개정으로 일반.특정.상세 증명서 제도가 도입되어 일반 가족관계 증명서에는 현재 혼인관계 이외 관계에서 출생한 자녀는 현출되지 않도록 되었다. 이와 같은 제도적 보완 노력들을 통해 아동의 출생신고될 권리를 보장하면서도 친모의 사생활보호의 균형점을 찾아왔다"고 말했다. '출생신고를 하면 가족관계증명서를 뗄 때마다 혼인 외 자녀의 존재가 드러난다'며 출생신고가 미혼모(부)에 대한 '사회적 낙인'으로 작용한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이다.  

소 교수는 "입양절차가 까다로워지고 출생신고를 기피한 미혼모들이 입양 대신 아동유기를 선택했다는 주장은 아무런 근거가 없는 비약적 주장"이라며 "이때 논거로 제시되는 통계가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아동이 증가했다는 것이지만 전국의 영아 유기 총합적인 통계에는 큰 차이가 없다. 오히려 언론의 주목으로 전국의 유기 아동이 특정 지역의 베이비박스로 몰리는 형국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같은 사실은 지난 2017년 12월 국회입법조사처 보고서에서도 지적된 바 있다. '입양특례법의 입법영향분석'(김준 사회조사심의관)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비박스에 유기되는 아동은 2010년 4명, 2011년 37명, 2012년 79명, 2013년 252명, 2014년 280명 등 가파르게 증가한 반면, 기아 아동 숫자는 2010년 191명, 2011년 218명, 2012년 235명, 2013년 285명, 2014년 282명 등(경찰청 통계) 완만히 증가했다. 

때문에 보고서는 "2013년 이후 대부분의 기아가 베이비박스를 통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난다"며 "이러한 현상은 베이비박스가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인지도가 높아지고, 이에 따라 영아를 안전하게 유기할 수 있는 대안으로 베이비박스가 급부상한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해석했다.  

보고서는 아동 유기, 불법 입양 증가 등 입양특례법 개정의 부작용으로 지적되는 일들에 대해 "과장된 것"이라며 본 반면, "아동의 보호 및 권리의 차원에서도 모든 아동이 출생 직후 등록되어야 한다는 것은 타협하기 어려운 원칙"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보고서는 "우리나라는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요구하고 있는 보편적 출생신고제가 도입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유엔아동권리위원회로부터 지속적으로 개선 권고를 받아왔고, 유럽처럼 출생신고를 의료기관과 부모 공동의 의무로 규정하는 방안 검토하되, 동시에 사생활 보호 등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된 바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한국미혼모가족협회,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등은 '싱글맘의 날' 성명서를 통해 "정부와 지방자지단체는 베이비박스를 더 이상 방치하지 말고 원가족이 아동을 양육할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하고 아동이 친부모를 알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